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진만 햇발
김현임 수필가
아! 노 전대통령
오늘 따라 유난히 바빴던 출근 시간, 뉴스를 챙겨 볼 틈이 없었다. 사무실에 도착하여 인터넷을 열자 화면 상단에 ‘노대통령 사망’이라는 문구가 떴다. 글자를 읽되 글자가 제대로 해독되어 읽히지 않는 멍한 느낌, 잘 돌아가던 기계의 회로가 외부의 충격으로 일시 중단된 듯한 그런 상태가 얼마나 지속되었을까. 탄식처럼 화면의 글을 되풀이해 읽는 내게 옆자리 동료는 누군가 허위로 유포한 인터넷 사고, 유언비어란다. 불과 얼마지 않아 그것이 진실이라는 걸 확인하기까지 맞아, 우리는 유언비어라고, 고약한 유언비어라고 한참을 떠들었다.
보톡스를 맞았다고 했던가. 그런데도 이마의 골 깊은 주름은 여전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선량한 얼굴의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간 우리의 정치 현실. 그것이 서글펐을까. 갑자기 목이 메었다. 가슴이 휑해 견딜 수 없었다. 일시에 몰려온 급작스런 허기였다. 우린 냉장고를 뒤져 허겁지겁 무언가를 입 속에 밀어 넣으며 화면에 눈을 고정했다.
‘그동안 힘들었다.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했다.
책을 읽을 수도 없다.
삶과 죽음이 하나가 아닌가.
화장해 달라.
마을 주변에 작은 비석이나 하나 세워 달라.’
이게 전직 대통령을 지낸 이가 생의 마지막 선택을 하며 내건 유언이자 희망사항이다.
그림 속 제 아무리 멋진 계수나무라 한들 살아있는 머귀나무만 못하다지 않던가. 한 나무의 꽃이 바람에 날려 혹은 궁궐에 떨어지고, 혹은 규중에 떨어지고, 혹은 촌가에, 혹은 길거리에, 혹은 변방에 떨어지고, 또 江湖에 떨어져도 근본을 찾으면 한 줄기 태생의 똑같은 나무임에 다름이 없다했다. 그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라는 막중한 직책을 잠시 맡았다 하더라도 죽음 앞에 서면 두렵고 망설여지는 나약한 인간임에는 틀림이 없다. 한 사람을 끝내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도록 몰아간 이 가혹한 현실이 새삼 무섭다.
신문, 방송에서 대서특필 되던. 그의 재직 시 벌였다던 혐의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다. 친근한 이웃 아저씨 같던 얼굴의 그 역시도 마찬가지구나. 좀 더 솔직히 표현하자면 가벼운 실망감이 전부였다. 애초 정치란 그런 것이기에 털어 먼지나지 않는 건 아예 기대치하지 않았다. 다만 작고 사소한 실수라면 관용을 베푸는데 인색치 말았으면, 그런데 현 정권은 그렇게 후벼 파며 인색히 굴어야 했을까. 그래서 사실 정치 보복적 냄새가 짙다는 의심도 품었다. 우리에게는 저 부끄러운 역사 속 사색당파의 피바람의 폐해, 그 그늘의 여파도 컸다. 자랑스럽지 못한 선조들 행위의 복사판인 듯, 한 정권이 끝나기가 무섭게 휘몰아치던 전 정권에 대한 현 정권의 탄압은 번번이 우리의 눈살을 찌푸려지게 하지 않았던가. 노대통령 주위의 모든 이들을 전라도 말로 엮거리 꿰듯 줄줄이 소환하여 뿌리를 뒤흔드는 작금의 사태를 보는 정직한 내 시선이었다.
‘不矜細行 終累大德’ 즉, ‘작은 행실을 조심치 않으면 결국 큰 덕을 허물게 된다’ 했다. 멀리 가 있는 자식을 염려해 집 장만하는데 썼든, 자신에게 은혜를 베푼 이들의 노고에 대란 은덕, 그 묵은 빚을 갚는데 썼든 노대통령은 잘못을 저질렀다. 본인 스스로도 귀감이 되어야할 사람으로서 국민들에게 너무도 송구하다며 사과를 했다. 그런데 왜 그의 죽음 앞에 이리도 안쓰럽고 부끄러운가. 왜 이리도 우리의 가슴이 헛헛한가.
현명한 수령은 관아를 여관으로 여긴단다. 하여 다음날 아침이면 떠나갈 듯 늘 문서와 장부를 깨끗이 정리하고 항상 떠날 행장을 꾸려놓아 마치 가을 새가 가지에 앉았다가 훌쩍 날아갈 듯이 한 점 애착도 마음에 품지 않는다던가. 어쨌든 그런 뒤늦은 箴言들이 무슨 소용인가. 간곡한 悲感, 오늘 하루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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