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은 궁형의 치욕을 이겨내고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마침내 <사기>를 저술했으니, 그 중에서도 <열전>은 사기의 백미이다.
<삼국지>를 읽으라. 열 번 정도 읽어라. 이 말은 청소년 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던지는 삶의 화두이다. <삼국지>를 읽지 않고서는 지혜롭게 세상을 살 수 없다는 것 때문에 이 세상 수많은 지식인들은 <삼국지>를 권하고 있다. 아직 <삼국지>를 읽지 않은 공무원, 회사원은 없을 것이다. 물론 삼국지와 유사한 <초한지> <서유기> <수호지> 등도 읽어야 한다. 중국고전문학은 현대인에게 필독서이기 때문이다.
<사기열전>도 마찬가지다. 거대한 중국을 알기에는 <사기열전> 만큼 좋은 책은 없다. 이 또한 열 번 읽어도 부족함이 없는 인간학의 교과서요, 세상의 옳고 그름, 또한 공정성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중국 최고의 고전문학이이다.
<인문학>을 가까이 하지 않고서는 정치`경제`사회가 제대로 굴러갈 수가 없기 때문에 독자 여러분을 위해 내년 1년 동안 <사기열전>을 연재할 예정이다. 이미 읽은 독자에게는 다시 한 번 읽을 기회가 될 것이고, 읽지 않는 독자에게는 <사기열전>을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또한 <사기열전>과의 만남은 이 세상 어떤 만남보다도 위대한 만남이 되지 않을까 싶다. <편집자 주>
<사기열전>을 지은 사마천은 누구인가?
<사기열전>을 지은 <사마천>이다. 위대한 인물은 위기와 고난에서 탄생되듯이 사마천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순신이 명량해전에서 12척의 함선으로 왜적의 330척을 물리쳐 세계 해전사상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승리를 거둔 것도 위기와 고난 속에서 이뤄낸 위대한 승리였다. 정약용이 18년간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하면서 500여 권이 넘는 방대한 저술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그가 사지에서 간신히 벗어나 유배생활이란 고난 속에서 이뤄낸 실학의 집대성이었다. 만일 정약용이 유배생활을 하지 않았다면 과연 그 많은 저술을 할 수 있었을까 의문을 갖게 할 만큼 그의 학문적 성과는 서양의 어떤 학자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도스또옙스끼는 또 어떤가. <잔인한 천재> <비극적인>인 천재라고 부르는 도스또옙스끼는 그가 죽은 지 15년 뒤, 똘스토이는 “이 세계에 있는 모든 서적, 특히 문학 서적은 내 자신 것을 포함해서 모두 불살라 버려도 무방하다. 그러나 도스또옙스끼의 작품만은 예외이다. 그의 작품은 남겨두어야 한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1847년 11월 16일 군법 회의는 심리를 끝내고 도스또옙스끼를 어디론가 끌고 간다. 그리고 눈을 가린 후 총살형에 처한다며 ‘조준!’하고 총을 겨눈다. ‘쏴!’ 소리는 아직 나지 않는 상태에서 말을 타고 달려온 시정무관이 새로운 판결문을 읽는다. 사형 대신 유형(流刑)으로 바꾼다는 내용이었다. 그 때 도스또옙스끼는 이렇게 형에게 편지를 쓴다. ‘형님. 과거를 돌이켜 볼 때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낭비하고 과오와 태타(怠惰)와 무능한 생활을 했는지 참으로 후회막급입니다. 얼마나 시간을 소홀히 했는가. 마음에도 없는 짓을 해왔는가를 생각하면 창자가 잘리는 느낌입니다.’라고 했으니 사형 직전의 고통을 체험한 도스또옙스끼의 처절한 심정을 알 수 있다. 지옥과도 같은 잔인한 학대를 받으며 4년을 보낸 그는 안나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인해 거장(巨匠)으로서의 명작을 썼다.
사기열전을 쓴 사마천 역시 죽음보다도 더 참혹한 궁형(宮刑)을 받은 사람이었다. 아마도 자신의 생식기를 거세하는 궁형을 받지 않았더라면 사기 저술도 없었을지 모를 일이다. 궁형 사건은 장군 이릉(李陵)의 흉노 투항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정감이나 기질, 그리고 개성과 인격의 측면에서 볼 때 사마천은 전제군주가 전례없이 강화된 시대에 살면서도 천진난만한 본성과 고삐 풀린듯한 활달함으로 인해 그의 인생적 비극은 시작된 것이었다.
