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순신의 거듭된 요청 때문인지 대원수 권율로부터 장문포에 주둔하고 있는 왜적을 섬멸하기 위해 조선수군을 출동하라는 비밀문서가 왔다. 이순신이 알아본 왜적의 동태는 장문포에 전선 100여 척과 지척에 있는 영등포에 70여 척이 정박해 있었다. 그 때 육군에서는 경상도 조방장 곽재우, 의병장 김덕령, 충청병사 선거이 등이 1.000여 명의 군사들을 이끌고 있었고, 3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은 경상우수사, 전라우수사를 먼저 장문포를 보냈다.
육군과 수군이 합동으로 작전을 세운 대규모 전쟁을 앞두고 이순신은 잠이 편리 올 리가 만무했다. 9월 28일 새벽에 이순신은 홀로 촛불을 켜고 이 싸움에서 이길 것인지, 아니면 참패를 당할 것인지 길흉을 점쳐 보았다.
여궁득전(如弓得箭). 처음에는 활이 화살을 얻은 것과 같다는 쾌가 나왔다. 매우 길한 내용이었다. 두 번째로 뽑아들자 이번에는 여산부동(如山不動). 즉 산이 움직이지 않는 것과 같다는 쾌가 나왔다. 더 좋은 내용이었다.
“출동하라!”
다음 날, 이순신이 판옥선 위에 올라가 크게 외치자 드디어 조선수군은 물살을 가르며 바다를 향해 나아갔다. 황대중도 배에 올라 군사들을 독려하며 만반의 전투준비를 점검했다. 그런데 막상 장문포에 도착했을 때 왜적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왜적은 감히 가까이 할 수 없는 험준한 곳에 웅거한 채 이쪽의 동태만 살피고 있었다. 그들은 누각을 높이 짓고 양쪽 봉우리에 진지를 쌓고 지내고 있었는데, 조선 수군이 몇 방 대포를 날리는데도 전혀 움직이질 않는 거였다. 더구나 장문포 앞바다에 있던 선봉의 왜선 두 척을 향해 화살을 쏘아대자 배를 버려둔 채 뭍으로 도망을 쳐버렸다. 아무도 없는 빈 배에 불을 질러버린 후 칠천량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10월 1일. 이순신을 따라 황대중은 선봉에 서서 다른 장수들과 함께 영등포를 쳐들어갔다. 그러나 왜적들은 바닷가에 왜선을 정박한 채 바다로 나오질 않았다. 전혀 항전의 의사가 없었다.
이순신이 타고 있는 대장선에서 군기가 신호를 보내왔다. 장문포로 돌아간다는 신호였다. 날도 저물어 더 이상 싸움을 할 수도 없어 장문포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사도(蛇渡)의 제2선이 뭍에 배를 매려고 했을 때였다. 왜선 하나가 날렵하게 달려오더니 조선수군의 배에 불을 질렀다.
“빨리 노를 저어라! 저 배를 놓치면 안 된다!”
그 모습을 지켜본 황대중이 부하들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황대중의 명령에 배는 왜적의 배 곁으로 다가갔다. 그러나 황대중의 배가 다가가기 전 그 배는 도망치기에 급급했다. 황대중이 활을 들어 쏘아대기 시작하자 왜적들은 몇 차례 허우적거리다가 쓰러져갔다. 이번엔 다른 수군까지 합세해 왜적들을 물리치자 죽은 자가 수십 명에 달했다. 그런데 뱃머리를 막 돌려 돌아가려고 했을 때였다. 왜적이 쏜 조총의 탄환이 황대중의 오른쪽 다리를 맞췄다.
“으윽!”
황대중은 절로 오른쪽 다리를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다리에서 피가 철철철 흘러나오자 부하 병사가 헝겊으로 친친 감으며 지혈을 시켰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이순신이 큰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빨리 저 장수를 내 곁에 있게 하라!”
