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기가마
방은 동굴처럼 어두컴컴했다가 새벽빛이 동창으로 투과해 들어오자 환해졌다. 궁복은 아랫목에 우두커니 앉아서 날이 새기를 기다렸다. 어제 밤늦게 잤지만 잠자리가 바뀐 탓인지 꼭두새벽에 눈을 뜨고 말았던 것이다. 조그만 동창을 들어 올리자 찬 공기가 방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밖에는 새벽의 푸른빛이 밀물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소변을 참고 있던 궁복은 방 밖으로 나와 헛간을 찾았다. 헛간 문인 거적때기를 들추자 소변통인 토기 항아리가 보였다. 궁복은 소변을 남김없이 보고는 진저리를 쳤다.
궁복은 방으로 들어와 눈을 감고 아랫목에 누웠다. 토막잠이라도 잘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미 잠은 저만큼 멀어져버렸다. 어젯밤에 정년이 들려준 이야기가 두서없이 떠올랐다. 정년은 15세였지만 변성기가 빨리 와서 목소리는 스무 살 청년처럼 우렁우렁했다. 정년의 아버지는 마을의 정씨들에게 ‘족장님’이라고 불리며 큰 토기가마를 하나 가지고 있는 유지 가운데 한 사람이었고, 정년의 재당숙인 대구소 향리는 마을 고샅길 끝의 정원이 딸린 기와집에 살았다.
정년은 대구소 향리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했다. 토기가마를 운영하는 아버지보다 향리를 더 존경하는 듯했다. 정년은 그의 아버지와 확실히 달랐다. 그의 아버지는 가볍고 단단한 토기를 만들어 큰 부자가 되겠다는 것이 꿈이었고, 정년은 대구소 향리처럼 무술을 익혀 무인으로 출세하고자 했다.
정년의 집은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다. 번듯한 초가 네 채가 정년의 집이었다. 한 채는 누각처럼 덩실하게 토방 위에 올라 있었고, 또 한 채는 토기를 만드는 노비와 일꾼들이 자는 숙소였고, 또 한 채는 토기를 쌓아둔 창고였다. 또 다른 움막은 대소변을 보는 헛간이었다. 헛간은 궁복이 잤던 방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다. 정년이 방문을 두드렸다.
“성님, 잘 잤소?”
정년은 어제부터 초면인데도 궁복을 ‘성님’이라고 부르며 살갑게 다가왔다. 궁복은 그런 정년이 친동생 같았다.
“진작에 일어나부렀네.”
방문을 열고 들어온 정년이 손바닥으로 아랫목을 만지며 말했다.
“음마, 따땃허요잉.”
“아칙만 동상 집에서 신세지고 미산포로 갈라네.”
“향리 어르신께서 쪼깐 보자고 헝마요.”
“무신 일이여?”
“어저께 성님 활솜씨를 보고 반헌 모냥이요.”
“향리 나리를 만나는 보겄네.”
두 사람은 어제 군불을 지핀 아궁이 솥의 물로 세수를 했다. 아직도 물은 미지근했다. 궁복은 저고리를 벗고 얼굴과 목덜미까지 씻었다. 늦가을 이른 아침 공기가 싸늘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정년이 웃으며 말했다.
“아따, 안 춥소? 냉수마찰 허데끼 씨쳐부요잉.”
“향리 나리께 깨깟허게 보일라고 그라네.”
정년도 궁복을 따라서 저고리를 벗고 세수를 했다. 정년의 체격도 만만찮았다. 뱃살이 널빤지처럼 단단하게 보였고, 팔과 어깨의 근육은 나무 등걸 옹이처럼 울퉁불퉁했다.
“동상은 평소에 어처케 체력을 다지는가?”
“향리 어르신헌테 가끔 검술과 승마를 배우는디 고것보다는 헤엄치는 것이 더 재미있어라.”
“수영?”
“올봄에는 남당포까정 헤엄쳐서 왔다갔다 해봤지라. 미산포에서 남당포까지 이십오 린께 왕복이믄 오십 리는 되겄지라.”