사마천은 한무제가 하루속히 흉노를 정복시키려는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을 뿐 아니라 이릉이 투항하지를 않고 전사하기를 바랐던 한무제의 마음을 읽지 못했다. 그리고 변절한 이릉을 적극 변명했던 사마천이었다.
대저 나와 이릉은 같은 문하(門下)에 거주하면서도 평소에 서로를 곱게 보지 않았고 지향하는 것도 달랐습니다. 술 한 잔 나누고 담소하면서 즐겼던 적조차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됨됨이를 보면 스스로 선비의 본분을 지켰고 효도로 주상과 부모를 섬겼으며, 동료와의 신의를 지켰습니다. 재물 앞에서는 청렴하였고 의로움으로 남을 도왔으며, 가려가면서 양보할 줄 알았고 하인을 공손히 대했습니다. 항상 자신을 이끼지 않고 나라의 급한 곳에 뛰어들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이는 그가 평소부터 축적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나는 그가 극가(國士)의 풍모를 지녔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사마천의 행동에는 호협적 기질이 다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협사(俠士)는 강자의 심리와 낭만적 심리를 겸비했기 때문에 국가의 법률을 무시하고 감정과 의리를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 그러기 때문에 때로는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약자에 대한 연민과 동정을 보이기도 하고 도움을 주려고 한다. 그렇다고 어떤 목적이나 도움을 바라지도 않는다. 자신의 행동이 의로운 행동이라고 생각한 나머지 군주의 마음이 어떠한지도 간파하지 못한 채 이릉을 보호하고자 했던 것이다.
한무제는 그런 사마천을 보고 진노했다. 전제군주가 진노해 있을 때 신하는 절대로 군주의 비위에 거슬리는 언행을 망각한 사마천이 몹시 미웠다. 사마천의 행동은 전제군주가 요구하는 절대 복종의 충성과는 거리가 먼 행동이었다. 하지만 설령 사마천이 이릉 장군을 변호했다 하더라도 궁형의 체벌을 가한 전제주의를 볼 때 지나친 가혹함이 아닐 수 없다.
궁형은 남성의 생식기를 잘라버리는 가혹한 형벌로서 죽는 일 보다도 더한 치욕감을 느끼게 한다. 사마천은 궁형을 받고나서 이렇게 말했다.
--이익에 대한 욕심에서 비롯되는 화보다 더 참혹한 화는 없고, 마음의 상처보다 더 아픈 고통은 없으며, 조상을 욕되게 하는 것보다 더 추한 행실은 없고, 궁형보다 더 치욕스러운 것은 없습니다.
궁형이 왜 사형에 버금가는 형벌일까? 그것은 살아생전 사람들로부터 멸시를 당하기 때문이다. 음행을 저지른 자에게 가해지는 형벌을 받은 것으로 기억되기 때문에 자신 뿐 아니라 후손에 이르기까지 수모를 당하고 사람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옛날에 내시들에게 하나의 전통이 있었으니 그것은 거세를 하고 나면 잘라낸 양물(陽物:남성의 생식기)을 기름에 넣어 튀겼다가 기름종이에 잘 싸서 ‘승升’ 속에 넣어 대들보에 매달아 두었다가 내시가 죽으면 친인척들이 반드시 그 것을 관 속에 넣어주었는데, 아무리 비천한 내시일지라도 그의 친척들은 잊지 않았다.
사마천은 궁형을 받고나서 절망했다. 감수성이 풍부한 사마천이었고 혈기가 왕성한 사마천이 궁형을 받고나서 조상에게 부끄럽고 부모에게 부끄러우며 천지간 패륜아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옛날에 내시들에게 하나의 전통이 있었으니 그것은 거세를 하고 나면 잘라낸 양물(陽物:남성의 생식기)을 기름에 넣어 튀겼다가 기름종이에 잘 싸서 ‘승升’ 속에 넣어 대들보에 매달아 두었다가 내시가 죽으면 친인척들이 반드시 그 것을 관 속에 넣어주었는데, 아무리 비천한 내시일지라도 그의 친척들은 이 일을 시행하였다.