판옥선이 다가오더니 황대중을 옮겨 태웠다.
“황공! 이 무슨 일이요? 왜적의 탄환이 황공의 다리에 맞다니······.”
“3도수군통제사 어른! 다리 하나를 잃은다 한들 이 전쟁의 참혹함에 비할 수 있겠습니까?”
“무슨 말씀을 그리 하시오? 잠시 누우시구려. 돌아가서 치료를 해드리리다.”
황대중은 고통을 지그시 참으며 두 눈을 감았다. 밤늦게 칠천량으로 돌아왔지만 황대중은 밤새도록 끙끙 앓아야만 했다. 탈환을 빼냈지만 뼈를 다치게 해서 그 고통이 심한 탓이었다. 다음 날도 이순신은 직접 많은 장수들을 거느리고 장문포에 있는 왜적들과 싸울 생각이었지만 선봉에 선 배 50척에게 영등포에 있는 왜적의 동태를 살피기 했다.
하지만 왜적들은 분이 나지도 않는지 날이 저물도록 또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곽재우, 김덕령과 함께 약속한 후 병사 수백 명을 뽑아 상륙을 시키고 싸움을 걸게 했다. 이순신이 중군을 거느리고 나아가 육지의 군사들과 합세하자 왜적은 갈팡질팡 하더니 사방으로 도망쳤다. 10월 8일까지 열흘이 넘도록 수륙 합동작전을 펼쳤지만 별 소득없이 막을 내리고 말았다.
한산도로 돌아온 이순신은 합동작전을 끝냈다. 그리고 이날 밤 이순신은 황대중이 있는 처소를 찾았다.
“황공! 몸이 어떻습니까?”
“바쁘신 통제사 어른께서 이리 찾아주십니까?”
황대중이 얼른 일어나서 이순신을 맞이했다. 이순신이 황대중의 오른쪽 다리를 잠시 만지면서 말했다.
“황공! 옛날에는 효건(孝蹇)이었는데, 이번엔 충건(忠蹇)이 되셨구려.”
“다행히 통제사 어른의 덕택으로 목숨을 건졌습니다.”
“어서 쾌차하셨으면 합니다.”
이순신이 돌아간 후 황대중은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조총의 탄환이 다리에 박혔을 때 가장 먼저 구해준 사람은 이순신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3도수군통제사 이순신과 원균 관계가 갈수록 골이 깊어가고 있었다. 1594년 8월 17일 이순신은「난중일기」를 이렇게 썼다.
--원수(권율)가 오정에 사천에 이르러 군관을 보내어 이야기하자고 한다. 그래서 원수 있는 곳으로 가서 교서에 숙배한 후 공사 간의 예를 마치고 그대로 함께 이야기하니 오해가 많이 풀리는 빛이다. 원균 수사를 몹시 책망하니 원 수사는 머리를 들지 못하였다.
다시 8월 30일 「난중일기」에서는 더욱 원균과의 관계가 악화일로임을 적었다.
--원균 수사가 하는 일이 참으로 해괴하다. 나더러 머뭇거리며 나아가지 않는다 하니 천년을 두고 한탄할 일이다.
이 말은 원균이 이순신의 전술에 대해 몰아붙이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순신이 머뭇거리는 것은 왜적의 함대에 조선수군이 노출되는 것을 지극히 조심했기 때문이었다. 이순신은 다섯 살이나 어리지만 원균의 상사였다. 조정에서도 두 사람의 불화를 막기 위해 이순신을 3도수군통제사로 임용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미봉책에 불과했다.
원균은 이순신이 미웠다. 도움을 요청할 때 도움은커녕 오히려 자신의 잘못을 조정에 보고하는 이순신이 미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이순신 또한 뻔히 패배할 줄 알면서 구원병을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나이가 수상이지만 어디까지나 상관이기 때문에 원균이 고분고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순신은 원균의 태도에 분을 참지 못하고 아예 3도수군통제사직에서 물러나겠다고 사임을 청했다. 조정에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이순신의 청원대로 사임을 받을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갈등만 야기하는 원균을 파직시킬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나온 묘안이 원균을 충청병사로 전출시키는 어명을 내렸다.
