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 부리가 될지언정 쇠꼬리는 되지 말고, 싹이 돋아날 때 베지 않으면 결국 도끼를 써야 하나니···
소진열전(蘇秦列傳)(1)
--소진열전은 합종가인 소진과 두 동생 소대(蘇代)와 소려(蘇厲)의 열전을 묶은 것으로 소진이 합종에 성공하여 잠시 6개국의 재상이 되어 혁혁한 공을 세운 부분과 소대, 소려가 연나라를 위해 모사를 꾸며 제나라를 깨뜨리는 사적을 기록한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소진열전의 앞부분은 소진이 연이어 유세에 실패한 나머지 실의의 세월을 보내지만 나중 성공하여 득의한 모습을 생동감 있게 대비시킴으로써 문학적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소진은 동주 낙양 사람으로 그는 일찍이 제나라로 가서 귀곡선생(鬼谷先生)에게 배웠다. 그리고 여러 해 떠돌아다니다가 어려움만 겪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형수며 형제, 누이, 첩이 모두 그를 비웃으며 말했다.
“주나라 풍습에 의하면 농사를 짓거나 장사를 해서 2할의 이익을 얻는 것이 사람이 해야 할 일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당신은 본업을 버리고 혀끝만을 놀리고 있으니 곤궁해지는 것은 당연한 게 아닐까요?”
소진은 그 말에 스스로 부끄럽게 여긴 나머지 문을 걸어 놓고 두문불출했다. 그리고 장서를 꺼내 두루 읽고난 후 이렇게 중얼거렸다.
“선비로서 고개를 숙여 가며 학문을 배웠건만 아무 영달도 얻을 수 없으니 책을 많이 읽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러고는 「주서周書」「음부陰符」를 열심히 파고들었다. 일 년이 지나 상대방의 마음을 알아내어 설득하는 방법을 터득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 술법만 있으면 이 시대의 군주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주나라 현왕을 찾아가 설득하려고 했다. 그러나 본디 소진이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안 현왕의 측근들은 그를 무시하고 상대해 주지 않았다. 그래서 소진은 진나라로 갔다. 그 무렵 진나라는 효공이 사망하고 혜왕이 그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소진은 혜왕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진나라는 사방이 철통같은 요새로써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위수(渭水)를 끼고 있습니다. 동쪽으로는 함곡관이 있고 황하가 있으며, 서쪽으로는 한중(漢中)이 있고 남쪽으로는 파군과 촉군이 있습니다. 그리고 북쪽으로는 대군(代郡)과 마읍(馬邑)이 있으니 이곳은 하늘이 내린 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진나라의 많은 백성이 병법을 배운다면 대왕께서는 천하를 석권하여 제왕이 될 것입니다.”
진나라 왕이 대답했다.
“새도 깃털이 자라기 전에는 높이 날 수 없소, 내 나라는 문리와 정치가 아직 밝지 못하므로 천하를 병합하기란 불가능하오.”
당시 진나라는 상앙을 죽인 뒤여서 유세객들을 싫어하였으므로 소진을 등용하지 않았다.
소진은 다시 동쪽의 조나라로 갔다. 이때 조나라 숙후(肅侯)는 동생인 성(成)을 재상으로 삼고 봉양군이라 불렀다. 봉양군은 소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소진은 조나라를 떠나 연나라로 갔다. 1년 쯤 되어서야 소진은 간신히 연나라 문후(文侯)를 알현할 수 있었다.
소진은 문후를 알현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연나라 동쪽에는 조선과 요동이 있고, 북쪽으로는 임호와 누번이 있으며, 서쪽으로는 운중과 구원이 있고, 남쪽으로는 호타하와 역수가 있습니다. 땅은 사방 2천여리가 되고 무장한 병사는 수십만이며, 병거 6백대에 군마 6천 필이 있고 수 년 동안 견딜 수 있는 식량이 있습니다. 참으로 하늘이 내린 땅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체로 안락하고 별다른 일이 없어 전쟁의 화를 입지 않기로는 연나라만한 나라가 없습니다. 대왕께서는 그 까닭을 아신지요? 연나라가 무장한 외적의 침입을 받지 않고 피해를 입지 않은 까닭은 조나라가 연나라의 남쪽을 가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나라와 조나라는 다섯 번을 싸워 진나라가 두 번, 조나라가 세 번 이겼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두 나라는 모두 피폐해진 반면, 대왕께서는 연나라를 온전히 하면서 그 배후를 제압할 수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연나라가 적의 침입을 받지 않은 까닭입니다.
