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수·채택열전(3)
채택(蔡澤)은 연나라 사람이다. 그는 일찍이 여러 제후들을 찾아다니며 벼슬자리를 얻으려 했으니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해 당거라는 자에게 관상을 보러 갔다
“소문에 의하면 선생께서는 이태의 관상을 보고 ‘백 일 안으로 정권을 잡을 것이다 하셨다는데 사실입니까?”
당거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그럼 나 같은 사람은 어떻겠습니까?”
당거는 채택을 자세히 보고나서 웃으며 말했다.
“선생은 들창코에 어깨는 목보다 높고, 이마는 튀어나왔으며 얼굴은 상투처럼 생겼고, 콧대는 주저앉았으며, 다리는 휘었습니다. ‘성인은 관상을 논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아마 선생 같은 사람을 두고 이르는 말일 것입니다.”
채택은 당거가 비웃는다고 생각하고 이렇게 말했다.
“부귀는 내가 본디부터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네가 궁금하게 생각하는 것은 수명이므로 그거나 봐주시구려.”
당저가 말했다.
“선생은 앞으로 43년을 더 살 것입니다.”
채택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하고 자리를 뜬 후 마부에게 말했다.
“좋은 밥에 고기를 먹고 말을 타고 다니며 황금 인을 가슴에 품고 자줏빛 인수를 허리에 차고 군왕에게 계책을 여쭙는 그런 부귀한 생활을 누릴 수 있다면, 43년이면 족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채택은 조나라로 갔으나 바로 쫓겨났고 한나라와 위나라로 가는 도중에는 지니고 다니던 솥과 냄비를 도적에게 빼앗겼다. 그 무렵 범수가 추천했던 정안평과 왕계 두 사람이 모두 진나라에서 중죄를 범하여 법수를 몹시 괴롭힌다는 말을 듣고 채택은 진나라로 갔다. 채택은 소왕을 알현하면서 먼저 범수를 자극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사람을 보내 이렇게 말하게 했다.
“연나라 사람인 채택은 천하에 뛰어나고 웅변에 능한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가 진나라 왕을 알현하면 왕은 공을 궁지로 몰아 승상의 자리를 빼앗을 것입니다.”
범수가 이 말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
“오제와 하나라·상나라·주나라 상대의 사적과 제자배가의 학설은 나도 이미 알고 있다. 게다가 변설도 남만 못지 않는데 어떻게 나의 지위를 빼앗는단 말이냐?”
그는 즉시 사자를 보내 채택을 불러들였다. 채택은 들어와 범수에게 인사를 했다. 처음부터 채택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던 범수는 그이 거만한 태도를 보고 이렇게 꾸짖었다.
“그대는 나를 대신해 진나라의 승상이 되겠다고 했다는데 사실이오?”
채택이 말했다.
“사실입니다.”
“어떻게 그런 말을 했는지 한번 들어봅시다.”
채택이 말했다.
“공은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른단 말입니까? 대저 봄·여름·가을·겨울은 자신이 할 일을 마치면 차례로 물러나 다음 계절과 교대합니다. 사람이 태어난 이상 오체가 건강하고 소족이 성하며 눈과 귀가 밝고 마음이 성스럽고 지혜로운 것은 선비 된 자의 소원 아니겠습니까?”
범수가 말했다.
“그렇소.”
“인을 바탕으로 정의를 지키고 도를 행하며 덕을 베풀고 천하에서 뜻을 이룬다면 천하는 그를 기쁘게 공경하고 사랑하며 존중하고 흠모할 것이고 군왕으로 받들기를 원할 것입니다. 이는 지혜가 뛰어난 선비로서 원하는 바가 아니겠습니까?”
범수가 말했다.
“그렇소.”
채택이 다시 말했다.
“진나라의 상앙이나 초나라의 오기, 월나라의 대부인 종(種)과 같은 사람은 선비들이 바라는 인물이겠습니까?”
범수는 채택이 자신을 점점 궁지에 몰아넣어 설득하려는 것임을 알고 일부러 이렇게 말했다.
“왜 바라지 않겠소. 상앙은 효공을 섬기면서 그 자신을 돌보지 않고 온 힘을 다해 나라 일에 충성을 다했소, 법령을 만들어 간사한 행위를 금했고, 상벌을 분명히 하여 나라의 안정을 도모했소. 또한 친구를 속이면서까지 위나라 공자 앙을 잡아 진나라를 안정시켰고 백성들을 이롭게 했소. 마침내는 진나라를 위해 적을 격파하여 천 리나 되는 땅을 빼앗았소.
