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초고령화시대(58회)
신전면 삼인리
윤태례 할머니(85세)
“그 시상에 사랑해서 산 사람이 얼마나 있어”
윤할머니는 17살에 22살 삼인리 총각에게 시집왔다. 6남매 중 둘째에게 시집와 시부모와 큰동서부부, 아래로는 어린 시동생들 수발에 쉴 틈도 없이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무단히 가서 밥이나 해주고 일하고 그랬재.”
친정이 신전 노해마을이어서 그리 먼 곳도 아니었지만 친정에는 발걸음조차 할 수 없었던 순진한 새색시는 그저 시집식구들 눈칫밥에 하루하루를 보냈다. 어렵기만 한 시댁 식구들 틈에서 소리 없이 일만해야 하는 것이 시집이라는 것을 점점 깨달아가며 자신도 모르게 억척스런 아낙네로 변해갔다. 어린마음에 무던히 남의 집에 와서 천덕꾸러기가 된 것만 같은 마음에 매일 친정만 그리웠다. 그러던 중 1년도 채 되지 않아 남편이 징용을 떠났다.
“낮에는 넘 보대기하고 밤에만 님 보대기하고 살다가 테레비에 요즘사람들 허는거 보먼 간질간질혀서 못 보겄어.”
서먹서먹한 시집살이가 채 가시기도 전에 남편이 일본으로 징용을 떠나버리니 시집은 마치 남의집살이처럼 느껴졌다. 1년쯤 후에 남편이 징용에서 돌아오자 마음은 기뻤지만 식구들 어려워서 내색한번 못하고 남 보듯이 외면하고 있어야 했다.
그처럼 낮에는 남 보듯이 하고 밤에만 찾아오는 남편과의 사이에 8남매를 두었다. 그래서 남편과의 애틋한 정도 느낄 새도 없이 아이들과 부대끼며 먹고살기 바쁘게 살았으며, 8남매를 키웠지만 어떻게 키웠는지 모르겠다는 윤할머니다. 먹을 것도 부족한 시대여서 그저 젖만 물려 울음을 그치고 잠이 들거나 하면 내버려두고 일에 매달려야 했다. 논2마지기와 밭 2마지기를 받아 재금 나왔지만 살림은 좀처럼 늘어나지 않았다. 더군다나 남편이 조금 더 부지런 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지만 원하는 만큼 움직여 주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를 눕혀놓기 바쁘게 움직여야 했던 윤할머니는 9년 전 먼저 간 남편에 대한 섭섭함이 있다. 술 담배를 전혀 안한 남편은 성격이 급했다. 조그마한 빈틈도 못 보는 남편은 자신의 뜻에 어긋나면 용납을 하지 않았다. 그런 탓에 어떤 일로 아내가 댓구를 한다는 것은 전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떤 때는 조금 섭섭한 점을 말하고 싶어도 먼저 손부터 올라가고 화부터 내는 남편에게 어떤 대화도 할 수 없어 점점 말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남편이 가깝기 보다는 오히려 무섭게 느껴져서 겸상도 하지 않았다.
“어느 날은 북을 둘 놓고 질삼질을 이상 솔찬히 짜고 있는디, 영감이 장에 갈란다고 두루마기를 달라고 허더란 말여.·····”
북을 두개 놓고 길삼을 했기 때문에 빨리 일어날 수가 없었던 윤할머니는 그대로 길삼을 하면서 남편에게 댓구를 했다.
“농문 막 열먼 거그 있응께 입으쇼.”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남편은 낫을 들고 들어오더니 북을 두 개 놓고 짜던 실을 잘라버렸다.
“그런디 어찌 겸상을 먹겄어, 자기 혼자 저그서 묵고 나 혼자 여그서 묵고······어짜다 기분 좋으면 ‘여그다 올려다 놓고 묵소’ 해도 싫당게.”
그러나 성질 급한 남편과 애틋한 정은 없었어도 아이들 키우는 데는 서로가 마음이 같아 셋째 딸을 살려내기도 했다. 넷째가 생겼을 때 두 살이던 딸에게 먹일 젖이 나오지 않아 아이가 빼빼마르고 기력이 없었다.
“남편이 흰 줄 쳐진 개구락지를 크고 존 놈만 잡아가고 와서 껍딱을 할딱 뱃겨가고 내복을 끄집어내고 깨끗이 해서주더만.”
남편이 잡아온 개구리를 찹쌀에 고아서 여러 날 먹이자 아이가 점점 기력이 살아나고 통통하게 살이 올랐다. 또 한번은 큰 아들이 거시배(뱃속에 회충이 생겨)때문에 음식만 먹으면 뛰고 뒹굴고 아파했다. 그때 머리 내를 맡으면 괜찮다는 어른들의 말대로 늘 서로 업어주면서 머리 내를 맡게 하였더니 아이는 점점 괜찮아졌다.
“큰아들이 여그서 도암까지 양말 없이 맨발로 학교에 다닌 생각하먼 시방도 가슴아퍼·····.”
남편은 위암을 수술한 지 6년 만에 돌아가셨다. 8남매가 모두 울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울어줄 사람 많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윤할머니는 마당 뒤 안을 혼자 돌아다녔다고 한다.
“그 시상에 사랑해서 산 사람이 얼마나 있어, 서로 오순도순했어야 눈물도 나오재.”
(이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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