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지사의 현장 바꾸기
봉사하는 ‘연민’을 공직자의 제1의 마음가짐으로 삼아 취약계층의 삶을 도와줄 정책을 본능적으로 끊임없이 챙겨주길 바랍니다.
2015년 7월 1일 전남도청 7월 정례조회
2014년 4선 의원 이낙연은 수백만 명의 살림과 도정을 책임지는 도지사에 도전했다. 혹자는 고향인 전라도에서 국회의원을 해왔고, 도지사 역시 같은 지역인데 뭐가 어렵겠냐 반문할지 모른다. 그러나 선거마다 지역구 변동 등 여러 변수로 쉬운 선거가 없었고, 더욱이 도지사 선거는 당내 경선에서부터 거의 진 싸움이라는 예측이 높았다. 당시 보좌관들에 따르면 그는 예측을 외면한 듯 초인적으로 다녔다고 한다. “현장에서 답을 찾겠다.”라며 수첩을 들고 전남 22개 시 군 구석구석을 탐방했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하루는 차에 들어와 울기도 했단다. 고달팠던 당시 상황을 이낙연은 이렇게 말한다.
“당시 돈이 없어서 광주시내 싸구려 원룸에서 지냈어요. 겨울에 곰팡이가 슨 바지를 입으면 그게 피부에 달라붙어요. 안 그래도 곰팡이 같은 내 인생. 여론조사에서 졌고 현장 투표에서도 무지하게 불리했죠. 결국 현장 연설에서 뒤집었어요. ‘여러분. 저는 의원도 사퇴했습니다. 제가 집에 가서 놀 것인가 일을 좀 더 할 것인가. 여러분에게 달렸습니다. 여러분이 시키는 대로 할랍니다.” (동아일보 인터뷰 2019.7.17.)
그렇게 해서 결국 그는 웃었다. 그것도 득표율 77.95퍼센트를 얻어 전국 최고 득표율까지 기록하며 대반전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그는 당선 소감에서 특유의 차분한 목소리로 향후 도정에 임하는 자세를 찬찬히 밝혔다.
“좌우명이 근청원견(近聽遠見), 즉 가까이 듣고 멀리 본다는 뜻입니다. 도민 여러분의 말씀을 가까이 듣고, 그 말씀을 정책에 반영할 때는 멀리 보면서 하겠습니다. 무슨 일을 하건, 근청원견의 자세로 하겠습니다. 당선 첫날의 마음이 임기 내내 이어지도록 저 자신을 채찍질하겠습니다.”
이 도지사는 가까이 듣기 위해 이전보다 더 자주 현장을 찾았다. 전남은 전국에서 개인소득이 가장 낮고 고령화가 심화된 곳이다. 이를 위해 해야 할 일이 많았다. 현장에서 감지한 지역민의 아픔을 해소하고자 “온정이 넘치는 전남을 만들겠다,”라고 약속했고, 다양한 아이디어로 지역 주민의 삶을 따뜻하게 바꾸려 애썼다.
의원 시절부터 이낙연은 복지의 사각지대를 줄이려 다양한 길을 모색해 왔다. 추운 계절이 되면 그는 ‘힘든 사람은 더 힘들고, 외로운 사람은 더 외로운 계절’이라며 민생에 집중했다. 국회의원 때부터 유독 양로원의 난방 예산을 챙겼다. 농림수산식품위원장을 지낸 다음에 상임위를 복지위로 옮겼고, 복지위에서 당시 한국 사회에서는 생소했던 고독사 문제를 제기해 관심을 모았다. 문제 제기를 넘어서 지사가 되어서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고독사 지킴이단’을 발족했다.
이낙연 지사가 펼친 대표적인 복지정책 중 하나가 100원 택시다. 100원 택시는 오지에 사는 전남 주민들이 택시를 부르면 그 마을애서 가장 가까운 버스정류장까지 100원을 받고 택시를 운행한 뒤 차액을 자치단체에서 지급하는 제도다. 100원 택시는 버스정류장을 새로 만드는 것보다 예산이 절약돼 농어촌 교통복지의 모범사례로 꼽히고 있다. 이 정책은 언론에서 관심을 가지며 전국적인 화제가 됐고,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애 포함됐다.