궁복은 정년이 무인으로서 이미 기본 체력은 갖추었다고 생각했다. 탄탄한 몸집은 자신과 엇비슷했고, 어제 보았지만 활솜씨도 녹록치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자신이 아직 갖추지 못한 검술과 승마를 익히고 있다니 장성해서는 무인으로 크게 성공할 것 같았다.
향리 정씨 집은 정년의 말대로 마을 한 가운데 있었다. 고샅길을 올라가자 큰 대숲 아래 토기와를 얹은 기와집이 나타났다. 움막 같은 마을 집들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이었다. 마침 마당에 나와 있던 향리 정씨가 궁복을 맞았다.
“지달리고 있었네.”
“잘 주무셨는게라우?”
“자네를 만나보고 잪아서 잠을 설쳤네. 하하.”
“아이고메, 고맙습니다요.”
두 사람은 향리 정씨의 사랑방으로 들어갔다. 궁복이 자리에 앉자마자 향리 정씨가 물었다.
“부모님은 가리포에서 무신 일을 허고 겨신가?”
“두 분 모다 지가 에렸을 때 돌아가셨그만요. 마실사람덜헌테 들은 말인디 원래는 뭍에서 사시다가 가리포로 피신해 왔다고 헙니다요.”
“병환으로 돌아가셨능가?”
“부모님 두 분이 괴기를 잡을라고 나갔다가 돚배가 뒤집혀 돌아가셨다고 헙니다요.”
“뭍에서 사셨으니 바다를 몰라 변을 당해부렀그만.”
“자세헌 것은 모르겄습니다요.”
“성씨는 뭣인가?”
“장씨덜이 모여 사는 큰 마실에서 바다를 건너 왔다고 헙니다요. 긍께 지는 고로코름 짐작허그만요.”
“자네는 장씨가 분명허네. 성을 쓸 일이 있으믄 장씨라고 허게.”
향리의 말을 듣고만 있던 정년이 말했다.
“향리 어르신, 성님을 대구소 군사로 쓰시믄 으쩔께라우?”
“대구소는 들어갈 자리가 읎네.”
향리 정씨는 직설적으로 말했다. 미산포에 나가 있는 별장과 대구소를 지키는 몇 명의 군사가 요지부동이니 별 수 없다는 말이었다. 향리가 그들 모두에게 녹봉을 곡식으로 주고 있으므로 대구소 살림이 벅차다는 말도 덧붙였다. 궁복이 말했다.
“지는 가리포 치소 향리께서 여그 대회에서 우승허고 오믄 군사로 쓰기로 했그만요.”
“약속해부렀는가?”
“예, 향리 나리.”
“자네 같은 명궁이 가리포에서 썩기는 아깝네.”
정년이 또 끼어들었다.
“어르신, 방법이 읎을께라우?”
“하나 있기는 허지. 우리 집에 머뭄시로 니 동상에게 활을 갈치다가 내년 봄에 탐진현 치소에서 벌이는 대회에 나가믄 되겄제.”
“어르신, 그 방법이 있그만요.”
“거그서도 우승허믄 내가 심을 쪼깐 써서 탐진현 치소 군사가 되게 헐 수 있겄제. 으쩔 것인가?”
“나리, 지도 뭍으로 나오고 잡습니다요.”
궁복은 망설이지 않고 결정했다. 가리포 향리 밑에서 평생을 촌뜨기군사로 지내다가 늙어서 물러나기보다는 탐진현 치소를 발판 삼아 더 좋은 기회를 잡아야겠다고 판단했다. 사실 궁복은 탐진현보다 더 큰 대처로 나가 무엇을 하든 간에 지긋지긋한 굶주림을 면하고 싶었던 것이다.
“시방 방을 하나 내주겄네.”
“나리, 청이 하나 있습니다요.”
“뭣인가?”
“군사가 될라믄 검술과 승마도 엥간이 헐 줄 알아야 허지 않겄습니까요. 나리께서 틈나는 대로 갈쳐주시믄 으쩌겄습니까?”
“그야, 에럽지 않네. 연이가 배울 때 같이 허믄 되겄제.”
향리 정씨가 아들을 큰소리로 불렀다. 그러자 아들이 금세 사랑방으로 들어와 앉았다.
“앞으로 니에게 궁술을 갈쳐줄 분이다. 잘 익히그라.”
