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가 소개를 해 줄 사람이 있소.”
일주 일 동안 사냥을 다녀온 타잔은 다음 날부터 집안 일에만 열중했는데, 중고 포클레인으로 주변을 땅을 고르기도 하고 쇠말뚝을 박아 흑염소의 우리를 넓히고 나더니 나를 불렀다.
“누구를 소개해 준단 말입니까?”
“가보면 알것이오. 나와는 잘 아는 사이니까 잘 좀 부탁하요.”
갑자기 사람을 소개하겠다는 말에 좀 의아했지만 그의 트럭을 타고 면내로 나갔다.
그가 나를 데리고 간 곳은 면사무소를 중심으로 식당거리가 형성되어 있었는데, 면내에서 가장 북적이는 집이 흑염소 전문집이었다. 타잔은 자신의 소유인 건물을 국사봉 농장의 흑염소만 사용하는 조건으로 임대를 해 주었다고 일러주었다. 일종의 재테크를 그렇게 한 모양이었는데, 2층 건물로 식당거리에서 단연 돋보이는 건물이었다. 잠자코 그를 따라 식당 안으로 들어서자 얼굴에 화장기가 전혀 없는 아주머니가 허리를 반쯤 숙여 보이며 반갑게 맞이했다.
“으째, 장사는 잘 되신당가요?”
타잔이 아주머니에 묻자 그네는 곁에 서 있는 남편을 바라보며 말했다.
“부부간에 편한 마음으로 하고 있어라우. 요즘에는 오신 손님들이 고마운께로 고기를 쬐깐 더 넣어드리고 있구만요.”
“왐마, 말씀하신 것 보니까 흑염소 값을 덜 받으란 말하고 똑 같소이. 그나저나 우리가 만날 손님은 안에 계시것지라?”
“진작 와 계시구만요. 어서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그런데 타잔을 따라 방 안으로 들어가자 옥색 개량한복으로 위아래를 곱게 차려 입은 웬 보살 한 사람이 서 있었다.
“이 분이 월출산에 조그만 암자를 하나 갖고 있는 무녀인디 나하고는 옛날부터 인연이 깊구만요.”
타잔의 소개가 다 끝나기도 전에 그 무녀는 고개를 약간 숙여 보이더니 내게 삼배를 올리는 것이었다.
“아니, 왜 이러십니까?”
나는 황급히 맞절을 했다. 체구가 유난히 작았지만 눈빛이 이글거리는 70대의 무녀였다.
“삼배는 부처님께 하는 법입니다.”
내가 꾸짖듯 말을 하자 그녀는 잠시 무르춤하더니 핸드백에서 100만 원 짜리 수표 다섯 장을 꺼내들고 내 앞으로 밀어놓았다.
“웬 돈입니까?”
“선생님! 부탁이 있어서 그러구만이라우. 다른 것이 아니고 삼불제석(三佛帝석)님 한 점 그려주십사 하고요.”
“삼불제석님이라 하시면 산신(産神), 수신(壽神), 농신(農神) 세 분을 말하는 것입니까?”
“맞구만이라우. 제가 월출산 기슭에 쬐끄만 신당을 하나 지었는디 거기에 모실라고 그랍니다.”
그러나 삼불제석이든, 최영장군이든, 아니면 산신령이든 그것을 봉안할 신당의 치수를 재야만 했기에 내가 거듭 물었다.
“보살님께서 지었다는 그곳을 한 번 가보아야 되는데요.”
“그런 것은 묻지 마시고 그저 한 점 그려주시요. 우리 박 사장님 얼굴을 봐서라도······.”
김 보살이 힐끔 타잔의 얼굴을 쳐다보며 한쪽 눈을 감아보였다.
타잔은 김보살을 만나러 가면서 그녀에 대한 얘기를 잠깐 했었다. 그 김보살이란 무녀가 산신제를 지낼 때마다 타잔은 방생용 돼지를 이따금 팔아오고 있었는데, 한꺼번에 오십 마리 정도를 팔 때도 있어 그 수입이 보통 짭짤한 것이 아니라는 거였다. 그 많은 새끼 돼지를 산 밑에 풀어놓으면 온 산천이 들썩거릴 만큼 요란스러워 당장 다시 거둬들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타잔은 제 가격을 받고 김 보살에게 돼지를 팔았으면서도 산신제가 끝나자마자 다시 거둬들이기 때문에 코도 안 풀고 목돈을 쉽게 쥔다는 것이었다.
