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진사람을 얻으려면 정성을 다해야 한다
위나라 공자 무기(無忌)는 위나라 소왕(昭王)의 막내아들로 안희왕의 이복동생이다. 소왕이 죽고 안희왕이 즉위하자 무기는 신릉군에 봉해졌다. 이 무렵 범수는 위나라에서 달아나 진나라의 재상이 되었다. 범수는 위나라 재상이던 위제에 대한 원한으로 군사를 일으켜 위나라의 도읍인 대량을 포위하고 화양에 있던 위나라 군대를 쳐부수었다. 이 때 위나라 장수 망묘는 달아났다. 위나라 왕과 공자는 이 일을 몹시 걱정했다.
공자는 사람됨이 어질고 겸손하여 현인이건 불초한 자이건 가리지 않고 모두 예로써 대접했으며, 자신이 부귀하다고 교만을 부리지 않았다. 이 때문에 사방 수천 리에서 선비들이 앞 다투어 모여들어 빈객이 3천에 달했다. 그 무렵 제후들은 신릉군이 현명한기도 하려니와 빈객도 많이 거느리고 있어 10여 년 동안이나 감히 위나라를 넘보지 못했다.
어느 날 공자가 위나라 왕과 한창 바둑을 두고 있는데, 북쪽 변방에서 봉화가 올랐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조나라 군사가 국경을 넘어오고 있습니다.”
위나라 왕은 두던 바둑을 그만 두고 대신들을 불러 대책을 세우려고 했다. 그러자 공자는 왕을 말리며 이렇게 말했다.
“조나라 왕은 사냥을 나온 것이지 침략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는 계속 바둑을 두었다. 왕은 마음이 놓이질 않아 바둑에는 관심이 없엇다. 잠시 후 다시 병사가 와서 말했다.
“조나라 왕은 사냥을 하러 나온 것이지 침략을 한 것이 아닙니다.”
위나라 왕은 크게 놀라 공자에게 말했다.
공자는 어떻게 그같은 사실을 알았소?“
공자가 말했다.
“저의 식객 중에 조나라 비밀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그가 조나라 왕의 일을 일일이 알려 주어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후 위나라 왕은 공자의 현명함에 두려워하여 그에게 국정을 맡기려 하지 않았다.
숨어사는 선비 후영과 주해
위나라에 후영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숨어서 지냈다. 집안이 빈한하여 대량의 나이 79세에 대량의 동문 문지기 노릇을 하고 있었다. 신릉군은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에게 후한 예물을 보냈다. 그러나 후영은 받으려 하지 않으며 이렇게 말했다.
“수십 년 동안 몸을 닦고 행실을 깨끗이 해온 제가 새삼스럽게 문지기로서의 생활이 고달프다 하여 공자의 재물을 받을 수 없습니다.”
훗날 공자는 술자리를 벌이고 손님들을 대거 초대했다. 자리가 다 찰 무렵 공자는 수레와 가마를 거느리고 자신의 수레 왼쪽 자리를 비운 채 몸소 동문의 후영을 맞이하러 갔다. 후영은 다 낡은 의관을 차려입고 거침없이 수레에 오르더니 사양하지도 않고 공자의 상좌에 앉았다. 공자는 말고삐를 잡은 채 더욱 공손히 그를 대했다. 후영이 공자에게 말했다.
“제 친구 한 사람이 저자에 살고 있는데, 수고롭지만 수레를 몰아 그곳에 들러 주었으면 합니다.”
공자는 수레를 몰아 저자 안으로 들어갔다. 후영은 수레에서 내린 뒤 친구인 주해(朱亥)와 만나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며 곁눈질로 공자를 살폈다. 공자의 낯빛은 부드럽기만 했다. 그때 공자의 집에서는 위나라 장군과 재상, 종실 등 귀한 손님들이 가득 모여 공자가 돌아와 술잔 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저자의 사람들은 공자가 말고삐를 잡고 있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몰래 후영을 욕했다. 후영은 공자의 안색이 시종 변하지 않는 것을 보고는 친구와 헤어져 수레에 올랐다. 공자의 집에 이르렀을 때 공자는 후영을 안내하여 상석에 앉힌 뒤 손님들에게 두루 소개했다. 손님들은 깜짝 놀랐는데, 술자리가 무르익었을 때 공자는 후영의 앞으로 다가가 술잔을 올리며 그의 장수를 빌었다. 후영이 말했다.