“예, 아부지.”
열 살 남짓한 향리 정씨의 아들은 이목구비가 또렷하고 명민하게 보였다.
“나는 일찍이 서라벌에 가서 군관을 지내다가 왕족덜의 권력투쟁이 눈꼴 사나와서 고향으로 돌아와부렀다네. 근디 요 녀석은 나보다 무재(武才)가 있는 것도 같고 참을성이 많아 장차 장수가 되어서 내 꿈을 이뤄줬으믄 좋겄네.”
“나리 뜻을 영념허겄습니다요.”
향리 정씨가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궁복과 정년, 향리의 아들도 뒤따랐다. 향리 정씨가 기와집 왼쪽에 있는 별채의 방 하나를 가리켰다. 별채는 아궁이가 밖으로 드러난 삼간초가였다.
“아궁이가 붙어서 따땃허고 아칙 해가 일찍 드는 방이네.”
“아이고메, 고맙습니다요.”
“아칙 끼니가 늦었네. 온아, 안방으로 안내허그라. 나는 시방 대구소에 가봐야 헌께 함께 못허겄다.”
마당에는 벌써 말구종이 튼실한 말을 끌고 와 있었다. 말구종이 말고삐를 잡고 있는 동안에 향리 정씨가 날렵하게 말 등에 올라탔다. 토실토실한 말 엉덩이가 천태산을 넘어온 아침 햇살에 번들거렸다. 마을은 천태산 산자락을 등지고 있어 아침 해가 늦었다.
궁복은 정년과 함께 정씨 아들을 따라 안방으로 들어가 아침상을 받았다. 향리 부인은 보이지 않았고 여종 하나가 부엌을 들락거렸다.
“지는 정온이라고 허그만이라우.”
“활은 쏴봤는가?”
“아니요, 지금까정 아부지헌테 글만 배왔그만이라우.”
“온이는 인자 활쏘기도 배와야 헐 때가 됐어. 첨부터 자세를 잘 익혀부러야 솜씨가 나오는 벱인께 찬찬히 배우그라잉.”
“예, 성님.”
정년의 말에 어린 정온이 들고 있던 수저를 놓은 뒤 대답했다. 궁복은 아침상을 물리고 나서 별채 방으로 들어가 쉬었다. 정씨 부인이 시킨 듯 노비 하나가 와서 군불을 지폈다. 연기가 방 안으로 스며들었지만 견딜 만했다. 궁복은 자신도 모르게 코를 골며 잠이 들어버렸다. 점심 전, 정년이 와서야 잠에서 깨어났다. 어제 활쏘기대회에서 부상으로 받은 쌀 한 가마니와 토기를 정년이 들고 왔기 때문이었다. 어린 정온은 궁복의 활을 호기심이 가득 찬 눈으로 이리저리 보고 있었다. 정년이 말했다.
“성님, 여그 잠 잘라고 와부렀소?”
“사실은 간밤에 잠을 아조 쪼깐밖에 못 자부렀네.”
“잠은 밤에 자불고 토기를 어처케 맹그는지 한 번 볼라요? 시안이 오기 전에 가마 불을 땐다고 헝마요.”
“한 번 보고 잪네. 가리포에서도 봤네만.”
“가리포에서 맹그는 것하고는 아조 다르지라.”
“참말이여?”
“거그서는 땅바닥 구뎅이에 장작을 쌓고 불 때지만 여그서는 너구리멩키로 생긴 토기가마 속에 기물들을 넣고 굽는당께요.”
궁복은 토기 굽는 과정이 가리포와 어떻게 다른지 궁금했다. 가마라는 말을 가끔 듣곤 했지만 실제로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것이다. 정년의 아버지 정 족장이 애지중지하는 토기가마는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산기슭에 있었다. 토기가마만 있는 것이 아니라 노비와 일꾼들의 작업실인 동막도 있었다. 정년이 동막을 지나치자 노비가 다가와 말했다.
“굴에 재임은 메칠 뒤에 헐 것입니다요.”
“가마 쪼깐 볼라고 왔네.”
노비는 가마를 굴이라고 불렀다. 재임이란 말린 토기를 가마 속에 넣는다는 말이었다.
“이번에는 멫 점이나 재임허는가?”
