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한 선장이 되는 법
김재철은 어떤 방법으로 자신의 기량을 향상시켰을까? 그는 대단히 과학적인 방법을 사용했는데, 그것은 기업 경영에서도 숫자를 중시했던 그 기질이 선장시절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어로 방법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통념이나 선입견을 거부하고 자신의 경험을 찾아낸 특정 어로 방법이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를 현장에서 직접 검증하고자 했다. 자신만의 관점이나 방법을 체계화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400미터 정도 되는 메인 라인마다 위치를 표시하는 부이(buoy, 물에 띄우는 부표)의 깃발이 날린다. 400미터 안에 50미터 간격으로 8개 브랜치 라인을 걸게 되는데, 그 길이는 30미터 정도 되었고 대부분 선장들은 그것을 기계적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김재철은 작업노트를 쓰면서 어디서 고기가 많이 걸리는지를 알아보았다. 메인 라인 양쪽 끝부분에 걸린 낚시는 고기가 잘 물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잠정적인 결론을 확실하게 검증하기 위해서는 필드 노트를 꼼꼼히 기록했다. 감각이 아닌 숫자로 확인할 수 있는 길이었다.
김재철은 선장이 크게 네 부류로 나누어진다고 생각한다. 언제 어디서나 고기를 잘 잡는 선장, 고기를 잘 잡는 선장과 친한 친구 관계에 있는 선장, 재능은 뛰어나지 않지만 꾸준히 스스로 어군을 찾고자 노력하는 선장, 소문만 듣고 이 시장 저 시장을 눈썹이 휘날릴 정도로 부지런히 쫓아다니는 선장이다.
김재철이 한심한 친구라고 부르는 사람은 소문만 듣고 이 어장 저 어장을 쫓아다니는 선장들이다. 부러운 사람은 자기 실력을 가지고 척척 고기를 잡아내는 선장이다. 그러나 누구나 그런 최고의 반열에 들 수는 없다. 자기 주관을 갖고 부화뇌동하지 않고 꾸준하게 노력하는 선장이 되는 길이다.
동원산업의 출발
1968년 12월 회사에 사표를 내고 4개월의 준비 기간을 거친 김재철은 1969년 4월 16일에 회사를 설립한다. 동원산업주식회사는 ‘수산물 판매업’과 ‘부대사업 일체’를 사업 범위로 하고 자본금 1.000만원으로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 2가 33번지 상업은행 건물 401호실에 본사 사무실을 마련했다. 김재철을 비롯한 3명의 직원이 14평의 좁은 사무실에서 일을 시작했다.
동원산업이란 이름은 김재철 사장이 직접 지었다. 사명(社名)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창업자가 사업 초기의 의지와 방향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에 ‘산업(産業)’ 대신에 ‘수산(水産)’이란 이름을 많이 사용하고 있었는데, 김재철에게는 사업 초기부터 수산업으로 시작하지만 궁극적으로 영역의 확장을 통해 제대로 된 기업을 만들어야겠다는 비전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원양어선과 관련해서 김재철은 어떻게 초기 자본을 조달할 수 있었을까? 사업을 시작하던 당시 김재철의 나이는 34세였다. 원양업계에 뛰어든 지 10년째 되는 젊은이가 사업 실적을 창출할 기회는 많지 않았다. 더더욱 정계에 연줄을 댈 만한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당시 우리나라의 실정을 고려해보면 김재철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가 중고선 도입을 위해 신용으로 얻은 규모는 37만 달러였다. 당시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76달러에 불과했다. 2014년에 2만 8천달러로 약 368배가 늘어났음을 가정하면, 당시의 37만 달러는 오늘 날 기준으로 거액에 해당하는 신용이었음을 알 수 있다.
김재철은 1969년 7월 1일, 자신의 신용을 담보로 일본 도쇼쿠 사의 미국 현지법인인 올림피아 트레이딩사로부터 지불 보증 없이 37만 달러에 달하는 동원 31호와 동원 33호에 대한 현물 차관 도입을 체결했다.
이는 차관도입의 관례로 볼 때 아주 특별했다. 김재철이 정부나 국책은행 혹은 민간은행을 통한 지급보증 없이 중고선이라는 현물 차관을 도입한 것은 그가 일생을 통해 만들어낸 여러 가지 신기록 가운데 하나이다. 그는 무급 실습항해사, 일등항해사, 선장으로 치열하게 산 10년의 세월동안 손에 쥔 현금은 없었지만 실력, 성실, 정직, 근면으로 이루어진 무형자산을 만들어냈고, 이를 바탕으로 신용을 창조했다.