“오늘 저도 공자를 위해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한낱 문지기에 지나지 않는데 공자께서 몸소 수레를 타고 오셔서 많은 손님들이 모인 자리로 저를 맞이해 주셨습니다. 또한 다른 곳을 들러서는 안 되는 일임에도 공자께서는 일부러 들러 주셨습니다. 저는 공자의 명성을 높여드리고자 일부러 공자의 수레와 시종들을 저자 한복판에 오래 머물게 하여 지나가는 사람들이 공자를 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공자는 사람들에게 더욱 공손한 태도를 보이셨습니다. 저자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저를 못된 소인이라고 하고, 공자는 덕이 있는 장자로서 능히 선비에게 몸을 굽힐 줄 아는 분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이윽고 연회가 끝나자 후영은 상객으로 대우받았다. 후영이 공자에게 말했다.
“제가 찾아갔던 친구 주해는 현인이지만 알아주는 이가 없어 백성들 사이에서 숨어 지내고 있습니다.”
이에 공자는 주해를 빈객으로 맞이하기 위해 여러 번 찾아갔으나 주해는 응하지 않았다. 공자는 이를 이상하게 여겼다.
굶주린 호랑이에게 고기를 던져주면 안 된다
위나라 안희왕 20년에 진나라 소왕은 장평에서 조나라 군사를 격파하고 다시 진군하여 조나라의 도읍인 한단을 에워쌌다. 신릉군의 누이는 조나라 혜문왕의 동생인 평원군의 부인이었다. 이에 평원군은 위나라 왕과 신릉군에게 여러 번 편지를 보내 구원을 청했다. 위나라 왕은 장군 진비를 시켜 10만 대군을 거느리고 조나라를 구원하도록 했다. 진나라 왕은 사신을 보내 위나라 왕에게 이렇게 알렸다.
“내가 조나라의 도읍을 함락하는 것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소. 만약 제후들 중에서 조나라를 돕는 자가 있다면 조나라를 친 뒤 군사를 돌려 그를 격파할 것이오.”
이 말에 위나라 왕은 겁을 먹고 진비에게 사신을 보내 행군을 중지하고 업(鄴) 땅에 진을 치게 했다. 이는 겉으로는 조나라를 구하는 척하면서도 실은 사태를 관망하겠다는 의도였다. 그러자 평원군은 연이어 사자를 보내 신릉군을 꾸짖었다.
“내가 스스로 공자의 집안과 혼사를 맺은 것은 공자가 의를 중하게 여기고 남의 곤궁을 보면 곧 구해 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소. 지금 한단이 곧 함락할 위기에 처했음에도 위나라의 구원병이 오지 않고 있으니 공자의 의로운 마음은 대체 어디로 갔단 말이오? 설령 공자가 나를 업신여겨 진나라에 항복하도록 내버려둔다 하더라도 공자의 누이는 불쌍하지 않단 말이오?”
신릉군은 애가 타서 위나라 왕에게 몇 번이고 요청하는 한편 빈객과 변사들을 통해 왕을 설득시키기도 했지만 진나라를 두려워한 위나라 왕은 공자의 청을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공자는 아무리 해도 왕의 승낙을 받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자기만 살아남고 조나라를 망하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에 공자는 빈객들에게 청하여 수레 백여 승을 마련하고 빈객들과 함께 진나라 진지로 쳐들어가 조나라와 운명을 함께 하기로 했다. 동문을 지날 때 공자는 후영을 만나 진나라와 싸워 죽을 각오를 하게 된 까닭을 들려주었다. 그리고 작별 인사를 하자 후영이 말했다.
“공자님, 부디 분발하십시오. 저는 몸이 늙어 따라가지 못하겠습니다.”
공자는 몇 리를 가는 동안 마음이 내내 불편했다.
“내가 온 힘을 다해 후영을 대한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후영은 지금 내가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러 간다는데도 한마디 인사도 없었다.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한 것일까?”
공자는 수레를 돌려 후영에게 가서 물었다. 후영이 웃으며 말했다.
“저는 공자께서 돌아오실 것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말을 계속 이었다.
“공자께서 빈객을 좋아하시는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일입니다. 공자께서는 지금 어려운 일을 당하여 아무런 대책도 없이 진나라 진영으로 들어가십니다. 이는 굶주린 호랑이에게 고깃덩어리를 던져 주는 것과 같은 것으로 아무런 이득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빈객은 두어 뭘 합니까? 공자께서는 저를 후히 대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죽음을 각오하고 떠나시는 공자께 한마디 말씀도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동자께서 저를 괘씸히 여기시고 되돌아오실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공자가 두 번 절하고 가르침을 구하자 후영은 사람들을 물리친 후 조용히 말했다.