“법능 선생. 내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김 보살님 부탁을 들어줬으면 하요.”
그러나 나는 잠시 망설였다. 언젠가 아버지 호봉에게 한 무녀가 찾아와 뭉칫돈을 내놓으며 후불탱화 한 점을 부탁하고 간 적이 있었다. 그러자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승낙을 하였고, 그녀는 몇 번이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아버지는 어제 받은 뭉칫돈을 내게 던지며 그냥 돌려주라는 시늉을 해보였다.
“아버지, 왜 그러세요?”
나는 아버지에게 물었다. 내 말이 들릴 리가 만무인 아버지는 붓을 들어 수 명의 신장들을 그려나갔다. 신장들은 모두 청룡도를 치켜들고 노려보고 있는데, 아버지는 그 아래서 무릎을 꿇은 채 두 손을 싹싹 비는 모습이었다. 간밤 꿈에 신장님들이 나타나 아버지를 엄하게 꾸지람했다는 내용의 그림을 아버지는 아들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 집에 유명한 화가가 지낸다고 했등마는 김보살께서 부탁을 하신 것이요.”
타잔이 내 눈치를 살피며 거듭 부탁을 했고 김보살은 내 입에서 어떤 말이 떨어질까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 순간, 해월 노화사의 음성이 떠올랐다.
‘네가 무녀들에게 무녀도를 그려준 것은 매우 잘 한 일이다. 우리 불교는 넓고 평평해서 어느 한 곳에 얽매임이 없기 때문이다. 한낱 미물에도 불성이 있는데, 하물며 사람의 일이거늘 거절해야 되겠느냐? 누구든지 사랑하고 자비를 베푸는 것이 불교의 근본이므로 무녀들 또한 중으로 보면 되느니라.’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려드리지요.”
그러자 김보살의 얼굴이 환해지면서,
“고맙구만이라우, 고맙구만이라우.”
하고 연신 허리를 굽혔다. 김보살과 헤어진 후 국사봉 농장으로 돌아오던 길에 타잔이 내게 말했다.
“허락을 해준께 내 체면이 섰구만요.”
“여강씨 한테 부탁하지 않구서요.”
내 말에 타잔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여동생이 그리는 그림은 그림이 아니지라우. 부처님을 그린다는 여자가 무슨 괴상망측한 그림만 그리고 있응께 누가 그 그림을 보고 절을 할 수 있것소, 기도를 할 수 있것소? 난 여동생 속을 모르것당께요.”
“나름대로 신념이 있어서 그렇겠지요. 하긴 나도 이해하기가 어렵습디다만······.”
“신념은 무슨 얼어 죽을 신념이라요? 이래봬도 나도 32상 80종호가 무슨 말인지는 알고 있지라우. 그 말도 여동생이 가르쳐줘서 알게 되었지만서두······.”
32상 80종호라.
“아니, 또 사냥을 나가십니까?”
멧돼지 사냥을 다녀온 지 불과 며칠 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또다시 사냥복 차림에 엽총을 들고 밖으로 나가는 타잔에게 내가 물었다.
“나랑 함께 바람 좀 쐬고 옵시다.”
그는 사냥을 떠나면 그렇게도 좋은지 뻐드렁니를 드러내며 내게 종용했다.
“아뇨.”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이내 나는 그를 따라나서고 말았는데, 이틀 정도면 사냥이 끝날 거라는 그의 말 때문이었다. 지난 번 멧돼지 사냥을 따라나섰다가 혼쭐이 난 경험 탓에 솔직히 정나미가 열두 번도 더 떨어졌지만, 남의 집 밥 얻어먹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아무래도 그의 비위를 맞춰주는 것도 내가 해야 할 일중에 하나였는데, 여강이도 함께 간다고 해서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다.