이밖에도 농번기 마을 공동급식, 공공산후조리원, 작은 영화관, 서민 빚 100억 탕감 프로젝트 등 이낙연 서민 시책은 화수분처럼 이어졌다. 여성 장애인에게 전용 의료장비와 편의시설을 갖춘 전문 병원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도내의 병원 두 곳을 ‘장애인 거점 산부인과’로 지정했다.
‘개천에서 용나는 사업’도 그의 복지 시책 중 하나였다. 그중 <꿈사다리공부방>은 청년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며, 저소득층 아동의 꿈을 키우는 전국최초의 사업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현장에서 학습 교사로 일해온 서윤아, 김고운 씨의 얘기다.
“지역아동센터에 가서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일을 했는데, 제게 꿈사다리공부방은 취업 준비하면서 제 꿈도 키우고, 아이에게도 도움을 주는 의미 있는 곳이었어요. 임용고시를 오래 준비하면서 내가 사회에서 불필요한 존재인가 낙담하고 지냈는데, 아이들 가르치면서 내가 이 사회에 필요한 존재라는 확신이 생겼어요. (…) 저희가 아이들이 학습능력을 월등하게 높여주는 건 한계가 있어요. 그래도 형편이 어려워 기초 학력도 약하고, 포기했던 아이들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주면 뭔가 해보려고 해요. 이 일을 하면서 저는 교육이 희망이 될 수 있구나 하는 것을 실감했어요.”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임을 알기에 일자리 창출을 도정 최우선 순위에 두었다. 그 결과 2016년에는 고용노동부로부터 전국 자치단체 일자리 종합대상을 수상했다. 전국 시 도지사 직무수행 평가에서도 항상 상위권을 차지했다. 일 잘 하는 명성이 국회의원부터 전남도지사까지 이어진 셈이다.
이낙연의 직책은 분명 도지사였다. 그러나 공무원 사이에서 그는 ‘이 주사’로 불렸다. ‘주사’는 실무를 챙기고 현장에서 일 하는 6급 공무원이다. 현장을 챙기는 주사만큼 이낙연 지사가 직접 꼼꼼하게 현장을 돌았다는 얘기다. 도청직원들과 연 시무식에서 그는 ‘도청의 모든 부서가 그늘진 곳을 살피고, 서민 등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세밀한 정책을 찾아내고 시행해 주길 바란다’라면서 ‘크게 보고 작게 살핀다’는 대관소찰(大觀小察)을 당부했다.
무엇이 이터럭 그를 치열하게 한 것일까. 친구 이임성 변호사는 현장을 다니며 온 힘을 다해 일하는 이낙연의 모습에서 두 가지 부체의식을 읽어냈다.
“저는 이낙연이 전남 도정에 열심이었던 것이 개인사와 역사의 부채를 덜어보고자 하는 내면의 욕구가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장남이 동생을 걱정하고 생각하는 마음, 부모를 잘 모셔야 하는 마음, 광주가 고결한 희생을 할 때 함께하지 못한 것을 한꺼번에 갚는다는 마음같은 것이지요. 그에게는 전남 도민이 모두 자신의 부모요, 형제자매요, 아픔을 안고 사는 동지였을 것입니다.”
열과 성을 다해 일하는 도지사 덕에 지역 주민의 삶은 조금씩 좋아졌지만, 공무원들은 할 일이 많아졌다. 이런 분위기를 전했을 때 이낙연 지사의 반을은 어땠을까? 최충규 보좌관의 얘기다.
“현장을 많이 찾고, 업무를 꼼꼼하고 입체적으로 파악하라고 하니 공무원들은 많이 힘들어했어요. 그래서 제가 큰마음을 먹고 얘기를 꺼냈지요. 도지사 한 번 하고 마실 겁니까? 한 번 더 하려면 공무원들의 마음을 잡아야 하는데, 좀 살살하시면 좋겠습니다. 제가 이렇게 얘기하니 가만히 듣고 있다가 도지사 한 번 더 하자고 그렇게 해야 하나. 공무원이 힘들어 도민이 편한 게 좋은 건가. 공무원이 편하고 도민에게 불편을 끼치는 게 좋은 건가. 그렇게만 말하는데 남이야 너무나 분명하지 않겠어요?”
이 지사는 총리가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현장을 중시하고 자주 찾았다. 특히 장 차관들에게 현장 행정을 강조했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현장을 외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글 이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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