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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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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웅 칼럼 '화가로서 최고의 명예를 누리다 죽은, 루벤스'
정관웅 칼럼니스트와 함께하는 인문학으로 본 세상-속닥속닥 그림이야기
화가로서 최고의 명예를 누리다 죽은, 루벤스
레우키포스 딸들의 납치, 사랑의 정원
인간적인 매력과 뛰어난 학식으로도 널리 인정받는 사람
 
아침을 열면서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하얀 눈이 가슴을 적시고 한 폭의 서양화를 만들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의 삶을 바라보았다. 행복과 불행의 시간과 교차점 들 말이다. 그래서 떠오른 생각대로 오늘은 그림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예술가 중에는 불행한 삶을 살다 간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루벤스는 예술가로서는 보기 드물게 행복을 누렸던 화가이다. 그가 갖가지 행복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탁월한 그림 솜씨 덕분이었다. <레우키포스 딸들의 납치>란 그림은 루벤스가 남긴 대표작 가운데 하나이다. 이 그림은 그리스 신화에 나온 카스토르와 폴룩스 쌍둥이 형제가 레우키포스의 두 딸을 강제로 납치하는 내용을 다룬 루벤스의 걸작이다.
 
17세기 유럽은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신생국가가 새롭게 등장해 선진 이탈리아 문화가 전 유럽으로 퍼져 나갔다. 이탈리아 양식과 취향에서 벗어난 예술가들은 놀라운 상상력으로 새로운 시대를 발전시켰다. 이 시기에 등장한 미술이 바로크 양식이다.
바로크 미술의 거장이 루벤스다. 루벤스는 17세기 초 혜성같이 유럽 미술계에 등장했다. 그는 종교, 신화, 초상화 등 다양한 주제를 열정적으로 소화했다.
루벤스에게 그리스 로마 신화는 최고의 주제였다. 루벤스가 신화를 통해 여성의 누드를 관능적으로 표현한 대표적인 작품이 <레우키포스 딸들의 납치>.
그리스 아르고스의 왕 레우키포스는 아름다운 딸 힐라에이라(기쁨)와 포이베(화려함)가 있었 다. 그녀들은 륀케우스와 이다스 쌍둥이와 약혼을 했다. 제우스와 레다 사이에서 태어난 쌍둥이 카스토로와 폴리테우케스가 레우키포스의 딸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쌍둥이 형 카스토로는 말을 잘들이고 조종하는 능력이 탁월했고 폴리테우케스는 결투를 잘하기로 유명했다.
그들은 힐라에이라와 포이베의 결혼식에 참석해 그녀들을 납치해 도망을 간다. 레우키포스의 딸들의 약혼자들은 쌍둥이들이 쫓아와 싸움을 하게 된다. 이 싸움에서 카스로토로는 피살되었다. 형의 죽음을 슬퍼한 폴리테우케스는 제우스에게 형 대신 죽게 해달라고 한다. 그들은 죽어서 하늘의 쌍둥이 별자리가 되었다.


루베스는 <레우키포스 딸들의 납치> 이 작품에서 전체 줄거리를 요약해 한 장면으로 묘사했다. 카스토로는 검은 말 위에 앉아 있고 동생 폴리테우케스는 갑옷과 투구로 무장하지 않은 채 자신의 백마에서 내려 레우키포스의 딸들을 잡고 있다.

<레우키포스 딸들의 납치>-1616, 캔버스에 유채, 224*210, 뮌헨 알테 피나코테크 미술관 소장

화면 아래쪽에 있는 여인이 포이베로서 금빛으로 빛나는 결혼식 옷이 벗겨진 채 저항하고 있다. 폴리테우케스의 팔에는 힐라에이라가 있다. 그녀는 도움을 청하기 위해 팔을 뻗어 하늘을 보고 있다. 그녀의 벗겨진 붉은 색의 옷은 카스토로의 어깨에 걸쳐 있는데 힐라에이라는 원하는 사람이 카스토로라는 것은 암시한다.
이 사건의 긴장감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것은 말이다. 부릅뜬 눈으로 발을 들고 우뚝 서 있는 말은 이 장면에서 동물적인 힘을 상징한다. 화면 왼쪽 검은 날개를 달고 있는 큐피드는 그녀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카스토로의 말고삐를 잡고 있다.
루벤스는 두 명의 여인과 두 명의 남자 그리고 큐피드로 이루어진 인물들을 한 덩어리로 묶어 놓아 시선을 분리시키지 않으면서도 인물들 각자 생동감 있게 표현했다.
루벤스는 말년에 50대에 첫 번째 아내가 죽어 실의에 빠졌지만 16살의 어린 헬레나 푸르망을 만나 결혼함으로서 사랑의 열정에 휩싸이기 된다. 루벤스는 가정에 충실하기 위해 1635년 일체의 정치적 활동을 그만두고 헬레나 푸르망과 함께 시골로 내려간다.


루벤스가 아내 헬레나 푸르망과의 사랑을 표현한 작품이 <사랑의 정원>
이 작품에서 화면 왼쪽 모자를 쓰고 있는 남자가 루벤스다. 그는 아내 헬레네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춤을 추고 있다. 큐피드가 그녀의 뒤에 서 있다.

<사랑의 정원>-1632~33년경, 캔버스에 유채, 198*283,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소장

화면 중앙에는 아름다운 귀부인들과 신사들이 이야기를 즐겁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하늘에는 천사들이 꽃을 들고 날아다니고 있다. 화면 왼쪽 상단에 돌고래 위에 앉아 있는 여인의 조각상에서는 물이 뿜어져 나온다. 이 조각상은 다산과 사랑을 여신을 상징한다.
루벤스의 이 작품은 결혼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되었다. 그는 이 작품에서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아름답게 조화시켰다.