진나라가 연나라를 치려면 운중과 구원을 넘고 대와 상곡을 지나야 하는데, 그 길은 수천 리를 지나야 합니다. 그러므로 진나라가 연나라를 치지 못한 것은 당연합니다. 반면 조나라가 연나라를 친다면 명을 내린 지 10일도 되지 않아 수십만의 군사가 동원되어 진을 칠 것이며, 호타하와 역수를 건넌 지 4~5일도 되지 않아 도성에 당도할 것입니다. 그래서 진나라가 연나라를 공격하며 천 리 밖에서 싸울 것이요, 조나라가 연나라를 공격하면 백 리 안에서 싸우게 될 것입니다. 연나라가 백 리 안의 근심을 염두에 두지 않고 천 리 밖의 적을 중하게 생각한다면 이보다 더 그릇된 계책은 없을 것입니다. 원하건대 왕께서는 조나라와 합종하십시오. 천하의 제후들이 한 몸이 되어 뭉친다면 연나라에서는 반드시 우환이 없을 것입니다.“
문후가 말했다.
“그대의 말이 옳소, 그러나 연나라는 작기도 하지만 서쪽으로는 세력이 센 초나라가 협박하고 있고, 남쪽으로는 제나라가 지척에 있소. 제나라와 초나라는 모두 세력이 강하오. 그대가 합종을 통해 연나라를 안정되게 만든다면 나는 온 나라를 바쳐 그대의 말에 따르겠소.”
문후는 소진에게 수레와 금, 비단을 주어 조나라로 보냈다.
조나라로 간 소진은 봉양군이 이미 죽고 없어 조나라 숙후를 직접 만나 이렇게 말했다.
“오늘 날 산동 경내에 있는 나라로 조나라보다 강한 나라는 없습니다. 조나라는 땅이 사방 2천여 리나 되고 용감한 병사는 수십만이며, 병거는 1천 승에 군마가 1만 필이나 됩니다. 게다가 몇 년을 지탱할 수 있는 식량이 있습니다. 서쪽으로는 성산이 있고, 남쪽으로는 장하가 있으며, 동쪽으로는 청하가 있고, 북쪽으로는 연나라가 있습니다. 연나라는 본디 약한 나라로 두려워 할 바가 못 됩니다.
진나라가 천하에서 조나라만큼 적대하는 나라가 없는데도 감히 군사를 일으켜 조나라를 공격하지 못하는 것은 무슨 연유 때문일까요? 그것은 한나라와 위나라가 그 배후를 치지 않을까 걱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조나라에게 있어서 한나라와 위나라는 남쪽의 방어벽인 된 셈입니다. 진나라가 한나라와 위나라를 공격한다면 높은 산과 넓은 강이 없어 야금야금 쳐들어와 도읍에까지 이를 것입니다. 한나라와 위나라는 진나라 군사를 방어하지 못해 분명 신하가 되고 말 것입니다. 한나라와 위나라의 견제가 사라지고 나면 진나라는 틀림없이 조나라를 공격하려 할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왕을 위해 염려하는 바입니다.
제가 알고 있건대 요 임금은 세 사람 몫의 땅도 없었고, 순 임금에게는 한 치의 땅조차 없었지만 천하를 차지했습니다. 또한 하나라의 우임금은 백 명이 사는 마을조차 갖지 못했지만 제후들의 왕이 되었고, 상나라 탕왕과 주나라 무왕은 무장한 병사가 3천 명, 병거가 3백 승, 병졸이 3만 명에 지나지 않았지만 천자가 되었습니다. 이는 진실로 그들이 천하를 얻는 이치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명군이라면 밖으로는 적의 강점과 약점을 살피고 안으로는 병사들의 능력을 헤아려 싸울 때를 기다리지 않고도 승패와 존망의 기운이 가슴 속에 떠오르게 됩니다. 어찌 평범한 자들의 말에 가려 이치를 분별하지 못한 채 큰일을 결정하겠습니까?
