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수는 왜 암행어사의 전설이 됐나?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곡식을 털어 굶주린 백성들을 위해 내어놓았다.
조선 최고의 실학자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그리고 명재상이었던 채제공의 한 가지 공통점은 모두 암행어사 직을수행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를 않을 것이다. 이렇게 쟁쟁한 인물을 두고도 암행어사 전설로 내려오는 사람은 박문수이다. 그렇다면 박문수는 과연 어떤 암행어사였을 까?
충남 천안시 북면 충헌사가 있다. 이곳은 박문수를 모시고 있는 사당이다. 고령박씨 집안에 내려오는 박문수의 유물들이 이곳에 보관되어 있다. 박문수가 받은 각종 교지들이 있다. 조정에 주요한 관직들을 두루 거쳤음을 알 수가 있다. 고령박씨 소론 명문가 집안에서 자란 박문수는 일찍부터 재주가 뛰어나고 총명한 것으로 유명했다. 그러나 박문수의 어린 시절의 삶은 순탄하지 못했다.
소년시절의 박문수는 매우 불행했다. 여섯 살 때 조부와 백부가 돌아가시더니 여덟 살 때 부친마저 세상을 떠나 어머니 경주 이씨의 손에서 자랐다. 어머니는 온종일 길쌈하여 아들 공부를 가르쳤다. 어머니는 가정이 어려운 형편이었으나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살았다. 어린 문수에게는 인생에 이런 것이 가장 큰 가르침이 되었다. 그러다가 외가에 가서 외숙 이태좌의 밑에서 수학修學 하였다. 성장할수록 매사에 얽매이지 않고 큰 뜻이 있었으며 친우들의 모임에서도 의기가 뛰어났고 담론이 펄펄 날아서 항상 한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굴복시켰다. 이와 같은 박문수의 재기는 식우지기食牛之氣라는 단어로 표현되고 있는데, 이는 호랑이 새끼가 아직 자라지 않았어도 충분히 소를 잡아먹을 수 있다는 의미로 기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박문수는 금강산에 올라 허균의 형 허봉이 지은 ‘풍악기사제’를 읊으며, 벼슬길에 나가더라도 당쟁에 휩쓸리지 말고 차라리 그럴 바에는 벼슬길에서 물러나겠다는 뜻과 더불어 진심으로 백성을 위해 일하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풍류객이 되겠다는 다짐을 스스로에게 했다. 이와 같은 그의 다짐대로 박문수는 암행어사로 활약하며 위험을 마다않고 억울한 이들의 누명을 벗겨주고 탐관오리의 횡포로부터 백성들의 고단함을 덜어준다.
조선시대 과거시험을 앞두고 젊은이 들이 많이 찾았다고 하는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칠장사가 있다. 이곳에서 기도를 하면 장원급제를 한다는 전설 때문이었다. 박문수도 이곳에서 기도를 드렸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박문수가 이곳의 나한전에서 기도를 하고 잠을 잤는데 나한님께서 답안지를 가르쳐 주셨다고 한다. 박문수는 1723년(경종3년) 33살이 되던 때 마침내 과거에 합격한다. 그는 급제하여 교지를 받았다. 그리고 4년 후 박문수는 암행어사로 임명된다. 암행어사는 왕이 직접 선발해서 뽑을 정도로 왕의 신임이 두터운 사람만이 뽑힐 수 있었다. 박문수는 바로 그런 존재였다. 암행어사는 왕과 가장 가까우면서 관명한 사람이어야 하고 두 번째로는 시무에 습관된 자를 뽑았다. 어떤 일에 무엇을 감시하려면 그 일에 대한 것을 잘 알아야 하기 때문에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었다. 아주 초보자 같은 그런 사람은 보내지 않았다. 일정한 일에 경험한 사람을 파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왕은 암행어사가 지방으로 내려가 수행해야 할 일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그 내용을 적은 것이 봉서다. 어떤 일을 해오너라 하고 적어져 있다. 그 예를 들면 그 지방에는 어떤 어떤 문제점이 있고 행복의 문제 노비문제 등 구체적으로 되어있다. 이렇게 암행어사는 자신에게 주어진 봉서封書를 읽고 자기의 임무와 암행지를 알았다. 암행어사로 내가 갈 수 있는지 어디로 갈지는 알 수가 없었다. 봉서를 받고 성문 밖으로 나가서 이것을 펼쳐 봤을 때 내가 어디로 갈지를 알 수가 있었다. 봉서에는 암행어사가 나갈 지역이 적혀있다. 그런데 봉서는 반듯이 도성을 벋어나 읽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봉서를 보면 집에도 들리지 못하고 곧바로 떠나야 했다.
