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군열전(商君列傳)(1)
상군(商君)은 위나라 왕의 여러 첩이 낳은 서얼 출신의 공자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이름은 앙(鞅)이고 성은 공손씨(公孫氏)이며 그 조상은 성이 희(姬)였다. 공손앙은 젊었을 때 법가의 학문을 좋아했는데, 위나라 재상인 공숙좌를 섬기면서 중서자(中庶子대부의 집안일을 맡아봄)가 될 수 있었다.
공숙좌는 공손앙이 현명한 줄은 알았지만 위나라 왕에게 추천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공숙좌가 중병에 걸렸을 때 위나라 혜왕이 몸소 찾아와 말했다.
“만일 공숙좌의 병환이 차도가 없다면 누구에게 사직을 맡겨야만 나라가 편안하겠소?”
공숙좌가 대답했다.
“소신의 중서자 공손앙은 나이가 비록 어리지만 뛰어난 능력을 갖추었습니다. 대왕께서는 나랏일을 그 사람에게 맡기시고 국정 전반에 대해 하문하시는 것이 좋을 듯 싶습니다.”
그러나 혜왕은 아무 말 없이 듣고 있다가 돌아가려고 하자 공숙좌는 주위 사람들을 물리치고 다시 말했다.
“대왕께서 등용하시지 않으시려거든 반드시 그를 죽여 국경을 넘지 못하도록 하십시오.”
혜왕은 고개를 끄덕이고 나가자 공숙좌는 공손앙을 불러 놓고 이렇게 말했다.
“조금 전에 대왕께서 재상이 될 만한 인물을 추천해 달라기에 내 그대를 추천했으나 왕의 낯빛을 보니 내 말을 듣지 않을 것 같다. 나는 대왕에게 먼저 충성을 다 하고 그 다음에 신하를 돌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므로 대왕께 말하기를 ‘만일 공손앙을 기용하지 않으시려거든 그를 죽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대왕은 고개를 끄덕이고 나가셨으니 그대는 어서 도망치는 것이 좋겠다. 그렇지 않으면 곧 붙잡히고 말 것이다.”
공손앙이 말했다.
“대왕께서 상공의 말씀을 듣고도 저를 기용하지 않으셨는데 또 상공의 말씀대로 죽이기야 하겠습니까?”
공손앙은 끝내 달아나지 않았다. 혜왕은 궁궐로 돌아와 주위 신하들에게 말했다.
“공숙좌의 병이 아주 중한가 보오. 과인에게 국가의 정사를 공손앙에게 물으라고 하다니 아무래도 망령이 든 모양이오”.
공숙좌가 죽은 뒤 공손앙은 진나라 효공이 전국의 어진 이를 찾는다는 포고령을 내리고 목공의 패업을 이어 잃었던 동쪽 땅을 되찾으려 한다는 말을 듣고, 진나라로 갔다. 위앙(공손앙의 다른 이름)은 군왕의 총신인 경감 주선으로 효공을 만나려고 했다.
효공은 위앙을 만나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나 효공이 때때로 졸며 잘 듣지 않자 위앙은 나와 버렸다. 효공은 경감에게 화를 내며 말했다.
“그대의 빈객은 망령된 사람인가 봅니다. 저런 사람을 어떻게 임용할 수 있겠소?”
경감은 이 일로 위앙을 책망하자 위앙이 이렇게 말했다.
“제가 효공에게 제도(帝道 전설 속의 오제 五帝가 나라를 다스린 이치와 계책))에 대해 말씀드렸는데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신 모양이오.”
그리고는 닷새 뒤 한 번 더 효공을 뵐 수 있도록 부탁했다.
위앙은 효공을 만나 처음 만났을 때보다 더욱 열심히 말씀드렸지만 마음을 온전히 얻지 못했다. 위앙이 물러가자 효공은 또 경감을 꾸짖었고, 경감은 또 위앙을 나무랬다. 위앙이 말했다.
“제가 공에게 왕도 王道(우왕, 탕왕, 문왕, 무왕이 천하를 통일시킨 이론과 방법)를 설명했는데도 아직도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입니다. 한 번 더 효공을 만나게 해주십시오.”
위앙은 또 효공을 만났다. 효공은 그를 좀더 좋게 평가하기는 했지만 등용하지는 않았다. 위앙이 물러가자 효공은 경감에게 말했다.
“그대의 빈객은 괜찮은 사람이오, 그와 더불어 이야기를 할 만 하오.”
이 말을 전해들은 위앙은 이렇게 말했다.
