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파 · 인상여 열전(1)
염파(廉頗)는 조나라의 걸출한 장군이다. 조나라 혜문왕 16년. 염파는 제나라를 쳐서 크게 물리치고 양진을 탈취했다. 이 공으로 그는 상경이 되었는데 그의 용맹함은 제후들 사이에 널리 알려졌다. 인상어(藺相如) 또한 조나라 사람으로 환관의 우두머리인 무현의 문하에서 가신으로 있었다.
조나라는 혜문왕 때 조나라의 화씨벽(초나라의 화씨라는 자가 발견한 옥석이다. 그는 이 옥석을 초나라 여왕에게 받쳤는데 왕이 장인에게 감정을 명하자 한갓 돌이라고 판정했다. 왕은 자신을 능멸한 죄로 화씨의 왼쪽 다리를 잘랐다. 여왕이 죽고 무왕이 즉위하자 화씨는 이번에도 옥석을 받쳤으니 돌이라 판정받고는 오른쪽 다리가 잘렸다. 무왕이 죽고 문왕이 즉위했다. 화씨는 초산 아래서 사흘 밤낮을 통곡했다. 문왕이 그 연유를 묻자 하씨가 자초지종을 이뢰었다. 이로써 천하의 귀하고 훌륭한 옥을 일러 ‘화씨벽’이라 일컬었다)을 얻게 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진나라 소왕은 조나라에 사신을 보내 열다섯 개의 성과 화씨벽을 바꾸자고 제안했다. 조나라 왕은 화씨벽을 진나라에 주자니 성은 받지 못하고 보물만 빼앗길 것 같고, 주지 않자니 진나라가 공격해 올 것이 두려웠다. 조장에서는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못하고, 진나라에 보낼 사신도 구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자 환관의 우두머리인 무현이 말했다.
“저의 집에 인상여라는 빈객이 있는데 사신으로 보낼 만 합니다.”
왕이 물었다.
“그것을 어찌 알 수 있는가?”
무현이 대답했다.
“일찍이 저는 죄를 짓고 몰래 연나라로 달아나려고 했습니다. 그때 인상여가 저를 말리면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대감께서는 어떻게 연나라 왕을 알게 되었습니까?’ 저는 ‘일찍이 대왕을 모시고 연나라 왕을 만났는데 그때 연나라 왕이 슬그머니 나의 손을 잡고 사귀고 싶다고 했소’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인상여가 ‘연나라 왕이 대감과 사귀고자 한 것은, 조나라는 강하고 연나라는 약한데다가 대감께서 대왕의 총애를 박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대감께서 연나라로 달아난다면 연나라는 조나라가 무서워 분명 대감을 받아들이지 않을 뿐 아니라 대감을 묶어서 조나라로 돌려보낼 것입니다. 차라리 대왕께 사죄하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의 권고에 따라 사죄했고 과연 대왕께서는 저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는 용기와 지모를 갖춘 자이니 사자로 적격하다고 생각합니다.”
왕이 인상여를 불렀다.
“진나라 왕이 성 열다섯 개와 과인의 화씨벽을 바꾸자고 하는데 화씨벽을 주어야 하는가? 주지 말아야 하는가?”
인상여가 대답했다.
“진나라는 강하고 조나라는 약하니 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왕이 근심 어린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그들은 화씨벽을 받고 난 뒤에 성을 주지 않으면 어찌할 것인가?”
인상여가 대답했다.
“진나라가 성을 주겠다는 조건으로 화씨벽을 달라는데 조나라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 잘못은 조나라에 있습니다. 그러나 조나라가 화씨벽을 주었는데도 진나라가 성을 주지 않는다면 그 잘못은 진나라에 있습니다. 이 두 경우를 살펴보건대 그들의 요구에 응함으로써 잘못을 진나라로 돌리는 것이 더 낫습니다.”
“그러면 누구를 사신으로 보내면 좋겠소?”
“대왕께서 적임자를 고르지 못하셨다면 제가 가겠습니다. 성을 받게 되면 화씨벽을 진나라에 주고 올 것이고, 받지 못한다면 가져간 화씨벽을 그대로 들고 오겠습니다.”
