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원류를 찾아서
홍어장수 문순득과 다산형제 (3)
글 : 송하훈
문순득, 표류 3년 2개월 여의 시작
홍어장수 문순득의 표류기간 3년 2개월 여의 여정은 다음과 같다..
우이도→태사도→진도→제주도→유구 대도→유구 대도 양관촌→유구 대도 우겐촌→유구 나하→유구 나하 마치산도→여송 일로미→여송 비간→중국 오문→향산현→광동부→남경→북경→조선 의주→한양→다경포→우이도
세부적으로 표류기간을 살펴볼 때 유구에서 9개월이고 여송에서 10개월이며 중국지역에서 13개월을 보냈다고 볼 수 있다.
홍어장수 문순득은 표류를 시작하기 전 1801년 12월 우이도에서 배에 짐을 싣고 홍어를 사기 위해 태사도를 들어갔다. 뱃사람들은 홍어를 무럼이라고도 부르는데, 선주인 문순득은 쌀 100섬 정도를 실을 수 있는 상고선을 타고 갔다. 태사도는 대흑산도에서 남쪽으로 수백 리에 있는 섬으로 홍어가 잘 잡히는 곳이다.
문순득은 혼자서 태사도를 간 게 아니라 작은아버지가 되는 문호겸, 마을 사람인 이백근, 박무청, 이중원이 함께 탔고, 머리를 두 가닥으로 땋은 사내 김옥문도 끼어 6명이 갔다.
문순득은 출어를 하기 전 뱃고사를 지냈다. 정성을 다해 차린 음식을 용왕에게 바치면서 무사항해를 빌었다. 그리고 태사도에서 홍어를 산 다음 다시 소흑산도를 향해 돌아올 때였다. 대흑산도와 태사도의 중간은 곡갈이라 부르는데, 바로 그 지점에서 갑자기 큰바람이 몰아쳐 왔다. 배는 속절없이 떠밀려갈 수밖에 없었다.
파도가 무섭게 일렁이면 파고가 수 미터에 이른다. 판자 한 장의 아래는 저승의 길이어서 이승과 저승을 판자 한 장이 가로막고 있는 셈이다. 공포감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태풍이 지나간 바다를 보면 아연실색할 만큼 파고가 높다. 흰 거품을 토해내며 집채만한 파도가 몰려오고 또 몰려올 때면 큰 배도 하나의 가랑잎에 불과하다.
아마도 그런 파도에 휩쓸려 문순득의 홍어배는 떠밀려 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배는 진도의 서쪽에 있는 조도를 지나갔다. 그 쪽으로 가보려고 있으나 어림도 없었다. 배가 높은 파도에 떠밀려가니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뻔히 가까운 육지를 보고도 갈 수 없는, 그저 자연의 힘 앞에 속수무책인 사람의 힘없음을 절감해야 했다.
망망대해. 사방이 바다뿐이었고, 날은 시나브로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깜깜해져도 바람은 여전히 줄지 않고 거세게 불었다. 새벽녘엔 바람에 못이긴 키 자루가 부러졌다. 돛을 펼 수가 없어서 돛대를 묶어 고물(후미)에 엮었다. 그것을 키로 쓰면서 배가 가는 대로 내맡길 수밖에 없었다. 이 날이 1802년 새해가 밝은 지 여러 날 지난 1월 18일이었다.
강진에서도 먼 바다로 배를 타고 다니던 뱃사람들이 많았다. 옹기장수들이었다. 옹기장수들은 완도, 해남, 진도, 보성, 순천 등도 다녔지만 제주도까지 가기도 했다. 풍선(風船)에 옹기를 가득 싣고 제주를 가는 경우, 아침 6시에 출발하면 오후 2시 경에는 도착했다. 그러나 바다는 예기치 않는 상황이 발생하곤 해서 일단 바람이 거세게 몰아쳐오면 생명은 바다에 맡기는 꼴이 되고 만다. 풍선을 타고 옹기장사를 했던 사람치고 죽을 고비를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없으니 바다는 항상 위험한 곳이 아닐 수 없다.
