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진만 햇발
녹색의 땅 ‘영산강 살리기’ 현장을 찾아서
박주익
현) 목포소방서 구조구급과장 전남대 법학과 졸업, 목포대 법학석사
오랜만에 파릇파릇한 들풀의 새싹이 돋아나는 영산강 수계 나주시 일원을 둘러봤다. ‘4대강 살리기’ 공사가 한창이었다. 영산동 영산지구 강변도로를 따라 나주시청이 보이는 강가에서는 벌써부터 ‘영산지구생태하천’을 조성하고 있는 포크레인이 분주했다. 강을 살려 맑은 물을 흐르게 하고 하천을 준설해 뱃길을 복원하자는 ‘영산강 살리기’ 계획은 바야흐로 ‘영산강 르네상스’를 열자는 구호로 이어지고 있었다.
우리나라 4대강의 하나인 영산강은 길이 115.5km, 유역면적 3371㎢로 20여년 전엔 뱃길을 이용한 교통로로 손색이 없었다. 목포로부터 73km 지점인 영산포는 황포돛대를 매단 목선이 드나들던 시절, 항구의 개들도 돈을 물고 다녔다는 남도의 명물 ‘홍어파시’가 열리던 곳이었다.
1970-80년대 강진에서 광주를 가자면 지나던 영산구교는 새롭게 단장해 옛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고, 1981년 12월 목포와 영암 사이에 영산강 하구언이 들어서기 전까진 바닷물의 영향이 영산포 일대까지 미쳐 연안 농경지가 하천 범람과 농지 침식 등 홍수 피해를 종종 입곤 했다.
나주대교를 지나 영산강 상류권역인 지석천으로 향했다. 화순에서 나주로 흘러드는 남평읍 부근의 천변에선 인근 노인들이 봄을 맞아 삼삼오오 산책하고 있었다. 저 멀리엔 남도의 심장 무등산의 잔설이 보였다.
영산강의 지천인 지석천 상류는 비교적 오염이 덜 된 곳이다. 광주광역시와 거리도 가까워 요양시설이나 실버타운이 들어서기에 적합한 곳으로, 산책객들을 뒤로 한 왜가리의 모습이 평화로워 보였다. 이 곳에서는 농경지 인근 제방보수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나주시 남평읍을 돌아 지석천이 이어지는 산포면 지석강으로 향했다. 수년전 큰 비가 오면 차가 지나기 힘들었던 내기리 부근 잠수교엔 지금은 큰 교량이 들어섰다. 잠수교를 지나다 목숨을 잃은 사람도 있어 안타까운 일이 많았는데 지금은 옛일이 됐다.
영산강 지류인 지석강을 따라 금천면 방향으로 내려오는 길은 비포장 길이었다. 갈수기 물이 마른 지석강의 하류에서는 하상준설 작업이 한창이었다. 강둑을 따라 봄농사 준비에 바쁜 농기계가 서둘러 달리고 있었다. 섬을 이룬 강 가운데에선 철새들이 먹이를 찾아 날개 짓하며 봄을 재촉하는 듯 했다. 마침 멀리서 말을 타고 달리는 광경도 보였다.
나주시는 영산강변을 따라 자전거가 달리는 도로를 만드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 기회에 자전거뿐만 아니라 말이나 사람이 달리는 도로도 생각해 볼 일이다. 자연과 인간, 동식물의 생태계가 어우러진 친환경 영산강을 만드는 것이다.
영산강의 본류인 나주대교 아래 넓은 하천에는 영산강환경감시단의 버스와 모형 헬기가 오염방지 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토사가 쌓인 드넓은 강변에는 농사를 짓고자 하는 주민들이 간혹 보였고, 논밭에는 생태하천 복원을 위해 경작을 금지하는 표지가 많았다. 강 하류 삼각주를 연상시키는 이 일대는 봄이면 창포꽃 등이 피어 노란 원색 물결을 이루는 곳으로, 강 주변의 경작 대신 생태하천으로 복원해 관광자원으로 활용한다면 더 이상적일 것 같았다.
식당에서 만난 신모씨(49·산업디자인업)는 “영산강을 살리려면 강 상류 인접 시군에서 농경지와 공장 또는 가정의 생활하수 등 오염되지 않는 물을 흘러 보내야 하며, 이를 위해 영산강을 낀 7~8개 시군이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샛강 살리기나 강 주변 숲 복원을 통해 쾌적한 주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며 “영산강 살리기의 하나인 뱃길을 여는 것도 하상을 준설하는 방식으로는 수년 내에 토사나 오염원이 쌓이게 되므로, 영산강 하구언을 터야 한다”고 역설했다.
퇴직 후 귀농이 꿈이라는 신씨는 “영산강을 낀 나주시 일원은 자전거나 마을택시를 타고 다니며 하루를 보내는 관광코스를 개발해 머무를 수 있는 도시로 만들어야 한다”며 “강변 산책로 등을 조성해 ‘저탄소 녹색도시’ 또는 ‘슬로우 시티’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영산강 주변에는 수없는 볼거리와 문화유산이 산재해 있다. 다시면 회진리에는 잠시 머물면서 체험할 수 있는 ‘천연염색문화관’이 들어섰다. 인근에는 조선 중기 황진이를 추모한 시를 썼던 백호 임제를 기리는 ‘영모정’이 자리하고 있다. 정자 앞으로 뿌리를 내린 거목과 고요히 흐르는 영산강을 보고 있으면, 풍류가객 백호의 기개와 세월의 향기를 가늠할 수 있다. 남도의 봄과 함께 찾아온 ‘영산강 살리기’가 순풍을 불어 인근 탐진강을 살리고 더 멀리로는 섬진강까지 살리는 친환경 ‘녹색의 땅’ 전남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 첨부 사진 : 나주시 영산포 등대 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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