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청(중국 최고 국학 권위자, 의학자, 역학자)
마음의 병은 마음의 약으로 치유한다
생각이 지나치게 많으면 ‘화’를 내어 치료한다
제나라의 민왕은 생각과 고민이 지나치게 많아 병이 들고 말았다. 다급해진 태자는 당시 송나라의 명의였던 문지를 청하여 민왕의 병을 치료하게 했다.
“전하의 병은 전하를 자극하여 화를 내게 유도하면 됩니다. 그러나 제가 만일 그렇게 했다간 전하가 필경 절 죽이시려고 할 것입니다”
문지는 내키지 않았지만 태자가 어찌나 간곡하게 청하는 바람에 시간을 약속한 뒤 물러났다. 그런데 얼마 후 문지는 도무지 입궐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두 번째 진료 시간을 약속했지만 두 번째 약속 시간이 되어도 문자는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세 번째도 마찬가지였다. 민왕은 화가 치밀었지만 그래도 꾹 참은 채 좋은 말로 타일러 문지를 입궐시키고자 했다. 그러고도 며칠이 지나서야 문지는 겨우 민왕 앞에 얼굴을 내밀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약속을 어긴 것도 모자라 왕 앞에서도 예도 갖추지 않고 신발을 신은 채 성큼성큼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그간 꾹꾹 눌러 온 화를 더 이상 참지 못한 민왕은 병상을 박차고 일어나 문지를 향해 노발대발하며 욕을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렇게 미친 듯이 화를 내고 나자 민왕은 언제 아팠었냐는 듯 병세가 말끔히 호전되었다.
이처럼 분노를 표출함으로써 병을 치료하는 것은 간의 기운을 강하게 해서 한곳에 뭉쳤던 기운을 풀어주는 원리라고 볼 수 있다. 오랫동안 깊은 고민과 잡다한 생각을 버리지 못해 병으로 번지게 된 중상을 치료하는 데도 효과적이다.
고대의 명의 화타도 이런 방법으로 병을 고치는 데 탁월해서 ‘정지’를 통해 다른 ‘정지’로 말미암은 병을 극복하고 이를 치료했다. 한번은 어떤 마을의 군수가 고민이 너무 많아 병이 들었는데 그를 진료한 화타는 이렇게 말했다.
“나리의 병을 고칠 수는 있으나 그 전에 내게 먼저 충분한 사례금을 주어야 하오.”
군수는 명의 화타가 못 고칠 병은 없으니 분명 자기 병도 고치리라고 믿고는 바로 그가 원하는 액수의 사례금을 건넸다. 그런데 화타는 사례금을 받고 나서는 병을 고치려는 어떤 시도도 하지 않은 채, 달랑 서신 한 통만 남기고 그곳을 떠나 버렸다. 설상가상으로 그 서신에는 군수를 향한 욕지거리가 한바탕 신랄하게 적혀 있었다. 서신을 읽고 난 군수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지더니 급기야는 입에서 검은 피를 쏟고 말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피를 토함과 동시에 그 안에 쌓여 있던 울적한 감정들도 함께 쏟아져 병이 순식간에 나았다. 처음부터 화타는 군수의 감정을 격발시켜 그 마음에 쌓인 울적함을 쏟아내게 하여 병을 치료하고자 했던 것이다.
또 중국 금나라 장자화가 편찬한 종합 의서인 『유문사친』에는 이런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다.
부잣집의 어는 귀부인이 생각이 지나치게 많은 탓인지 불면증에 걸려 2년 동안 한 숨도 편히 자지 못해 고생하고 있었다. 명의 장자화가 찾아가 진맥을 해 보니 부인은 비장이 많이 상해 있었다. 비장은 생각을 주관하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자화는 귀부인의 남편에게 그녀를 화나게 할 만한 일이 무엇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러고는 부인에게서 거액의 치료비만 받아 챙기고는 매일같이 음주가무만 즐기다가 처방전 하나 내놓지 않고 훌쩍 떠나고 말았다. 예상대로 대노한 부인은 온몸에 땀을 흘리면서 종일토록 분한 감정을 가누지 못했는데 놀랍게도 그날 밤 부인은 어느 때보다도 더 단잠을 이룰 수 있었다. 그 후로도 계속 부인은 단잠을 이룰 수 있었고 식욕도 왕성해졌다. 나중에 의원이 와서 진맥해 보니 그녀의 불면증은 이미 말끔하게 나아 있었다.
생각이 지나치게 많으면 사람의 행위나 활동이 조절 능력을 잃고 원기가 통하지 못하게 되어 기가 뭉치고 음양의 조화가 깨져 잠을 이루지 못한다. 이럴 때 분노를 격발하여 위로 치솟는 기를 통해 뭉친 기를 뚫어 주면 흥분한 양기가 땀으로 배출되면서 음양의 기운이 서로 교차하게 되는데 그러면 약을 먹지 않고도 불면증을 말끔히 치료할 수 있다.
『사천의림인물』에서도 분노를 통해 우울증을 치료한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왕 씨 성을 가진 한 유생이 혼자 어두운 방에 처박혀서 빛을 싫어하는 괴이한 병에 걸렸다. 병세가 가중되자 유명한 의원이란 의원은 다 찾아다녔지만 병을 치료할 수 없었다. 명의 이건앙이 그 동네를 지나간다는 소문이 들리자 왕 씨는 사람을 보내 그에게 진료를 청했다. 이건앙은 왕 씨의 병세를 꼼꼼히 살피더니 처방전을 써 줄 생각은 않고 대뜸 왕 씨가 과거에 써 놓은 문장을 보여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고는 왕 씨가 내놓은 문장을 들고 집 밖으로 나가 큰 소리로 읽기 시작했는데 일부러 글씨를 잘못 읽거나 끊어 읽기를 제멋대로 해서 무척 조잡한 글처럼 들리게 했다. 왕 씨는 노발대발하며 그를 따라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지금 뭣 하는 것이오? 끊어 읽기도 제대로 못하는 주제에 왜 남의 글을 멋대로 읽으시는 것입니까? 그것도 그렇게 큰 소리로 말이오!”