그런데 이번 사냥은 단순히 즐기는 사냥이 아니라 농사를 망쳐버린 멧돼지를 포획하는데 목적이 있었다. 현장에 나가보니 농민들이 너도나도 한숨만 푹푹 내쉬고 있었다.
“워따매! 진작 조깐 오시제.”
지난 번 멧돼지 사냥을 함께 했던 황대장과 베레모 모자 등 엽사 6명이 백운동이란 산골마을로 들어서자 아낙네 한 사람이 쪼르르 달려 나오면서 박수를 쳤다.
“그동안 멧돼지 피해가 컸겠습니다.”
황대장이 대표로 위로의 말을 건네자 아낙네는 지옥에서 살아오는 외아들이라도 만난 것처럼 반가움을 표시하더니 이내 울상을 지었다.
“작년 가을에 망할노무 멧돼지가 다 망쳐뿌럿소. 그놈덜을 꼭 좀 쥑여주씨요.”
그네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낮은 산자락에 운동장처럼 펼쳐진 자드락밭이었다. 넓은 밭은 바짝 오그라진 고구마대가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었다.
“내가 그 놈덜을 쫓아낼라고 밤이면 우산각을 지어놓고 꽹과리를 쳐대도 끄떡을 않은 놈덜이여! 사냥개를 묶어놓고 짖게 해도 소용이 없당께라.”
그 때 사내 한 사람이 담배 한 대를 뽑아들더니 연거푸 연기를 빨아대며 한숨을 내쉬었다. 사내는 속이 상할 대로 상했는지 다시 새 담배를 입에 물고 나서 이번엔 신세타령을 늘어놓았다.
“···그래서 밤바다에 그물을 풀 때 쓰는 수산용 램프를 밭둑에 설치해 놓았더니 말이요, 이것덜이 램프가 없는 데만 골라서 고구마밭을 파헤쳐놓았당께요. 내가 이기나, 네가 이기나 끝까지 해볼 생각으로 폭음기를 설치해 놓았더니 그것까지 부숴감시로 고구마 잔치를 벌리는 놈덜이요.”
“반드시 잡아드릴텐께 염려 붙들어 매십시오.”
타잔이 사내의 손을 꽉 쥐어주며 말하고 나서 천천히 마을 뒤로 차량을 옮겼다. 시골 저수지치고는 꽤 큰 저수지가 나타났고, 그 저수지가 끝나는 지점에 웅장한 제각이 나타났다. 왕릉을 연상할 만큼 우람한 시조 묘를 중심으로 너른 종중산이 펼쳐져 있었고 바로 그 곁으로 질펀한 또 하나의 밭이 드러누워 있었다.
차량이 도착하자 제각에서 살고 있는 젊은 부부가 튀어 나왔다.
“이 근방에 멧돼지가 많이 있어갖고 당최 살 수가 없네요.”
역시 사냥꾼 일행을 반갑게 맞이한 두 부부는 따끈한 커피를 내오면서 권했다.
“여기도 고구마 농사를 짓고 있소?”
이번엔 황대장이 물었다.
“그래도 고구마 농사가 쏠쏠하지라. 그란디, 지난 주에는 산에 갔다가 허벌나게 큰 멧돼지를 봤네요. 아마 300근 정도는 될 것이요. 으띃게 놀랐든지 죽어라 뛰어내려왔는디요, 바로 그 놈덜이 우리 마을 고구마밭을 쑥대밭 맹글고 있당게요. 올 농사 걱정이 크구만요.”
“여기에도 산신령이 있었능갑습니다. 염려마시오, 오늘 내로 잡아드릴테니.”
황대장이 씩 웃어보이고는 타잔에게 눈짓을 했다. 타잔이 다섯 마리의 사냥개를 풀어놓자 꼬리를 흔들며 으르렁거렸다. 사냥개들은 몇 차례 더 으르렁거리더니 산 속으로 빨려들어가듯 눈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사냥개와 연결된 GPS(위성항법장치)가 방향을 가르키자 황대장이 앞장을 서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우리도 슬슬 따라가 볼까.”
