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과 장사꾼이 같은 주막에 들었다. 그 주막집은 가난하여 구운 새 한 마리밖에 없었다. 장사꾼은 재빨리 ‘중은 육류를 먹어서는 안 된다’며 새고기를 혼자 먹어버렸다. 여행을 계속하던 두 사람은 넓은 강가에 이르렀다. 중은 장사치를 어깨에 태우고 강 속에 들어섰다. 강 중간에서 중은 장사치에게 물었다. ‘혹 돈을 가지고 계시지 않느냐?’ 그러자 장사치는 ‘있다’고 답했다. 중은 ‘몸에 돈을 지니면 안 된다’며 장사치를 물속에 집어 던졌다.
출처가 어딘지 모르지만 상대방에게 배려가 전혀 없는 장사치가 나중 당하고 마는 얘기다. 옛말에 불호사방사사(不好事紡事似)란 말이 있는데 이 말은 좋지 못한 일을 저지르면 물레가 돌아서 제 자리에 오듯이 반드시 보복을 받게 된다는 말이다. 또 칠신탄탄(漆身呑炭)이란 말은 복수를 위하여 몸을 괴롭힘을 말하는데 사기(史記)에 나오는 말이다. 와신상담(臥薪嘗膽)이란 말은 장작 속에서 자고 쓸개를 빤다 함이니 원수를 갚고자 결심하고 잊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 말은 오월춘추(吳越春秋)에 나오는 말이다.
전국시대 중기 제나라의 군사 손빈(孫臏)은 손무(孫武), 손자(孫子)의 군사사상을 계승하고 발전시킨 사람이다. 군사 이론과 실천에서 탁월한 능력을 가진 군사 전략가였는데, 그가 창시한 삼사법(三駟法)은 군사응용학의 선두를 이루었다.
<손빈병법>은 <손자병법>보다 더 훌륭하다는 평을 받고 있는 것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극복하고 사무치는 원한에서 지혜를 터득했기 때문이다.
손빈은 손무의 후손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젊은 시절 친구 방연과 함께 귀곡자 문하에서 병법을 배웠다. 손빈은 늘 방연보다 뛰어나서 방연의 시기와 질투를 받았다. 스승으로부터 학업을 마친 방연은 위나라로 건너가 장수가 되었다. 그런데 만일 손빈을 제나라에서 기용하면 큰일이다 싶어 방연은 비밀리에 자신이 몸담고 있는 위나라로 오게끔 만들었다. 막상 손빈이 오자 방연은 또 걱정이 앞섰다. 그것은 위나라의 왕이 손빈의 총명함을 알고 총애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방연은 손빈의 선조 손무가 남긴 병서를 손에 넣기 위해 손빈을 앉은뱅이로 만들었다. 무릎 아래를 자르는 빈형(臏刑)이었는데, 그것도 모자라 손빈의 얼굴에 죄인임을 표시하는 경형(黥刑)까지 자행했다. 그런 일을 꾸미면서도 방연은 겉으로 손빈을 위하고 걱정하는 태도를 취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손빈은 처절한 마음을 느끼면서 미치광이 행세를 했다. 방연으로 하여금 방심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사신을 따라 사지에서 벗어나 제나라로 도망을 쳤다. 그러나 목숨은 부지했다고는 하지만 불구의 몸이 된 비참하고 현실이었다. 제나라 장수 전기(田忌)는 손빈의 재능을 얼른 알아차리고 빈객으로 예우해 주었다.
전기는 제나라 공자들과 자주 마차 경주 내기를 하곤 했는데, 손빈은 그에게 내기를 크게 걸라고 권했다. 전기는 손빈의 말을 듣고 여러 공자들과 천금을 내걸고 내기를 했다.
“지금 당신의 하급 말과 상대방의 상급 말과 겨루게 하십시오. 그리고 상급 말과 상대방의 중급 말과 겨루게 하고, 중급 말은 상대방의 하급말과 겨루게 하십시오.”
전기는 손빈의 말대로 했는데 첫 번째 경기는 이기지 못했으나 두 번째는 마침내 이겨 왕으로부터 천금을 받게 되었다. 그러자 전기는 손빈을 위왕(威王)에게 추천을 하였고 위왕은 그에게 병법을 듣고서 군사(軍師)로 삼았다.
그 뒤 위(魏)나라가 조나라를 침략하자 조나라가 제나라에 도움을 청했다. 제나라 위왕이 손빈을 장군으로 삼고자 했으나 손빈은 형벌을 받은 사람은 장군이 될 수 없다며 사양했다.
