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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사영의 7대 후손 황인수씨(왼쪽)와 황인수씨의 어머니 김중례씨(오른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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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경한씨(황사영의 자)의 묘소에서 제를 지내고 있다. |
유형(流刑)의 땅, 추자도를 찾아서
글 : 신영호 문화해설사
신유박해(1801) 백서사건의 주인공 황사영의 후손을 찾다
지난 11월 19일 이른 아침, 강진읍에서 강진군해설사 24명과 함께 추자도를 향해 출발했다. 완도항의 추자도행 배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 아침 일찍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몇 주 전부터 여러 차례 날짜를 잡았으나 겨울 날씨는 그리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아제 저녁까지 비가 부슬부슬 내려서 또 날씨가 발목을 잡는가 싶었는데, 아침이 되자 말짱 개었다. 그동안 수 없이 섬 여행을 다녀오곤 했지만 기상악화가 되면 천하장사도 옴짝달싹 할 수 없었다. 결국 날씨가 부조를 해주지 않으면 안 되는 게 섬 여행이었던 것이다.
비가 내린 뒤여서 아침공기가 몹시 찼다. 서로 인사를 나누며 차에 올랐는데, 여행이라면 설레임과 달뜬 기분이 있기 마련인데도 왠지 마음이 무겁고 착잡했다. 목적지가 추자도였기 때문일까.
추자도는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추자면에 속한 다도해 청정지역이다. 요즘 세상은 추자도에 가서 바다낚시를 즐기는 일이 최고의 낭만이지만 210여 전, 어린 아들을 추자도에 던져두고 제주도 대정현으로 유형의 길을 떠난 어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더욱이 8대 옥당의 집안으로써 부족할 게 없었던 정난주(마리아 · 황사영 부인)는 사랑하는 남편 황사영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것만도 청천벽력일진대, 장례조차 제대로 치루지 못하고 떠나는 유배길이 아니었던가. 원통하고 한이 맺힌 길이었지만 살아있다고 들숨날숨을 쉴 수밖에 없는 모진 목숨이 차라리 원망스러웠으리라.
여기서 정난주를 잠시 소개하자면 강진에서 18년 유배를 살아야만 했던 정다산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난주(마리아)는 누구인가?
정 마리아는 18세가 되던 1790년 무렵에 황사영(알렉시오)과 혼인을 하였는데, 황사영은 1775년 서울의 아현에서 유복자로 태어나 1790년 진사시에 급제한 후 인척 이승훈(베드로)으로부터 천주교 서적을 얻어 보게 되었고, 이승훈·정약종 등에게 교리를 배웠다. 황사영은 과거는 포기한 채 전교 활동에만 전념하였고, 마리아는 신앙 공동체를 뒷바라지 하였다.
정 마리아는 1800년에 아들 경한(景漢)을 낳았으나 이듬해 신유박해가 일어나 그 때부터 모든 가족이 수난을 겪어야만 했다. 황사영의 체포령이 내려지면서부터 그녀는 남편의 종적을 알아내려는 포졸들에게 갖은 문초를 당했으리라고 짐작된다.
결국 7개월 후 황사영이 체포되자 조정에서는 이를 대역부도 죄로 다루어 그에게 능지처사로 벌을 내렸다. 그리고 이어 부인 정 마리아와 남은 가족에게도 연좌죄를 적용하여 모친은 경상도 거제부로, 부인 정 마리아는 전라도 제주목 대정현의 노비로 유배되었다. 아들 경한은 겨우 두 살이어서 교수형은 면하고 전라도 영암군 추자도의 노비로 가게 되었다.
한편 신유박해로 인해 황사영이 체포되자 장기현과 신지도에 유배되었던 정약용과 정약전은 서울로 압송되어 조사를 받았으나 아무런 혐의를 발견하지 못해 귀양지를 바꾸어 정약전은 흑산도로, 정약용은 강진현으로 유배를 오게 되었다.
강진과 연관이 있는 추자도
몇 주 전 추자도 면사무소에 근무하는 김복남 직원과 통화를 하면서 황경한(황사영의 아들)의 후손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 직원은 추자면 예초리에 7대 후손 황인수(67세)씨가 모친 김중례(90세)와 부산에서 살고 있는 손자들이 와서 함께 살고 있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말과 글에서만 듣던 황사영 사건이 뇌리에 떠오르면서 그 절박했던 그 때 일이 상상되었다. 두 살배기 어린아이를 추자도에 던져두고 제주도를 향해 갔을 정 마리아의 모진 일생이 손에 잡힐 듯 느껴지는 것이었다. 인간의 목숨이 칡넝쿨보다도 더 질긴 것이라서 그 오랜 세월을 견디고 견뎌서 이제 8대 후손의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다니·····.
추자도. 상추자도와 하추자도로 나뉘어져 있는 두 개의 섬. 추자도는 인구 2,600여 명이 살고 있는 작은 섬이다. 조선시대에는 영암군에 속했다가 다시 완도군을 속했었다. 그러다가 최근에 제주시에 편입된 추자도는 강진과 여러 면에서 오랜 기간동안 연관이 있다. 즉, 추자도에서 나는 해산물을 팔기 위하여 뱃길이 수월했던 강진과 관계를 맺으면서 강진읍 남포가 번성했던 것이다. 특히 추자도 멸치젓은 우리 식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반찬이었다. 추자도에서 나는 해산물을 강진에 팔고 강진에서 나는 쌀과 생활필수품을 사서 고독한 섬생활을 이겨냈던 추자도 사람들.