그리하여 현장에 정통한 사업가의 강점으로 첫 번째 배였던 동원 31호는 선전을 하게 되었다. 김재철이 동원 31호에게 기대했던 조기 목표는 연간 230일 조업, 평균 어획량 일평균 2.5톤, 어획량 575톤, 톤당 어가 300달러로 연간 17만 5천달러였다. 그런데 동원 31호는 기대 이상의 파격적인 어획고를 올렸는대 25개월만에 2.500톤과 75만 달러를 올린 것이다. 이중기 선장은 동원산업 창립 이듬해인 1970년 12월 5일 외화획득의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사업토대의 구축
동원산업은 동원 31호라는 참치 연승어선을 기지 삼아 거점을 하나하나 확보하면서 세계 최대의 참치 선망선단을 거느리는 수산업체로 일어서게 된다. 어려운 대목도 슬기롭게 극복해 나갔지만, 그러나 참치 연승업에서 트롤업이나 선망업으로 계속 변화를 꾀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대부분 망하는 추세였다. 김재철은 “사업은 언제든지 망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임했다. 현재 번창하는 사업도 언제든 위기에 빠질 수 있음을 인식했고 행동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끊임없이 모색했다.
“위험을 적극적으로 분산하라” 이 말은 모든 사업가의 머리를 떠나지 않는 절대명령이다. 참치 연승업으로 사업의 기틀을 잡는 동안에도 김재철은 새로운 어장, 새로운 어법, 새로운 어구 등을 끊임없이 연구했다. 이런 도전들 가운데 초기의 성과로 오징어 채낚기 어업을 들 수 있다. 이 어업은 1969년의 동원 31호, 1970년의 동원 33호, 그리고 1972년 동원 38, 51, 56, 58호가 인도양에 속속 진출해 참치 연승어업으로 어획고를 올리던 중에 시조되었다.
당시만 해도 대형 어선을 이용한 오징어 채낚기 어업은 거의 없었지만 1980년대까지 상당한 어획고를 올렸다. 또한 가다랑어 채낚기 어업으로 새 어장을 개척했다. 1972년 아프리카 가나공화국 테마 기지에서 실시한 가다랑어 채낚기 어업은 김재철이 국내 최초로 사업화에 성공한 사례였다.
남태평양, 인도양, 대서양을 거쳐서 새로운 어장 개척은 계속되고, 김재철은 북양 은대구 저연승어업과 원양트롤어업을 시작한다. 우리나라 은대구 저연승어업은 1977년 3월 미국의 200해리 경제수역이 시행될 때까지 호황을 누린다.
어장은 이곳 뿐인가. 이는 김재철의 화두였다. 이런 집념으로 김재철에 의한 어장 개척사가 곧바로 한국 원양어업 개척사였다. 잊힌 인도네시아 어장의 개발 역시 김재철의 개척사 중 하나이다. 따라서 인도네시아 수역 진출은 우리나라 원양어업의 제2돌파구를 연 신어장 개척사례였다.
동원산업은 창사 10주년을 맞아 설립 대비 선박 수는 용선 1척에서 대형 트롤 공모선인 동산호를 포함해 22척으로, 매출액은 4.129만 원(1969년 기준)에서 157억 5천8백만원(1979년 기준)으로 고속성장, 연평균 성장률 81.3퍼센트를 기록했다.
초기에 고속성장을 이끈 8가지 성공요인은 어떤 것이었을까. 첫째는 원양어업의 원정에 정통한 사람으로 자본에 의지해서 뛰어든 사업가들과는 뚜렷한 차이가 있었다. 그는 문제가 생기면 대안을 내놓을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현장을 정확하게 알았다.
둘째는 적재적소에 유능한 인재들을 배치하고 그들이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휘함으로서 업계 평균을 크게 뛰어넘는 어획고를 올리는 데 성공했다. 셋째는 굳건한 신뢰관계를 맺은 일본 바이어가 안정적으로 확보되어 있었다. 넷째는 일본어에 능통한 그는 네트워크의 구축이나 관계 형성, 사업 기회를 포착하는 데 강점을 보였다. 언어는 사람 사이의 관계를 만들어내는 데 윤활유 역할을 했다.