“지는 모르지라우. 토기장님이 아시겄지라우.”
노비는 허드렛일을 하거나 주로 잔심부름을 했다. 그러니 가마 운영의 자세한 내용은 모를 수밖에 없었다.
“토기장님은 동막에 겨신가?”
“토기장님도 불대장님도 낼 아칙에 올 것입니다요.”
정년은 토기장이나 불대장에게 존댓말을 썼다. 그들의 신분은 천민이 아니었다. 마을에 사는 양민들인데 눈썰미와 손재주가 뛰어나 토기장과 불대장을 맡고 있었다. 동막에는 현재 거내꾼만 일하고 있는 중이었다. 토기장이 성형한 토기에 새끼줄이나 삼베로 무늬를 만들거나 말리는 사람을 거내꾼이라고 불렀다. 거내꾼 역시 마을사람 양민이었다. 토기를 만드는 동안에는 토기장 한 명, 거내꾼 두 명, 질꾼 두 명, 불대장이라고 부르는 화장(火長) 한 명이 동막에서 합숙한다고 정년이 말했다. 궁복은 여러 사람이 동막에서 일한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동막 뒤 처마 그늘에는 이미 만들어놓은 토기들이 가득 널려 있었다. 크기는 물론 종류도 다양했다. 큰 항아리 뚜껑으로 쓰이는 소래기, 술떡을 찌는 시루, 숯을 넣는 화로, 밥통, 젓갈단지, 조롱박 모양의 술병, 물동이, 약탕관, 주전자, 심지어는 숟가락까지 있었다. 궁복이 활쏘기대회에서 부상으로 받은 엇비슷한 모양의 술병과 주전자도 보였다.
그런데 궁복을 더 놀라게 한 것은 가마의 크기였다. 반지하 형태의 가마의 길이가 자신의 걸음으로 스무 걸음이나 되었다. 가마는 산비탈에 얹혀 있듯 완만하게 올라간 오름 형태였다. 가리포에서 보았던 것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가리포의 노천가마는 둥그런 구덩이에다 기물을 차곡차곡 쌓은 뒤 장작불을 피웠던 것이다.
“동상, 요런 가마가 여그 말고도 또 있는가?”
“멫 군데 있지라. 근디 우리 집 가마가 젤로 크지라.”
“그러고 봉께 정년이 집은 아조 부자그만.”
“쩌그 천변 아래 논밭은 토기를 팔아 모다 사들였지라.”
“장사는 누가 허고?”
“장사꾼덜이 찾아와서 미리 주문을 허그만요. 아부지가 대처를 돌아댕김시로 장사허시지는 않지라. 아부지는 자존심이 엄청 쎄시지라. 토기를 팜시로도 굽신거리는 겡우가 읎지라.”
“양민이든 천민이든 굶지 않고 잘 사는 것이 중허 것제잉.”
궁복은 토기를 팔아 논밭을 사들였다는 정년의 말을 가슴에 담았다. 바다로 나갔다가 풍랑을 만나 아버지처럼 물귀신이 되지 않고 뭍에서 잘 사는 방법을 하나 자신의 눈으로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궁복은 가마 안으로 들어가 보기도 했다. 불을 들이는 아궁이 봉통이 있고, 토기를 소성하는 자리인 길쭉한 계단들이 몇 개가 있었다. 아마도 계단들은 지형이 산비탈이기 때문에 토기들을 재임하기 위해 평평하게 다진 것 같았다.
“기물도 올려놓고 온도를 올릴라고 계단 모냥으로 맹글었을 것이라고 불대장님이 말허대요.”
불길이 계단 모양의 불턱을 타고 올라가면서 온도가 올라간다는 말이었다. 정년은 또 높은 온도에서 구워진 토기는 방수가 되고 금속처럼 단단하기 때문에 장사꾼들이 자기 집을 찾아와서 입도선매한다고 말했다. 궁복은 가마 안에서 고개를 크게 끄덕거렸다. 그런데 궁복이 가마 밖으로 나왔을 때 노비가 고개를 돌리며 웃었다. 가마 안의 검댕이 궁복의 얼굴에 군데군데 묻어 우스꽝스럽게 보였던 것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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