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레
고수레는 산이나 들에서 음식을 먹을 때나 무당이 굿을 할 때, 귀신에게 먼저 바친다는 뜻으로 음식을 조금 떼어 던지는 일을 가리키는 말이다. 술꾼들이 술병을 새로 딸 때 술을 조금 흘러 버리는 일도 고수레라고 하는데, 이건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술꾼이란 ‘피 같은 술’이란 말이 있을 만큼 술 한 방울도 아깝게 여기는 족속들인데 술을 버리다니. 하기는 막걸리나 소주를 마실 때는 고수레를 하는 것을 많이 보아 왔지만, 비싼 양주를 마실 때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는 것을 보면 귀신에게는 이 정도까지만 주어야지 하는 한계랄까 선(線) 같은 것이 있기는 있는 모양이다.
고수레의 기원이나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제기되고 있는데, 그 가운데 대표적인 두 가지를 소개한다. 첫 번째는 고시(高矢)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고시는 단군 때에 농사와 가축을 관장하던 신장(神將)의 이름으로, 그가 죽은 뒤에도 음식을 먹을 때는 감사의 표시로 일부를 그에게 먼저 바친 뒤에 먹던 습속(習俗)이 있었는데, 이것이 지금의 고수레가 되었다는 것이다.
다음은 고씨례(高氏禮)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설이다. ‘전설따라 삼천리’가 늘 그렇듯이 연대는 아려져 있지 않지만 삼남지방 어느 고을에 고씨 성을 가진 지주가 있었다고 한다. 그는 마음씨가 좋고 후덕하여 자기 땅을 부치는 소작인들에게 소작료를 받기는 했지만, 그 해의 소출과 소작인의 가정 사정을 헤아려 소작료를 감해 주거나 면제해 주었으며, 자기가 새로 사들인 전답을 소작인들이 사정에 따라 골고루 나눠주어 무상으로 경작하게 했다. 그래서 그 지역의 농민들은 그를 받들어 존경하게 되었으며, 그 뒤부터는 언제 어디에서든지 먹을거리가 생기면 먼저 고마운 지주인 고씨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표시로 ‘고씨례’라고 외치면서 음식을 사방에 뿌렸다고 전해진다. 그 ‘고씨례’가 오늘날의 고수레로 되었다는 얘기.
그러면 고수레처럼 음식을 만들거나 먹는 일과 관련된 말 가운데 재미있는 것들을 알아보자. 지금까지 얘기한 고수레 말고 다른 고수레가 또 있는데, 이왕 고수레로 시작을 했으니 다른 고수레라도 마저 얘기하자. 흰떡을 만들려고 쌀가루를 반죽할 때 끓는 물을 쌀가루에 훌훌 섞어서 물기가 고루 퍼지게 하는 일을 고수레라고 한다.
나는 쓸데없이 양이 커서 자장면도 곱빼기 아니면 먹지 않는 사람이다. 언제나 사람이 좀 사람답게 되어서 ‘자장면 보통’을 주문할 수 있는 날이 올까. 무엇을 두 번 거듭하는 것이나 음식의 두 사람 몫을 한 그릇에 담은 분량을 곱빼기라고 하는데, 왜 곱빼기가 중국집, 중국집에서도 자장면과 짬뽕 같은 면 종류에만 따라 다니는 말이 됐는지 궁금하다. 중국집에서도 볶음밥 곱빼기, 탕수육 곱빼기 따위의 말은 들어 본 적이 없고(사실은 그렇게 시킬 이유도 없기는 하지만), 냉면 같은 것도 사리 추가는 있지만 곱빼기라고 하지 않는다. 재미있는 일이다. 하기는 자장면 곱빼기나 짬뽕 곱빼기도 진정한 의미에서의 곱빼기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국수나 떡국 같은 것을 한 그릇에 곱빼기로 마는 것은 ‘엎어만다’고 한다. 한 그릇의 음식을 다른 그릇에 ‘엎어서 만다’는 뜻이다. 그릇 밑바닥에 고기를 깔고 그것이 보이지 않도록 국수나 떡국을 마는 것도 ‘엎어만다’고 한다.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 함께 밥상 앞에 앉아 있는데, 그 정을 드러내 놓고 표시할 수 없을 때, ‘엎어말기’는 훌륭한 표현 수단이 된다. 그럴 때 그릇 밑에 깔린 고기는 고기가 아니라 정(情)이다. 나는 그 고기를 위해 정육(情肉)이라는 이름을 만들어 바친다.
‘엎어말기’처럼 따뜻한 정이 스며 있는 것이 토렴이라는 말이다. 밥이나 국수에 뜨거운 국물을 부었다 따랐다 하며 데우는 일을 토렴이라고 한다. 조금이라도 따뜻한 것을 먹이고 싶은 마음, 식은 음식을 먹이고 싶지 않은 마음이 토렴이라는 말에 배어 있다. 늦게 돌아올 아이들을 위해 밥그릇을 이불 속에 ‘앙구어’두는 어머니의 마음과도 통한다.
기억에 둘 만한 도사리들
엎어말다 : 국수나 떡국 같은 것을 한 그릇에 곱빼기로 말다.
토렴 : 밥이나 국수에 뜨거운 국물을 부었다 따랐다 하며 데우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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