완도항에서 아침 8시에 출발하여 3시간의 항애 끝에 하추자도 신양항에 도착하자 미리 연락을 했던 관계로 황인수씨와 모친 김중례 할머니가 나와서 기다리고 계셨다. 그 분들은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는데, 이을미 강진군해설사회장의 소개로 일행은 인사를 마친 후 버스승강장 앞에서 기념촬영을 할 수 있었다. 김중례 할머니는 연세가 많아 황경한 씨의 묘소를 함께 갈 수가 없다고 해서 황인수씨와 함께 산으로 향했다.
동쪽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산모퉁이를 돌아서 추자도 천주교지소를 지나 산길을 한참 올라가고 있을 때 때마침 목포에서 제주를 가는 여객선이 지나가고 있었다. 210년 전, 춥던 11월 8일 서울을 떠나서 낯설고 물 설은 유배길을 떠났던 정 마리아. 정 마리아는 어린 아들을 강보에 싸서 부친과 모친의 이름을 쓰고 배냇저고리에 넣어 이곳 추지도 예초리 황새바위에 놓아둔 후 떠났을 때의 애끓는 심정이야 짐작인들 할 수 있겠는가. 제주로 가는 여객선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면서 다시 한 번 그 시절의 애통함을 상상해보았다.
어느 틈에 산 정상에 올라갔을 때 왼쪽으로 잘 정돈된 묘소가 있었다. 바로 그 묘소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희생된 황사영의아들 황경한의 묘소였다. 바다쪽으로는 정자가 하나 서있는데, 그너머 바다쪽으로 나와 있는 바위가 황새바위였다. 정 마리아는 황경한을 추자도에 두고 떠났을 때, 뱃사공에게 패물을 주면서 애원했다고 한다. 아들을 살릴 목적으로 경한이는 죽어버려서 바다에 수장했다고 조정에 보고해 달라는 애원이었다. 현재 추자도에 전해 내려오는 얘기는 다음과 같다. 오씨 성을 가진 어부가 어린아이 울음소리를 듣고 가서 데리고 와 키웠는데, 오늘날까지도 그 인연을 소중히 생각해 서로 혼인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산 정상은 바람이 제법 불어왔다. 쪽빛 바다에서 쉼 없이 불어오는 갯바람이었다. 우리는 제관복을 입고 강진에서 준비를 해가지고 간 제주를 무덤 앞에 뿌렸다. 윤동옥 후배의 사회와 윤승동 선배의 축문이 이어졌다. 이을미회장이 일행의 대표자격으로 제상 앞에 절을 올렸다.
“뒤늦게나마 이곳 추자도를 찾아 강진의 해설사들이 절을 올립니다. 편안히 잠드소서”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빌었다.
추자도의 특산품 참조기
황경한 묘소에서 제사를 지낸 우리는 버스를 타고 산길과 바닷길을 바꿔가며 30여 분 후에 상추자도에 도착했다. 면사무소 직원이 나와서 친절하게 식당을 안내해 주었다. 새벽에 강진을 출발했던 관계로 몹시 시장한 우리는 조기백반을 단숨에 먹어치웠다.
밥을 먹는 동안에도 바람은 점점 거세어지고 있었다. 정신없이 밥을 먹느라고 날씨 걱정 따위는 잠시 잊었는데, 이렇듯 바람이 거세어지면 육지로 나갈 수 있을까 은근히 걱정되었다. 우리 일행 중 누군가가 스마트 폰으로 날씨를 확인해 보다니 다행히 배가 다닌다고 해서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추자도는 멸치가 한창 파시를 이룰 때 개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녔다고 한다. 그같은 전설 아닌 전설이 있을 정도이지만 지금은 수온의 변화로 멸치는 아예 볼 수가 없고, 조기와 삼치, 고등어가 주로 잡힌다고 한다, 점심을 먹고 배시간이 남아 부둣가를 산책하다가 전에 들렸던 대성수산 가게에서 조기를 산 다음 택배로 부쳤다, 제주 추자도 연, 근해에서 어획한 조기는 1년 이상 간수가 빠진 천일염을 전통기법인 엮거리로 가공하여 깨끗한 식수와 염수에 번갈아 2~3회 세척한 루 섬 지방 특유의 맑고 신선한 해풍에 자연건조 된다고 한다. 담백한 맛은 이미 점심 때 맛보았던 터라 아직도 입 속에 달착지근하게 남아 있어 구입하지 않고서는 못 배길 것 같았다. 그런데 이번 조기는 늦가을에 잡은 조기로 더욱 맛이 괜찮다고 가게 주인은 설명했다.
완도행 여객선에 올라탔을 때 나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황사영 백서사건의 주인공, 바로 그 아들 황경한의 묘소를 참배했다는 점에 왠지 가슴이 뿌듯해 왔다. 왜냐하면 강진을 찾는 사람들에게 다산을 말하고, 목민심서를 말하고, 실학사상을 말하고, 황상을 말하고, 정약전을 말해왔지만, 정작 남편의 능지처참을 당하는 처참한 꼴을 겪은 후 두 살배기 자식까지 추자도에 던져둔 채 제주도로 유형의 길을 떠났던 정 마리아의 통곡의 심정을 느껴보지 않고서는 말할 자격이 없을 것 같아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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