다섯째, 안주하지 않고 결정적인 시기에 현명한 결정을 내렸다. 그는 다수가 가는 길을 가지 않고 자신의 판단과 통찰을 믿고 남보다 반보 앞서려고 했다. 새로운 어로 기법과 어장을 개척하는데 앞장설 수 있었던 것은 현장을 잘 알기 때문에 가능했다. 여섯째, 그의 인간적인 특성도 초기 성공에 큰 몫을 했다. 반듯한 가치관, 지사적 태도, 겸손함, 솔선수범, 성실함, 추진력, 섬세함, 향상심, 학습열의, 그리고 실사구시 정신도 사업 전반에 세밀하게 작용했다.
일곱째, 그는 초집중력을 유지하는 삶의 태도를 갖고 있었다. 집중력은 사업가가 허튼짓을 하지 않고 시간과 에너지를 쓸데없는 곳에 낭비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사업은 초집중해도 될까 말까 하는 것이어서 뒤에 유흥이라 해도 고작 골프 갔다 오는 길에 술집에 들러 한잔 하고 늦게 돌아가는 정도에서 그친 것이다.
여덟째, 그는 자신 외에는 누구도 도움을 줄 수 없다는 배수진을 친 마음으로 살았다. 누구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없고 청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인생관이었다. 실력만이 자신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알고 있었고, 이런 원칙은 끝까지 지켰다.
사업확장의 길
본업을 버리는 자는 망하고 본업만 하는 자도 망한다. 평균 풍속보다 순간 풍속은 훨씬 빠른 법이었다. 1톤을 견뎌야 한다면 5톤을 견딜 수 있게 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회사 역시 위기를 분비해야지 위기가 왔을 때는 이미 늦다는 것ㄴ이다.
김재철의 사업확장은 인도양과 대서양, 북양에서 높은 어확고를 올리는 선단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는 축척된 자본을 바탕으로 ‘잡는 어업’을 보완할 수 있는 새로운 사업을 부지런히 모색했다. 첫 번째 전략사업은 수산물 냉장사업이었다. 잡는 어업을 하면서 그는 4가지 점에 주목했다.
첫째는 먼 바다에서 힘들게 잡아온 고기를 제값에 팔기 위해서는 냉장시설이 필요했다. 둘째는 냉장 시설이 미비해 제때 고기를 하역시키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셋째는 냉장 시설을 이용해서 수산물 유통사업에 참여함으로써 새로운 수원을 창출할 수 있어야 했다. 넷째는 원양어업 출어에 필요한 미끼 같은 냉동품을 적정 가격에 원할히 공급해야 했다. 동원냉장은 1985년부터 참치 미끼용 냉동 고등어를 생산해 자체 공급할 뿐 아니라 1988년부터는 다른 회사들에게도 공급하기 시작했다.
2000년 11월 1일, 해양 및 식품 분야가 주력사업이었던 동원산업에서 참치캔 제조 및 유통을 전담하는 동원F&B가 분리될 때 김재철은 31년 전 작은 어선 한 척으로 시작한 사업을 어떻게 확장해왔는가에 대한 소회를 밝힌 적이 있었다.
“1,2차 오일쇼크라는 위기를 극복하며 수산회사로서 기반을 더욱 굳건히 다졌고, 어업계 세계 최고의 금자탑을 달성한 후로는 그 성장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어획물의 가공 유통을 도모했고, 수산 및 종합식품 회사로서의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위용을 갖추었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안정된 사업기반을 다지고자 과감한 투자도 이루어져 10여 개 우량회사의 모회사가 되었습니다”
김재철은 전쟁에서 교두보 확보란 승패의 요인이 된다는 생각으로 1973년 부산 감천동에 토지를 확보한 다음 1976년에 사업을 개시한 동원냉장주식회사이다. 그는 냉장사업 경험으로 수도권 공략에 나섰다. 1981년 9월 1일 경기도 성남시에 동원산업 식품사업소를 연 것은 종합식품업체를 향한 도전 그것이었다.
기회는 또 다른 기회를 낳는다. 잡는 어업에서 유통을 거쳐 수산물 가공업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는 과정을 한마디로 표현해주는 말이다. 그리하여 가공 및 식품사업을 위한 전진이 시작되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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