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명기동남풍(孔明祈東南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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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연의는 중국의 위촉오 세 나라의 역사를 정리한 진나라 진수(陣壽:233~297)의 정사(正史) 〈삼국지(三國志)〉를 토대로 하고 〈한진춘추(漢晉春秋)〉와 〈삼국지주(三國志注)〉를 참고로 하고 14세기 작가 나관중(1330?~1400)의 상상력을 가미해 만들어 놓은 소설이다. 원래 이름은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이며, 《수호전(水滸傳)》, 《서유기(西遊記)》, 《금병매(金甁梅)》와 함께 중국 4대기서(四大奇書)의 하나로 꼽힌다. 삼국지는 중국과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삼국에서 모두 사랑을 받는 명작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특별한 민화전이 최근 강진에서 열렸다. 한국민화뮤지엄에서 열린 ‘석지 채용신의 ‘삼국지연의도 특별전’이 바로 그것이다. 석지(石芝) 채용신(蔡龍臣)은 고종 황제의 어진을 그렸던 초상화가로서 삼국지연의도를 단순히 삼국지연의에서 주목할 만한 장면을 그린 것에 그치지 않고 조선말 우리민족이 품고 있던 간절하고 원대했던 뜻을 담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에 민화를 풀어주는 남자 ‘윤광제 시조시인’과 함께 숨은 그림 찾기처럼 숨겨져 있는 삼국지연의도의 비밀을 함께 풀어보자.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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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명기동남풍(孔明祈東南風) : 제갈공명이 동남풍을 기원하는 제를 지내다.
오나라의 손권은 제갈량 등장 전까지 철저한 ‘아웃사이더’ 즉 외부세력이었다. 당대의 패권이 원소, 조조 등 대륙의 실력자들 간에 좌우된데다가 오나라의 전력이 남부지역에 국한됐고 결정적으로 황제의 성은을 받기엔 너무 멀었다. 그런 이유로 ‘삼국지’초반에 비교적 안정된 세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동안 방패막이 되어 준 형주성이 조조에게 항복하면서 손권과 조조 사이에 완충지대가 사라진 셈이다. 이 틈을 비집고 들어온 것이 바로 유비다. 유비는 조조와 손권 간의 전면전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됐고 자신은 상대적 약자인 손권에게 힘을 실어주면서 조조와 대항하다가 후사를 도모하자는 계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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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명기동남풍(孔明祈東南風) |
같은 시기 형주를 접수하고 자신의 약점인 수군마저 확보하자 자신감이 충만해진 조조는 곧바로 손권에게 공갈협박 편지를 띄운다.
“나는 최근 조정의 명을 받들어 죄 지은 자들을 정벌하고 있소. 100만 군대의 깃발이 남쪽으로 향하자 형주는 알아서 투항했고, 형양의 백성들도 모두 귀순했소, 이제 나는 유비를 치려하니 나를 도우시오. 그대와 영토를 나누어 다스리며 오랜 동맹관계를 맺고 싶소.”
조조의 오만한 편지를 받은 오나라측 신하들은 공황상태에 빠지고 만다. 오나라 자신들의 최대 장점이었던 수군전력에 맞먹는 전력을 조조가 갖춘데다가 압도적 우위의 육군까지 동원된다고 하니 상당수 대신들이 조조와 대적하기보다는 항복을 해서 목숨을 보전하자는 의견을 제시한다. 이때 제갈량이 주전파(主戰派)의 우두머리인 대도독 주유를 자극한다.
“조조가 원래 여자를 밝히는 사람인데 오래전부터 오나라의 두 미녀 대교와 소교를 첩으로 두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러니 그 두 여인을 조조에게 보내기만 하면 조조가 철군할 것입니다. 옛적에 훙노가 자주 국경을 침범하니 한나라 천자께서는 흉노에게 공주까지 보내면서 화친한 일이 있습니다. 민간의 두 여자를 조조에게 보내는 것이 무에 그리 아깝다고 하십니까?” 이 말을 들은 주유는 발끈하며 크게 분노를 표출한다.
사실 제갈량은 손책(손권의 형)의 부인이 대교이고, 주유의 부인이 소교인 것을 알고 있  |
| 동남풍을 불게 하고 재빨리 탈출하고 있는 제갈량, 조자룡이 배를 준비해 놓고 있다. |
으면서 주유가 폭발하기를 유도했던 것이었다. 역시나 제갈량보다는 한 수 아래였던 오나라 대도독 주유가 화를 참지 못하고 반드시 조조와 싸울 것을 약속한다. 그렇게 오나라에서 제일 똑똑하다는 주유를 전쟁터로 끌어오는데 성공한 제갈량은 손권에게도 자존심을 긁는 소리를 해서 손권 마저도 결사항전을 하도록 유도한다.