이에 조나라 왕은 인상여를 사자로 삼고 화씨벽을 들고 진나라로 가게 했다.
인상여가 진나라에 이르자 진나라 왕은 장대궁에게 그를 접견토록 했다. 인상여가 화씨벽을 두 손으로 받들어 진나라 왕에게 바치자 왕은 대단히 기뻐하며 좌우 비빈과 신하들에게 돌아가며 보여 주었다. 그러자 모두 이구동성으로 만세를 불렀다. 인상여는 왕이 조나라에게 성을 줄 생각이 없음을 눈치 채고 앞으로 나아가 말했다.
“그 화씨벽에는 흠집이 한 군데 있습니다. 대왕께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왕이 화씨벽을 다시 건네주자 인상여는 화씨벽을 손에 쥐고 뒤로 물러섰다. 그러고는 기둥에 기대서서 머리카락이 관을 밀어 올릴 정도로 노기충천한 표정을 띠고 진나라 왕에게 소리쳤다.
“대왕께서 화씨벽을 손에 넣으시려고 사자를 통해 서한을 보냈을 때, 조나라 왕은 모든 대신들을 불러 의논했습니다. 모두 ‘진나라 왕은 욕심이 많은데다가 막강한 권세를 부리니 거짓 약속으로 화씨벽을 빼앗은 후 성을 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라고 하면서 화씨벽을 보내지 말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백성들끼리 거래하면서도 서로 속이지 않는데, 하물며 큰 나라 사이에 어찌 그러겠습니까? 하며 화씨벽 하나 때문에 강대한 진나라의 비위를 거슬러서는 인 된다고 여겼습니다. 이에 조나라 왕은 닷새 동안 재계하고 제게 화씨벽을 받들게 하고는 대전에서 정중히 국서를 주시며 갖다 드리라고 했습니다. 이는 대국의 권위와 덕망을 존중하여 공경을 표한 것입니다.
그런데 와서 보니 대왕께서는 편전에서 저를 접견하시고 심히 오만한 태도를 보이면서 화씨벽을 받고는 그것을 여인들에게 돌려가며 보이시니 이는 저를 희롱하는 것입니다. 제가 보건대 대왕께서는 조나라에 성을 줄 의향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에 화씨벽을 도로 찾은 것입니다. 대왕께서 저를 협박하시면 이 화씨벽을 제 머리와 함께 기둥에 부딪쳐 박살내고 말 것입니다.“
말을 마친 인상여는 화씨벽을 들고 기둥을 노려보며 그것을 곧 기둥에 들이박으려 했다. 진나라 왕은 화씨벽이 깨질까 봐 걱정하여 자신의 무례를 사과했다. 그러고는 관리를 불러 지도를 펼치게 한 후 열다섯 개 성을 짚어 가며 조나라에게 주겠다고 했다. 인상여는 진나라 왕이 단지 성을 내주는 척만 할 뿐 사실은 주지 않을 것이라 여기고 이렇게 말했다.
“화씨벽은 세상 사람들이 다 귀히 여기는 보물입니다. 조나라 왕께서는 대왕이 두려워 화씨벽을 바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조나라 왕께서는 화씨벽을 보낼 때 닷새 동안 재계했습니다. 그러니 대왕께서도 닷새 동안 잭O하시고 대전에서 구빈(군왕이 우대하는 아홉의 손님)의 예를 갖추셔야 화씨벽을 드릴 수 있습니다.”
진나라 왕은 아무래도 억지로 빼앗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닷새 동안 재계하기로 했다. 왕은 인상여를 영빈관에 머물도록 했다. 인상여는 진나라 왕이 재계를 하더라도 약속을 어기고 성을 주지 않을 수 있다고 여겨 수행인에게 허름한 옷을 입힌 후 화씨벽을 숨기고 지름길을 통해 조나라로 들어가게 했다.
진나라 왕은 닷새 동안 재계한 후 대전에서 구빈의 예를 갖추고 인상여를 접견했다. 인상여는 대전에 들어 진나라 왕에게 말했다.