사마천은 하루에도 내장이 아홉 번이나 뒤틀리는 아픔을 느끼고, 집에 가만히 있으면 멍하니 무엇인가를 잊은 듯 하며, 집을 나사면 어디로 가야할지 알 수 가 없었다. 궁형의 수치심을 떠올릴 때마다 등골에 땀이 배어 옷을 적셨고, 그러나 천자를 위해 궁중에서 일해야 하는 신하였으므로 깊은 동굴 속으로 숨어버릴 수도 없었다.
제2의 공자가 되겠다는 포부를 가졌던 사마천은 죽음을 생각하게 된다. 군자가 살아서 모욕을 당하느니 죽어서 영광스럽기만 못하다. 모욕을 피할 수 있다면 그것을 피하지만, 피할 수 없다면 군자는 죽음을 달갑게 받아들인다. 이 말은 증자(曾子)의 말인데, 이런 증자의 말을 떠올리며 자결을 생각했다.
호생오사(好生惡死). 사람은 무릇 살기를 원하고 죽기는 싫어한다는 말이다. 사마천 역시 부모를 모시고 자식을 걱정하는 일이 사람의 일이지만 구차하게 살기는 싫었을 것이다. 사마천은 사람이란 누구나 한 번 죽기 마련이지만 어떤 사람은 그 죽음을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이는 기러기의 깃털보다도 가벼우니 이는 죽음을 통해 지향하는 바가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사마천은 자신의 죽음을 비첩(婢妾)과 같이 천한 사람이 분개하여 자살하는 것은 진정한 용기가 없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모든 죽음이 똑 같다는 것은 아니다란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만일 자신이 자결을 하고 만다면 사람들은 ‘절개를 위해 죽은 것’이 아니라 ‘죄를 지어 죽은 것’이라고 여길 것으로 보았다.
사마천은 격렬한 갈등 속에서 치욕을 이겨내고 저술의 길을 선택했다. 그리고 저술을 통한 문화복수의 이론을 자각하고 그것을 실천한 사람은 사마천 밖에 없다. 참담한 고난을 당한 나머지 가슴 속에 쌓인 울분을 저술의 창작활동으로 승화시키는 일은 분서(憤棲)로써 일종의 복수의 정서이자 치욕을 보상받으려는 복수 방식이었던 것이다.
사기의 구성과 내용
사기는 한족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황제로부터 시작하여 한나라 무제가 있었던 사마천의 시대까지 3.000년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전 1백 30권으로 본기(本紀)12권, 세가(世家) 30권, 열전(列傳) 70권, 표(表) 10권, 서(書) 8권이다. 사기의 압권은 대하드라마 <열전>이다. 열전에 등장하는 인물은 각양각색이다.
춘추시대 인물로는 모두 7편이다. 백이열전, 관안열전, 노자한비열전, 사마양저열전, 손자오기열전, 오자서열전, 중니제자열전으로 나누어진다. 전국시대 인물로는 17편이다. 진시황이 통일제국을 세우기 직전과 직후 인물로는 4편이고, 항우와 유방의 초한전 시기에는 6편이다. 한(漢) 나라 황제 효문제와 효경제 시기 인물로는 7편이고, 사마천 시대, 즉 황제 효문제 시기에는 22편이다. 사마천 자신의 관한 기록으로는 1편이다.
이 열전 속에 등장하는 인물은 수천 명에 달한다. 사기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사기열전은 사마천의 역사관, 세계관, 인간관이 총 집결해 있다. 위대한 인물이 있는가 하면 자객과 유협 등 정사와 거리가 먼 야사의 인물조차 아무 거리낌 없이 다루고 있어 흥미가 진진할 수밖에 없다. 박정희 대통령을 다뤘는가 하면 최근 대한항공 사건 같은 것도 다루고 있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르다. 연산군도 다뤘지만 김종철도 다뤘으므로 인물이 각양각색이었던 것이다.
중국 역사상 폭군으로 유명한 주(紂)왕의 폭정은⌜은본기⌟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으므로 잠시 그 내용은 대충 이렇다.