그렇게 오나라의 두 핵심인물을 전쟁판에 끌어들인 제갈량은 두 사람의 분노를 가라앉히고 승리의 비결을 제시한다. 제갈량의 현란한 말솜씨에 손권은 설득당하고, 주유는 제갈량의 계책을 듣고 나서 한 없이 초라해짐을 느낀다. 그리고 얼마 후 제갈량과 주유는 수전의 기본 무기인 화살제작과 관련해 열띤 토론을 벌인 끝에 목숨을 건 ‘화살 10만개를 3일 안에 만들기’ 내기를 벌인다. 결국 제갈량은 안개가 짙은 아침에 조조의 수영 앞에서 대규모 군선을 이끌고 무력시위를 벌여 공짜 화살 10만개를 얻게 된다. 주유는 제갈량의 신묘한 계책에 감탄하면서도 오나라의 미래를 위해서 꼭 죽여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다시 몇 날이 지나고 주유는 전투를 준비하던 중 피를 토하고 말에서 떨어져 주위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제갈량은 병문안을 하면서 주유에게 처방전을 내린다. “지금 아픈 것은 몸이 아니라 북서쪽에서 불어오는 바람 때문이니 동남품이 불면 씻은 듯이 나을 것입니다.” 속마음을 들켜버린 주유는 몹시 부끄러워하면서 깊이를 알 수 없는 제갈량의 혜안에 또 감탄을 한다. 그러면서도 ‘제갈량은 반드시 죽여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결전의 날이 다가옴을 느낀 제갈량은 오나라 남병산에 칠성단을 만들어 줄 것을 요구하고 7일간 열심히 동남풍이 불기를 기도한다. 지켜보던 주유는 제갈량의 신기한 도술을 기대하면서 부하 장수 서성과 정봉에게 특별주문을 한다. “동남풍이 불기 시작하면 제갈량을 죽여라!”
조자룡은 용맹한 조선군의 모델
그림을 살펴보자. 우측 상단에 병사들과 동자들이 기를 들고 서있는 단이 보이다. 바로 칠성단이다. 제사를 지낼 때 동남동녀를 좋아하던 당시 중국의 풍습이 드러난다. 기를 들고 있는 병사의 모습을 보면 어린 아이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칠성단이 세워진 목적이 그대로 드러나는 그림이 바로 깃발이다. 깃발이 서쪽으로 펄럭이고 있으니 이것이 바로 동남풍이다. 목적을 달성한 제갈량은 그 길로 탈출을 시도한다. 주유가 어떤 짓을 할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림의 중앙에서 약간 왼쪽에는 도망치는 제갈량과 동자, 배 한 척, 완전무장한 장군, 사공 4명이 보인다. 저기서 대기 중인 장군은 바로 당양벌의 스타 장군 조자룡이다.
그런데, 조자룡의 복식이 아주 눈에 띈다. 장창과 동개시복, 띠돈을 이용해 패용한 칼까지 완벽한 조선 무관의 복장이다. 참고 사진을 보면 조선무관은 철릭에 광다회(폭이 넓고 납작한 평직의 끈)를 매고 병부(조선시대에 군대를 동원할 때 쓰던 발병부(發兵符)의 준말이며 병부는 지름 7.5㎝, 두께 0.6㎝의 둥글고 납작한 나무패로 색깔은 흑색이다)를 차고 입식의 전립(戰笠)을 쓰고 영자(纓子:끈)를 하고 동개(화살을 담아두는 통인 시복과 부린 활을 담아두는 궁대를 결합하여 왼쪽어깨에 매어 겨드랑이에 차는 기구)와 환도(還刀:조선시대 군용 칼)를 메고 목화(木靴:신발, 장화처럼 생김)를 신고 있다. 이를 보면서 유추해 볼 것은 작가 채용신은 당양벌에서 용맹을 떨친 조자룡처럼 우리 조선군도 조국의 독립을 위해 맹활약을 해 주기를 바랐던 것은 아닐까?
여담이지만 조선 무관의 복식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이 현재 대한민국에서 보여주는 대부분의 사극이 아주 큰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것이다. 장군도 사람인지라 하루 종일 칼을 왼손에 드는 것은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사극을 보면 장수들이 칼을 왼손에 들고 하루종일 돌아다니고 있다. 이는 촬영장에서 배우들이 띠돈 패용을 귀찮아하거나 소품 담당자가 몰라서 간과했거나 고증을 하기 싫어서 준비를 안 했을 가능성이 크다.
한편 왼쪽 상단을 보면 한 무리의 군대가 급하게 말을 몰고 달려오고 있다. 바로 서성과 정봉이 이끄는 기동대이다. 대도독 주유의 명을 받고 제갈량을 제거하러 오는 것이다. 그러나 제갈량은 주유의 행동을 미리 알아채고 조자룡에게 배 한 척을 대기시켜 탈출을 준비한다. 이들의 탈출을 곱게 허락하지 않고 서성이 추격하려하자 창도 잘 쓰고, 칼도 잘 쓰는 조자룡이 활로 추격부대의 돛 줄을 끊고 여유롭게 사지를 벗어난다. 이 그림 너머로 항상 2인자로 머물러야 했던 주유의 피 끓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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