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초고령화시대(72회)
작천면 용정마을
신창현할아버지(80)
4대째 마을을 지키고 살고 있는 신창현 할아버지는 어린시절부터 한학을 공부하면서 농사를 지어온 시골유림이다. 2남1녀 중 장남이었던 신할아버지는 열세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아래서 자랐다. 향학열이 높았던 어머니는 아들을 인근에 있는 서재에 보내서 큰 스승아래서 공부하는 일을 제일로 삼았다. 어머니는 옹색한 살림에도 불구하고 이웃에 있는 서재에 아들을 보내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그로인해 신할아버지는 훌륭한 선생님들 아래서 대학과 맹자 등 논어2권까지 배울 수 있었다. 한학을 공부한 신할아버지는 그야말로 유교적 학문을 통한 지식인의 모습이다. 한 점 흐트러짐 없는 말투와 자세에서 옛 선비를 연상케 하지만 현대를 받아들일 줄 아는 현명한 분으로 느껴진다. 신할아버지는 자신이 그처럼 공부하고 싶었던 것처럼 어린시절 영리했던 동생에 대한 회상으로 말문을 열었다.
“동생은 재주가 있어가고 한번 들으면 잊지를 않고 영리했어요. 노트 필기 한번을 안 해서 선생님이 물었다요. 그런데 다 외울 수 있다고 하더니 줄줄줄 외워서 깜짝 놀랬다고 하더만요. 동생은 항상 1등을 했어요.”
영리했던 동생을 한참이나 떠올렸다. 그렇게 출중했던 동생이 몇 년 전에 먼저 세상을 떠난 것이 영 아쉬운 듯한 신할아버지에게서 동생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 보인다. 혼자힘으로 힘든 시절 동생을 대학까지 가르쳤던 어머니에 대한 향수는 나이를 먹어도 지워지지 않는다.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가 지니고 있던 책들을 집안에서 보면서 자랐다.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말로서 가르치지 않고 언제나 행동으로 알려주었다. 언제부터 지니고 있었던 책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어머니는 틈이 나면 책을 보았으며 붓으로 쓰기까지 했다. 아버지가 제주나 개성 등 객지 생활을 많이 했기 때문에 아버지와 주고받은 서신도 집안에 수북이 쌓였다. 그러한 어머니의 편지 등이 없어진 것이 매우 안타깝다는 신할아버지다. 군대를 피하기 위해 전전하던 때 모두 없어졌으며, 이후 찾을 길이 없게 되었던 것이다.
“어머니가 지니고 있던 책 중 세권을 갖고 있었는데, KBS이동 감정단이 왔을 때 내놓았더니 ‘궁중소설’ 이라고 합디다. 모두 붓글씨로 써 있는 책인데 한권에 십만 원 씩 치더만요. 지금도 갖고 있어요.”
신할아버지는 어머니를 ‘대한충의효열록’에 등재하기도 했다.
지식이 있다는 사람들을 만나서 애기해보면 그 사람의 지식정도를 금방 알 수 있다는 신할아버지다. 약간의 지식이 있다는 사람들을 대해보면 글을 껍데기로 배웠는지 깊이 알아 들었는지 보인다는 것이다. 마을에 머물렀던 훌륭한 선생님이 ‘자네 무엇을 배울랑가’하고 물었을 때 아무 말도 못하고 있자 선생님이 다시 말하기를 ‘修身(수신):마음을 착하게 하며 행실을 바르게 하는 것’ 이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신할아버지는 서재에 다니면서 선생님께 들었던 이야기들을 실타래 풀듯 풀어 놓으신다. 관서재 선생님들이 많이 머물렀던 곳이어서 글을 잘 쓰는 이들이 많이 나왔지만, 서재가 옮겨간 뒤로는 큰 글들이 나오지 않았음을 안타까워 하는 신할아버지다.
“평생 공부를 했지만 어디 전할 때가 없어요. 마음은 늘 배우고자해도 재주가 없어 못하고 늙으니 지금은 아쉬운 점이 많아요.”
노인 복지회관에 나가보지만 세상이 180도라 변했다. 어떤 말을 하고 싶어도 안 좋아 하는 사람이 있을까봐 하지 않는다는 신할아버지다. 옛사람들은 허물을 가르쳐주면 절을 했다는데, 요즘 사람들은 듣기조차 싫어하기 때문이라며, 누구든지 듣기를 먼저 해야 됨을 일러준다. 백세후가 되어도 아무도 비평할 수 없는 글이 바로 경이며, 그 경이말로 성현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일언이 부중이면 천어가 무용이라, 한마디가 이치에 맞지 않으면 천 마디 말이 필요 없다는 뜻이요. 공자가 요즘 세상에 계시다면 현대의복을 입고 요즘 사리에 맞게 말을 할 것이요. 역은 늘 변역을 해요. 역이 번역하고 수시로 번역을 하고, 이것을 바로 종도라 해요, 바로 도를 따른다는 말이지요. 국민은 국민의 도리가 있고, 자식은 자식의 도리, 부모는 부모의 될, 임금은 임금의 도리를 다하는 것 말이요.”
요즘 사람들은 대국적인 인간의 도리는 생각하지 않고 인기주의와 개인이기주의로 순간을 모면하기 바쁨을 지적한다. 당연히 세상의 변화에 따라 그러리라 생각은 하지만 서로가 지킬 것은 지켜야 하다고 강조 하신다.
“지금의 도의는 그때만 못하지만 사는 것은 요즘 세상이 좋지요. 다 잘 살고 굶는 사람 없으니 참 좋은 세상이요.”
(이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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