그녀가 먼저 앞장을 서며 내게 말했다. 이미 사냥꾼 일행들은 시야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산을 평지달리 듯 달려 나갔기 때문에 나와 그녀는 요란스럽게 짖어대는 사냥개의 소리를 좇아 얼마 가지를 않았는데 현장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부룩송아지만한 멧돼지 한 마리가 세 마리의 사냥개에 물린 상황에서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으콰콰콰콰!”
멧돼지의 필사적인 반항도 만만치 않았다. 사냥개들은 귀와 꼬리, 그리고 목덜미를 물고 있는 상태에서 멧돼지에게 몇 발짝 끌려가고 있었다. 그 때 타잔이 나무 뒤에서 몸을 바짝 붙인 채 기회를 엿보더니 방아쇠를 당겼다.
“타아앙!”
두어 차례 총신에서 불을 뿜더니 이내 멧돼지는 그대로 고꾸라졌다.
“제대로 죽었군.”
타잔이 다가가서 멧돼지의 죽음을 확인했을 때 사냥개들은 승리를 자축하는 듯 퀑퀑 짖어대며 꼬리를 흔들었다.
멧돼지를 끌고 마을 앞 회관 앞에 눕혀놓자 마을 주민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들은 고구마밭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놓은 멧돼지를 보고 통쾌감을 느끼기보다는 분노에 치를 떨었다.
“이놈이 밭갈이를 한 것처럼 한 달에 여러 차례 밭을 뒤엎은 놈이여! 아, 씨고구마라도 건져볼랑고 했는디 울타리까지 죄 부숴감시로 날 못살게 한 놈이랑께!”
노인이 손가락으로 죽은 멧돼지를 가르키며 말하자 뒤이어 다른 아낙네는 어금니를 오도독 갈며 말했다.
“개를 여러 마리 풀어놓았등마는 멧돼지를 잡을 생각은 않고 개들이 고구마밭을 망쳐놓았당께요.”
천적이 없다보니 개체수가 증가하는 멧돼지는 결국 농민들에게 한숨과 허탈감만 안겨주는 현장이었다.
“우리가 성가시게 한 요 녀석을 처치했으니까 아예 잔치를 열어버립시다이.”
타잔이 제안을 하자 마을 주민들이 박수를 치며 준비를 서둘렀다. 제각지기 사내가 썩 나서더니 복수라도 하려는 듯 멧돼지의 털을 벗기고 배를 갈랐다. 마을 사람들이 숯불을 피워 고기를 굽기 시작하자 군침이 돌 만큼 냄새가 진동했다.
“아, 내가 멧돼지 땜새 농사를 몇 번이나 망쳐뿌럿는디 이제 맘 놓고 농살 짓게 되어 기분이 좋구만요.”
제각지기 사내는 사냥꾼들에게 다모토리로 소주를 따라 건네며 히죽히죽 웃었다. 그렇게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밭농사 망치는 멧돼지가 그리 미워서 죽을상을 지었겠지만 그 고기 하나는 입에 침을 흘릴 만큼 게걸스럽게 먹어대는 것이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군청에서 과장과 팀장, 그리고 직원 등 세 사람이 국사봉 농장을 찾아왔다. 국사봉 농장이 흑염소 교육원으로 선정되었다는 것이고, 전액 국비와 지방비를 합쳐 건물을 짓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농촌에 귀농자가 많이 생기니까 날더러 교육원을 만들어 그들에게 축산교육을 시키라고 군에서 자꾸 권해쌓등마는 이제 결정이 되었는갑소.”
타잔은 교육원이 생기고 나면 그 좋다는 사냥을 못하게 될 것인데도 마냥 좋아하는 눈치였다.
“지금까지 내가 직접 경험한 것들을 전달해 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이겠소.”
