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시 이야기 1
약 10년전에 유행하던 ‘공포의 쿵쿵따’ 라는 게임이 있었다. 3글자로 된 낱말의 끝말잇기 게임인데 늘 나오는 레파토리는 임창정, 정발산, 산기슭, 슭곰발, 발냄새, 새가슴이었다. 여기서 나오는 정발산이 바로 고양시에 있었다. 옛 추억을 떠올리며 고양시에 대한 호기심을 풀어보기로 했다. 고양시는 인구 102만이 사는 대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지명도는 구청소재지보다 덜 유명한 곳이다.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고양시를 아느냐고 물으면 그 위치를 모르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일산’을 아느냐고 물으면 킨텍스와 연결시키며 신도시라고 바로 답을 내놓는다. 그런데, 일산은 구청소재지이고 고양시는 이 이름난 도시를 품고 있는 시청소재지였던 것이다. 고양시 입장에서는 지명의 하극상(?)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모르겠지만 썩 유쾌해보이지는 않은 것 같다.
사실 고양시와 우리 강진군이 무슨 공통분모가 있나 생각하겠지만 고양시의 랜드마크는 행주산성이다. 그 성곽의 활용법이 병영성 활용법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 역사와 활용법을 연재하고자 한다.
고양의 역사
고양시의 역사도 추적해보면 삼국시대 이전까지는 역사적으로 주목할 만한 사실은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다가 삼국시대에 이르면 그 흔적이 하나 둘 드러나기 시작한다. 삼국시대, 즉 고구려 · 백제 · 신라가 한강유역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 과정에서 고양시는 이름없이 묵묵히 새주인을 받아들이게 된다.
삼국 중에서 고양시 일대를 포함한 한강 유역의 첫 번째 주인은 백제이다. 백제를 세운 온조가 북한산에 올라 지세를 살피고 도읍을 정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으며, 북한산 고성(古城:옛 성)과 그 주변 지역에서 백제의 토기 조각들이 발견되면서 온조의 이야기를 뒷받침하고 있다. ‘삼국사기’에 백제의 제4대 왕인 개루왕 5년(132년)에 북한산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다.
고양지역의 두 번째 주인은 고구려가 되는데, 시기는 광개토왕과 장수왕 때이다. 고구려는 고양지역을 차지하고는 달을성현과 개백현을 만들었는데 후에 달을성현은 고봉현으로, 개백현은 우왕 · 왕봉 · 행주 등의 이름으로 바뀐다. 고봉은 지금의 일산동구와 일산서구로 또 다시 이름을 바꾸게 된다. 나머지 지역은 지금의 덕양구 지역이 된다.
세 번째 주인은 이후 세력이 크게 성장한 신라가 차지한다. 북한산 비봉 꼭대기에 세워진 ‘진흥왕 순수비’에 이러한 역사적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전국을 9주 5소경의 행정구역으로 나누어 다스렸는데 고양지역은 한산주에 속하게 되었고 고양지역에 남아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흔적은 행주산성이라고 한다. 자료에 따라서는 삼국시대 초기의 산성형식과 비슷하다는 평가도 있다. 행주산성의 토성을 처음 쌓은 때는 8~9세기로 여겨지며, 성 부근에서 통일신라시대의 토기와 기와 조각들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남북국시대가 가고 새나라 고려가 개국되었다. 고려시대의 고양은 양주와 남경에 속한 마을이 되었다가 한양부의 속현이 되기도 한다. 고려의 도읍인 개성과 가까운 지역이었던 고양은 시대의 격변을 바로 옆에서 체험하게 된다.
고양시에서 재미있는 것은 흥도동에 고려청자를 굽던 가마터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공양왕릉과 최영 장군의 묘를 비롯한 고려시대의 무덤이 남아 있어 고양지역의 고려시대 모습을 역사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1392년 조선왕조가 시작된 후 고양지역은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게 되는데 태조 이성계는 도성을 개성에서 한양으로 옮기도록 하는데, 우리 고장은 새로운 수도 한양과 옛 도성인 개성을 연결하는 중요한 위치에 자리 잡게 된다. 지금 한참 이슈가 되고 있는 ‘개성공단의 사태’가 남 일 같지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실제로 개성공단에서 일을 하던 직원들이 일산에 거주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러다가 태조 3년(1394년)에 고양지역인 고봉에 감무라는 관리를 파견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그러다가 조선 태종 13년(1413년)에 고봉과 덕양의 이름을 합쳐 ‘고양’현으로 이름을 고치고 현감을 둔다. 고양시의 기원은 바로 이때부터라고 학자들이 주장을 하고 있다.