--술과 음악을 좋아했으며 여자를 좋아하였다. 특히 달기(妲己)를 총애하였는데, 그녀의 말이라면 무조건 다 들어주었다. 달기는 선녀처럼 예뻤지만 성격이 포악했고 춤을 잘 추었다. 주왕은 사연(師涓)에게 음탕한 악곡을 작곡하게 하는가 하면, 북리(北里)의 저속한 춤과 음탕하고 퇴폐적인 가락을 새로 만들기까지 하였다. 세금은 무겁게 부과하여 녹대(鹿臺)를 돈으로 채웠고, 거교(鉅橋)를 곡식으로 채웠다. 게다가 도처에서 개와 말, 기이한 애완물을 수집하여 궁궐에 가득 메웠다. 사구(沙丘)의 원대(苑臺:유원)를 크게 넓히고 갖가지 야수와 새들을 잡아다가 풀어놓았다. 주왕은 귀신도 우습게 알았는데, 그래서 사구에 수많은 악공들과 광대들을 불러들이고 술로 연못을 만들었으며 온통 고기를 빡빡하게 걸어놓고 서로 쫓아다니게 하면서 밤새도록 술 마시며 놀았다. 그러다 보니 백성들의 원망아 높아만 갔고 제후들도 배신하는 일이 생겼다. 이에 주왕은 기름을 칠한 구리 기둥 아래 불을 피우게 하고 죄수에게 기둥 위를 걷게 하여 떨어지면 불에 타죽게 하는 형벌까지 만들었다.
주왕의 학정은 백성들을 자신의 대립면으로 내몰았는데, 폭정이 극치에 달하자 은나라의 멸망을 알리는 대혁명이 도래하였다.
은나라를 멸망시키는 데 큰 공을 세운 사람은 강태공이다. 낚시꾼의 대명사, 강태공이란 이름은 낯설지가 않다. 우리가 늘 사용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 강태공이 때를 기다리기 위해 위수(渭水)에서 빈 낚싯대를 드리우며 세월을 보내다가 나이 70에 이르러 주 문왕을 만나게 되고 발탁된다. 선왕인 태공 때부터 ‘성인이 나타나 주나라를 세우는데 크게 도울 것이다’란 말을 믿고 희망을 가졌던 태공이 기다리고 기다렸던 인물이었다. 그래서 강태공의 본명인 여상을 태공망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주나라 재상이 된 강태공은 부지런히 힘을 기르면서 기회를 엿보고 있을 때 은나라 주왕의 폭정이 심해지자 군사를 일으켰고, 목야 싸움에서 크게 이겨 은나라를 멸망시킬 수 있었다. 그 때 은나라 주왕과 달기는 온갖 치장을 한 채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어 죽었다는 설이 있다. 은나라가 멸망하자 800년 주나라 시대가 시작된다.
낮은 데로 임한 사마천의 위대함
사마천은 열전을 쓰는 데 있어 황후장상만 그려내지 않았다. 낮은 사람들인 하층사람들의 전기도 썼는데, ⌜자격열전⌟, ⌜유협열전⌟, ⌜편작창공열전⌟, ⌜골계열전⌟, ⌜일자열전⌟, ⌜귀책열전⌟, ⌜화식열전⌟ 등 7편이다. 민주국가인 대한민국도 솔직히 지위나 계급이 중시되고 있는데, 봉건시대 전통적인 문인이었던 그가 하층사람들에게 눈길을 던졌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최첨단을 달리는 이 시대에도 최근 대한항공 같은 사건을 지켜볼 때 우리가 모르는 곳곳에서 하층민, 그리고 계급이 낮은 사람은 멸시와 을의 처지를 절감하며 지낸다. 사마천이 하층민의 처지를 잘 알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신이 그 같은 생활을 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특히 자객열전과 유협열전은 사마천이 정열을 다해 쓴 작품이거니와 사기에서 가장 격렬한 문장이다. 목숨을 바쳐 은혜에 보답하는 자객들의 의로움을 높이 산 사마천은 여기에서 정신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었다.
--예양은 진(晉) 나라 사람이었는데, 일찍이 범(范)씨 문중에서 있었는데도 명성이 오르지 않아 지백(智伯) 밑으로 갔다. 지백은 그를 매우 존경했을 뿐 아니라 사랑했다. 지백이 조양자(趙襄子)를 치자 조양자는 한씨, 위씨와 공모하여 지백을 멸하고 자손은 죽여 토지를 삼분(三分)하였다. 그렇게 하고서도 분이 풀리지 않은 조양자는 지백의 해골을 옻칠하여 요강으로 사용했다.
그런 사실을 목격한 예양은 산으로 도망하여 혼자 중얼거렸다.