좀 더 자세히 알아보면 봉서로서 특히 중요한 것은 암행어사에게 내리는 것인데, 그 봉서의 겉에는 ‘도남모처개탁到南某處開拆(도남모처개탁 : 남쪽 모처에 이르러 열어보도록 하라)’이라고 쓰여 져 있다.
그리고 봉서를 받은 관원은 보아야 할 장소에서 개봉하였으며, 그에 지시된 대로 즉시 대상 지방으로 출발하였다. 봉서가 문서 형태로 전하여지고 있는 것은 극히 드물다.
이 중 1899년 윤헌섭尹憲燮에게 내린 봉서에는 봉투에 ‘칙명충청남도암행어사신윤헌섭勅命忠淸南道暗行御史臣尹憲燮’이라고 쓰여 있어 그 이전의 것과 외형상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내용은 크게 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암행어사에게 내리는 봉서에는 감찰할 대상지방의 제반 문제점을 제시하고, 그 일을 원만히 수행하여 보고할 것을 지시하는 내용과 그 일을 수행하는 데에 준칙이 되는 사목(事目) 또는 절목(節目)과 마패·유척(鍮尺) 등을 내려준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암행활동은 어떻게 했을까? 임하필기(林下筆記)에 박문수를 <종적을 잘 감춘 사람
영성(박문수)>이라고 평가
마패와 유척은 암행어사의 상징으로서, 마패는 역마와 역졸을 이용할 수 있는 증명이며, 유척은 놋쇠로 만든 자로서 검시(檢屍)할 때 쓰는 필수용구이다. 그렇다면 암행활동은 어떻게 했을까?
당시 암행어사 박래겸이 쓴 일기(서수일기西繡日記) 한권이 있다. 그 일기를 보면 업무를 수행하기위해서 얼마나 많은 고충을 겪어야 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무엇보다 암행어사들은 그 신분을 숨기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고 한다. 때로는 의심을 품고 발자취를 더듬어 몰래 쫓아다니면서 떨어지지 않아 몹시 힘이 들었다. 사람들의 의심을 받고 희생을 당하는 일도 자주 있었다. 암행어사라고 의심을 받았을 경우 고의적인 방해가 있을 수 있었고 또는 가짜어사라고 몰려 죽임을 당하는 그런 경우도 있었다. 그러니까 암행어사는 그 자신을 숨기기 위해서 때로는 목숨을 버리는 위험까지도 감수해야 할 대단히 어려운 직무였다고 볼 수 있다.
전라남도 암행어사 홍양한은 영조 39년 4월 9일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관하로 출도직전 점심밥을 먹고 죽은 것이었다. 이 때문에 독살의 의혹을 받았다. 이처럼 암행어사들이 신분을 감추고 활동하기란 쉽지가 않았다. 그렇다면 박문수는 어떠했을까? 조선 말기의 문신 이유원(李裕元)이 자신의 수록류(隨錄類)와 악부시를 모아 엮은 책 임하필기(林下筆記)에서는 박문수를 두고 종적을 잘 감춘 사람은 영성(박문수)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가난한 선비로 변장을 하고 마을 곳곳을 염탐하러 다녔다. 당시에는 수령들의 수탈과(뇌물을 거두고 수탈) 불법적인 악행들이 끝임 없이 벌어지고 있었다. 박문수는 수령들의 비리를 낱낱이 고발하고 이들을 가차 없이 처벌했다. 평소 박문수는 탐관징계법을 엄격하게 집행해야한다고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어사로 내려갔는데 더욱이 흉년이 들었는데도 구빈들에게 구호 사업을 소흘하게 대했던 수령들을 가차 없이 징벌했기 때문에 인기를 한 몸에 받았고 그때부터 이미 어사로서 전설이 되었다.
