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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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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수 (전 강진군의회 의장) 기고
을미년 청양의 해와 선한 목자

 

을미년(乙未年) ‘청양(靑羊)의 해’가 밝았다. 왜? 청양의 해인지 알려면 천간지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천간’은 하늘과 기둥을 뜻하며,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로 ‘십간’이라고도 한다. ‘지지’는 12동물을 의미하며,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 : 쥐, 소, 범, 토끼, 용, 뱀, 말, 양, 원숭이, 닭, 개, 돼지)이다. 천간과 지지는 순환하며 짝을 이루는데, 갑자 을축 병인년 순으로 돌아가 전체가 짝을 이루는데 총 60짝(10×12)이 된다. 천간 중 갑을은 ‘파랑’ 병정은 ‘빨강’ 무기는 ‘노랑’ 경신은 ‘하양’ 임계는 ‘검정’으로 고유의 색을 가지고 있다. 올해는 60간지 중 32번째 되는 해로 천간 중 푸른색인 을과 지지 중에 양에 해당하는 미가 짝이어서 ‘청양의 해’다. 청색은 순수함, 새로움, 깨끗함, 냉정, 성실을 뜻하고 하늘과 바다의 색깔이라 해서 예로부터 복을 기원하는 색깔로 많이 사용됐다.

온순함의 대명사인 ‘양(羊)’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평화(平和)와 행운(幸運)은 물론 재물(財物)과 복(福)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특히 기독교의 경서인 성경에는 유독 양에 대한 기록이 많다. 양을 주요 생계 수단으로 활용했던 이스라엘의 특성이 반영되기도 했지만 실제 양이 갖는 특성 때문에도 많이 등장한다.

양은 소과에 속하는 초식 동물로 보통 착하고 순한 동물로 인식된다. 또한 양은 은혜를 아는 동물로도 여겨지는데, 이는 양이 무릎을 꿇고 있는 시간이 많아 무릎에 털이 없고 굳은살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를 보고 옛날 사람들은 ‘양도 무릎을 꿇고 어미 은혜를 안다’고 했다. 지금도 ‘양 같다’라는 말은 순하고 착한 이미지로 널리 쓰인다. 양은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에 정착한 이후 대표적인 제물이자 재산이었다. 양의 가죽과 털은 성막을 짓는 천으로도 활용됐다. 양은 주로 제사 때나 귀빈을 접대할 때만 잡았다. 이밖에도 수양의 뿔은 나팔이나 기름을 담는 그릇으로 사용됐다. 구약시대 하나님 앞에 바친 많은 제물 중에 대표될 만한 것이 흠 없고 순전한 일년 된 양이었다. 특별히 양은 순종과 인내, 온유한 성품을 갖고 있어 세상의 죄를 대속하는 하나님의 어린양(요한복음 1장 29절)으로 예수가 묘사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에서 나오기 전날 밤 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引枋)에 바르고 그 안에서 양고기를 불에 구워 먹었다. 성경학자들은 이 때 먹은 양의 피와 고기는 인류를 위해 희생해 제물인 된 예수의 몸이자 예수의 말씀을 상징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성경에서는 양을 치는 목자에 관해 백번 넘게 언급하고 있다. 아브라함, 이삭, 모세, 다윗, 아모스 등 많은 선지자가 실제 목자였다. 목자 중에는 리브가와 이드로의 딸 등 여자 목자도 있었다. 목자는 아침에 양에게 풀과 물을 먹인 후 한낮에는 보통 그늘지고 시원한 곳에 몇 시간 동안 누워서 쉰다. 저녁엔 우리로 돌아와 열병에 걸렸거나 상처를 입은 양들을 돌본다. 또한 목자는 양들을 맹수로부터 보호하려고 지팡이와 막대기를 지니고 다닌다.

이처럼 목자는 양들의 공급자요, 인도자요, 보호자다. 반면 양은 사자나 이리 등 맹수의 공격을 방어할 뿐이나 날카로운 발톱, 이빨과 같은 무기가 전혀 없다. 따라서 맹수의 공격 앞에서 양의 목숨은 오직 목자에게 달려있다.

양을 지키는 목자가 선한 목자인지 삯꾼 목사인지는 이처럼 맹수가 양을 삼키기 위해 우리에게 침입했을 때 비로소 분별된다. 예수는 성경에 기록된 대표적인 선한 목자다. 그러나 시대마다 선한 목자를 가장하고 오직 ‘돈벌이’와 ‘권력 쟁취’에만 혈안이 된 삯꾼 목자들이 가득했다. 두 목자의 음성이 동시에 들린다면 양이 살 수 있는 길은 참 목자의 음성을 분별해 좇는 것이다. 지난해 한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영화 ‘쿼바디스’에서 보듯 자신이 속한 교회 목자라면 무조건 옹호하는 무분별한 양(신앙인)이 오늘날 한국 사회, 한국 정치, 한국 교회 부패의 주원인은 아닌지 한번쯤 고민해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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