오기가 도왕을 섬길 때는 사심을 가진 자가 공익을 해치지 못하게 했고, 헐뜯는 말이 충성스런 신하를 가로막지 못하게 했으며, 꾸며 대는 말을 듣지 않았고, 경거망동하지 않았으며, 정의를 실현하면서도 사람들의 비난을 겁내지 않았소. 그는 군왕을 패자로 만들고 나라를 부강하게 하기 위해 어떤 어려움도 마다하지 않았소.
대부 종이 월나라 왕을 섬길 때는 군왕이 곤욕을 당하고 있음에도 충성을 다하는 데 게으르지 않았고, 군왕이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을 때도 힘껏 도우며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으며, 공을 세우고도 자랑하지 않았고, 부귀해진 다음에도 교만하지 않았소.
이 세 사람의 행실은 그야말로 의로움의 표본이요, 충의 극치라고 할 만하오. 군자는 의를 위해서는 어려운 일도 피하지 않고 죽음을 초개같이 여기며 살아서 욕을 당하느니 죽어서 이름을 남기는 것을 중히 여기오. 선비란 원래 자신의 몸을 바쳐 이름을 남기고, 정의를 위해서라면 죽음을 마다하지 않소. 어찌 이들이 선비가 바라는 인물이 아니란 말이오?“
채택이 말했다.
“군왕이 성스럽고 신하가 현명한 것은 천하의 복이요, 군왕이 지혜롭고 신하가 정직한 것은 나라의 복이요, 아버지가 인자하고 아들이 효도하며 남편이 믿음직하고 아내가 현숙한 것은 집안의 복입니다. 그러나 비간은 충성했으나 상나라를 지켜내지 못했고, 오자서는 지혜로웠으나 오나라를 보전하지 못했으며, 신생은 효성스러웠지만 진나라는 어지러웠습니다. 이와 같이 충신과 효자가 다 있는데도 나라와 집안이 망하거나 어지러워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그것은 충신과 효자의 권고를 받아들이는 밝은 군주와 어진 아버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천하의 사람들은 그 군주와 아버지를 수치로 여겨 욕하고, 그 신하와 이름을 불쌍히 여기는 것입니다.
상앙이나 오기, 대부 종과 같은 사람들은 신하로서는 훌륭했으나 그들의 군왕은 비난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이 세 사람을 공을 세우기는 했으나 은덕을 남기지 못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찌 현명한 군주를 만나지 못하고 죽을 것을 부러워하겠습니까?
만약 죽은 다름이라야 충성을 다했다는 이름을 얻는다면 죽지 않았던 상나라의 미자는 어진 이라 할 수 없고, 공자는 성인이라 할 수 없으며, 관중도 대인이라 할 수 없습니다. 대저 사람이 공을 세우려고 하면 몸도 이름도 완전하기를 바랍니다. 몸과 이름이 모두 완전한 것이 가장 훌륭하고, 이름은 남겼지만 몸을 보존하지 못한 것은 그 다음이며, 몸은 보존했지만 이름이 욕먹는 것은 가장 말단입니다.“
범수도 그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잠시 후 채택은 계속 말을 이었다.
“지금 공의 주상은 충신을 아끼는 면에서는 진나라 효공과 초나라 도왕, 월나라 구천만 못합니다. 그럼에도 공께서는 지혜와 능력을 다해 주상을 위해 위태로운 것을 구하고 어지러운 것을 다스리며, 군사를 강하게 하여 땅을 넓히는가 하면, 곡식을 증산하여 나라를 부유하게 하고 백성들의 살림을 풍족하게 만들고, 주상의 세력을 강화하여 사직과 종묘를 빛냄으로써 천하에 주상을 건드릴 자가 없게 했습니다. 이에 주상의 권위는 천하에 높아졌으며, 공적은 만 리 밖에까지 전해지고 명성은 천세에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공은 상앙과 오기와 대부 종보다 어떠합니까?”
범수가 말했다.
“내가 그들만 못하오.”
채택이 말했다.
