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치마당 참관기(황주홍 강진군수 출판기념회를 보고)
“그 분의 작은 키가 고향의 척박한 가난을 지우느라 닳은 지우개로 연상”
김현임(수필가. 모란촌문학동인회원)
인파였다. 모두가 싱글벙글, 걸게 차린 잔칫집 가는 표정이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행렬에 휩싸여 황주홍 군수님의 출판기념회장에 당도하기까지 떠올리던 단어가 門前成市다. 무엇이 그들의 발길을 재촉해 고을 목민관에게 향하게 하는가. 그것이 문득 궁금해진 것이다. 권력자의 집 앞을 서성대는 순수치 못한 방문객들을 이르는 말로 추락한 이 말의 眞源을 새삼 되새겨보는 것이다.
제나라의 문무백관이었던 추기, 키가 팔 척이나 되는 미남이었다. 의관을 차려입고 거울을 보던 그가 아내에게 물었다.
“모두 빼어난 미남이라는 서생을 나와 비교한다면 누가 더 낫지?”
아내는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대답했다.
“그야, 물론 당신이 낫죠. 감히 서생 따위를 당신과 겨루겠어요?”
아내의 말은 기뻤다. 하지만 공인된 미남인 서생, 그는 아내의 말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에는 첩에게 물었다. 첩 또한 망설임 없었고, 이튿날 그의 집에 들른 절친한 친구의 입에서도 마찬가지 답변이 나왔다.
얼마 후 추기는 서생을 직접 대면하게 되었다. 서생과 자신을 비교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여겨 꼼꼼히 살폈다. 자신이 결코 넘볼 수 없는 경지의 특출한 서생의 용모에 그는 이런 결론에 다다랐다. ‘아내가 나를 추켜 세워준 것은 자아비인 나를 아끼는 마음에서였을 테고, 첩은 행여 내게 버림 받을까하는 두려움에, 또한 친구는 제 일을 도모함에 나의 힘을 빌릴 빌미를 마련키 위해서니 모두가 나의 환심을 사고자 아첨을 한 것이구나’ 그는 지체 없이 왕을 찾아갔다.
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제 이익을 위해 왕에게 사실을 사실대로 간하지 않았음을, 그동안 왕은 철저히 눈가림 당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간곡히 아뢰었다. 추기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판단한 왕은 이후 자신의 과오를 낱낱이 알려주고 꾸짖어 들추어주는 이에게는 큰 포상을 내리겠노라고 선포했다. 궁 앞은 장터를 방불케 했다. 말 그대로 문전성시가 몇 달 동안 이어지더니 일 년 후부터는 딱히 간할 일이 없어져 그물을 쳐 새가 잡히는 門前雀羅가 되었다는 고사다. 어쨌든 실내체육관의 위 아래층을 가득 메운 것도 모자라 식장에 들어서지 못한 이들도 부지기수다.
내겐 큰 자랑이었다. 외국인들이 입 마르게 칭송하며 부러워하는 우리의 가을하늘 빛, 그 빛깔 쏙 빼닮은 청자와 흐드러진 모란꽃의 시인 영랑, 그리고 다산 정약용 선생의 고아한 발자취가 서린 곳이 나의 태생지라는 것이. 하긴 매번 항목이 추가된다. 눈부신 성장에 눈 부비게 하는 강진의 도약 덕택이다. 갖가지 새로운 정책과 뛰어난 발상으로 전국을 압도하는 활기의 큰 기운이 넘쳐난다. 선조들이 남긴 옛 것이나 자랑으로 내놓는 진부한 고장이 아니라 심장 뜨겁게 활약하는 젊은 끼가 느껴지는 팔팔한 고을이 내 고향 강진이라는 뿌듯함이다.
바른 국정을 실천해보고자 입후보했던 국회의원 선거에서의 낙선이 인생행로를 바꾸었다고 했다. 마을 입구의 담배가게 주인이 되어 살아도 자신의 태가 묻혀있고 뛰놀던 유년의 추억이 서려있는 고향 흙을 밟으며 산다는 것은 큰 축복 아닐까. ‘깨끗이, 열심히’가 고향의 首長이자 守長인 황주홍 군수님의 계명이란다. 득표율 76,1%라는 놀라운 지지율로 출발했다. 자신이 흘린 땀의 결실로 나날이 주목 받는 고향, 그 발전의 견인차가 되어 탯자리에 보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은 큰 복록이다. 스스로 일컫기를 저돌적 검투사 기질이라 했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선량한 의지를 꿋꿋이 밀고나갈 당찬 가슴을 지녔음이 부럽다.