“제가 들은 바에 의하면 진비의 병부(兵符)는 언제나 대왕의 침실에 보관되어 있다고 합니다. 대왕께서는 여희를 가장 총애하므로 여희는 대왕의 침실을 드나들 수 있으니 병부를 훔쳐낼 수 있을 것입니다. 여희의 부친이 누군가에 의해 살해되었을 때 여희는 3년 동안이나 재물을 써가며 원수를 찾게 했습니다. 또한 대왕을 비롯한 많은 신하들도 그의 부친의 원수를 갚아 주려고 했지만 결국 그 원수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때 공자께서는 빈객들을 시켜 원수의 목을 베어 여희에게 바쳤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여희는 공자를 위한 일이라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해낼 것입니다. 그동안은 다만 보답할 기회를 찾지 못했을 뿐입니다. 공자께서 한마디만 하시면 여희는 흔쾌히 도우려 할 것입니다. 병부를 손에 넣으시면 그것으로 진비의 군사를 빼앗아 북쪽으로는 조나라를 구하고 서쪽으로는 진나라의 군사를 물리치십시오. 이는 춘추오패의 공적에 견줄만한 것입니다.”
공자는 후영의 계략에 따르기로 하고 여희에게 청을 넣었다. 과연 여희는 병부를 훔쳐 공자에게 넘겨주었다. 공자가 떠나려 할 때 후영이 말했다.
“장수가 원정 중일 때는 주군의 명일지라도 나라의 이익에 어긋난다고 판단되면 따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만일 병부를 서로 맞추어 보더라도 진비가 병권을 넘겨주지 않고 대왕에게 명령을 요청한다면 일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 때를 대비해 제 친구 주해를 데리고 가십시오. 그는 힘이 장사입니다. 진비가 순순히 들어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주해를 시켜 그를 죽이십시오.”
이 말을 듣고 공자가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후영이 말했다.
“공자께서는 죽음이 두려우십니까? 어찌하여 눈물을 흘리시는 것입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진비는 강인한 노장군으로서 병부를 맞춰 보더라도 분명 따르지 않을 것이오. 그러면 그를 죽여야 하니 그래서 우는 것이오. 어찌 내 죽음을 겁내겠소.”
공자는 주해에게 함께 갈 것을 여청하자 주해가 웃으며 말했다.
“저는 한낱 저자에서 칼이나 휘두르는 백정입니다. 그럼에도 공자께서는 몸소 자주 들려 저의 안부를 물었습니다. 일일이 답례하지 않은 것은 하찮은 예절 따위는 필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공자께서 위급한 처지에 직면하셨으니 지금이야말로 제가 목숨을 바쳐 공자님의 은혜에 보답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마침내 주해는 공자와 함께 가기로 했다. 공자는 후영을 찾아 작별 인사를 했다. 후영이 말했다.
“저도 공자를 따라가야겠지만 늙어서 그러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공자께서 진비의 진영에 이르는 날 날을 헤아려 북쪽을 향해 자결하는 것으로써 대신하겠습니다.”
공자는 드디어 출발했다. 업 땅에 이른 공자는 위나라 왕이 자신에게 진비를 대신하라는 명을 내렸다고 했다. 그러나 진비는 병부를 맞춰본 다음에도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지금 저는 10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국경에 주둔하며 나라의 무거운 임무를 맡고 있습니다. 그러나 공자께서는 단 한 대의 수레를 타고 오셔서 저를 대신하려고 하니 어찌 된 일입니까?”
그 순간 주해가 옷소매 속에 감추었던 40근짜리 철퇴로 진비를 내리쳐 죽였다. 마침내 진비의 군사를 거느리게 된 공자는 군중을 정돈한 뒤 이렇게 명을 내렸다.
“부자가 함께 이 군중에 있으면 아버지는 돌아가라. 또한 형제가 함께 있으면 형은 돌아가라. 외아들도 돌아가서 부모를 봉양하라.”
그리하여 8만의 군사를 선발하여 진나라를 공격했다. 진나라는 포위망을 풀고 퇴각하였으며, 공자는 마침내 한단을 구하고 조나라를 보존했다. 조나라 왕과 평원군은 친히 국경까지 나와 공자를 맞이했으며, 평원군은 직접 화살집을 메고 공자를 안내했다. 조나라 왕은 공자에게 두 번 절하고 이렇게 말했다.
“예로부터 현인치고 공자만한 사람은 없소이다.”
평원군도 감히 공자를 자신과 견주려고 하지 않았다.