1802년 1월 29일 유구(琉球)국 도착
문순득 일행은 춥고 배고프고 공포에 찬 열하루를 보낸 뒤 지금의 일본 오키나와현인 유구국에 도착했다. 때는 겨울철이었기 때문에 추위에 시달려야 했고, 몹시 배가 고팠다. 배가 고프니 추위 또한 견디기 힘들었고, 뱃전을 때리는 파도에 바닷물을 얻어맞아야만 했다. 며칠만 더 지나면 아사를 당할 지경에 이르렀는데 동남쪽에 자리한 큰 섬 오키나와현이 나타난 거였다.
“살았다!”
문순득은 짧게 부르짖었다. 아마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 쯤으로 생각되는 시각에 닻을 내리니 갑자기 사나이 예닐곱 명이 배를 타고 다가왔다. 문순득 일행을 발견한 그들은 먼저 물을 갖다 주더니 죽을 써주었다. 살 것 같았다. 아니 죽음의 문턱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이 꿈만 같았다.
대도(大島, 오시마)의 양관촌(羊寬村)-우금촌(牛禽村)-덕지도(德地島)-입사도(立沙島) 등을 지나 유구국의 수도인 수리부 부근의 백촌(白村)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조선말을 하는 통역인을 만났으니 헤어진 형제를 만나 것만큼이나 반가웠다. 그들은 친절하게 옷과 음식을 주었다. 그리고 병이 나면 의원까지 방문해 주는 등 최선을 다 하는 모습이었다.
유구란 어떤 왕국이었을까. 유구는 일본 오키나와현의 옛 지명으로 유구왕국은 1429~1879년까지 오키나와 지역의 최초 통일왕국이었다. 그러나 1609년 이후 유구왕국은 일본의 사츠마변이 침입하면서 위기가 찾아온다. 그리고 아시아로 진출한 서양세력이 유구에 통상을 요구하는 등 왕조 말기의 위기적 상황이 계속 지속된다.
결국 1879년 유구왕국은 일본 메이지정부에 의해 멸망하게 되는데, 그 뒤로 오키나와현이 탄생하게 되었다.
160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이루어진 유구는 쿠로시오 난류의 영향으로 산호초가 넓게 발되었고, 오랜 기간 동안 독자적인 왕국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아끼지 않은 나라였다.
역사적으로 살펴볼 때 유구와 조선은 서로 사절단을 보내기도 했을 뿐 아니라 표류인 송환 등을 꾸준히 해왔다. 조선왕조에 들어서 50여 회의 사절단을 보내온 기록도 있을 정도이다.
문순득 일행은 유구국에서 약 9개월간 머물렀다. 2월 2일부터는 ‘양관촌’에서 머물렀는데, 한달 여 머물다가 배를 타고 100여리 쯤 가다가 우금촌에 앞에 다다랐다. 그곳에서 3월 29일 배를 타고 양영부(오키노에라부 섬) 앞에 다다랐다. 그러나 바람에 막혀 4일간 머무르다가 유구 본토로 가게 된다.
문순득은 만난 유구문화는 어떤 것이었을까. 먼저 선박에 관한 것은 소형선박이라는 점이다. 선수는 매우 좁고 선미는 허리보다 좁지 않았다. 그리고 좌우에 판을 붙여 물에 쉽게 뜨게 하였고, 중앙에 돛대 하나를 세웠는데 돛은 무명베였다. 키의 길이는 매우 길어서 배의 중앙에서 뒤를 향해 앉아 키를 잡았다. 이러한 배는 ‘사바니’로써 오키나와를 대표하는 전통 배였다. 대형선박은 길이가 수십 장 넘는 크기였다. 선수는 좁으나 선미는 넓었다. 이중 진공선은 유구왕국에서 중국 명나라 청나라 황제에게 보내는 사절단이 탔던 배로서 수도 나하에서 복건까지 항해하였다. 1척에 약 1백 명이 탔던 것으로 보아 그 시대 최고의 선박이 아니었던가 싶다.
