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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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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고사성어(2)
독서삼여(讀書三餘)

이야기가 있는 고사성어 (2)

 

독서삼여(讀書三餘)

 

종일 바람이 불었다. 집 앞 영산강 물이 바람결 따라 뒤척이는 소리가 들릴 듯 고적한 밤이다. 비가 내릴 것이란 예보는 어김없이 맞았다. 오늘 내내 피어오르는 미소와 함께 일말의 기대감에 부풀었다. ‘님을 만난 주일’이라던가. 독일 리트 속 데이트를 앞 둔 처녀의 심정 못지않았다고 할까.

짙푸른 잉크 냄새, 아직 펴보지 않은 서책을 가슴에 꼬옥 품는다. 겨울, 밤, 비가 내릴 때. 이 세 가지 조건이야말로 책읽기에 최적인 이른바 독서삼여라니 겨울 초입의 비 내리시는 밤 내 어찌 설레지 않을 수 있으랴. 드보르작의 낭만적 소품이 흘러나오는 FM을 틀어놓고 따뜻한 아랫목에서 미지근한 온기의 블랙커피를 마시며 만끽하는 독서상우(讀書尙友)다.

어느 시인은 고백했다. 아침에 읽은 짤막한 한 줄이 하루 종일 방안에 향기처럼 남아있는 글, 온기가 담겨있는 따뜻한 글, 영혼의 갈증을 축여주는 생수 같은 글, 눈물이나 이슬이 묻은 서정의 물기 머금은 글, 때로는 핍박받는 자의 숨소리, 때로는 칼날 같은 목소리, 노동의 새벽이 들어 있는 글을, 울림이 있는 글을, 글로써 그 사람을 느끼며 그래서 그와 동종으로 태어난 것을 자랑하고 싶은 글을 좋아하노라고. 비록 책 속에서이지만 향기 풍기는 이와 함께 거니는 맛! 음악과 책과 진한 커피 한 잔이면 대 만족인 내 방식의 독서삼여가 그야말로 천국이 따로 없건만 한결 호젓해진 마음은 자꾸 책 속의 벗을 청하는 남용을 부린다. 페이지 넘길 때마다 순간순간 그와 나누는 따뜻한 차 한 잔이 간절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세월의 간격, 거리의 격차가 엄연하니 어쩌랴.

대신해 옛사람의 충고를 되새긴다. 독서삼미(讀書三味)다. 한꺼번에 열 줄씩 읽어 내리는 십행구하(十行俱下)는 겉핥기다. 문패랄 수 있는 책 제명이 아니던가. 문 한 쪽에 걸린 그의 이름을 확인하기 무섭게 겉장이란 대문을 활짝 열고 반가운 눈빛으로 단숨에 상대의 행색을 살피는 과정이니 엄격한 의미로 바른 독서법은 아니다. 내 손 덥석 끌어당기는 상대의 기세에 집 마당으로 들어선다. 책읽기의 첫째 과정인 안도(眼到)다. 눈으로 꼼꼼히 살펴 읽어 내리는 과정이다. 두 번째 구도(口到)는 입으로 소리 내어 읊는 순서이니 오래토록 기리던 이의 이름을 반복해 불러보는 황홀함이랄까. 마침내 독서의 최고의 경지를 이르는 심도(心到)다. 이윽고 내 마음에 아로새기는 그대의 말씀 한 마디 한 마디, 더불어 웃음과 그 고운 자태까지 세월 간다한들 어이 잊을 수 있으랴.

 

이별이 아쉬워 취하도록 마신 지 몇 날인가(醉別復幾日)

명승과 고적을 두루 함께 다녔지(登臨遍池臺)

아, 언제 석문 산길에서(何言石門路)

다시 술동이를 딸 때가 있으려나(重有金樽開)

-이백(李白)-

 

여기 위수 북쪽엔 나무에 봄빛이 드는데(渭北春天樹)

거기 강동 땅엔 저녁노을 일고 있겠지요(江東日暮雲)

언제나 다시 만나 동이 술을 비우며(何時一遵酒)

그대와 더불어 자세히 시를 논하게 될까요(重與細論文)

-두보-

 

‘노군 석문에서 두보를 보내며’(魯郡東(石門送杜二甫)라는 이백의 시에 화답한 두보의 ‘봄날 이백을 생각하다’(春日憶李白), 두 편 시를 읽는 정회가 책 읽는 맛과 흡사하다. 이백이 44세, 두보가 33세, 11세 차이가 나는 시선(詩仙) 이백과 시성(詩聖) 두보가 낙양에서 우연히 만났다던가. 때는 봄이었고 시 속에서 엿보이듯 동행의 여정에서 깊은 우의를 나누다가 그 해 가을 헤어졌다. 이후 두보는 위수를 건너 장안으로 가고 이백은 강동에서 유랑을 계속했다. 그렇지만 연연한 그리움은 도도한 강물이 되어 서로를 향해 흘렀다. 안록산의 난을 피해간 곳에서 비 가릴 이엉 얹을 형편조차 안 되었다는 게 두보의 형편, 자신을 알아줄 이 드문 세상에서 이백 또한 신산한 처지인 건 마찬가지였다. 어쨌든 장수는 장수를 알아본다고 단숨에 서로를 지음(知音)한 두 사람이니 한 동이 술을 놓고 시를 나누고 싶어 하는 건 당연하지 않는가.

장자(莊子) 이르기를 애써 기르던 양을 잃는 경지라 했다. 나 역시 책에 빠져 자주 현실감을 잃는다. 이 비오는 겨울 밤, 영혼의 오솔길을 함께 거닐어 준 책 속의 님과 동이 째 술이라도 들이킬 호기다. 바로 이런 때 누렇게 바랜 서책을 펼쳐두고 외할아버지께선 적당히 데운 중탕(中湯)의 정종을 천천히 드셨다. 누군가 당신 앞에 마주앉아 있는 듯... . 그윽한 그리움을 해소해 줄 한 모금의 술, 그것이 아니라도 은은한 인품의 향기에 비오는 초겨울 입구의 나의 저녁은 더할 나위 없이 풍성하다.

온후한가하면 냉혹하고 차가운가하면 뜨거운 열정으로 나를 한없는 매혹의 세계로 이끄는 책의 위력이다. 어디선가 지구의 저쪽 끝에서 말없이 창문을 열고 지향 없이 나의 밤을 지켜주던 책 속의 사람은 나지막이 목례를 보내며 떠나갔으니 이제 비오는 겨울밤은 점점 더 깊어 가리라. 책이라는 뜨겁고 어진 그대는 이렇듯 변함없이 나를 설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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