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고을신문 : 시조시인 윤광제의 기록화(민화) 이야기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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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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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시인 윤광제의 기록화(민화) 이야기9
출기파적도(出奇破賊圖)

민화를 구분하는 방법은 민화의 용도와 기법, 재질, 주제 등에 의해 다양하게 나눌 수 있다. 이러한 민화의 구분은 연구하는 사람에 따라 각각 그 방법과 내용이 달라지는데 이는 민화를 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민화 연구가는 일본의 야나기 무네요시와 조자용씨를 들 수 있는데 야나기 무네요시는 민화를 문자민화, 길상과 연관된 민화, 전통적 화제의 민화, 정물민화, 도교에서 비롯된 민화 등 다섯 가지로 구분했다.

반면 조자용씨는 민화를 크게 한화(韓畵)라 하고 이를 순수회화와 실용회화로 구분하고 있다. 여기에 상징별로 구분하면 수(壽), 쌍희(囍), 자복(子福), 재복(財福), 영복(寧福), 녹복(祿福), 덕복(德福), 길상(吉祥),벽사, 민족(民族) 등 열가지로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를 다시 화제별로 나누어 산수화(山水畵), 수석도(壽石圖), 화훼도(花卉圖), 소과도(蔬果圖), 화조도(花鳥圖), 축수도(蓄獸圖), 영수화(靈獸畵), 어해도(魚蟹圖), 초충도(草蟲圖), 옥우화(屋宇畵), 기용화(器用畵), 인물화(人物畵), 풍속화(風俗畵), 도석화(道釋畵), 기록화(記錄畵), 설화화(說話畵), 도안화(圖案畵), 지도화(地圖畵), 혼성도(混成圖), 춘화도(春畵圖) 등 20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고을신문에서는 조자용씨의 구분법을 적용해 최근 설화화(說話畵)에 해당하는 ‘구운몽도’를 연재한 적이 있다. 이번에는 민화를 풀어주는 남자 ‘윤광제 시조시인’이 기록화를 통해 그림 속에 담겨있는 역사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한다. -편집자 주-

소제목 : 出奇破賊 출기파적 : 기묘한 공격으로 적을 깨뜨리다

출기파적도(出奇破賊圖)는 조선 초기 무신인 어유소 장군의 활약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유소 장군이 맹활약을 한 사건은 바로 이시애의 난으로 1467년(세조 13년) 5월부터 8월까지 함경도 길주의 호족 이시애 등이 세조의 집권 정책에 반대해 일으킨 반란이었다.

세조 13년(1467년) 길주 사람 이시애가 반란을 일으키자 조정에선 회령부사 어유소를 좌대장으로 삼아 토벌을 명했다. 출기파적도는 이시애의 난 중 7월 말에 벌어진 만령전투를 묘사했다.

어유소는 홍원(洪原), 북청(北靑), 만령(蔓嶺)에서 싸웠는데, 특히 만령의 적은 천혜의 요새에서 방어를 하니 아군은 감히 올라갈 수 없었다. 어유소는 정예군을 차출해 풀과 구분하지 못하도록 푸른 옷을 입히고 작은 배에 태워 절벽을 등반케 하여 적의 배후를 치게 했다. 절벽에 대해 방비가 소홀했던 반란군은 갑자기 나타난 특공대에 놀라 크게 당황하였고 어유소의 본진과 특공대의 협공으로 인해 대패를 하게 된다.

당시 이시애는 중봉을 거점으로 2천 명의 병력으로 3중 포열을 한 뒤 결사적으로 버텼다고 한다. 그날 유시(酉時: 오후 다섯 시부터 일곱 시까지)에 이뤄진 습격에 크게 당황하며 무너졌는데 이시애는 이 전투에서 죽지 않고 야음을 틈타 이성 쪽으로 탈출한다.

어유소 장군은 이때의 공으로 적개공신 1등이 되어 예성군에 봉해지고 공조판서에 특진된다.

 

소제목 : 이시애는 왜 난을 일으켰나

그런데 이시애는 왜 난을 일으켰을까? 사실 이시애의 난은 이징옥의 난부터 그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징옥(李澄玉)은 세종(世宗) 때에 6진의 개척에 큰 공을 세운 무장(武將)이다. 하지만 조선초 최고의 실권자 김종서(金宗瑞)와도 가까운 관계였던 이징옥은 왕위를 노리던 수양대군(首陽大君)일파의 주된 표적이 되고 말았다. 수양대군 일파는 1453년 음력 10월 10일 계유정난(癸酉靖難)을 일으켜 안평대군과 김종서, 황보인(皇甫仁) 등을 죽인 뒤에는 곧바로 함길도에 주둔하던 이징옥을 불러들여 그를 제거하려고 했다.