<충남 천안시 북면 충헌사, 박문수를 모시고 있는 사당>
분징지청分徵之請 - 굶주린 백성을 위해 조정의 대신들도 가지고 있던 곡식을 내놓아야 한다.
박문수가 암행어사로 내려가 있을 때였다. 수재水災와 한재旱災가 삼남三南에서 가장 혹독하게 마을을 휩쓸고 있었다. 박문수는 더 이상 백성들의 고통을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곡식을 털어 굶주린 백성들을 위해 내어놓았다. 백성을 위한 선정이 무엇인가를 박문수는 몸소 보여주고 있었다. 이것은 암행어사로 행하는 자세로는 상당히 파격적인 것이다. 자신의 사제를 털어 백성을 구했다. 분징지청分徵之請 즉 굶주린 백성을 위해 조정의 대신들도 가지고 있던 곡식을 내놓아야 한다고, 나누어 낼 것을 청했다. 당연히 당시 지배계층들이 이런 박문수의 행동을 쉽게 용납할 수 없었다. 급기야 박문수에 대한 비난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조정의 반대 세력이 가만히 있지 않고 성소가 빗발쳤다. 노론 대신들은 박문수가 조정을 비난하는 것이라고 상소를 한 것이다. 당시에는 노론이 권력을 쥐고 있었던 시대였다. 정치적으로 소론인 박문수는 적대시 되고 있었다. 기록을 보면 국체國體에 손상이 많다, 그 명령을 중지해야한다 라고 적혀있다.
백성들의 고통은 더해갔지만 누구하나 곡식을 내놓지 않았다. 진곡(陳穀묵은곡식)을 내놓을 사람들은 당연히 지방의 지주들이다. 그들에게 반 강제적으로 출연出捐(금품을 내어 도와줌, 내놓도록) 하도록 요구하였다. 그러나 지주들이 좀처럼 곡식을 내놓지 않는다.
구황촬요救荒撮要 - 굶주린 백성들이 대처하는 방법을 기록한 책
구황촬요救荒撮要를 보면 굶주린 백성들이 늘어가자 백성들이 대처하는 방법을 기록한 책이 나오기도 했다. 그 내용 일부분을 보면 굶어 죽는 사람을 구하는 방법, 굶은 사람이 갑자기 밥을 먹으면 사망할 수 있으니 간장을 찬물에 풀어서 먹인 후 식은 죽을 준다. 라고 구황촬요救荒撮要에 기록 되어있다.
내용을 좀 더 보면 굶주려 죽게 된 사람을 살리는 법, 굶주려 부황이 난 사람을 고치는 법, 솔잎가루를 만드는 법, 느릅나무 진을 얻는 법, 느릅나무 껍질로 떡을 만드는 법, 장 담그는 법, 솔잎을 가공해 죽을 만드는 법, 솔잎가루와 콩가루를 섞어 구황식을 만드는 법, 겉보리·쌀·조피 등을 섞어 가루를 얻는 법, 메밀과 콩·콩잎을 이용해 구황식을 만드는 법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의 농정사적 의의는 농민진휼의 한 방편으로서, 백성들이 산야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이용해 농민의 실생활에 직접 도움이 되고, 동시에 한글번역을 덧붙여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했다는 점이다. 〈구황촬요〉를 통해 조선 초·중기 이래 식량정책의 일면을 살펴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방법만으로는 굶주린 백성을 구할 수가 없었다. 영조 8년 12월 10일 박문수는 삼남지방애서 목격한 조선 백성들의 현실을 낱낱이 고했다. 영조가 받은 내용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끔찍했다. 굶주린 백성이 사람의 시체를 구워서 먹었다는 내용이었다. 영조는 곧장 대신들을 불러 모았다. 이 자리에서 박문수는 대신들의 녹봉을 줄여서 백성들을 구하자는 것이었다. 대신들부터 녹봉(녹봉[祿俸], 조선 시대에 현물로 지급한 관료의 보수를 말한다.)을 감한다면 팔도에 민심이 모두 다 감격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신하들은 자기들의 이익만을 앞세워 녹봉은 여전하고 한결같이 태평하게 생각하고 있으니 백성의 원망이 높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대신들의 이익만을 챙기려고 한다는 박문수의 비난에 대신들은 참을 수가 없었다. 기록에는 대신들은 박문수를 광란狂亂(미친 듯이 어지럽게 날뜀)한 잠꼬대를 한다고 정신 나간 사람으로 몰아세웠다. 한마디로 놀랍고 도리에 어긋난 말을 한다고 기록되어있다.
