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해야 하는 일이라면 가능한 한 체계화해서 시도하라!”
이는 김재철의 특성 가운데 하나이다. 사업도 공적인 일도 그런 마음자세로 늘 임해왔다. 즉, ‘전략적 마인드’는 그의 유전자이다. 장보고 프로젝트는 첫째 장보고학의 정립, 둘째 논픽션 소설화, 셋째 다큐멘터리 제작 방영, 넷째 드라마 ｢해신｣ 제작 및 방영의 순서로 이어진다. 작가 최인호는 ｢해신｣을 집필하면서 느낀 감정을 이렇게 표현한 바 있다.
“장보고야말로 21세기를 사는 우리 민족들이 미래지향적인 인물로 본받아야 할 선인임을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던 것이었다. 일찍이 만당 최고의 시인이었던 두목(杜牧, 803~852)은 장보고를 안록산의 난을 평정하였던 당나라 최고의 영웅 곽분양 이상으로 평가하여 장보고를 인의의 덕을 지닌 천하의 영웅으로 평가하였듯 장보고는 ‘제대로 된 한 사람만 있어도 그 나라는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유일한 위인임을 새삼스럽게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다. (…) 당나라와 일본의 삼각무역을 통해 라이샤워 표현대로 상업제국을 연 해상왕이자 무역왕이었으며 무엇보다 내가 장보고를 가장 매력적으로 본것은 한･중･일의 바다를 국경 없이 다스렸던 우리나라 역사에서는 보기 드문 한 사람의 세계인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 로마시대의 웅변가 키케로는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곧 제국을 지배할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장보고는 키케로의 말처럼 무적의 배를 타고 남해를 다스렸으며 바다를 지배하였던 단 한 사람의 코스모폴리탄이었다.(…) 우리 민족에게 많은 배가 떠다니는 바다와 아버지의 땅, 그 신화를 남겨준 한 사람의 영웅 장보고. 그래서 나는 장보고를 감히 바다의 신, 해신이라 부른다.”
김재철은 초･중･고교 역사교과서에 장보고 관련 내용의 수정 보완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 결과 2011년부터 사용되는 초･중･고교 교과서에서 여러 페이지에 걸쳐 장보고에 대한 내용을 소개하는 성과를 거둔다. 효과를 더하기 위해 2001년 여름방학 동안 매년 300~400명의 교사들이 해상왕 장보고를 몸소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우리가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조형물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강남의 코엑스 동쪽 문에는 2000년 5월 31일에 건립된 ‘해상왕 장보고 상징 조형물’이 서 있다. 장보고기념사업회는 10년간의 활동을 마무리 지은 뒤, 2012년부터는 한국해양문화재단과 통합해 (재)한국해양재단으로 발전한다. 사업회는 10년 동안 장보고가 우리의 자랑스러운 인물이자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주는 인물로 자리매김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 활동의 의미를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재단법인 해상왕장보고기념사업회는 21세기 신해양의 시대를 맞아 바다의 중요성을 국민들에게 널리 알리고, 바다를 향해 세계를 호령했던 해상왕 장보고의 해양경영을 미래지향적으로 재조명 평가함으로써 우리의 자랑스러운 해양문화를 범국민적인 정신문화로 계승, 발전 시켜왔다. 또한 우리가 잊고 지냈던 한민족의 해양성을 되찾아 해양문화를 국민문화로 승화시켜 한반도를 넘어 세계의 경제와 문화를 주도하는 초일류 선진국가로 나아가는 길을 밝히는 발판을 마련했으며, 해상왕 장보고의 업적과 정신을 창조적으로 계승하여 ‘21세기 해양대국 건설을 위한 정신적 기반조성’을 위해 장보고의 미래지향적 의미와 가치를 밝히고 발전시키고자 힘써왔다.”
재단활동 10년의 결산
장보고기념사업회 10년의 활동을 결산하며 밝힌 감회에서 김재철이 젊은 날부터 가져왔던 해양대국의 꿈을 확인할 수 있다. 외연과 내연을 계속적으로 확장하여 시대를 주도하는 당당한 국가로 자리 잡는 일에 그는 아무런 대가 없이 자신의 삶을 투자했다. 장보고기념사업회는 그의 활동을 이렇게 평가했다. “김재철 회장은 2000년 (재)해상왕장보고기념사업회의 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하여 10여 년간 장보고 재조명 사업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면서 장보고 정신과 해양문화를 국민에게 전파하는 데 큰 기려를 했다.” 역사 속에서뿐만 아니라 국민 속에 장보고라는 이름을 우뚝 세우는 일에 일익을 담당했던 것이다.