원균은 기가 막혔다. 수사에서 병사로 전출되는 기분이야말로 죽은 일보다 더 치욕스러웠다. 수사 배설(裴楔)과 교대하려고 했을 때 그는 불평스러운 기색이 절로 얼굴에 그려졌다.
장문포 해전은 황대중에게 충건이라는 또 하나의 별호가 생긴 일이었지만 전선은 온전히 소강상태에 빠졌다. 황대중은 수군들과 함께 정탐을 다니기도 하고 수군들의 군사훈련에도 참여했다. 왼쪽 다리는 효도를 위하다가 절게 되었고, 오른쪽 다리는 충성을 다하다가 절게 되었지만 그 전보다 더 당당하고 씩씩하게 매사에 임했다.
그런데 이순신에 대한 음모가 아무도 모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이순신에게는 영의정 류성룡이 신임을 주고 있는 반면, 원균에게는 좌의정 윤두수가 있었다. 윤두수와 원균과는 친척까지 되는 사이였다.
원균이 충청병사로 임용되어 해미로 갔다가 전라병사로 전임되어 장흥으로 옮겼을 때 그는 장계를 올렸다.
--이달 12일 기요마사 관하의 배 1백5십 여 척이 일시에 바다를 건너 서생포에서 정박하고 있고, 13일에는 기여마사가 자기 관하의 배 백 30여 척이 바다를 건너와 가덕도에 이르렀고14일에는 다대포로 옮겼으며 장차 서생포로 옮긴다고 합니다.
그런데 23일에는 경상우병사 김응서의 장계가 올라왔다.
--도원수가 고니시 유키나가에게 야학(野鶴) 한 마리와 매 한 마리를 보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신의 전사(戰士) 송충인이 가지고 갔다가 17일 돌아온 바 이달 12일 기요마사 관하의 배 1백5십여 척이 서생포로 나왔고, 기요마사 자신은 1백 30여 척을 이끌고 나왔다가 동북풍에 의해 거제도 방향으로 오다가 가덕도에 정박하였습니다. 14일에는 다대포로 향하여 진을 칠 곳을 살폈다고 합니다.
임금 선조는 두 개의 문서가 도착하자 어전회의를 열었다. 하지만 누구 하나 변변한 대책을 말한 대신이 없었다. 선조는 한 가지 꾀도 못내는 회의를 그만 두게 하고 비변사로 나가 회의하도록 조치했다. 그만큼 사태가 급박한 것은 도해의 차단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이전에 김응서가 조정에 보고하기를 “가토가 이달 4일 군사 7.000명을 이끌고 쓰시마에 이미 도착했으며 순풍을 만나는 대로 며칠 안에 건너오므로 가토가 건너오기 전 미리 방비를 해두면 가토가 간계를 부리지 못할 것입니다”였다.
하지만 이순신은 한산도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 이순신 때문에 조정은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도원수 권율까지 판단해서 한산도에 내려갔지만 이미 왜적의 배는 조선에 상륙해 버린 후였다.
이 때문에 조정에서는 이순신의 문제를 거론했다. 윤두수는 조정의 명을 듣지 않고 전쟁에 나가는 일을 싫어해서 한산도에 물러나 지키고 있다고 주장했고, 정탁은 이순신에게 참으로 죄가 있다고 주장했다. 유성룡만이 이순신을 옹호할 뿐이었다. 성품이 굳세고 강직해서 남에게 굽힐 줄 모르는 이순신을 신이 수사로 천거하여 임진년에 공을 세워 정헌까지 이르렀다며 매우 과람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선조는 이순신을 용서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고, 이어 원균을 수군의 선봉을 삼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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