페테르 파울 루벤스<1577~1640>는 화가로서의 활동만 한 것이 아니었다. 유럽의 왕족들의 초상화 의뢰로 왕실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던 루벤스에게 예술가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외교적 역할까지 요구하기에 이른다. 루벤스는 외교관으로서 영국과 스페인의 관계를 성공적으로 해결함으로서 1629년 스페인 펠리페 4세에게, 1630년 영국의 찰스 1세에게 작위를 받음으로써 신분상승이 이뤄진다.
루벤스는 화려한 색채와 역동감 넘치는 대표적인 바로크 작가 루벤스는 정열적인 여성의 나체를 그려낸 화가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깊은 신앙심으로 그려낸 성스러운 종교화도 유명하다. 3000점 이상의 다작을 하고, 성스러움과 에로틱함이라는 전혀 다른 주제의 그림을 그렸지만, 루벤스의 그림은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이 있어서,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

루벤스의 아버지는 독실한 개신교도였지만, 고향인 네덜란드는 카톨릭을 숭상했다. 그래서 종교적 박해와 정치적 혼란을 피해 그의 가족은 독일 북부로 왔고, 1577년 루벤스가 태어났다. 10년 정도 독일에서 자랐으나, 집안의 가장인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루벤스의 가족은 다시 네덜란드로 돌아가고, 카톨릭으로 개종했다. 어려운 가정 형편을 돌보기 위해 루벤스는 귀족의 시동이 되기도 했으나, 어렸을 때부터 그림에 소질을 보였기에 곧 화가지망생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23살의 나이에 루벤스는 이탈리아의 만토바 대공이라는 귀족의 도움으로 궁정화가가 되었고, 궁 안에서 생활하면서 유럽 최고의 예술과 문화를 접하게 되어 다른 화가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또한 고대 그리스, 로마의 문화가 발전하고 있는 이탈리아에서, 특히 미켈란젤로의 조각을 연구하면서 자신만의 회화적 언어로 고대 미술 작품을 부활시켰다. 그가 그린 그림 속 인물들의 포즈는 대부분 고대 조각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사람은 인간적인 매력과 학식이 있어야한다.

루벤스는 화가로서의 명성만 쌓은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매력과 뛰어난 학식으로도 널리 인정받게 되었다. 그의 나이 25살 때에는 스페인의 왕에게 선물을 전달하기 위한 외교 사절로 파견되기도 하였다. 그가 스페인으로 가는 도중 선물로 가지고 간 그림이 심하게 훼손되어 자신이 다시 그렸다가, 오히려 그 작품이 대공의 눈에 들게 된 일도 있었다. 그 대공은 루벤스에게 자신의 초상화를 부탁하여 스페인의 화가들에게도 루벤스 스타일의 영향이 시작 되었다.
그는 8년간 이탈리아에 머물면서 6개 국어를 익히기도 했다. 그는 외교관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었으나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다시 네덜란드로 돌아갔다. 고향에서 열렬히 환영을 받은 루벤스는 그 뒤로 다시는 이탈리아에 가지 못하고, 네덜란드에서 지내게 되었다. 마음 속으로 만 그리면서 말이다.
고향인 네덜란드에서 그는 본격적으로 제자를 키우는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루벤스의 제자가 되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지원자를 되돌려 보내야 하는 상황이 되기도 했다. 그는 많은 도제를 거느리고 대형 아틀리에를 운영하였고, 그곳에서 루벤스는 구상만 하고, 대부분 조수들의 도움으로 그림을 그린 후 그는 마무리 작업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삼천 점이 넘는 루벤스의 작품들 중에서 몇 점까지가 그의 작품인지 논란이 되기도 한다. 혹자들은 육백 점 정도가 루벤스의 작품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작품의 가격은 루벤스가 들인 시간과 작품의 크기에 다라 매겨졌다.
루벤스는 평생 두 번 결혼을 했으며 아홉 명의 자식을 두었으며, 아내에게 충실한 남편이었고, 친절한 아버지였다. 첫 번째 아내를 흑사병으로 잃은 뒤, 루벤스는 외교관의 임무에 충실했다. 아마도 슬픔을 잊기 위해서 여행에 열중했던 것 같다. 5년 뒤 그는 53살의 나이에 헬레너와 재혼을 하는 데요, 그녀는 첫 번째 아내의 조카인 16살의 처녀였습니다. 하지만 루벤스는 젊은 그녀에게 완전히 마음을 빼앗겼고, 젊은 아내는 늙은 화가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가 되어주었다.
1636년 루벤스와 젊은 아내는 시골의 조용한 저택에서 살면서 말년의 작품들을 완성해 나갔다. 관절염으로 고생을 하긴 했지만 그의 작품들은 목가적이면서 향수어린 분위기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63살의 생일을 한 달 앞둔 어느 날 팔에 마비증세를 가져온 통풍으로 인해 숨을 거두었다. 한결 성숙해진 예술가의 조용하고도 평안한 죽음이었다.
삶은 만들어 가는 것이고 그곳에는 깊은 사랑이 필요한 것이다. 사랑의 깊은 열정과 그리움 말이다. 그것은 아름다운 마음으로 장식된 삶이되기 때문이다. 사랑을 심는 일이 필요하다.
* 바로크 양식(baroque樣式)17~18세기 유럽에서 성행한, 감각적 풍요, 극적 효과, 생동감을 특징으로 하는 예술 양식

  

 

정관웅
힐링코칭상담연구소장
시인칼럼니스트
강진고을신문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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