“진나라는 목공 이래로 20여 명의 군왕이 재위하셨지만 약속을 굳게 지킨 분은 없습니다.저는 대왕께 속아 조나라 왕의 기대를 저버리게 될까 봐 사람을 시켜 화씨벽을 갖고 조나라로 돌아가게 했습니다. 그러나 진나라는 강하고 조나라는 약하니 대왕께서 사신 한 명만 조나라에 보내셔도 조나라는 즉시 화씨벽을 바칠 것입니다. 강국인 진나라가 먼저 열다섯 개의 성을 조나라에게 준다면 조나라가 어찌 감히 화씨벽을 바치지 않겠습니까? 제가 대왕을 속인 죄는 죽어 마땅하오니 끓는 솥에 넣어 삶아 죽인다 해도 달게 받겠습니다. 대왕께서는 이러한 중대사를 신하들과 잘 의논해 보시길 바랍니다.”
진나라 왕과 여러 신하들은 서로 마주보며 놀라워했다. 좌우의 신하들이 인상여를 끌어 내가려 하자 진나라 왕이 말했다.
“지금 인상여를 죽인다면 결국 화씨벽을 얻지 못하게 될 것이고, 진나라와 조나라의 친선 관계 또한 끊어질 것이다. 오히려 잘 대접하여 돌려보내도록 하라. 조나라 왕이 어찌 화씨벽 하나 때문에 진나라를 속이겠는가?”
그리하여 대전에서 인상여를 대접하고는 조나라로 돌려보냈다. 인상여가 돌아오자 조나라 왕은 그가 현명한 방법으로 조나라를 욕보이게 하지 않았다며 상대부로 임명했다. 결국 진나라는 조나라에게 성을 넘겨주지 않았고 조나라 또한 진나라에게 화씨벽을 바치지 않았다.
피를 뿌려서라도 군주의 위엄을 지킨다
그후 진나라는 조나라를 공격하여 석성을 빼앗고 그 이듬해에는 조나라 군사 2만 명을 죽였다. 진나라 왕은 조나라에 사자를 보내 화친을 도모하고자 서하 남쪽에 있는 면지에서 만나자고 했으나 조나라 왕은 두려워하여 가지 않으려 했다. 이에 염파와 인상여가 의논한 후 이렇게 아뢰었다.
“대왕께서 가시지 않으면 조나라는 나약하고 비겁하다는 소리를 듣게 될 것입니다.”
결국 조나라 왕은 인상여와 함께 가기로 했다. 염파는 국경까지 나와 배웅하고 헤어지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번에 대왕께서 가시면 회담을 마치고 돌아오시기까지 30일이 안 걸릴 것입니다. 30일이 넘어도 돌아오시지 않는다면 태자를 옹립한 후 진나라의 야욕을 끊어 버릴까 합니다.”
왕은 이를 허락하고 마침내 면지에서 진나라 왕을 만났다. 술자리가 무르익자 진나라 왕이 말했다.
“과인은 조나라 왕께서 음악을 즐긴다고 들었소. 비파 연주를 들을 수 있겠소?”
조나라 왕이 비파를 타자 진나라 사관이 나와 이렇게 적었다.
“모년 모월 모일 진나라 왕이 조나라 왕과 만나 술을 마시고 조나라 왕에게 비파를 타게 했다.”
그러자 인상여가 앞으로 나와 말했다.
“조나라 왕께서는 진나라 왕께서 지나라 음악에 능하다고 들었습니다. 질장구를 드릴 터이니 진나라 왕께서 장단을 쳐 서로 즐길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진나라 왕은 불쾌하게 생각해 응하지 않았다. 인상여가 질장구를 들고 나아가 무릎을 꿇고 진나라 왕에게 청했다. 그러나 그것을 치려고 하지 않자 인상여가 말했다.
“왕과 저 사이의 거리는 다섯 걸음도 안 됩니다. 저의 목의 피로 왕을 적셔서라도 질장구를 치게 할 것입니다.”
