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고을신문 : 홍어장수 문순득과 다산형제(1)

역사의 원류를 찾아서

홍어장수 문순득과 다산형제(1)

홍어와 문순득

홍어장수 문순득과 다산형제의 얘기를 하기 전에 참홍어부터 설명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참홍어를 좋아하는 남도 사람들은 지금도 피로연이나 잔칫집, 혹은 한정식에 참홍어를 빠뜨리는 법이 없다. 홍탁삼합의 음식이 차려져야 최소한 기본 식단이 되기 때문이고 그것은 손님에 대한 예우 차원이기도 하다. 사실 김치를 길게 깔고 푹 삶아진 돼지고기에 참홍어 한점을 얹어 먹으면 입 안에서 코로 건네지는 냄새가 역겹다가도 씹을수록 가슴까지 개운해지는 후련함이 느껴진다. 혀끝으로만 먹는 게 아니라 코와 눈까지 음식 맛을 느끼게 하는 것이어서 오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 참홍어이다. 사실 어느 잔치집 치고 홍어가 나오지 않는 잔치집을 본 적이 있었던가.

이러한 참홍어는 흑산도 부근에서 많이 잡고 있고, 그래서 ‘홍어’하면 ‘흑산도 홍어’를 가장 알아주고 있다. 그러나 해가 갈수록 참홍어의 어획량은 감소되고 있는 처지여서 요즘 잔칫집에 가면 칠레산이나 아르헨티나, 혹은 중국 등지에서 건너온 수입산을 볼 수 있다.

왜 참홍어는 다른 어종에 비해 귀할까? 그것은 너무 많이 잡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참홍어는 한 번에 4~6개의 알을 산란을 한다. 보통 어류는 수만 여 혹은 수십만 개의 알을 낳는 대신 참홍어의 산란은 횟수가 적기 때문에 자원의 회복이 훨씬 더디다는 것이다.

홍어×이란 말이 있는데, 이 말은 오랜 기간 동안 바다에서 지내는 선원들이 여자를 참지 못하고 갑판에 누워있는 암컷홍어의 생식기를 대신 사용한다고 하는데서 유래된 말이다. 마치 여자의 그것처럼 생긴데다가 또한 여자의 질처럼 부드럽고 비슷하다고 하니 부잡스런 어부들이 갖는 공공연한 비밀이기도 하다. 참홍어는 이상하게도 그렇게 생긴 어종이다. 또 수컷 참홍어의 생식기는 두 개나 된다. 꼬리가 시작되는 부위에서 양쪽으로 두 개가 불거져 나와 있는데, 가시가 붙어 있다.

정약전 선생은 ‘자산어보’를 쓸 때 홍어에 대해 “양 날개에는 가느다란 가시가 달려 있어 암컷에 몸을 고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러다보니 암컷이 낚시 바늘을 물면 꼼짝없이 수컷까지 잡히고 만다. 암컷은 먹이를 탐하다가 죽고 수컷은 색을 밝히다가 죽는 꼴이니 음(淫)을 탐하는 자에게 본보기가 될만하다”고 말했다. 암컷이 낚시 바늘을 물고 있을 때 수컷이 달려들어 교미를 즐기는데, 함께 잡히는 바람에 죽음 또한 함께 하는 것이 참홍어인 것이다. 그러나 참홍어는 일부일처를 지키는 지고지순한 물고기라고 밝혀지고 있다. 낚시에 걸려 죽음을 맞이한 암컷과 마지막 정사를 벌이는 참홍어의 섹스는 차라리 처절할 만큼 아름답기만 하다.

참홍어를 잡을 때 암컷과 수컷이 함께 나오는 것을 보고 홍도 아낙네들의 노랫가락에 이런 말이 있다고 전해져 오고 있다.

“나온다 / 나온다 / 홍애가 나온다 / 암놈 수놈이 불붙어 나온다”

이런 노랫가락에서도 정약전 선생의 말을 입증하고도 남음이 있다.

참홍어가 비싸다 보니 간재미 홍어를 즐겨먹는 사람들도 많다. 겨울철에 농어니, 돔이니 하는 육질이 부드러운 회보다도 딱딱하고 씹히는 맛이 있는 간재미 홍어의 독특한 맛에 인기가 있다. 일반 회와 간재미회를 동시에 상 위에 놓아둘 경우 간재미회에 젓가락이 더 가는 것도 우연한 일은 아닌 성 싶다. 홍어와 비슷하게 생긴 것이 있다면 가오리이다. 가오리는 오각형 몸매인 것에 비해 홍어는 입이 뾰족한 게 특징이다.