“지금 공의 주상이 충신을 사랑하고 옛 신하를 잊지 않는 점에서는 효공, 도왕, 구천에 미치지 못합니다. 또한 공의 공적이나 공에 대한 주상의 신뢰와 총애도 상앙, 오기, 대부 종에 비기지 못합니다. 하지만 공의 복록과 작위와 재산은 그 세 사람을 능가합니다. 그런데도 공께서 아직 물러나지 않는다면 공이 받는 화는 이 세 사람보다 더 클 것입니다. 저는 이 점이 걱정됩니다. 속담에 ‘해가 중천에 오르면 서쪽으로 기울고, 달도 차면 이지러진다’고 했습니다. 사물이 극에 달하면 점차 쇠퇴해지는 것은 천지간의 이치입니다.
상앙은 진나라 효공을 위해 법령을 제정하여 악한 자를 누르고, 공이 있는 자에게는 작위를 주고 죄 있는 자에게는 형벌을 가했으며, 저울을 통일하고 길이와 부피 재는 것을 바로 하고, 논밭 사이의 길을 뚫고 농토를 재분배함으로써 백성들의 생업을 안정시키고 풍속을 통일했습니다. 그리하여 군사를 일으킬 때마다 땅이 넓어졌으며, 휴전을 할 때마다 나라가 부유해졌습니다. 진나라는 천하무적의 나라가 되어 제후들 사이에 권위를 드러내고 패업을 성취했습니다. 그러나 대업을 성취한 뒤 상앙은 거혈형에 처해졌습니다.
초나라는 땅이 사방 수 천리나 되어 군사들이 백만이었습니다. 백기는 불과 몇 만 밖에 되지 않은 군사를 이끌고 초나라와 싸웠습니다. 첫싸움에서 그는 인과 영 땅을 함락하고 이릉을 불태웠으며, 두 번째 싸움에서는 남쪽의 촉과 한 땅을 병합했습니다. 또한 한나라와 위나라를 넘어 강한 초나라를 쳐서 북쪽으로 조괄 장군을 구덩이에 묻고 40여만 대군을 장평에서 주살했습니다. 이때 피가 강을 이루었고, 외침 소리는 우레와 같았습니다. 드디어 백기는 한단을 포위함으로써 진나라의 제업의 토대를 닦았습니다.
초나라와 조나라는 일찍부터 진나라를 원수로 여겼으나 그후 모두 두려워하여 굴복했습니다. 그들이 감히 진나라를 치지 못한 것은 백기의 위세에 눌렸기 때문입니다. 백기가 혼자서 정복한 성만 해도 무려 70개에 달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큰 공을 세우고도 그는 검을 하사 받고 두우에서 자결했습니다.
오기는 초나라 도왕을 도와 법령을 제정하고 대신들의 권세를 낮추었으며, 무능한 자를 파면하고 필요 없는 직급을 없앴으며, 사사로운 청탁을 막았습니다. 또한 초나라 풍속을 통일하고 백성들이 유랑하는 것을 금했으며, 농부와 뱡사들을 철저히 훈련시켜 남쪽으로는 양주의 월나라를 정복하고 북쪽으로는 진나라와 제나라를 병합했으며, 연횡책과 합종책을 써서 유세객들의 입을 다물게 했습니다. 붕당을 금하고, 백성들을 격려했으며, 초나라의 정사를 안정시킨 뒤 천하에 힘을 과시하여 제후들을 굴복시켰습니다. 그러나 대업을 이루자 그는 찢겨 죽고 말았습니다.
대부 종은 월나라 왕을 위해 심오한 계책을 내어 회계산에서의 위기를 막고 망해 가는 나라를 보존했으며, 치욕을 영광으로 바꾸었습니다. 또한 황무지를 개간하여 좋은 밭으로 만들고 땅을 일구어 곡물을 심었으며, 각지의 선비와 병사들을 규합하여 현명한 구천을 도왔으며, 부자에게 복수하고 강적인 오나라 왕을 사로잡아 월나라가 패업을 이루도록 했습니다. 그 공은 뚜렷하여 의심할 바가 아니었지만 결국 그는 구천에게 배신당하여 죽고 말았습니다.
이 네 사람은 대업을 성취한 뒤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화를 입은 것입니다. 이것은 이른바 ‘펼 줄만 알고 굽힐 줄은 모르며, 앞으로 갈 줄만 알지 되돌아올 줄은 모른다’는 것입니다. 범려는 이 도리를 깨달아 초연히 세상을 피했기에 도주공이 되었습니다.
