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와 수선화
구성 : 송하훈
1828년 평안도 관찰사인 아버지를 따라 평양에 와 있던 추사는 43세에 중국에서 돌아온 사신으로부터 수선화를 받았다. 추사는 그것을 고려청자 화분에 정성껏 심어 다산에게 보냈는데, 이는 흠모와 존경의 마음에서였다. 당연히 다산은 감동하였다. 그래서 <여유당전서>에는 수선화에 관한 시가 실려 있다.
'신선의 풍채, 도인의 골격을 갖춘 수선화
30년이 지나서 나의 집에 이르렀다
복암노인(이기양의 호)이 일찍이 사신 길에 가지고 왔었는데
추사가 지금 대동강가 관아에서 보냈네.
외딴 마을 두메산골에서는 보기 드문 것이니
처음 보는 것을 앞에 두고 다투어 떠드네.
어린 손자는 애초에 억센 부추 이파리라 하고
앳된 여종 철 이른 마늘 싹이라며 깜짝 놀란다.
흰 꽃잎 푸른 잎새 마주하고 서 있으니
옥 같은 골격 향기로운 살결 절로 묻어나고
맑은 물 한 사발에 바둑알 몇 개 같은 모습
잡티 하나 섞이지 않았는데 무엇을 마시는가.
시진(명나라 의학자)의 <본초강목>과 부옹의 시에서
지나치게 왜곡된 표현을 대하니 슬프기 그지없네.
진흙에 뿌리내린 걸 더러운 데 처했다 하고
기름진 땅에 꽃피우니 습한 곳 좋아한다 하였구나.
비로소 알았네, 대은(大隱 )은 때로 저자에 숨어도
검은 물도 들지 않고 닳지도 않았다는 것을.'
그리고 10여 년이 세월이 흐른 후 50대 중반을 넘긴 나이에 제주에 유배를 온 것이었다.
그런 추사의 눈에는 산과 들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것이 수선화였다. 고려자기에 심어 두릉의 다산 정약용 선생께 보냈던 수선화가 제주도에는 지천으로 깔려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제주도 사람들은 이 수선화를 알아주지 않고 소나 말의 먹이로 취급하고 있었다. 추사는 이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어쩌면 자신의 삶과도 같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토착민들은 이것이 귀한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소나 말이 뜯어먹다가 짓밟아버리기도 하고 보리밭에 많이 피어난 까닭에 마을의 장정이나 동네 아이들이 호미로 줄곧 파버리기도 하지만, 호미로 파내도 다시 나곤 하기 때문에 이것을 원수 보듯 하고 있습니다. 사물이 제자리를 얻지 못한 것도 이와 같습니다.
굴원(屈原)이 “내가 누구의 방초(芳草)를 완성하리요”라고 말한 것이 불행하게도 내게 가깝습니다. 보고 만나는 것마다 이렇게 처량한 감회가 일어나는 것이어서 더욱 눈물이 줄줄 흐르는 것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그리고 추사는 뿌리까지 드러난 수선화를 그린 다음 화재를 쓰고 호정의 <수선화부>에, 남송의 주밀과 원나라 조맹견, 탕후, 명나라 동기창의 명문장들을 약간 변형시켜 옮기면서 자신의 시를 보탠 다음 수선화 법첩을 만들었다.
이런 법첩은 목판본으로 인쇄되어 여러 번 출간되었기 때문에 지금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완당선생선집>에는 수선화를 노래한 시가 모두 다섯 수가 실려 있다. 추사가 수선화를 노래한 것 중 하나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한 점의 겨울 마음 송이송이 둥글어라
그윽하고 담담하고 냉철하고 빼어났네.
매화가 기품이 높다지만 뜨락을 못 면했는데
맑은 물에서 참으로 해탈한 시선을 보내.
끝이 보이지 않는 유배생활. '
그러나 위리안치라는 유배였지만 추사는 제주의 여러 유적지를 찾기도 하고 종종 한라산에 오르기도 했다. 한라산을 오르다가 감로수를 발견한 추사는 멀리 가져갈 수 없는 안타까움을 권돈인에게 보내는 편지에 썼다.
이곳에는 감로수가 있는데, 마치 유천(乳泉)과 같고 단맛은 마치 상품의 석밀(石蜜)과 같아 차가우면서도 향기가 있습니다. 멀리 가져갈 길이 없어 보내지 못하니 안타깝습니다.
추사에게 제주감사들은 호의적으로 대했는데, 이는 권돈인에게 보낸 수십여 통의 간찰들만 보아도 그렇다. 권돈인은 추사의 평생 지기였던 것이다. 주역에 “두 사람이 마음을 같이하면 그 마음이 쇠를 자르고 같이 하는 말은 그 향기가 난과 같다”고 했다. 추사와 권돈인은 바로 이런 금란지교와 같았던 것이다. 그래서 추사가 유배생활을 할 때 그의 건강과 학문예술을 위해 음식 약재와 더불어 서책 등을 편이 닿는 대로 끊임없이 보내주기도 했다.
영의정까지 지낸 권돈인의 호의를 보고 제주감사들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을 것이었다. 비록 유배생활을 하는 추사였지만 정치적으로 힘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주목사가 얼마나 추사에게 과심을 가졌는가에 대해서는 1848년 3월 22일. 제주감사로 부임한 장인식에게 편지를 보낸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추사의 유배지에서 제주목 관아가 있는 곳까지는 하루가 걸려야 하는 거리였는데, 장인식은 자신이 부임하자마자 그 소식을 먼저 추사에게 보냈던 것이다.
추사는 장인식에게 보낸 편지에서 과분한 선물에 감사라다는 내용과 함께 승진을 기원했다. 그 글 속에서 추사의 암묵적 지원도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느낄 수 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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