이에 좌우에 있던 신하들이 인상여를 칼로 찌르려 했으나 인상여가 눈을 부릅뜨고 호통을 치자 모두 놀라 물러섰다. 진나라 왕은 마지못해 질장구를 한 번 쳤다. 인상여는 즉시 조나라 사관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
“모년 모월 모일 진나라 와이 조나라 왕을 위해 질장구를 쳤다.”
그러자 진나라의 여러 신하들이 말했다.
“조나라 열다섯 개의 성을 바쳐 진나라 왕의 만수무강을 축원해 주십시오.”
인상여가 말했다.
“진나라 도읍 함양을 바쳐 조나라 왕의 만수무강을 축원해 주십시오.”
결국 진나라 왕은 주연이 끝날 때까지 조나라 왕을 제압하지 못했다. 조나라 또한 군사를 배치시켜 진나라를 방어하고 있었기 때문에 진나라는 감히 손을 쓸 수 없었다. 회담을 마치고 돌아온 조나라 왕은 인상여의 공을 높이 평가하여 그를 상경에 제수했다.
인상여의 지위는 염파보다 높아졌다. 염파가 말했다.
“나는 조나라 장수로서 여러 성을 공략하고 산과 들에서 바람을 맞아가며 싸워 공을 세웠는데도 인상여는 혀를 놀렸을 뿐인데 나보다 더 높은 자리에 앉았다. 게다가 그는 비천한 출신이 아닌가. 내 어찌 그 사람 밑에서 살 수 있단 말인가. 부끄러워 참을 수가 없다.”
그러고는 이렇게 다짐했다.
“인상여를 만나면 내 반드시 모욕을 주리라.”
인상여는 이 말을 듣고 염파를 피하며 다녔다. 조회가 열릴 때면 인상여는 염파와 자리다툼을 하는 것이 싫어서 병을 핑계로 나가지 않았다. 외출할 때도 멀리 염파가 보이면 수레를 돌려 피해 버렸다. 그러자 인상여의 빈객 중에서 하나가 불만스럽게 말했다.
“저희가 가족을 버리고 대감을 섬기는 것은 대감의 고상한 품성을 흠모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대감께서는 염파와 같은 반열에 있고 염파가 무례한 말을 퍼뜨리는데도 그를 두려워 한 나머지 피해 다니시니 너무 겁을 내는 게 아닙니까? 이는 보통 사람도 부끄러워하는 일인데 하물며 장상으로서 어찌 그럴 수가 있습니까? 못난 저희는 이만 물러갈까 합니다.”
그러자 인상여가 말했다.
“그대들이 보기에는 염 장군과 진나라 왕 중에 누가 더 센 것 같소?”
“염 장군이 못 당하겠지요.”
인상여가 말했다.
“그런 진나라 왕의 위세 앞에서도 나는 대전에서 그를 호되게 꾸짖었고 그의 신하들에게 모욕을 주었소. 이 인상여가 아무리 어리석기로 염 장군을 무서워 하겠소? 당치 않은 일이오. 내가 곰곰이 생각해 보건대 저 강한 진나라가 감히 조나라를 치지 못하는 것은 나와 염 장군이 있기 때문이오. 그런데 이 두 호랑이가 서로 싸운다면 둘 다 무사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조나라 또한 무사하기가 힘들 것이오. 내가 이렇게 처신하는 것은 나라를 먼저 생각하고 사사로운 원한은 뒤로 하기 때문이오.”
염파가 이 말을 전해 듣고 나서 윗도리를 벗고 회초리를 짊어지고는 빈객을 따라 인상여의 집 앞에 와 사죄했다.
“제가 미련하여 장군의 그 너그러운 마음을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둘은 화해하고 생사를 같이 하기로 약속했다. 그해 염파는 동쪽으로 제나라를 쳐 군 하나를 섬멸했고, 이태 뒤에는 다시 제나라의 기 땅을 함락했다. 또한 3년 후에는 위나라 방릉과 안양을 쳐 함락했다. 그로부터 4년 후에는 인상여가 군사를 거느리고 제나라를 쳤는데 평읍까지 함락하고서야 군사를 물렸다. 그 이듬해에는 장군 저사가 알여에서 진나라 군사를 크게 물리쳤다. <다음 호에 계속>
다음기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