한편 공자가 후영과 헤어져 진비의 군영에 도착했을 무렵 후영은 북쪽을 향해 자결했다. 위나라 왕은 공자가 병부를 훔치고 진비를 속여 죽인 것을 알고는 화를 냈다. 신릉군 자신도 잘못한 것을 알고 있었기에 진나라 군사를 물리치고 조나라를 구한 다음에는 휘하 장수에게 전군을 이끌고 위나라로 돌아가게 하고, 자신은 몇몇 빈객들과 함께 조나라에 남았다.
조나라 효성왕은 공자가 진비를 속이고 군권을 빼앗아 조나라를 구해 준 까닭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음을 알고 평원군과 상의하여 다섯 개의 성을 봉읍으로 하사하려고 했다. 이에 공자는 교만한 마음이 생겨 스스로 공을 자랑하려고 했다. 그러자 빈객 중의 한 사람이 공자에게 말했다.
“무릇 일에는 잊어서는 안 될 것과 잊지 않으면 안 될 것이 있습니다. 남이 공자에게 베푼 은혜는 잊어서는 안 될 일이지만, 공자께서 남에게 베푼 은혜는 잊으셔야 합니다. 공자께서 위나라 왕의 명령이라 속이고 진비의 군사를 빼앗아 조나라를 구한 것은, 조나라 처지에서는 공을 세운 것이 되겠지만 위나라의 처지에서는 충신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함에도 공자께서는 스스로 교만해져서 공을 자랑하려고 하시니 이는 공자께서 취할 태도가 아닙니다.”
공자는 자신의 잘못을 자책하며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조나라 왕은 궁을 청소하고 몸소 마중을 나가 주인으로서의 예를 갖추고 귀빈을 모시는 서쪽 계단으로 공자를 안내했다. 그러나 공자는 옆으로 비켜 걸으며 사양하고는 동쪽 계단을 통해 당상에 올랐다. 그리고는 자신은 위나라를 져버렸으며 조나라를 위해서도 공을 세운 것이 없다고 했다.
조나라 왕은 어둑해질 때까지 공자와 함께 술을 마셨지만 공자가 너무 겸손해하는 까닭에 다섯 성을 주겠다는 말은 꺼내지도 못했다. 그러나 공자가 마침내 조나라에 머무르기로 하자 왕은 호 땅을 공자의 탕목읍으로 내려 주었다. 위나라 또한 신릉 땅을 공자의 봉읍으로 주었다.
노름꾼과 술파는 자라도 어질면 찾아가라
공자는 조나라에 두 명의 처사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한 명은 노름꾼들 사이에 숨어 사는 모공이란 자이고, 다른 한 명은 술을 파는 사람의 집에 숨어 사는 설공이란 자였다. 공자는 그 두 사람을 만나고 싶어 했으나 그들은 숨어 있으면서 공자를 만나려 하지 않았다. 공자는 그들의 거처를 수소문한 뒤 은밀히 찾아가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는 서로 뜻이 맞음을 확인하고 기뻐했다. 평원군이 이 일을 부인에게 말했다.
“처음에 나는 부인의 아우인 공자가 천하에 둘도 없는 인물인 줄 알았소. 그런데 이제 듣고 보니 공자는 노름꾼과 술장수 따위를 상대하는 망령된 자가 아니오?”
부인이 공자에게 이 말을 하자 공자는 이렇게 말하며 하직 인사를 했다.
“이전에 저는 평원군이 현명한 분이라 들었습니다. 그래서 위나라 왕을 저버리면서까지 조나라를 구하려는 평원군의 뜻을 따랐던 것입니다. 그러나 평원군이 사람 사귀는 것을 보면 단지 겉모양만 볼 뿐 유능한 선비를 찾지 않습니다. 저는 이전에 대량에 있을 때부터 모공과 설공이 현명하다는 말을 늘 들었습니다. 그래서 조나라에 온 뒤로 혹 그들을 만나지 못할까 염려했습니다. 저는 그 두 사람과 사귀면서도 혹시 그들이 저를 싫어하지는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지금 평원군이 이러한 사귐을 수치로 여긴다면 평원군이야말로 함께 사귀기에는 부족한 인물입니다.”
공자는 행장을 갖추어 떠나려 했다. 부인이 이 말을 평원군에게 자세히 전하자 평원군은 관을 벗고 사과하면서 극구 만류했다. 평원군 문하의 빈객들도 이 말을 듣고 반이나 평원군을 떠나 공자에게 갔으며 천하의 선비들도 공자에게 모여들었다. 평원군의 빈객들은 공자에게로 마음이 기울였다.
