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초고령화시대(57회)
대구면 계치마을
김순심 할머니(90)
“서방 없는 것은 필요 없어 배고픈 것이 젤로 서러운 것이여”
“어찌야 쓰까, 안죽고 자식들 고생만 시킨게······.”
남편이 일본으로 떠난 지 보름쯤 되었을 때, 일본이 망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일본에 어마어마한 폭탄이 떨어져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고도 했다. 보름 전에 일본으로 징용을 간 남편이 행여 돌아올까 하는 설렘과 혹시나 하는 두려움이 반반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남편이 일본 나고야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왔다.
장흥이 고향인 김할머니는 19살에 장흥 원포로 6살 위인 총각과 결혼했다. 4형제 중 둘째였던 남편은 이미 징병도 다녀왔으며, 짐차를 운전할 수 있는 운전 기술이 있었다.
“아이고 우리 아그들 어쩌꼬·····놀래서·····평생 아그들 보고 살었어.”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에 아이들부터 걱정되었다. 그러나 시부모도 계셨고 시아제식구들도 함께 살고 있었기에 의지가 되리라 생각했지만 당장 현실은 달랐다. 생각과는 달리 시부모와 큰동서와는 더 이상 함께 살아갈 수가 없었다. 얼마 후 일본에서 건너온 남편의 유물상자에는 남편이름과 성씨가 쓰여 있었으며 사진이 한 장 있을 뿐이었다. 그러고 얼마 후 일본으로부터 30만원이 보상금으로 돌아왔다. 그때 친절하게도 시아버지 벌 되는 당숙이 조선 돈으로 교환해준다더니 감감소식이었다. 그러다가 돈이 필요해서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었더니 당숙은 만원을 손에 쥐어 주었다.
“뭣을 알아야지 까막눈인데다가, 일본 돈을 조선 돈으로 교환해야 쓴다고 달라고 해서 돈을 주었더니, 그 양반이 노름으로 써 불고, 딱 묵어 불고는 안줘.”
남편의 목숨 값은 그렇게 날라 갔다. 또한 시댁에서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힘든 나날이었다.
“먹을 것도 없이 일만허니까 늘 자빠져부러, 며칠을 굶기고 일만 시켜.”
시댁에서는 왜 그리도 미워라 하는지 견딜 수가 없었다. 친정에서는 어쩌든지 애들보고 살라고 했다. 그러나 자신이 며칠을 굶어가며 소처럼 일하는 것은 그렇다고 치지만 7살 된 아들과 두 딸을 굶기고 살 수는 없었다. 또한 시부모가 있어도 손지 간에 싸움이 생기면 아이를 두들겨 패는 모습을 볼 때면 차마 견딜 수가 없었다.
“자식을 죽여불고 나도 죽어불 마음으로 강물을 바라봄서 빠져 죽을라고 앉아 있었어.”
김할머니는 도저히 그곳에서 살 수가 없어 밤에 도망치다 시피하며 계치마을로 왔다. 그때 아들에게 일본에서 보내온 유물상자를 보듬고 가게 하면서 다시 한번 열어보았다. 그 안에는 남편의 이름과 성씨가 적힌 종이와 사진1장이 있었다. 누구 뼈다귀인지 알지 못해도 뼈다귀 하나라도 있었으면 그대로 지고 왔을 것을, 뼈다귀 하나도 없는 것을 뭐 하러 지고 가나 싶어 오던 길에 던져버렸다. 계치마을에는 시동생 내외가 살고 있었다. 시동생내외는 인정이 많았다. 힘든 김할머니에게 늘 와서 함께 살자고 했었기에 마음먹고 온 길이었다. 그러나 계치마을에서도 마땅히 살 방 한 칸이 있을 리가 없었다.
“넘이 좋게 지어 놓은 돼지막을 보먼 좋아 보이더만.”
아이들을 데리고 잠시 눈을 붙일 방 하나가 없어 잘 지어진 돼지막이 좋아보였다. 그것도 돼지들이 차지하고 있으니 돼지가 부럽게만 보였다.
“넘의 작은방 하나 얻어가고 살면서 퍽 고생 많이 했지.”
아들이 성장하여 세 번 일본을 다녀왔다.
“일본사람은 정직허더만, 그 즉시 줬응께 우리는 못준다고 허더랑만.”
그 돈이면 전답도 사고 중간 부자로는 살 것인데, 귀한 남편의 몸값을 없애 버린 것이 후회스러웠다. 무엇보다도 자식들에게 먹일 것조차 없어 굶겨 재우고 나면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서 뜬눈으로 지 샌 채 눈이 탱탱 부어 뜰 수가 없었다.
“배고프고 서러운디, 서방없는것은 필요없어, 배고픈 것이 젤 서로운것이여.”(이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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