얼마 후 계유정난이 발생해 김종서 등이 죽고 조정에서 자신을 제거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길주로 돌아간 그는 각지에 군사를 일으키라는 통문을 보내는 한편 여진의 여러 부족에도 군사 지원을 요청했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중 ‘단종실록(端宗實錄)’은 워낙 세조의 정난(靖難)을 합리화하는 내용으로 왜곡돼 있어서 이징옥에 관한 사실 여부를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한다.)

이징옥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경성도진무(鏡城都鎭撫) 이행검이 종성부사 정종(鄭種)과 함께 꾀를 내어 이징옥을 종성에 머무르게 한 뒤, 밤에 종성의 내상군(內廂軍)을 거느리고 징옥의 처소에 기습을 해 이징옥과 그의 아들을 죽였다. 이징옥의 시신은 거열(車裂)로 찢겨졌으며, 그의 머리는 3일 동안 효수되었다가 한양으로 보내졌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이후 세조가 된 수양대군은 이징옥에 대한 원한 탓인지 함길도(함경도)에 대한 인사차별 정책을 실시한다. 대표적인 것이 호패법의 부활과 함길도의 지방관에 함길도 지역인사를 임명하지 않고 외지인을 임명시키는 것 등이었다.

계유정란, 단종 폐위, 함길도 차별이라는 이슈가 하나가 되자 길주 출생이며 경흥진 병마절제사를 거쳐 첨지중추부사, 판회령부사를 역임한 이시애(李施愛, ? ~ 1467년 8월 12일)가 모친상을 당해 집에 머무르는 동안 형제 이시합, 매부 이명효, 함길도 지역의 지역 유향소 등과 힘을 모아 난을 일으킨 것이었다.

 

소제목 : 어유소의 생애, 어우동 스캔들은 오점

이시애의 난을 진압하는 데 공이 컸던 어유소는 1434년 경기도 양주군 이담면 지행리(현 동두천시 지행동)에서 평안도 병마수군 도절제사를 지낸 어득해의 아들로 태어났다. 자는 자유(子遊)이며 문종 원년(1451년)에 17세 때 음서(蔭敍)로 출사해 내금위에 임명되었다. 그는 단순히 집안 배경이 좋아 성장한 사람은 아니었다. 5년 뒤인 세조 2년(1456년)에 무과에 장원으로 급제하는 기염을 토한 것이다.

급제 후 사복시직장(司僕寺直長)과 감찰을 역임했고 세조 6년(1460년)에는 야인 정벌에 공을 세워 승진, 통례문통찬(通禮文通贊)이 되었고 세조 9년(1463)에 회령부사를 거쳐 이시애의 난 진압군에 참전한다.

세조 13년(1467년)에 좌대장으로 이시애의 난을 평정한 뒤 적개공신 1등이 되어 예성군에 봉해지고 공조판서에 특진된다. 그 해 겨울 명나라가 건주위를 칠 때 연합군으로 참전해 공을 세웠고 그해 12월 군공 2등(軍功二等)에 녹훈된다.

예종 즉위 후 예종 원년(1469년)에는 함경북도 절도사, 성종에는 2년 좌리공신 4등이 되고 두 차례나 평안북도 절도사를 지낸다. 이후 승진에 승진을 거듭해 의정부우참찬으로 오위도총부도총관을 겸임했고 이듬해 병조판서, 의정부우찬성, 이조판서, 지중추부사를 거쳐 평안도관찰사로 나갔다가 성종 19년(1488년)에는 판중추부사 겸 도총관에 이른다. 그러나 성종 20년(1489) 10월 성종을 호종하여 포천 영평현의 활터에서 갑자기 사망했다. 그의 시호는 정장(貞莊)이다.

묘는 경기도 양주군 동두천읍(현 동두천시 광암동) 산 72번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1986년 4월 28일 향토유적 4호로 지정되었다.

한편 생전에 어우동의 집과 인접하여 살던 그는 어우동을 불러들여 관계를 맺기도 했다. 그러나 국문을 당하자 어우동과의 관계를 부인했다. 1480년에 터진 어우동과의 스캔들 사건에서 어우동은 “어유소는 일찍이 어울우동의 이웃집에 피접(避接)하여 살았는데, 은밀히 사람을 보내어 그 집에 맞아들여 사당(祠堂)에서 간통하고, 뒤에 만날 것을 기약(期約)하여 옥가락지[玉環]를 주어 신표(信標)로 삼았다"고 말했다. 다음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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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출기파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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