천하의 형세를 살펴보았을 때 제후들의 땅은 진나라의 다섯 배나 되고, 제후들의 군사는 진나라의 열 배나 됩니다. 여섯 나라가 하나로 힘을 합쳐 서쪽의 진나라를 공격한다면 분명 진나라를 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서쪽으로 진나라를 섬긴다면 진나라의 신하가 되고 말 것입니다. 대저 남을 이기는 것과 지는 것, 이것은 남을 신하로 삼는 것과 남의 신하가 되는 것을 어찌 함께 논할 수가 있겠습니까?
연횡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제후들의 땅을 떼어 진나라에 바치라고 합니다. 진나라는 목적을 달성하고 나면 높은 누대와 화려한 궁전에서 거문고의 아름다운 소리를 들으며 앞에는 누대와 수레를 두고 뒤로는 미인들을 세워두고 있을 것입니다. 각 나라는 진나라에게 화를 입어도 그 근심을 나누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까닭으로 연횡론자들은 밤낮으로 진나라의 힘에 기대어 제후들을 협박하여 땅을 떼어줄 것을 요구합니다. 왕께서는 이 문제를 숙고하시기 바랍니다.
왕을 위해 곰곰이 생각해 보면 한나라·위나라·제나라·초나라·연나라·조나라가 하나로 연합하여 진나라에 대항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천하 제후들의 장군과 재상들을 원수(洹水) 부근으로 모이게 하여 인질을 교환하고 백마를 잡아 그 피로써 맹세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약속을 해야 합니다.
‘진나라가 만약 초나라를 공격한다면 제나라와 위나라는 정예병을 보내 지원하고, 한나라는 식량 수송로를 끊고, 조나라는 장수를 건너고, 연나라는 상산 북쪽을 고수한다. 진나라가 만약 한나라와 위나라를 치면 초나라는 진나라의 배후를 끊고, 제나라는 정예병을 보내 도우며, 조나라는 장수를 건너고, 연나라는 운중을 지킨다. 진나라가 만약 제나라를 치면 초나라는 진나라의 배후를 끊고, 한나라는 성고를 지키며, 위나라는 하내를 통하는 길을 막고, 조나라는 장수와 박관을 건너고, 연나라는 정예병을 보내 돕도록 한다. 진나라가 만약 연나라를 치면 조나라는 상산을 지키고, 초나라는 무관에 진을 치며, 제나라는 발해를 건너고, 한나라와 위나라는 모두 정예병을 보내 돕도록 한다. 만약 진나라가 조나라를 치면 한나라는 의양에, 초나라는 무관에, 위나라는 황하 남서쪽에 진을 치고, 제나라는 청하를 건너며, 연나라는 정예병을 보내 돕도록 한다. 제후들 가운데 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나라가 있으면 다섯 나라의 군대가 함께 그 나라를 친다.’
여섯 나라가 합종하여 진나라를 멀리하면 진나라는 감히 함곡관을 나와 산동을 침범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패왕의 공업이 성취되리라 믿습니다.“
조나라 왕이 말했다.
“과인은 나이가 어리고 즉위한 지도 얼마 안 되어 지금까지 사직을 다스리는 장구한 계책에 대해 들은 바가 없었소. 상객에게는 천하를 유지하고 제후들을 안정시키려는 뜻이 있으니 과인은 힘을 다해 그대의 말을 따르겠소.”
조나라 왕은 소진에게 수레 1백 승, 황금 1천 일, 백옥 1백 쌍, 비단 1천 필을 선물로 주며 합종을 약속했다.