참홍어는 뼈마디가 쑤시고 아플 때 좋으며 골다공증과 산후풍에도 좋다고 한다. 거담효과에도 좋고 간은 관상동맥 질환과 혈전증에도 좋다고 하니 유익한 물고기임에 틀림없다. 보리가 마악 피어났을 때 보리와 간을 함께 넣어 끓인 앳국은 몸살기를 깡그리 없애주는 효과도 있다. 그러나 참홍어의 가격은 만만치 않아 흑산도 현지에서 보통 8kg짜리가 50만원이 넘는다.

이러한 참홍어를 파는 홍어장수 문순득이란 사람이 우이도란 섬에서 정약전이 유배생활을 시작할 때 살고 있었다. 우이도 인근 지역 수역은 한류와 난류가 합류하기 때문에 어족자원이 풍부했다. 게다가 해류의 속도가 빨라서 해상활동을 하기가 용이했다. 문순득은 배를 지녔기 때문에 육지와 왕래를 하면서 부를 축척했고, 육지와의 소통을 이어주는 역할을 했다.

특히 우이도(牛耳島)는 절해고도로 알려져 있어 그의 역할과 기능은 매우 클 수밖에 없었다. 문순득은 우이도에서 태어나 우이도에서 자랐다. 우이도는 실학자 정약전(丁若銓·1758~1816))이 유배되었던 섬이다. 정약전은 정약용(丁若鏞1762~1836)의 중형(仲兄)이다. 4형제 중 정약전이 둘째이고 정약용이 넷째였다. 두 형제는 신유사옥을 겪으면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채 정약전은 흑산도로, 정약용은 강진으로 유배생활을 시작했던 것이다. 형제인 정약종은 스스로 천주쟁이임으로 밝히고 순교한 대신 두 형제는 모진 목숨을 간신히 부지하고 유배길을 떠난 것이다. 바로 두 형제 중 정약전이 유배생활을 했던 곳이 우이도이다. 정약전은 1801년 겨울 흑산도로 정배되어 처음에는 우이도에서 살았고, 다시 1807년 초 대흑산도로 이주했다가 다시 우이도로 옮겨 살았다. 그리고 거기에서 1816년 불우한 삶을 마감했다. 우이도에서 홍어장수 문순득과 정약전이 만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먼저 우이도란 섬을 살펴본다. 우이도는 소흑산도로 불리며 대흑산도와 같은 권역으로 흑산도에 정배된 유배인이 우이도에서 생활할 수 있었다. 조선후기에 조정에서는 제주도, 거제도, 진도, 고금도 등을 유배지로 활용했었는데, 정약전은 흑산도와 한 영역인 우이도에서 많은 생활을 했다.

이런 우이도에 정약전이 살았던 당시 홍어장수 문순득이도 한 마을에서 살았던 것이다. 그는 홍어를 사다가 파는 홍어장수였지만 정약전과 가까이 지냈다. 정약전 역시 마을 사람들과 가까이 지낼 수밖에 없는 것은 절해고도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태풍이 불면 며칠씩 발이 묶이는 절해고도 우이도. 필자는 바로 홍어장수 문순득과 정약전을 만나기 위해 일요일까지 이어진 추석연휴에 1박 2일로 우이도를 방문했다. 문순득과 정약전이 살았던 현장을 두 눈으로 보기 위해서였다.

우이도 '진리' 마을

우이도 가는 길

우이도를 가려면 목포연안여객터미널을 이용해야 한다. 그곳에서 오전 11시 40분 ‘섬사랑 6호’가 출발한다. 일반인은 14,550원이고 도서민은 5,000원 밖에 되지 않는다. 하루에 한차례 운행되는 ‘섬사랑 6호’는 쾌속선이 아니기 때문에 3시간이 소요되는 우이도행은 다소 지루한 감을 준다. 그러나 1004개 된다는 신안군의 많은 유·무인도를 거쳐 가기 때문에 배가 지나가는 양쪽으로는 끊임없이 섬이 이어지곤 해서 지루하다는 말은 사치스러운 말일 수도 있다.

배는 도초면에서 한차례 멈춘 후 다시 우이도까지 직행하는데, 가도 가도 바닷물이 탁하고 흐리기만 해서 우이도에 산다는 박정의(83) 옹에게 물었다.

“뻘이 많다본께 그란다요. 하제만 홍도쪽으로 나가면 바닷물이 깨끗하다요.”