이제 ‘장보고’라는 이름은 보통명사처럼 국민들에게 친숙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1988년에 최초로 문을 연 세종기지에 이어 26년 만인 2014년 2월 12일에 남극에 ‘장보고 과학기지’가 문을 열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2개 이상의 기지를 보유한 8객국에 속하게 되었다. 김재철이 75세 되던 해인 2008년 1월 2일, 그는 남극의 세종기지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의 감동을 이렇게 기고했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 무슨 남극 탐험이냐고 주위에선 말렸지만 2일 저녁 신년하례회를 마치자마자 인천공항으로 가 남극탐험 대원의 일원으로 비행기를 탔다. 인천공항을 떠나 미국 로스앤젤레스와 칠레의 산티아고를 거쳐 남단의 푼타아레나스까지는 비행기로도 30여 시간이 걸렸다. (…) 날씨가 나빠 예정보다 더 머물게 됐을 때 연구원들에게 부담을 주는 것 같아 미안했지만 막상 떠나려니 이들만 남겨두고 가는 우리가 야속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남극의 곳곳에서 우리의 젊은이들이 혹한과 위험 속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고 남빙양에 우리 어선들이 조업을 하고 있다. 남극과 북극, 그리고 세계의 오지에서 땀을 흘리고 있는 의지의 한국인이 있기에 우리의 장래는 미덥기만 하다.”
남극의 장보고 과학기지를 찾은 데는 다른 의미도 있었다. 2008년은 뜻깊은 해였다. 23세의 청년이 무급 실습항해사 자격으로 지남호를 타고 남태평양으로 진출한 지 50주년이 되는 해였기 때문이다. “저는 지금도 남태평양에 대한 향수가 있습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그는 자기절제를 중시하지만 ‘흥’이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젊은 날 보잘것없는 배를 이끌고 외롭게 어장에 뛰어들던 시절을 떠올리면서, “태평양에 한국 어선들로 기세를 올려야 하겠다”고 생각한다. 그는 태평양을 한국 어선들로 가득 채움으로써 우리가 이렇게 성장했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태평양에서 조업하는 동원 선단 소속의 참치 선망선 이름을 모두 ‘김(Kim)’으로 통일하게 되는데, 이렇게 해서 ‘자이언트 김’, ‘유니버스 김’, ‘오리엔트 김’, ‘캡틴 김’ 등과 같은 어선 이름들이 등장한다. 10척 이상 ‘김’으로 끝나는 이름을 붙임으로써 위세을 높이는 데는 도움이 되었지만 예상치 못한 부작용도 생겼다. 연안국에서 조사 목적으로 어선을 쫓다 놓치는 때가 있는데, 이때 손쉽게 무슨무슨‘김’이란 이름 같았는데라고 의심하는 경우가 늘어나게 되었다. 문제가 되는 지역에 간 적도 없는 동원 선단의 참치 선망선이 엉뚱하게 누명을 뒤집어쓰는 일이 일어나게 된다. 그래서 이름에서 ‘김’을 없애고 새로운 이름을 붙이는 데 몇 해가 걸렸다. 이런 해프닝을 통해서 그가 깨우친 교훈이 있다.
“비즈니스에서 쇼는 절대 금물이다. 사업은 사업 논리로 해야지 다른 의도가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
이처럼 그는 시행착오에서도 배우고 또 배우기를 멈추지 않는다.
김재철이란 사람이 누구인가를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그는 지금도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면 도전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또한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서도 어느 젊은이보다도 적극적이다. 청년기의 한 시기처럼 그는 지금도 가슴 설렘으로 자신의 삶고 사업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으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그의 모습에서 우리는 사람의 본질이란 크게 변함이 없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한다. 그는 가진 것 없던 젊은 날에도 그랬고, 사업을 한창 키우던 40대에도 그랬으며, 80을 넘긴 지금도 그렇다.
“나는 더 배우고 싶고 더 알고 싶고 또 더 성장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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