가옥은 우리나라 삿갓집의 형태였다, 기와나 풀로 지붕을 이었는데, 우리나라처럼 온돌이 없고 벽과 바닥이 모두 판자였다. 창호가 없다보니 문으로 빛이 들어오는 집이었다. 토산품으로는 닥종이로서 품질이 뛰어났고 값이 비쌌다. 노란 오이를 닮은 달고 맛이 있는 ‘마사’가 있었고, 부채와 삿갓으로 쓰는 구바나무가 있었으며, 토인들이 즐겨먹는 고구마가 있었다. 벼는 5월에 거두었고, 왕뱀은 말렸다가 기가 허할 때 다시마와 삶아서 먹었다. 왕뱀의 경우, 우리나라는 큰솥에 넣고 삶아먹는 대신 그들은 말려서 먹는 것이 달랐다.
용모와 복식은 남녀 모두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저고리를 입었으나 우리나라처럼 바지가 없었다. 그런데 부인은 손등에 문신을 새기고 있는 것이 특이했다. 남자는 정수리를 깎고 상투를 틀었는데, 그 위에 고리를 만들었다. 귀인은 갓을 썼고, 천민은 나뭇잎으로 모자를 만들어 쓰고 있었다.
그런데 귀인은 성이 있는 대신 천민은 성이 없었다. 조선과는 다르게 한 자리에 남녀가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특이했다. 밥을 먹을 때에는 젓가락을 사용하되 반찬을 집어서 손바닥 위에 놓고 먹었다.
장례는 조선과 거의 같았는데, 시체를 염한 후 상여가 나갈 때 망자의 부인이 상여를 뒤따르고 앞에서는 승려가 방울을 들고 인도했다.
유구국에서는 유구에 표도한 다른 중국인 32인과 함께 유구 호송선에 탑승하여 일시에 중국 복건성 복주로 보내졌다. 문순득은 전공선과 호송선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꼼꼼하게 살펴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는 어부가 아니었다. 그는 배를 타고 나주까지 다녔던 홍어 장수였으므로 배는 그의 발이었고 노동의 일터였다. 그러므로 유구국의 배는 문순득으로서 처음 타 보는 큰 배였다. 평생 바다에서 잔뼈가 굵었던 문순득은 조선의 배가 낡고 불편했으며 형편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문순득은 그 배의 기술을 배우고자 호송선 이 곳 저 곳을 살펴보기에 급급했다. 집으로 돌아간다는 희망보다도 호송선의 기술을 모조리 배웠으면 하는 마름이 더 컸다.
그러나 유구에서 출발한 세척의 배는 폭풍을 만나 뿔뿔이 흩어지고 만다. 진공선 2척과 호송선 1척 등 세척이었는데, 기록에 의하면 1802년 10월 15일이었다. 중국에 보내는 전공선 중 한 척은 실종되었고, 호송선 또한 실종되어버린 가운데 문순득이 탄 배만 다행히도 20여일 만인 11월 1일 필리핀에 표류했다.
낯선 이국땅이었다. 기가 막힐 일었지만 천만다행히도 목숨을 부지한 것만으로 또 한 번 안도의 숨을 내쉬어야만 했다. 필리핀에서도 처음 도착한 곳은 서남마의(西南馬宜, 현재 살루마기) 지방이었는데, 필리핀에서 약 10개월간 머물게 된다.
문순득 일행은 다시 배를 타고 일로미(一咾尾)란 곳으로 간다. 이곳에는 북간사람 수십 호가 살고 있었는데, 문순득 일행은 북간사람 집에서 생활을 시작했다. 이 때 중국출신 수도사인 천주교 신부는 쌀과 돈을 보내주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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