우이도에서 태어나 평생 살아왔다는 말에 호기심이 일어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젊어서 꽃게를 잡으러 댕겼지라. 그 때는 꽃게가 많응께로 그물로 잡았는디 지금은 통발로 잡지라. 조그만 배로 봄 한 철 꽃게를 잡고나면 지금 돈으로 2천 만 원 정도를 손에 쥐었지라. 많은 것 같아도 그물 값, 놉 값 제하고 나면 그저 그러지라. 그래도 꽃게 잡아갖고 2남 3녀를 다 목포에서 공부시켰지라”

자신의 신상을 밝힌 박 옹은 여든 셋의 연세인데도 3시간 정도는 거뜬히 걸을 수 있다며 건강 자랑을 늘어놓는다. 허리하나 구부러지기는커녕 조금 보태서 60대 정도의 몸을 지닌 박 옹이다.

“옛날에는 물때에 따라 배를 움직였지라. 바람이 안 불면 노를 저어야 하고, 바람이 맞바람이면 지그재그로 배를 몰았지라. 내 나이 예순까지만 해도 돛 달고 댕겼소.”

물이 들 때면 목포 쪽으로 가기가 용이하고, 물이 빠질 때면 목포 쪽에서 오기가 용이하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나 도초면에서 짚과 쌀을 싣고 4~50분 거리인 우이도를 향하다가 풍랑을 만나 죽은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육지의 교통사고처럼 바다에서는 풍랑으로 인해 큰사고로 이어지는 일이 어디 한 두 번이겠는가.

3시간 동안 배를 탄 끝에 홍어장수 문순득과 정약전이 살았던 진리에 도착했다. 선착장에 내려 주변을 살펴보니 ‘진리’라는 마을 하나가 항아리 속에 든 밤알처럼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소귀를 닮아서 우이도(牛耳島)라고 했다던가. 그러나 당장 소귀를 닮았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고, 일단 진리라는 마을을 향해 걸어 나갔다. 바로 그 마을에 홍어장수 문순득의 생가가 있었다. 그 시절, 부유하게 살았는지 4칸 접집이었고, 집 주변에 채마밭도 있었다.

문슨득 생가

홍어장수 문순득(文淳得1777~1847)은 어떤 인물인가. 조선후기 현재의 신안군 우이도에서 살았던 홍어장수로 1802년 1월 태사도(현 대흑산도 인근)에서 풍랑을 만나 표류를 하게 된다. 박 옹의 말대로 태풍이 여름철에 많기 때문에 먼 거리는 자제하고 지내고 겨울철을 이용하게 되지만 겨울철 역시 매운 바람이 불면 파도가 크게 인다고 한다. 그 같은 말은 ‘섬사랑 6호’ 기관장도 마찬가지였다. 겨울철이 더 무서울 수 있다는 것이다.

어쨌든 홍어장수 문순득은 겨울철에 표류하여 유구(琉球:현 일본 오키나와) · 여송(呂宋 :필리핀) · 오문(澳門:현 마카오) 등을 체험한 후 중국대륙을 거쳐 1805년 우이도로 돌아온다. 이 때 그의 경험담을 당시 유배생활을 하던 정약전에 의해 「표해시말(漂海始末)」이란 저술로 남겨지게 되었다. 또한 문순득은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하는 정약용에게 편지를 전달하기도 하고, 서남해 여러 섬에서 유배생활을 하는 유배인들의 편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따라서 경제활동은 물론 섬과 내륙을 연결하는 문화메신저 역할까지 하게 되었는데, 나중 정약용의 제자였던 이강회까지 표류경험이 전달되어 정약용은 물론 이강회 역시 문순득의 표류경험에 동참하게 된다.

특히 이강회는 정약전이 우이도에서 사망하자 직접 그곳으로 건너가서 문순득으로부터 경험담을 다시 듣게 되고, 그것이 「운곡잡저」와 「운곡선설」을 집필하게 된다. 그러므로 홍어장수 문순득의 표류경험은 정약전, 정약용, 이강회에 이르기까지 참여하게 되었다.

필자는 문순득의 생가를 친견한 후 그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정약전이 살았던 곳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그 집은 간 곳이 없고 「정약전 유배 적거지」란 팻말만 서 있었다. 마을에서 웃뜸에 해당되는 곳이었다. 다시 조금 더 길을 오르자 정약전이 서당을 차려놓고 아이들을 가르쳤다는 서당터가 나왔다. 서당터는 바다가 보일락말락한 지점으로써 뒷산 정상부에는 암벽이 자리하고 있었다. <다음 호에 계속> / 송하훈 기자

사진1 : 문순득 생가

사진2 : 우이도 ‘진리’ 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