그러나 대신들의 계속되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영조는 이를 기담아 듣지를 않았다. 박문수의 청에 따라 문무백관文武百官(문관과 무관을 총칭하는 표현)의 녹봉을 감하게 했다. 대신들의 더욱 거센 반발은 분명한 상황이었다. 영조는 왜 박문수를 믿었던 것일까?
영조 4년(1728년) 이인좌를 중심으로 한 소론들이 반란을 일으킨다. 반란군은 청주성을 함락시키고 경상도(안음, 거창, 합천, 함양 점령) 주요지역을 함락 시켰다. 영조는 병조판서 오명항에게 반란군 진압을 명령했다. 그런데 오명항과 함께 진압에 앞장섰던 이가 바로 박문수였다. 박문수는 오명항 종사관(조선시대 각 군영 등에 딸린 주장을 보좌하던 관직)으로 출정했다. 반란군은 불과 보름 여 만에 진압되었다.
반란에 가담했던 수 백 여명이 처형 되거나 귀양에 처해졌다. 반란이 평정된 직 후에 영조는 박문수에게 민심을 수습하는 일을 맡겼다. 박문수는 백성들이 동요할 것을 염려해서 홀로 반란지로 들어갔다. 자신의 목숨보다는 나라를 구한 것이 먼저였다. 나라를 위해 한 번 죽는 것을 겁내지 않았다.
박문수는 가난한 백성들을 불러 모았다. 너희들은 죄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더 이상 백성들에게 죄를 묻지 않겠다고 안심을 시켰다. 그리고 마을로 돌아가 농사를 짓게 했다. 이일은 조정에 박문수를 널이 알리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영조도 정말 박문수가 나를 위해서 또한 국헌을 위해서 자신의 진심을 다 하는구나 하고 인정하게 되었다. 반란을 진압한 공으로 박문수는 분무공신奮武功臣에 책봉되었다. 그리고 그해 경상도 관찰사로 임명되었다. 그것은 파격적인 승진 인사였다.
암행어사 박문수의 행적
도깨비 불의 정체를 밝혀 과년한 딸의 혼수비 장만을 위해 마을 사람들의 가벼운 주머니를 털려던 박수무당의 소행에 벌을 준 이야기와, 평소 권진사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던 이가 권진사가 과부가 된 며느리와 못된 행동을 한다는 소문을 내 권진사에게 복수하려던 것을 박문수가 몰래 며느리의 방에 숨어들어 손목을 잡아 보며 며느리의 반응을 살펴보는 방법으로 모든 것이 헛소문임을 밝혀 권진사와 며느리의 억울함을 밝혀주는 이야기 및 어린 신랑의 사인을 규명해 가엽게 죽은 혼을 달래주었다는 이야기, 원한 맺힌 남매의 한을 풀어준 이야기 등 ‘한국구비문학대계’ 책 1권에는 암행어사 시절의 이야기가 신비적 요소와 결합되어 박문수의 인물됨을 중심으로 흥미진진하게 전개되고 있다.<다음호 계속>
정관웅
힐링코칭상담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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