고양시가 유명해진 것은 연산군 덕이라고 해야 할까? 고양시 입장에서는 가장 암흑시기가 이때인데, 나중에 ‘문제적 인간 연산군’을 추적하다보면 고양시가 언급되니 이 또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고양은 성종 2년(1471년)에 왕의 무덤이 있는 곳(세조의 아들들인 예종의 창릉과 덕종의 경릉)이라 하여 현에서 군으로 승격된다. 그 후 고양지역에는 왕족이나 지배 양반층의 무덤이 유행처럼 많이 만들어졌으며, 이것들을 유지하기 위한 땅(사패지)들이 많아지게 된다. 문제는 이러한 사패지가 많아지면서 들짐승들이 살기 좋은 조건이 된다. 우리나라 역사상 왕이 갖춰야할 최고의 조건으로 최고의 교육, 제왕학을 배웠던 연산군이 이곳 고양을 찾게 된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왕은 정실부인의 첫째 아들이 세자가 되어 제왕학을 배운 후 왕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조선왕조에서 이 조건을 충족시키는 경우가 대단히 드물다는 것이다. (5대 문종, 6대 단종, 10대 연산군, 12대 인종, 18대 현종, 19대 숙종, 20대 경종, 27대 순종으로 27명의 왕 중에 8명 뿐이었다.)
어쨌거나 연산군은 이 좋은 고양에 와서 무덤도 많지만 사냥감도 많다보니 이곳을 ‘왕의 사냥터’로 만들어 일반 백성은 출입 할 수 없는 ‘금표구역’ 으로 정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이로 인해 고양의 능과 묘는 모두 잡초밭이 되었고, 주민들과 관청은 인근의 파주나 양주로 옮겨져 고양지역에서는 사람이 살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지도자의 횡포가 백성들에게 어떠한 피해를 입히는지 명백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벽제관 전투와 행주대첩
그러나 영원할 것 같았던 연산군의 시대도 12년 만에 끝이 났고 금표구역도 중종이 연산군을 몰아낸 사건 일명, 중종반정으로 인해 해제가 된다. 봉인이 풀리고 다시 사람 사는 곳의 모습을 갖추게 되는데 불행하게도 임진왜란이 발발한다. 고양은 특히 선조가 한양을 버리고 평양으로 몽진을 하는 길목에 있다 보니 관아와 도시가 큰 약탈을 당하게 된다. 그리고 난리 중에 고양시에서 초대형 전투가 벌어지는데 그것이 바로 벽제관 전투와 행주대첩이 그것이다. 벽제관 전투는 고양시 벽제관 부근에서 후퇴하던 왜군과 추격하던 명군 사이에 벌어진 전투로 왜군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왜장 고바야가와의 급속매복에 당해 참패를 당한 사건으로 명나라의 공세를 크게 약화시키는 원인이 된다. 권율은 임진왜란 초 광주목사로 있으면서 이치 전투와 독성산성 전투의 전공으로 전라도순찰사가 된다. 이후 권율은 행주산성에 대기하며 명군과 합세해 한양을 수복하기 위해 대기 중이었다. 그런데 조명연합군이 벽제관에서 대패를 하는 바람에 행주산성에 고립되고 만다. 이때 총퇴각 중이던 왜군은 배후의 적이 될 행주산성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반드시 제거해야할 목표로 삼아 총공격을 감행한다. 이때 병력차는 10배가 넘었는데 조선군은 약 2,800명, 왜군은 약 3만이었다. 임진왜란 3대첩으로 이름난 만큼 당연히 승리로 끝이 났다.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기회에 하자.
이후 조선 후기 고양지역의 자세한 모습은 영조 때(1755년) 고양 군수인 이석희가 편찬한 『고양군지』에 잘 나타나 있는데 기록에 따르면 고양 땅에는 남자 6,785명, 여자 7,076명 등 약 1만 3,800명이 살고 있었으며 8개 면에 3,508호의 집이 있었다고 한다.
그 후 조선조 말기인 조선 고종 32년에 이르기까지 고양 땅은 큰 변화없이 한적한 시골마을이 된다.
그러다가 1950년 6·25 전쟁이 시작되면서 고양은 매우 큰 피해를 보게 된다. 개성에서 출발한 북한군이 전쟁초기의 집중된 화력을 쏟아 붓게 되니 그 피해가 컸던 것이다.
전쟁 후 고양군은 195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초반까지 진행된 한강 주변의 화전 · 지도(능곡) · 중면(일산) 송포지역에 대한 대대적인 농지정리 및 전천후 농업개발사업이 이루어지면서 곡창지대로 탈바꿈을 하게 된다.
그리고 1980년대 중반부터는 고양지역에도 본격적인 도시화 개발사업이 이루어지기 시작하는데, 특히 1989년 일산 신도시 개발계획이 발표되면서 일산은 철저하게 계산된 계획도시로 발돋움하면서 인구 102만의 대도시가 된다. 다만 2000년대에 들어서 개발의 속도는 점차 둔화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다음주 계속
사진설명
1. 고양시의 랜드마크 행주산성과 행주대교(고양시 제공)
2. 행주대첩기념제에 앞서 펼쳐진 의장대 공연(고양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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