그런데 왕씨의 반발에도 아랑곳 않고 이건앙은 한층 더 소리 높여 제멋대로 글을 낭송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왕 씨는 계속해서 핏대를 세우며 이건앙에게 따졌다. 그렇게 한참을 따지다가 생각해 보니 문가 좀 이상했다. 원래 밝은 빛을 두려워하던 자신이 어느 새 뜨거운 땡볕 아래 서서 소리를 지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을 계기로 왕 씨는 그간 자신의 마음을 괴롭히던 우울한 마음을 떨쳐 보내고 병을 완치할 수 있었다.
생각이 많아 생기는 마음의 질병은 종종 분노의 감정을 표출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 이는 화를 낼 때 간의 기운이 상승, 폭발하는 작용을 이용해 체내의 기운이 한곳에 정체되어 있는 것을 풀어주는 원리이다. 오랫동안 생각해도 해결하지 못하거나 기운이 뭉쳐서 질병으로 번진 경우, 비정상적으로 기분이 울적해지는 병도 치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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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이 과하면 ‘생각’으로 해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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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궁사영(杯弓蛇影)’이라는 고사가 있다.
옛날 진나라의 악광이라는 사람이 친한 친구를 초대하여 연회를 베풀었다. 주흥이 오르자 악광에게서 건네받은 술잔을 막 기울이려던 찰나, 친구는 자신의 잔에 뱀의 형상이 비치는 것을 발견하였다. 순간적으로 친구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러나 친한 벗이 권한 술잔이니만큼 차마 면전에서 거절하지 못하고 끝까지 삼키고는 곧바로 온몸이 불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왠지 메스껍기도 하고 몸이 점점 경직되어 가는 것 같았다. 뱀을 삼켰으니 분명 온 몸에 독이 퍼졌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악광은 그런 친구가 걱정이 되는 한편 앞뒤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아 답답했다. 연회장에 뱀이 있을 리가 만무한데 친구는 한사코 뱀이 든 술을 마셔서 병에 걸렸다는 것이다.
‘내가 뱀술을 내놓은 것도 아닌데 어찌 술잔에 뱀이 들어간단 말인가? 절대 그럴 리 없지.’
그래서 악광은 연회장 주변을 샅샅이 살펴보았다. 한참을 살피던 악광의 눈빛이 벽을 향했을 때 그는 이 모든 일의 원인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벽에 걸려 있던 뱀 모양의 활이었다. 악광을 다시 친구에게 술을 따르고 물었다.
“이보게, 이 술잔에도 뱀이 들어 있는가?”
“아직도 있네.”
그러자 악광을 친구가 본 것은 진짜 뱀이 아니라 벽에 걸린 뱀 모양 활의 그림자였다고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러자 친구의 얼굴에서 두려운 기색이 가시고 혈색이 돌더니 언제 아팠냐는 듯이 병세가 호전되었다.
훗날 이 이야기는 ‘배궁사영’이라는 고사로 전해져 내려오며 쓸데없는 의심이나 걱정 때문에 괜히 놀라거나 병이 생기는 사람을 의미하게 되었다. 이럴 때는 악광이 했던 것처럼 깊이 생각하게 함으로써 원인을 밝혀 이해시키면 오해를 풀고 병이 완치될 수 있다.
『황제내경』도 우리에게 이런 방법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사승공’ 처방이다. 이는 두려움에 시달리는 사람이 두려움의 원인을 깊이 고민하고 원인을 제거하면 자연희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는 말이다.
『유문사친』에는 명의 장자화가 한 부인의 병을 치료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부인이 앓고 있던 것은 ‘공포증’이었다. 무엇을 보든지 깜짝 놀라고 두려워하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증세을 보였다. 장자화는 무턱대고 그녀에게 약을 지어 주기보다는 우선 그녀에게 어째서 그렇게 마음에 두려움이 생겼는지 물었다. 장자화는 그녀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다음, 그녀가 말한 두려움의 원인을 하나하나 분석해 주기 시작했다. 원인을 알게 되자 그녀는 더 이상 두려움에 시달리지 않게 되었다.
이와 같은 이야기와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현대인들도 세상을 살면서 여러 문제들을 만나고 어떨 때는 엄청난 공포에 시달리기도 한다. 사실 모든 두려움에는 원인이 있기 마련이다. 불교에서는 모든 것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생겨나므로 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도 있다고 말한다. 병도 원인을 찾아내야 치료법을 알 수 있다. 사실 서양에서도 이러한 치료 요법을 쓰고 있다. 예컨대 프로이트는 심리적인 질병을 치료할 때 정신 분석 방법을 사용했다. 그래서 어렸을 때 내면에 무슨 상처를 입었는지, 마음에 무슨 응어리가 있는지 등을 분석하여 그 부분을 상담을 통해 해결함으로써 정신적인 문제를 치료하고자 했다. 물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 기본적으로 성 문제로 귀결된다는 점은 다소 협착한 부분이 없지 않다.
이처럼 깊이 생각하여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은 흩어진 신기를 불러 모아 환자가 스스로 자기 내면의 나쁜 감정을 없애고 건강을 회복하는 방법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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