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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서 마이크 잡다
지름길을 모르거든 큰길로 가라. 큰길도 모르겠거든 직진하라.
그것도 어렵거든 멈춰 서서 생각해 보라.
2002년 10월 24일 대변인 논평 ‘초보운전자를 위한 격언’
이낙연은 초선 때부터 소속당의 대변인을 맡았다. 글이 아닌 말을 다루게 된 것이다. 2001년 11월 새천년민주당 대변인 일을 시작한 이낙연은 21년 기자로 일하며 단련한 필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정치판에서 대변인은 ‘정치의 꽃’으로 불린다. 서열로 따지면 고위 공직자는 아니지만 역할은 고위당직자 못지않았다. 언론 노출이 짖다 보니 대중의 인기도 높았다.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을 비롯한 유력한 정치지도자 중에는 대변인을 해온 이들이 많았다.
그는 중저음이 촌철살인 논평으로 뛰어난 실력을 발휘했다. 2002년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와 이회창 후보가 맞붙었던 16대 대선에서는 대변인 시절의 대표 어록을 남겼다. “지름길을 모르거든 큰길로 가라. 큰길도 모르겠거든 직진하라. 그것도 어렵거든 멈춰 서서 생각해 보라.”는 논평이 그것이다. 당시 지지율이 떨어진 노무현 대선 후보 교체를 요구하면서 잇따라 탈당하는 소속의원들을 겨낭한 말이었다. 논평을 내게 된 당시 상황과 심경을 그는 ⌜이낙연의 낮은 목소리⌟이란 책에서 밝혔다.
“우리 민주당에서 탈ㄷ아자가 연속해서 나오던 때였습니다. 당에서는, 특히 노무현 후보 진영에서는 탕당자들을 강하게 비판해야 한다는 기류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하기도 지쳐 있었고 생각도 조금 달랐습니다. 게다가 대통령 후보가 단일화되면 다시 합쳐야 할 정치인들에게 심한 말을 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는 대변인으로 “저급한 말, 저주의 말을 입에 올리지 않겠다.”라고 선언했다. 말수를 줄이며 절제와 품격을 잃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대선 승리 이후에 공식 취임 전까지 노무현 대통령 당선인의 대변인이던 그의 논평은 노 전 대통령의 의중을 가장 잘 짚어내고, 가장 노무현다운 화법과 의지를 드러내는 것으로 유명했다. 김근태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은 이 대변인의 특출한 능력을 두 가지로 압축했다.
“10시간짜리 회의를 1줄로 요약할 줄 아는 유일한 사람, 우울한 분위기를 밝게 만드는 사람.”
2002년 6월 한화갑 대표 시절에도 이낙연 대변인 체제는 이어졌고, 2007년 대선에서는 그는 대통합민주당 대변인을 역임했다. 이렇게 ‘5선 대변인’ 경력을 쌓았다. 대변인을 하는 동안 그는 “격조 있는 논평, 눈물이 묻어나는 정감 있는 논평, 상대 정당도 아프지만 웃어넘길 만큼 유머 있는 논평”을 꿈꾸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짤막한 논평이지만 끝없이 새로운 시도를 했다. 그중 하나가 8초 사이에 새 문장을 말하는 이낙연식 TV 논평이었다. 이 전략은 여야를 넘어 화제가 되어 상대 정당의 대변인까지 차용하게 되었고 그가 펴낸 논평집 ⌜이낙연의 낮은 목소리⌟는 국회 대변인실의 교과서가 되었다.
이낙연은 대변인 활동에서 여러 어록을 남겼다. 2002년 쓴 마라토너 손기정 선생에 대한 추도 성명에서 그는 ‘42.19킬로미터를 세계에서 가장 빨리 달린 사나이가 이제 저희에게 한 걸음도 오시지 못합니다’라고 표현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코미디언 이주일 씨가 작고했을 때에는 “선생께서 주시는 웃음이 있었기에 우리네 서민들은 못남이 덜 못났고, 약함이 덜 약했으며, 외로움이 덜 외로웠고, 아픔이 덜 아팠습니다.”라고 추모를 표해 서민의 공감을 얻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쓴소리를 들은 경험도 있다.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이 ‘이회창 대세론’을 굳히기 위해 민주당과 자민련의 국회의원들을 끌어가던 때의 일이다.
“한나라당이 다른 당 국회의원들을 마구 끌어들였던 2002년 10월 15일 저는 ‘한나라당은 당사를 밤섬으로 옮기지 그러는가’라고 촌평했습니다. 그 다음 날 한나라당 김영일 사무총장은 ‘(밤섬에 가서) 현장조사를 해보니 정몽준 의원이 벌써 터를 잡았더라’라고 응수했습니다.
저와 김 총장님의 공방이 재미있었는지(아니면 한심했는지) 여러 신문이 이것을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저와 김 총장님은 며칠 뒤에 큰 야단을 맞았습니다. 한 신문에 환경운동가 한 분이 글을 쓰셨습니다. 그 글의 요지는 이랬습니다. “정치권은 밤섬을 더럽히지 말라. 철새를 모욕하지 말라” (이낙연의 낙은 목소리 중에서)
이런 경험은 대변인으로 어떻게 말해야 할지를 숙고하게 만드는 중요한 기회가 되었다. 그는 국회에서 품격 있는 언어를 쓰려고 애썼고, 그 결과 2011년에는 ‘국회를 빛낸 바른 언어상’ 가운데 최고상인 으뜸상을 받았다.
이낙연의 말에는 군더더기가 없다. ‘팩트’라는 뼈대와 근육만 단단하다. 말을 받아 적으면 그대로 글이 될 정도로 말이 정돈되어 있다. 이런 이낙연의 말을 동아일보 한 선배는 ‘문어체 구어’라고 칭한다. 문어체 구어는 사고의 치밀함과 엄격함이 순발력을 만나 나온 결과물일 것이다.
대변인 시절에도 많은 후배 정치인이 그와 함께 일하면소 언어를 가다듬는 맹훈련을 받았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대선 후보의 부대변인은 김현미 의원(현 국토교통부 장관)이었다. 한번은 김 의원이 쓴 논평 문안을 보고했는데, “나는 이런 표현을 안 씁니다.”하면서 단호하게 수정을 요구했다고 한다. 씩씩하기로 유명한 김현미 의원도 이날은 소주잔을 기울였다는 얘기가 전한다.
누군가는 이낙연의 말을 두고 “음악가가 흥에 겨워 즉흥적인 변주를 가미한 듯하다.”라고 평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낙연은 말의 외면보다 내면을 봐주면 좋겠다고 얘기한다.
“흔히 대변인은 임기응변에 능하고 잘 둘러대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는데 저는 그 반다라고 생각해요. 대변인은 어눌하더라도 진실을 말하는 사람입니다. ‘진실하자’ 것이 제 좌우명이기도 해요.” (국회보 인터뷰 2010.12)
한 언론사가 각 정당의 전 현직 대변인들을 대상으로 역대 명대변인을 조사한 적이 있었다. 그 결과 보수 측에서는 박희태 전 국회의장을, 진보 쪽에서는 이낙연 총리를 꼽았다. 경쟁 관계에 있던 한나라당 경선캠프 대변인을 맡았던 진수희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 총리의 말에 품격이 있다면서 ‘이낙연식으로 대변인 문화가 만들어지면 정치 문화가 바뀌는 데도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을 정도다.
글 이제이 <다름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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