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초고령화시대(70)
강진읍 신학마을
김선임할머니(83)
“여자가 애기를 갖고 싶을때 남자를 못 보면 병이나”
“70만 되았어도 하늘을 잡고 떼기치기를 하겄소.”
요즘도 여섯마지기 정도의 밭에서 깨, 팥, 녹두 등 곡식들을 손수 일구어 자식들에게 보낸다는 김할머니다. 2남2녀를 둔 김할머니의 삶은 자식들을 위해 인내하면서 평생을 일속에 파묻혀서 살아왔다.
“내 눈에 눈물나면 자식들이 안 좋을까봐, 눈물도 참고 살었소. 영감은 죽을때가 된게 밤나 소리지르고 울고 다닙디다.”
3년 전 세상을 떠났다는 남편은 평생을 밖으로만 돌아다니는 방랑객 이었다. 김할머니는 시집오기 전 친정에서는 위로 언니가 셋이나 있었기에 일을 하지 않고 살았다. 그러나 시집 오자마자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모든것이 김할머니의 손을 기다리는 일 뿐이었다.
“막동이 딸로 갑게 컸는디, 여그와본게 아무것도 아녀, 열 식구나 되는 식구들 뒤치닥꺼리 헐라······시어머니가 일체 일을 안해. 오뉴월에도 보선신고 부채질허고, 정제에 있다가도 내 소리만 나먼 딱 내려놔 불고 나와부러. 그려도 애기들은 잘봐줬어.”
남편은 집에 있는 날이 별로 없었다. 양복을 빼입고 읍으로 나가면 몇 날이고 들어오지 않았다. 고급담배와 고급시계와 고급양복이 기본인 남편이었으니 나가면 어디서든지 인기가 많았다. 그러나 집에서는 한 번도 도라도란 애기해본 적이 없는 남편이었다. 또한 시아버지 시어머니가 나무래도 소용없는 사람이었으니 김할머니의 말은 가당치도 않았다.
“나만 아사리밭에다 놔두고는 일본으로, 서울로, 사방팔방 돌아댕긴 양반여, 혼자 멋내고, 멋쟁이여······시어머니 타겨서 멋쟁이여.”
그렇다고 돈을 벌어다 준 것도 아니었다. 자신이 벌어서 자신이 쓰면 그만이었고, 나가면 몇 년이고 소식이 없었기 때문에 점점 남편에 대한 관심도 무디어졌다. 그러던 중 집을 나갔던 남편이 배가 남산만하게 부른 한 여자를 데리고 들어왔다.
“저그 만주에 가서 각시하나 데리고 왔는가벼, 시어머니가 벼락을 친게 보내불더만······이삐도 안해.”
시어머니가 혼을 내자 다음날로 여자는 어디론가 떠났고, 그 후 아무 소식을 알 수 없다. 남편도 역시 찾으려고도 하지 않았고, 원래가 방랑기가 있는 남편이었기에 금방 또 어디론가 떠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가면 들어올 줄을 몰라, 말하기도 싫어지고 오먼 온갑다, 가먼 간갑다 하고 살았지 뭐. 당신 사주가 그렁게 뭐라고 허겄어. 당신 혼자 돈벌어서 묵고산디 뭔 걱정되아.”
남편의 사주가 그래서 그런가보다하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그렇게 마음먹고나니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어쩌든간데 아이들하고 살 일이 걱정이었기 때문에 남편이란 존재자체를 잊고 살아온 세월이었다. 그래서 첫째와 둘째가 10살 차이가 난다. 마음의 병 또한 크지만, 신체에서 오는 병으로 세 번을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갑자기 옴짝달싹을 못할 정도로 진통이 오기 시작하면 금방 죽을 것 같다. 그때마다 시어머니가 업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의사가 말하기를 여자가 때가 되어 남자를 만나지 못하면 몸에 이상이 나타나는 병이라고 했다.
“생전 자장자장 애기해본적이 없어, 내 생각으로만 살었재.”
옛날 살아온 생각을 하자면 지금은 원 된 것이 꽉찼다는 김할머니다. 그러나 그 원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도 딱히 무엇이다고 대답하지 못한다. 그나마도 자식들 잘 자라 준 것이 고마운 일이어서, 허구헌날 눈물을 참고 살았던 보람이 있구나 싶은 것일까.
“선달벼슬을 한 집안이라서 벼슬할 사람이 나온다고허더만, 우리 손지가 나올랑가·····나 죽은 뒤에나 보겄재.”
눈물마저도 보이지 않기 위해 참고 인내하며 살아온 평생의 보람은 시집식구들이 알아주는 것일까. 김할머니는 시집식구들 자랑을 한다. 언제 그런 고생을 했을까 싶을 정도로 밝은 김할머니를 보면서, 고통을 스스로 해소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최고의 장수비결이라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이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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