그 무렵, 주나라 천자가 문왕과 무왕의 제사에 사용할 고기를 진나라 혜왕에게 하사를 하였다. 혜왕은 서수를 시켜 위나라를 쳐 장군 용가를 사로잡고 위나라 조음 땅을 빼앗은 뒤 군사를 동쪽으로 돌렸다. 소진은 진나라가 조나라를 치면 합종의 계책이 깨질 것을 우려해 장의의 화를 돋우어 진나라로 들어가게 했다. 그리고는 한나라 선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한나라는 북쪽으로는 공과 성고 같은 요새가 있고, 서쪽으로는 의양과 상판 같은 험한 요새가 있으며, 동쪽으로는 완과 양과 유수가 있고, 남쪽으로는 형산이 있습니다. 땅은 사방 9백여 리이고, 무장한 병력이 수십만이며, 천하의 강한 활과 쇠뇌는 모두 한나라에서 나옵니다. 한나라의 용감한 군사들이 견고한 갑옷을 입고 강한 쇠뇌를 밝고 예리한 칼을 차고 있으면 일당백은 문제도 되지 않습니다. 이렇듯 강력한 힘을 갖고 있고 현명한 왕을 모시고 있는 한나라가 서쪽으로 진나라를 섬겨 예를 갖추어 복종하는 것은, 사직을 욕보이고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는 것으로서 이보다는 더한 수치가 없습니다. 왕께서는 만약 진나라를 섬기신다면 진나라는 의양과 성고 땅을 요구해 올 것입니다. 저들이 요구하는 대로 응해 준다면 머지않아 주려고 해도 줄 땅이 없이 것이며, 땅을 주지 않으면 지금까지 준 공덕은 사라지고 훗날 전화만 입게 될 것입니다. 왕의 땅은 한정이 있지만 진나라의 요구는 한정이 없을 것입니다. 한정된 땅을 가지고 한정 없는 요구에 응하는 것이야말로 원한을 사서 화를 불러오는 것으로, 이는 싸워보지도 않고 땅을 빼앗기는 격입니다. 속담에 ‘차라리 닭의 부리가 될지언정 소의 꼬리는 되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 서쪽을 향해 진나라의 싢가 된다면 소의 꼬리가 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왕께서는 현명하시고 군대는 강력한데 소의 꼬리가 된다는 오명을 쓴다면 왕을 위하는 저로서는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 같은 말에 한나라 왕은 낯빛이 변하면서 칼을 어루만지고는 하늘을 우러러 탄식했다.
“나는 불초한 몸이지만 결코 진나라에는 머리를 숙이지 않을 것이오, 이제 그대에게서 조나라 왕의 충고를 들었으니, 삼가 이 나라를 들어 그대의 의견에 따르리다,”
소진은 위나라 양왕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
“위나라는 땅이 사방 천 리에 이릅니다. 비록 소국이라고는 하나 밭과 마을이 많아 목축할 만한 곳이 없을 정도며, 백성과 수레와 말도 많아 주야로 왕래가 그치지 않고 그 울림소리는 마치 삼군(三軍)의 대부대가 행군하는 것과 같습니다. 제가 곰곰이 생각해 보건대 왕의 나라는 결코 초나라에 뒤지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연횡론자들은 왕께 진나라에 대한 공포심을 부채질하여 호랑이와 같은 그들과 친교하게 하여 진나라가 천하를 도모할 수 있도록 거듭니다. 왕의 나라가 진나라의 공격을 받을지도 모르는데, 그들은 그런 화를 돌아보지 않습니다. 그들이 진나라에 의지하여 자신들의 군주를 위협하는 일만큼 큰 죄는 없을 것입니다.
위나라는 천하의 강국이며 왕께서는 현명한 군주이십니다. 그런데도 서쪽을 향하여 진나라를 섬겨 동쪽의 속국이라 일컫고, 진나라왕의 순찰을 위해 행궁을 짓고, 진나라의 복식 제도를 받아들이고, 진나라 종묘의 춘추대재에 참예할 뜻을 갖고 있습니다. 왕을 위해 저는 이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바입니다.
지금 군신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진나라를 섬긴다면 반드시 땅을 떼어 주어 성의를 표해야 합니다. 이것은 싸워보기도 전에 나라가 이지러지는 일입니다. 신하 중에 진나라를 섬겨야 한다고 하는 자는 모두 간신이지 결코 충신이 아닙니다. 어찌 신하된 자가 나라를 파멸하여 제 집안의 영달을 꾀하고 밖으로는 진나라의 세력에 의지하고 안으로는 군주를 위협하여 땅을 떼어 바치기를 요구한다는 말입니까. 왕의 깊은 통찰이 있으시길 바랍니다.