나는 진심으로 축하를 해주었다. 사실 타잔의 흑염소 농장이 있는 국사봉은 호남 정맥이 광양 백운산으로 가다가 남쪽을 향해 내처 뻗은 산줄기의 첫 번째 산이었다. 신라 문성왕 16년 854년에 세워졌다는 쌍계사란 옛절터가 남아있는 곳이기도 해서 천하 명산에 해당되는 곳이었다. 게다가 6‧25 전쟁 때에는 인민군사령부가 주둔하여 주변의 험악한 산세와 더불어 한동안 활동이 왕성했던 곳이었다. 그러니까 국사봉을 중심으로 북쪽으로 무등산, 남쪽으로 억불산, 서쪽으로 월출산과 연계되어 종내는 지리산과도 연결되는 산이어서 더욱 빨치산들의 주무대가 될 수 있었다. 국사봉 농장에서 임도를 타고 30여 분 올라가면 그 끝 지점에 등산로가 시작되는데, 억새능선을 타고 정상에 오르면 사방으로 확 트인 조망에 절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이러한 천혜의 지리적 여건을 갖춘 곳에 농장이 있다 보니 교육원 장소로 지정된 모양이었다.
타잔은 초등학교도 제대로 졸업을 못했지만 도회지에서 살다가 농촌이 좋다고 귀농하는 사람들을 가르친다는 것에 퍽이나 고무되어 있었다. 그의 말대로 예산이 통과되었는지 며칠 후 포클레인이 나흘 동안 터를 닦는가 싶더니 콘크리트로 기초를 한 후 2층 건물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내가 전국 흑염소협회 회의를 할 때 말이요, 정부 관계자에게 사정없이 따졌지라. 오늘 날 귀농인들이 축산을 하고 싶어도 구체적으로 가르친 곳이 없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론이 아니라 실기이다. 흑염소를 직접 키우는 사람에게 배우는 것처럼 확실한 것이 어딨느냐? 말로만 귀농정책을 세운다고 난리 피우지 말고 교육원을 세우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하고 말했더니 먹혀들어 가드랑께요.”
그는 교육원이 세워지고 있을 때에도 자주 군청엘 다녀오는 눈치였다. 교육생들이 2박 3일, 혹은 3박 4일로 지내려면 식당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 시설까지 마저 지으려는 것 같았다.
어쨌든 국사봉 농장은 하루아침에 발복의 땅이 되어가고 있었다. 산에서 키우는 토종닭과 제주도 똥돼지가 국사봉 농장에 있다는 것을 알고 찾아오는 몇몇 내방객 말고는 흑염소떼만이 주인인 양 사는 국사봉이었다. 그런 국사봉에 대형 크레인과 덤프트럭이 나타나면서 최신식 2층 건물과 식당이 지어졌다.
희망축산귀농교육센터.
이렇게 간판이 걸리면서 국사봉 농장에 교육원이 세워지자 농장은 날마다 찾아오는 사람들로 활기찼다. 교육생들이 꾸역꾸역 몰려들었던 것이다. 그런 교육생들은 대상이 따로 없었는데, 그러나 대부분 인생을 망쳐버리고 제2막의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타잔이 시키지도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그의 일손을 도울 수밖에 없었다. 이를테면 교육생들의 학습지를 복사해서 나눠주거나 일정이 끝나면 사업계획서 같은 것을 거둬들이는 일 정도였다.
“바쁠 때는 부지깽이도 쓴다등마는······.”
타잔은 나를 볼 때마다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았다. 그러나 정작 바쁜 사람은 회진댁이었다. 그녀는 교육생들의 삼시세끼를 해결해야 했으므로 한낮에 눈 한 번 붙여보지 못한 채 하루 종일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움직였다.
그런데도 그녀의 표정은 몹시 밝아 보였다. 그동안 그녀는 사람 꼴을 보지 못하고 사는 깊은 산중생활이 이골이 날 법도 했을 것이었다. 그런데 별아 별 사람들이 전국에서 모여드니 어쩌면 가만히 앉아서 사람 구경을 하는 셈이었고, 수입 또한 짭짤해서 재미가 나는 모양이었다.
한 달 동안의 일정표는 미리 날자 별로 빼곡히 채워졌는데, 흑염소협회 전북지회 40명, 순천 부녀회 교육 67명, 무역전시관 귀농귀촌 페스티발 참가, 농민사관학교 000교수 초청강의(32명), 제11차 귀농교육 전주대학교 학생 실습 20명 식으로 일정이 짜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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