전국이 비가 내리는데 단 한 곳 강진만은 비껴갔다던가. 사회자의 오프닝 덕담은 우연이 아니었다. 決戰이라는 전쟁용어를 빌 정도의 투철한 사명감으로 임한 郡政이니 어찌 하늘인들 감동치 않을까. 행사의 가장 큰 扶助요, 가장 큰 축복은 하늘만이 주관할 수 있는 당일의 날씨니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반드시 돕는다’는 구절이 있었다. 근래 들어 ‘강진군에서도 대한민국을 바꿀 수 있다’는 도전적 제명의 책 속 문구를 실감하지 않은 이 누군가. 중앙 언론의 집중 조명이다. 강진이 이토록 전국을 강타하는 화제의 핵이 된 적이 있었던가. 남쪽의 맑고 투명한, 그리고 작지만 야물 찬 고을에서 일으키는 뜨거운 혁명의 바람이다.
장내를 타고 흐르는 해바라기의 ‘내 마음의 보석상자’를 따라 부르며 이 기꺼운 잔치에 동참하는 기쁨을 만끽한다. 황소 잡아 주인집 마당에 들이는 의기양양한 일꾼, 다부진 체구인 군수님의 면모는 든든하다. 집무실의 낡은 책상과 수선한 와이셔츠의 일화, 덧 대 고쳐 신고 왔다는 구두밑창이 대변하는 소박함도 미더웁다. 그분께 드릴 남다른 선물거리를 두리번대던 내게 스친 기발한 깨달음이다. 황주홍 군수님, 당신은 인생에 주어진 다른 호사는 다 뿌리쳐 양보하고 단 한 가지 이름에서 꽤나 욕심을 부렸던가. 예로부터 왕족, 우두머리의 빛깔이라는 노랑을 뜻하는 그분의 姓이 그렇고 주위의 시선을 사로잡고 싶거든 착용하라 권하는 매혹적인 주홍이 당신의 평생 호칭이다. 이는 무리 중 우두머리로, 주위의 시선을 사로잡는 이가 될 명운을, 애초 모두가 앙망하던 인물로 일찌감치 낙점된 명백한 증표 아닐까. 내 이런 이름풀이는 황주홍 군수님에게 거는 동향인의 큰 기대치려니 먼먼 훗날까지 그 분의 작은 키가 고향의 척박한 가난을 지우느라 닳은 지우개로 연상되기를 빌어도 본다.
흔히 정치가들의 사탕발림 말을 비꼬아 ‘言必稱堯舜’이라 했다. 치세의 으뜸이었던 두 군주가 요순이니 말로는 康衢煙月의 요순을 들먹이면서 정작 제 잇속 챙기기에 급급한 무리를 꼬집는 말이다. 우리는 황주홍 군수님, 그의 정직과 열정을 믿는다. 다만 기우려니 열심히 목적지를 향해가는 도중 잠시 쉬는 것도 지혜다. 보다 행복하고 즐겁게 살기 위해서 혼신의 힘을 다해 노력하는 것이 삶이라지만 달리는 말에 가하는 잦은 채찍질은 위험하다. 물 출렁이는 논에 희망의 어린 모를 심으며 잠시 하늘을 우러르는 시간, 출판기념회라기를 핑계로 정겨운 이들을 만나 어깨 마주하고 그동안의 성과를 칭송하며 덕담 나누는 정겨운 시간이다. 채우고 넘쳐나 문전성시인 앞마당은 절로 터지는 흥겨운 추임새로 잔치의 절정이다. 모두가 팽개친 친절과 정직을 먼지 나는 궤 속에서 꺼내어 빛나는 경제적 개념으로 승화시킨, 주식회사 강진군의 CEO 황주홍, 그 匠人의 형형한 눈빛이 오래도록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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