「주서」에 ‘작을 때 싹을 자르지 않으면 덩굴이 우거진 뒤에는 이렇게 하라. 작을 때 베지 않으면 방차 도끼를 써야 하리’라고 했습니다. 미리 뜻을 정하지 않으면 후에는 우환이 따르리니 그때는 이를 어찌 해볼 수도 없습니다. 만약 왕께서 저의 의견을 받아들여 합종으로 친교를 맺어 뜻을 한데 모은다면 진나라의 화를 반드시 면할 것입니다. 저희 조나라 왕께서는 제게 명하여 이 뜻을 올리게 하고 분명한 약속을 받아오라고 하였습니다. 왕의 뜻을 말씀해 주십시오.“
위나라 왕이 말했다.
“과인은 불초하여 현명한 가르침을 받아 본 적이 없었소, 이제 그대에게서 조나라 왕의 말을 들었으니 온 나라를 받들어 삼가 따르기로 하겠소.”
이어 소진은 동쪽에 있는 제나라 선왕에게로 가서 유세했다.
“제나라는 남쪽으로는 태산이 있고, 동쪽으로는 낭아가 있으며, 서쪽으로는 청하가 있고, 북쪽으로는 발해가 있으니 이야말로 사면이 모두 요새로 둘러싸인 형국입니다. 제나라 땅은 사방 2천여 리이고, 무장한 군사는 수십만이며, 식량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습니다. 정예병이 전진할 때는 빠르기가 화살과 같고, 싸움에 임할 때는 우레와 같으며 흩어질 때는 비바람과 같습니다. 싸움이 있다 해도 태산을 넘거나 청하를 건너거나 발해를 넘어서까지 징집한 일은 없습니다.
도읍인 임치는 매우 부유하고 풍족합니다. 백성들은 피리를 불고 거문고를 타고 축을 치며, 닭싸움과 개 경주를 즐기고 윷놀이와 공차기 또한 즐기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임치의 거리는 번화하여 수레바퀴가 서로 부딪치고, 오가는 사람들의 어깨가 서로 스치며, 땀을 흘리면 비가 오는 것 같습니다. 집집마다 살림이 오붓하여 사람마다 흐뭇해하며 기개가 넘칩니다. 왕의 현명하심과 제나라의 강대함은 능히 당할 자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서쪽을 향하여 진나라를 섬기려 하시니 저는 이를 부끄러워하는 바입니다.
대체로 한나라와 위나라가 진나라를 두려워하는 것은 진나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두 나라가 출병하여 대전을 벌인다면 10일 안에 승패가 결정될 것입니다. 한나라와 위나라가 진나라와 싸워 비록 이긴다 해도 군사의 반은 소모될 것이고, 나라의 경제는 위태로워질 것입니다. 만약 싸워 진다면 나라는 위태로워질 것이고, 마침내 멸망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나라와 위나라는 싸움을 두려워하여 쉽사리 진나라를 섬기려 하는 것입니다.
지금 진나라가 제나라를 친다고 하면 한나라와 위나라와는 사정이 다릅니다. 그들은 한나라와 위나라를 배후에 두고 위나라 양진의 험한 길을 지나고 강보의 험한 땅을 횡단해야 합니다. 게다가 수레는 두 대가 나란히 지나갈 수 없으며, 말도 두 마리가 나란히 지나갈 수 없는 까닭에 백 사람이 험한 땅을 이용하여 지킨다면 천 명의 군사일지라도 지나갈 수 없습니다. 진나라는 깊숙이 침략하고 싶어 해도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됩니다. 그래서 진나라는 허세로만 위협하고 교만하게 거들먹거릴 뿐 두려워하고 의심하여 감히 밀고 나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를 보건대 진나라가 제나라를 치지 못할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도 진나라가 제나라를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깊이 생각하지 않고 서쪽을 향해 진나라를 섬기려고 하니, 이는 군신들의 그릇된 계책입니다. 지금 제나라가 진나라를 섬긴다면 아무런 명분도 없고 실제적인 이익도 없습니다. 왕께서는 이 점을 헤아리시어 계책을 마련하시기 바랍니다.“
제나라 왕이 말했다.
“과인은 불민한데다가 제나라는 멀리 동쪽 바닷가 후미진 곳에 있는지라 가르침을 받아본 적이 없었소, 이제 그대에게서 조나라 왕의 말씀을 들었으니, 삼가 온 나라의 힘을 다해 따르기로 하겠소.”
<소진열전 2, 다음 호에 계속> <정리 송하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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