신릉군은 조나라에 10년 간 머물며 위나라로 돌아가지 않았다. 진나라는 신릉군이 조나라에 있다는 말을 듣고 밤낮으로 출병하여 동쪽의 위나라를 쳤다. 위나라 왕은 이것을 걱정하여 사자를 보내 공자를 불러오게 했다. 공자는 위나라 왕이 지난 일로 노여워할 것이라 생각하고 주위에 이렇게 말했다.
“위나라 왕의 사자와 내통하는 자는 살려주지 않겠다.”
공자의 빈객들은 모두 위나라를 저버리고 조나라에 와서 공자에게 몸을 의지하고 있는 터라 누구 하나 감히 공자에게 돌아갈 것을 권하는 자가 없었다. 그때 모공과 설공 두 사람이 공자를 찾아와 말했다.
“공자께서 조나라에서 존대를 받고 제후들 사이에서 명성이 높은 것은 위나라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위나라는 진나라의 공격으로 위급한 지경에 처했는데도 공자께서는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습니다. 만약 진나라가 위나라의 도읍인 대량을 공략하고 선왕의 종묘를 허문다면 공자께서는 무슨 명목으로 세상에 발을 붙이겠습니까?”
두 사람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공자는 낯빛이 변하더니 수레를 준비시키고는 말을 달려 위나라로 갔다. 위나라 왕은 공자를 만나자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는 공자에게 상장군의 인을 내려 그를 장군으로 삼았다. 위나라 안희왕 30년, 공자는 사자를 보내 자신이 위나라의 장군이 되었음을 제후들에게 알렸다. 이에 제후들은 저마다 장군을 보내 위나라 구원에 나섰다. 공자는 다섯 나라의 군사를 지휘하여 진나라 군사를 하의에서 격파했으며, 진나라 장수 몽오를 달아나게 했다. 이어 여세를 몰아 진나라 군대를 추격하여 함곡관에 이르자 진나라 군사들은 감히 나오지 못했다.
그 무렵 공자는 천하에 위세를 떨쳤고 제후들의 빈객들은 저마다 펴낸 병법서를 공자에게 바쳤다. 공자는 이것을 모두 이름을 붙였는데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위공자병법>이라 불렀다. 진나라 왕은 이러한 상황을 부담스러워하여 금 1만 근을 내어 진비의 빈객들로 하여금 위나라 왕 앞에서 공자를 모함하게 했다.
“공자는 나라 밖으로 달아나 10년을 머물다가 지금은 위나라 장군이 되어 제후들의 장군들까지 지휘하고 있습니다. 제후들은 위나라에 공자가 있는 것만 알 뿐 대왕이 있는 곳을 모를 지경입니다. 공자 역시 이 기회를 이용하여 왕이 되려고 합니다. 제후들도 공자의 위세에 눌려 바야흐로 연합하여 공자를 왕위에 앉히려고 합니다.”
진나라는 또 여러 차례 첩자를 보내 이렇게 축하하도록 했다.
“공자께서는 이미 즉위를 했습니까? 아니면 그대로 계십니까?”
날마다 이런 말을 듣게 되자 위나라 왕도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공자 대신 다른 사람을 장군으로 임명했다. 공자는 자신이 참언 때문에 물러났음을 알고 병을 핑계로 조회에 나가지 않았다. 그리고는 빈객들과 밤낮으로 술을 마시고 여자를 가까이 했다. 그렇게 4년을 보내자 결국 공자는 술로 인해 병들어 죽고 말았다. 그해에 위나라 안희왕도 죽었다.
진나라는 공자가 죽었다는 소문을 듣고 몽오를 시켜 위나라를 치게 했다. 몽오는 위나라의 스무 개 성을 함락하고 처음으로 동군을 두었다. 그후 진나라는 점점 위나라를 잠식하여 18년 후에는 위나라 왕을 사로잡고 도읍인 대량을 함락했다.
한나라 고조 유방은 미천한 신분이었을 때 공자의 현명함을 자주 들었다. 그는 천자의 자리에 오른 뒤에도 대량을 지날 때면 공자에게 제사를 지냈다. 고조 12년, 경포를 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공자를 위해 묘지기를 다섯 질 두었고 해마다 사계절에 공자에게 제사를 q지내도록 했다.
태사공은 말한다.
나는 대량의 옛터를 지날 때 동문에도 가보았다. 천하의 여러 공자들 역시 선비를 좋아했다. 그러나 신릉군은 산속 깊숙이 숨어 사는 현자들을 만났고, 미천한 사람과 사귀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았다. 당시 신릉군의 명성이 제후들 사이에서 으뜸이었다는 것은 거짓이 아니다. 한나라 고조도 대량을 지날 때면 백성들을 시켜 신릉군을 제사 지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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