“제가 공에게 오패 五覇(춘추시대 제나라 환공, 진나라 문공, 진나라 목공, 초나라 장왕, 송나라 양왕)가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을 말씀드렸는데 이것을 쓸 만하다고 생각하셨군요. 그러면 꼭 한 번만 만나 뵙도록 해 주시오. 이제 저는 공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알았습니다.”
위앙은 다시 효공을 만났다. 효공은 들으면 들을수록 좋아서 자신도 모르게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효공은 위앙과 며칠을 두고 대화를 나누어도 싫증이 나질 않았다. 경감이 물었다.
“그대는 어떤 방법으로 우리 왕의 마음을 사로잡았소? 우리 왕께서 매우 기뻐하고 있으니 말이오.”
위앙이 말했다.
“저는 공에게 삼황오제의 도를 실행하면 하, 은, 주 삼대에 견줄만한 태평성대를 누릴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공께서는 ‘나는 너무나 길고 멀어서 기다릴 수가 없소. 그리고 어진 군주는 본인이 자리에 있을 때 세상에 이름을 나타냅니다. 어찌 수십 년 또는 수백 년 뒤에 제왕의 위업을 이루기를 기다릴 수 있겠습니까? 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힘 있는 나라를 만드는 방법을 말씀드렸는데, 공께서 기뻐하신 것뿐입니다. 그러나 공께서는 은, 주 시대 임금의 덕행에 견주기는 어렵습니다.”
효공은 위앙을 등용했지만 위앙이 법을 바꾸려들자 세상 사람들이 자기를 비방할까봐 매우 두려워했다. 위앙이 말했다.
“확신이 없이 의심하며 행동하면 공명이 따르지 않고, 의심하며 확신하지 않고 사업을 하면 성공하기가 어렵습니다. 또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식견을 가진 사람은 세상에서 비난을 받기 쉽고, 남들이 모르는 지혜를 가진 사람은 반드시 사람들에게 오만하다는 비판을 받기 마련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이미 이루어진 일도 모르지만 지혜로운 자는 일이 시작되기 전에 압니다. 백성은 일을 시작할 때는 더불어 상의할 수 없으나 일이 성공하면 함께 즐길 수
있습니다. 가장 높은 덕을 강구하는 자는 세상과 타협하지 않으며, 큰 공을 이루는 자는 뭇사람과 상의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인은 나라를 강하게 할 수 있으며 구태여 옛것을 본뜨지 않고 백성을 이롭게 할 수 있으면 예법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효공이 대답했다.
“옳은 말이오.”
그러자 대신인 감룡이 말했다.
“옳지 않습니다. 성인은 풍속을 바꾸지 않고 백성을 교화시키며, 지혜로운 자는 법을 거치지 않고 다스립니다. 백성의 풍속에 따라서 교화를 시키면 애쓰지 않아도 공을 이룰 수 있고, 이미 시행되고 있는 법에 따라 다스리면 관리도 익숙하고 백성도 편안합니다.”
위앙이 말했다.
“감룡의 말은 세속적입니다. 평민들은 옛 풍습에 안주하려 하고, 학자들은 자기가 배운 것에 빠져들기 마련입니다. 이런 자들은 한직에 있거나 법을 지키는 일은 할 수 있지만 국법과 예법을 벗어난 문제는 논할 수 없습니다. 하나라와 상나라, 그리고 주나라 삼대는 같은 예법을 따르지 않았어도 천하의 왕노릇을 하였고, 오백(五伯 춘추 오백)은 같은 법을 따르지 않았지만 모두 천하의 우두머리가 되었습니다. 지혜로운 자는 법을 만들고 우둔한 자는 법에 구속당하며 현명한 자는 예법을 고치고 불초한 자는 그에 얽매이는 법입니다.”
이에 두지(杜摯)가 말했다.
“세상을 다스리는 길은 한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라에 이롭다면 옛 법을 따를 필요가 없습니다. 상나라 탕왕과 주나라 무왕은 옛 법을 따르지 않았지만 제왕의 일을 이루었고, 하나라 걸왕과 은나라 주왕은 예법을 바꾸지 않았어도 멸망했습니다. 옛 법을 반대한다 하여 비난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며, 의례를 따른다 하여 반드시 칭찬할 일도 아닙니다.”
효공이 말했다.
“좋소.”
효공은 마침내 위앙을 좌서장으로 삼고 옛 법을 바꾸어 새 법을 만들도록 했다.