위왕은 전기를 장군에 임명하고 손빈을 군사로 삼아 조나라로 가게 하였다. 이때 손빈은 휘장을 친 수레에서 계책을 세웠는데 전기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지럽게 엉킨 실을 풀려고 하면 주먹으로 쳐서는 안 됩니다. 싸움을 하는 사람을 말리려고 했을 때 그 사이에 끼어들어 손으로 밀치려 해서는 안 됩니다. 급소를 치고 빈틈을 찔러 형세를 불리하게 하면 저절로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위나라와 조나라가 서로 싸우고 있으니 날쌘 병사들은 틀림없이 모두 나라 밖에서 싸우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라 안은 늙고 병약한 자들만 남아있을 것입니다. 장군께서는 병사들을 이끌고 위나라의 수도 대량으로 쳐들어가 중요한 길목을 차지하고 텅 비어있는 곳을 치십시오. 그러면 틀림없이 위나라는 조나라 공격을 멈추고 자기 나라로 돌아올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조나라의 포위망이 풀어질 것입니다.”
전기는 손빈의 계책을 따랐고 위나라는 조나라 수도 한단에서 물러났다.
그로부터 십삼 년 뒤에 위나라가 조나라와 함께 한(韓)나라를 공격하자 한나라는 위급함을 제나라에 알려왔다. 제나라는 전기를 장군으로 삼고 손빈을 군사로 삼았는데 전기를 곧장 대량으로 쳐들어갔다. 위나라 장군 방연은 이 소식을 듣고 한나라 공격을 멈춘 채 돌아갔으나 제나라 군사는 이미 위나라 국경을 넘어 서쪽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손빈이 전기에게 계책을 말했다.
“위나라 군사들은 본디 사납고 용맹해서 제나라를 무시하고 겁쟁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 제나라 군대가 위나라 땅에 들어가면 첫날에는 아궁이 10만 개를 만들게 하고, 다음 날엔 아궁이 5만 개를 만들게 하며, 그 다음 날에는 아궁이 3만 개를 만들게 하십시오. 이는 병법에 ‘승리를 좇아 백 리 밖까지 쳐들어가는 군대는 상장군(上將軍)을 잃게 되고, 오십 리를 좇아가는 군대는 절반만 목적지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방연은 제나라 군대의 아궁이가 줄어드는 것을 보고 크게 기뻐했다. 그리고 날쌘 정예부대로 하여금 급히 뒤쫓도록 했다.
손빈은 방연의 추적 속도를 헤아려본 후 날이 저물 무렵 위나라의 마릉에 이를 것으로 짐작하고 그 길 양쪽에 병사들을 매복시켰다. 마릉으로 가는 길은 길이 좁고 험준한 산이어서 매복시키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손빈은 소나무 껍질을 벗겨내고 다음과 같이 글씨를 새겼다.
‘방연은 이 나무 아래서 죽을 것이다’
그리고는 제나라 군사 중 궁사들을 동원하여 날이 저물어 불빛이 보이면 화살을 쏘도록 명했다. 과연 방연이 소나무 밑으로 와서 글씨를 보는 순간, 화살이 비오 듯 날아갔다. 방연은 스스로 목을 찔러 자결하기 전 한 마디 내뱉었다.
“결국 어린애 같은 놈의 이름을 천하에 떨치게 하였구나.”
제나라 군대는 위나라 군대를 쳐부수고 위나라 태자 신(申)을 포로로 잡아 돌아왔다. 이 일로 손빈은 천하에 이름을 떨쳤고 세상에 전해지게 되었다. 손빈이 창안한 삼사법은 무엇인가. 위나라를 포위해 조나라를 구한다는 ‘위위구조(圍魏救趙’와 취사용 솥을 줄여 적을 유인한다는 ‘감조유적(減灶誘敵)과 같은 전법은 지금도 유효한 모범적 사례로 꼽히고 있다.
손빈은 막역한 친구에게 배신을 당했고 병신이 되었지만 그 고통을 이겨내고 승리할 수 있었고, 통쾌한 복수는 물론 자신의 전략을 세상에 알리어 그 이름을 크게 떨쳤다.
손빈이 그렇게 되기까지는 전문적인 병법을 큰 스승 밑에서 공부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처절한 복수심에서 비롯된 고도의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자신의 분노를 좀 더 철저한 병법 공부를 하는데 사용했다고나 할까.
시를 쓰는데도 비분(悲憤)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비분이 없이는 좋은 시를 쓸 수 없다는 것이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비분이 있었을 때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힘을 얻는 법이다. 그러므로 손빈이야말로 비분을 비분으로 그치지 않고 복수도 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병법의 완성을 이룰 수 있었다.
<글: 송하훈>
다음기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