자금 진나라는 공을 나눌 때라고 봅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는다면 공은 상앙, 백기, 오기, 대부 종과 같은 사람이 됩니다. 저는 ‘물을 거울로 삼으면 자신의 얼굴을 보고, 남을 거울로 삼으면 길흉을 안다’고 들었습니다. 또한 <서경>에는 ‘성공한 뒤에는 오래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 네 사람과 같은 화가 닥쳐온다면 공께서는 어떻게 대처하시겠습니까?
공은 어찌하여 이 기회에 승상의 인감을 어진 사람에게 물려준 뒤 바위굴에 살면서 강가의 경치를 구경하며 살려고 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하시면 분명 백이와 같이 청렴하다는 칭송을 받으실 것이고, 대대로 응후라 불리며 제후의 지위를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허유나 계찰과 같이 겸양하다며 칭송받을 것이고, 왕자교와 적송자와 같이 장수하리니, 화를 당하여 끝장을 보는 것과 어찌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공은 어디에 머물겠습니까? 차마 스스로 떠나지 못하고 우유부단하신다면 필시 네 사람의 화를 입게 될 것입니다. <역경>에 ‘꼭대기까지 올라간 용은 후회할 때가 있다’고 했습니다. 이는 올라갈 줄만 알고 내려올 줄은 모르고, 펼 줄만 알고 굽힐 줄은 모르며, 아픙로 나아갈 줄만 알고 되돌아올 줄은 모르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공께서는 숙고하시기 바랍니다.“
범수가 말했다.
“옳은 말이오. 나도 ‘하고자 함이 만족을 모르면 하고자 한 것을 잃게 되고, 가지고도 만족을 모르면 이미 가진 것조차 잃는다’란 말을 들었소. 다행히 선생의 가르침을 받았으니 내 그 말씀에 따르겠소.”
그리고는 채택을 안으로 맞아들여 상객으로 모셨다. 얼마 후 범수는 조정으로 나가 소왕에게 말했다.
“신의 빈객 중에 산동에서 온 채택이란 자가 있습니다. 그는 변설에 뛰어나고 삼왕의 사적에서부터 오패의 공적과 세속의 변화에 밝습니다. 그에게 진나라 정치를 맡겨도 충분히 해낼 자입니다. 신은 지금까지 만난 사람은 많지만 그와 비길 만한 자는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신 같은 사람은 따를 수 없습니다. 이에 감히 여쭙는 바입니다.”
소왕은 채택을 불러 이야기를 나눈 후 흡족해 하며 그에게 객경을 제수했다. 이를 계기로 범수는 병을 핑계로 재상의 인수를 돌려주려 했으나 소왕이 극구 만류했다. 이에 범수는 병이 위중하다고 하면서 기어이 승상의 자리에서 물러났다. 소왕은 채택의 새로운 계책을 듣고는 기뻐하여 그를 진나라 승상으로 삼고, 동쪽으로 주나라 왕실을 손에 넣었다.
채택이 승상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를 참소하는 자가 있었다. 이에 채택은 화를 당할 것을 우려해 병을 핑계로 승상의 인수를 돌려주었다. 그후 채택은 강성군에 봉해졌다. 채택은 진나라에서 10년간 살면서 소왕 · 효문왕 · 장양왕을 섬겼고, 마지막에는 시황제를 섬기면서 연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다.
태사공은 말한다.
한비자는 “소매가 길어야 춤을 잘 출 수 있고, 돈이 많아야 장사를 잘할 수 있다‘고 했는데, 이는 옳은 말이다. 범수와 채택은 세상에서 말하는 변사들이다. 그러나 어떤 변사는 백발이 성성할 때까지 제후들에게 유세했으나 때를 만나지 못했는데, 이는 그들의 계책이 서툴러서가 아니라 그 나라가 약했기 때문이다. 범수와 채택을 놓고 말하면 나그네의 몸으로 진나라에 가서 연이어 경상의 자리를 차지하고 공적을 이룬 것은 실로 국력과 관계있는 것이다. 세상에는 범수와 채택에 못지않은 현인들이 많지만 다 뜻을 얻은 것이 아닌즉, 어찌 이루 다 말 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두 사람도 어려움을 당하지 않았던들 그렇게 분발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하고자 함이 만족을 모르면 하고자 한 것을 잃게 되고, 가지고도 만족을 모르면 이미 가진 것조차 잃는다’
물을 거울로 삼으면 자신의 얼굴을 보고, 남을 거울로 삼으면 길흉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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