새로 만든 법에 따르면 다섯 집이나 열 집을 한 조로 묶어 서로 감시하고, 한 집이 죄를 지으면 열 집이 똑같이 벌을 받게 한다. 죄 지은 사람을 고발하지 않을 경우 허리를 자르는 벌로 다스리고, 고발한 자는 적의 목을 벤 것과 똑같은 상을 준다. 대신 죄를 숨기는 자에게는 적에게 항복한 사람과 똑같은 벌을 준다. 백성 가운데 한 집에 성년 남자가 두 명 이상 살면 부역과 납세를 두 배로 한다. 군대에서 공이 있는 자는 각각 차등을 두어 벼슬을 올려주고 사사로이 싸움을 일삼는 자는 각각 그 죄의 경중에 따라 벌을 받는다. 힘을 모아 농사를 본업으로 삼고 곡식이나 비단을 많이 바치는 사람에게는 부역과 부세를 면제해 준다. 상공업에 종사하여 이익만을 추구하는 자와 태만하고 가난한 자는 모두 색출하여 관청의 노비로 삼는다. 군주의 친척이라도 군공(軍功)이 없으면 조사하여 공족으로서의 특권을 누릴 수 없다. 신분상의 존비, 작위와 봉록의 등급을 분명히 하여 차등을 두고 토지와 집, 소유하는 밭과 면적, 신첩과 노비의 수, 의복의 등급을 그 집안의 작위에 따라서 명백히 규정한다. 군공이 있는 사람은 영예를 누릴 수 있지만 군공이 없는 사람은 부유해도 정치적으로 존경받을 수 없다.
하지만 이와 같이 새 법을 마련해 놓고도 백성들이 믿지 않을까 염려되어 아직 널리 알리지는 않았다. 그래서 세 길이나 되는 나무를 도성 저잣거리에 세우고 백성들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
“이 나무를 북문으로 옮기는 자는 10금을 주겠다”
그러나 백성들은 이것을 이상히 여겨 옮기지 않았다. 다시 이렇게 말했다.
“이 나무를 옮기는 자는 50금을 주겠다”
어떤 사람이 나무를 옮기자 즉시 50금을 주어 나라가 백성을 속이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한 후 새 법을 공포했다.
새 법을 공포한 뒤 1년 만에 진나라 백성들 가운데 도성까지 올라와 불편하다고 호소하는 이가 1000명을 헤아릴 정도였다. 바로 그 무렵 태자가 법을 어기자 위앙은 이렇게 말했다.
“법이 제대로 시행되지 못한 것은 위에서부터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법대로 태자를 처벌코자 했다. 그러나 군주의 뒤를 이어갈 태자에게 벌을 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태자의 대부로 있던 공자 건(虔)의 목을 베고, 태사(太師 임금을 보좌하는 관직)로 있던 공손고의 이마에 글씨를 새기는 형벌을 내렸다. 그 다음 날부터 진나라 백성은 모두 새로운 법령을 지켰다.
법령이 시행된 지 10년이 지나자 진나라 백성들은 매우 만족스러워 했다. 길바닥에 물건이 떨어져 있어도 주워가지 않았으며, 산에는 도적이 없었다. 가정마다 풍족했고 사람들의 마음은 넉넉했다. 백성은 나라를 위해 싸울 때 용감했지만 개인적인 싸움에는 겁을 먹었다. 도시나 시골이 모두 잘 다스려졌는데, 그러나 진나라 백성들 가운데 예전 법령은 불편했으나 이제 와서는 편하다고 말하는 자가 있었다. 위앙은 단호히 말했다.
“이러한 자는 모두 교화를 어지럽히는 자이다.”
그리고는 그들을 모두 변방으로 내쫒았다. 그 뒤로는 새로운 법령에 대해 이런저런 말이 일체 없었다.
이 일로 왕은 위앙을 대량조(大良造)로 삼았다. 그 후 위앙은 군사를 이끌고 위나라 수도 안읍(安邑)을 공격하여 항복을 받아냈다. 이로부터 3년 뒤에는 함양에 궁궐과 궁정을 짓고 도읍을 웅에서 함양으로 옮겼다. 백성들에게는 명을 내려 아버지와 자식 또는 형제가 한집에 사는 것을 금지했다. 또 작은 향(鄕)과 읍과 마을을 모아 현(縣)을 만들고 현령이나 현승을 두니 모두 31현이 되었다. 농지를 정리하여 경지 간의 경계를 정하고 부세를 공평히 하며 도량형을 통일하였다.
그로부터 4년 뒤, 어느 날 공자 건이 또 법령을 어겨 의형(劓刑 코 베는 형벌)을 받았다. 그 뒤 다시 5년이 지나자 진나라 백성들의 생활은 넉넉해지고 병력이 강해졌다. 주나라 천자는 효공에게 제사에 쓸 고기를 하사했고 제후들은 모두 축하해 주었다. <정리 송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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