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는 글을 잘 쓰고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는 누구일까? 아마도 천경자 화가이지 않나 싶다. 위작 문제로 많은 논란이 있었던 천경자 화가는 살아생전 글을 참 잘 쓴 분이셨다. 그래서 곧잘 문예지에 그 분의 글이 자주 오르내렸다.
중국 청나라 때에는 화가이자 시인인 정섭이 있다. 자는 극유(克柔)이고 호는 판교(板橋)였다. 그는 사군자인 대나무와 난을 잘 쳤는데 돌도 잘 그렸고, 예서에 해서를 섞은 독특한 서체를 창안해 판교체로 이름을 날렸다.
시와 글과 그림을 잘 그려 삼절(三節)이란 평을 들은 그는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고고하게 살아가는 괴짜 예술가로 알려졌다. 그래서 괴짜 예술가를 일컬어 ‘팔괴(八怪)라고 했는데 그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그가 지은 대표작 '도황행(逃荒行)'이란 시를 소개해 본다.
열흘에 아이 하나 팔아치우고
닷새에 마누라 하나 팔아버렸다.
이제는 이 몸 하나 덩그러니 남아
아득히 멀고 먼 길 홀로 나섰네.
길은 꼬불꼬불 멀기만 한데
관산엔 승냥이, 호랑이 뒤섞여 있구나.
아! 초췌한 나의 살갗과 머리털.
허리와 팔뚝도 부러졌도다.
사람 보면 눈이 먼저 휘둥그레져
삼키려던 먹이 도리어 다시 토해낸다.
길가에 버려진 아기를 보면
가여워 솥에 담아 어깨에 둘러멘다.
제 자식은 모두 팔아버리고 남아 자식 도리어 키워주노라.
이제는 이 한 몸 편해졌지만
마음은 이내 슬퍼지노라.
아득한 남쪽 하늘 두고 온 내 고향 어드메인가.
수많은 사연 안고 말도 못하고
바람 앞에 홀로 서서 눈물 철철 쏟아낸다.
이 시에서 나오는 주인공처럼 처절한 삶을 사는 이가 또 있을까. 오죽했으면 아이들을 팔고 제 아내를 판단 말인가. 이러한 민중들과 함께 어울려 살며 그들의 고통을 함께 느끼고 함께 아파했던 시인 정섭. 그도 책이라면 미치도록 좋아했다. 한 번 책을 들면 그곳이 설령 무덤 속일지라도 읽고 또 읽었고, 읽고 나면 소리 내서 읽었다.
그는 자기만의 공부법과 독서법이 있었는데, 첫째는 <정독이 기초다>였다. 정독을 했을 때 다독도 의미가 있는 것이지 아무 생각 없이 많이만 읽는다는 것은 헛수고라는 거였다.
다음으로는 <독특한 식견을 가져라>였다. 제대로 된 공부는 깊은 생각과 실천을 동반하기 마련인데, “참으로 책 속에 책이 있고 책 밖에 책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무작정 옛사람들이 이끄는 대로 끌려가지 말고 그 대의를 요약해서 자신의 주관을 확립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주관을 확립하지 못하면 마치 호리병 속에 갇혀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므로 ‘특식(特識)’을 가지라고 말한다. 특식이란 말 그대로 특별한 지식을 말하는데, 자기만의 독특한 견해나 식견을 가리키는 것으로 잘못된 논리에 미혹되어 모든 독서와 공부는 진리를 추구하는 행위임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암송과 기억>을 강조했다. 생각 없이 무작정 외우기보다는 어떤 공부든 기본 지식과 기초 사실을 외우는 것은 다음 단계로 도약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판교는 <탐구하고 연마하라> <배웠으면 물음이 있어야 한다> <중점이 있어야 한다>면서 사마천의 <사기>를 예로 들었다.
<사기> 130편 중에 <항우본기>가 단연 음뜸이다. <항우본기> 중에서도 거록 전투 장면, 홍문연 해하 전투가 압권이다. 반복해서 읽다 보면 눈물이 난다. <사기>를 전부 읽고 다 기억한다면 어찌 둔한 자가 아니겠는가.
정판교는 모름지기 공부와 독서는 백성과 나라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어떤 책을 읽을 것인가와 어떻게 읽을 것이고 그 다음에는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가 병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리 송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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