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는 삼실, 무명실, 명주실로 짠 피륙이다. 대개 베라고 하면 삼실로 짠 삼베를 생각하게 되지만, 무명실로 짠 무명이나 명주실로 짠 명주, 비단도 다 베의 한 가지인 것이다. 피륙은 필로 된 삼베나 무명, 명주, 비단 같은 것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복잡한 것 같지만 간단하게 말하면 베가 피륙이고, 피륙이 베, 그놈이 그놈인 것이다. 필은 피륙의 양을 따지는 단위로 서른 자가 한 필인데, 광목이나 옥양목은 필이라고 하지 않고 특별히 통이라고 한다.
실을 만들거나 실로 피륙을 짜는 것을 ‘낳는다’고 하고, 짠 피륙을 ‘낳이’라고 하는데, 피륙을 낳은 일을 하는 것을 ‘낳이한다’고도 말한다. ‘낳이하다’는 ‘길쌈하다’와 같은 뜻이다. ‘-낳이’는 언제 또는 어디서 낳은 피륙이라는 뜻을 가진 뒷가지가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봄에 짠 무명은 봄낳이, 유명한 안동포는 안동낳이, 한산모시는 한산낳이라고 하는 것이다. 피륙의 가르지 않은 온 너비는 온골이나 온폭, 자풀이로 팔고 남은 피륙의 조각은 자투리하고 한다. 고부탕이는 피륙의 필을 지을 때 꺾여 겹쳐 넘어간 곳, 토끝은 피륙의 끄트머니나 피륙의 필 끝에 글씨나 그림이 박힌 부분, 푸서는 피륙을 베언 낸 자리에서 풀어지는 올을 가리킨다. 올이 안 풀리게 휘갑쳐서 찬 피륙의 가장자리 부분은 한자말로 식서(飾緖)나 변폭(변폭)이라고 한다. 발이 거칠고 성긴 피륙은 설피창이, 올이 굵고 성긴 피륙은 굵은 발가락과 같다는 뜻에서 왕둥발가락으로 부른다. 발은 피륙의 날과 씨의 굵고 가는 정도를 말하는 것이다.
베의 곱고 거친 정도는 새로 나타낸다. 새는 피륙의 날을 세는 단위로 한 새는 여든 올로 이뤄진다. 석새베는 올이 매우 굵은 베로 석새, 곧 이백사십 올의 날실로 짠 베다. 넉새베는 넉새, 삼백이십 올로 짠 것, 보름새는 열다섯 새, 천이백 올로 짠 고운 베를 가리키는데, 바리안베는 한 필을 접어서 바리때에 담을 수 있을 만큼 썩 고운 베를 말한다. 부대 같은 것을 만드는 아주 굵은 베는 거베, 올이 굵어서 바탕이 껄껄한 베는 껄끄렁베, 외올 무명실로 짜 거즈나 붕대로 쓰는 얇고 부드러운 베는 외올베라고 한다.
모시는 모시풀 껍질의 섬유로 짠 피륙인데, 삼베보다 곱고 희어서 여름 옷감으로 많이 쓰인다. 세모시는 올이 가늘고 고운 모시, 장작모시는 굵고 성글게 짠 모시다. 모시항라는 모시로 짠 항라인데, 항라는 명주나 모시, 무명실로 구멍이 송송 뚫리게 짠 여름 옷감을 말한다.
솜을 자아 만든 실로 짠 무명 가운데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것은 광목인데, 무명에는 대개 광목처럼 나무 목자가 붙는다. 피륙을 잿물에 담갔다가 솥에 쪄서 부드럽고 희게 만드는 것을 ‘누인다’고 하는데, 누인 무명을 누운목, 누이지 않는 무명을 깃목이나 날목이라고 한다. 성글게 짠 무명은 소창, 품질이 나쁜 목화나 헌 솜으로 실을 켜서 짠 무명은 북덕무명이나 수목이라고 한다. 무엇을 얇게 펴서 만든 조각을 반이라고 하는데, 솜반은 솜돗에 펴서 잠을 재운 반반한 솜 조각으로 무명실을 만드는 밑감이다. 솜돗은 솜반을 만드는데 쓰는 돗자리이고, ‘잠을 재운다’는 것은 부푼 솜을 착 붙어서 자리가 잡히게 하는 것을 말한다.
명주붙이는 명주실로 짠 여러 가지 피륙을 아울러 이르는 말인데 주사니라고도 한다. 주사니로 만든 옷은 주사니것이다. 명주실로 무늬없이 짠 피륙은 명주, 광택이 나게 짠 것은 비단, 바탕을 좀 거칠게 짠 비단은 깁, 발이 얇고 성긴 깁은 사붙이라고 한다. 가계주는 아롱아롱한 번개무늬가 있는 명주, 안타깨비는 명주실 토막을 이어서 짠 굵은 명주, 품질이 나쁜 고치에서 뽑은 실로 짠 명주는 북덕무명과 마찬가지로 북덕명주다.
명주 올이 겉으로, 무명 올이 안으로 가게 짠 피륙은 배붙이기, 날실은 명주실, 씨실은 모시실로 짠 것은 도리사, 날은 명주실로, 씨는 명주실과 무명실을 두 올씩 섞어서 짠 것은 아랑주, 명주실과 삼실을 섞어서 짠 것은 공춘이라고 한다. 장르를 넘나드는 음악을 크로스오버라고 하는데, 피륙의 세계에도 크로스오버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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