⌜아아. 사나이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서 죽고, 여자는 자신을 기쁘게 해 준 사람을 위해 꾸민다고 하였다지. 지백은 진실로 나를 알아준 지기였으므로 그의 원수를 갚는다면 나의 혼백도 부끄러움이 없으리라.⌟
예양은 그렇게 결심 한 후 성명을 바꾸고 죄인들의 무리 속에 끼여 궁중에 들어갔다ㅣ 그리고 뒷간의 벽을 바르는 일을 하며 양자를 찔러 죽일 기회를 엿보았다. 그런데 양자가 뒷간에 가면 가슴이 두근두근 해지므로 이상한 일이다 싶어 벽을 바르는 죄수들을 심문했다. 품속에 비수를 가지고 있던 예양은 어이없게도 들통이 나고 말았다.
“어찌하여 칼을 품었느냐?”
“지백의 원수를 갚기 위해 그랬소.”
그러자 좌우에 있던 호위병이 죽이려고 하자 양자가 말리면서 말했다.
“예양은 위인이다. 지백이 멸하고 자손도 없는데 옛날 신하가 복수를 하려는 것은 천하의 현인이다.”
예양은 양자가 풀어주는 덕에 살아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예양은 얼마 뒤 복수를 하기 위해 몸에 옻칠을 해서 문둥병 환자로 가장했다. 숯가루를 먹어 목소리조차 바꾼 그는 남이 알지 못하도록 모습을 바꾸어 걸식을 하고 다녔는데, 마누라조차 알아보지 못했지만 친구는 알아보았다.
찬구가 울면서 예양에게 말했다.
“자네처럼 재능이 많은 사람이 예물을 바치고 양자의 신하가 되면 양자는 반드시 너를 가까이 하고 총애를 할 것이네. 차라리 그런 뒤에 자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되지 않겠는가? 어찌하여 몸을 축내고 모양을 쭈그러뜨려 원수를 갚을 생각을 하는가?”
“내가 예물을 가지고 신하가 되면서 주인을 죽이려 한다면 두 마음을 품은 자가 될 것이네. 지금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매우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지만 후세에 남의 신하가 되어서 두 마음을 품어 주인을 섬기는 자를 경계하기 위함이네.”
며칠 뒤 양자가 외출할 때였다. 그 때 예양은 다리 밑에서 숨어 있었는데, 양자가 다릿목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말이 놀라서 껑충 뛰었다.
“이건 틀림없이 예양의 짓이 틀림없다.”
양자는 예양을 잡아들인 후 말했다.
“그대는 일찍이 범씨, 중행씨의 밑에 있었으나 지백은 그 두 사람을 멸하였다. 그런데 그대는 그 복수는 하지 않고 예물을 바쳐 지백을 섬겼다. 그 지백마저도 이제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도 그대는 어찌하여 지백을 위해서만 이토록 끈질기게 복수의 마음을 품는가?”
“나는 범씨와 중행씨의 밑에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그 두 사람은 나를 범상한 사람으로 대하였소, 나 또한 범상한 사람으로 그들을 대했던 것이요. 그러나 지백은 나를 국사(國士)로 대우하였으므로 나는 국사로서 그 은혜를 갚으려고 하는 것이요.”
그 말을 듣고 난 양자가 탄식을 하고 나서 눈물까지 흘리며 말했다.
“아아, 예자(豫子)여! 그대는 지백을 위해 할 일은 다 하였다. 나 또한 용서를 해 주는 것도 충분히 하였다. 이제 그대는 각오하라. 나는 용서치 않으리라.”
예양이 마지막 힘을 다해 간절한 목소리로 양자에게 호소했다.
“명군은 사람의 아름다운 점을 덮어 숨기지 않고, 충신은 이름을 위해 죽는 의로움이 있다 들었소, 지난 번 나를 관대히 용서한 일로 천하에 그대의 어진 마음을 칭송하지 않는 자 없었소, 오늘 그대를 죽이려 했으므로 두 말 없이 목을 내놓겠소. 하지만 한 가지 바라는 일이 있소, 그대의 의복이라도 베어 복수의 마음을 청산하고자 하니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소.”
이 말을 들은 양자는 아랫사람을 시켜 의복을 가지고 오게 했다. 예양은 칼을 뽑아 의복 위에서 세 차례 뛰며 베고 나서 말했다.
“나는 이 사실을 지하에 계신 지백에게 보고하리라.”
하고 스스로 자결을 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조나라 지사(志士)들은 모두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었다. <다음호에 계속> 글 : 송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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