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 윤민화 기자가 보는 세상읽기 (3회)
우리 동네 길에는 무엇이 있을까?
며칠 전, 선배가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선배 얼굴이다. 어쩜 그리 환하고 밝은 지, 지금까지 그런 표정을 본적이 없던 나로서는 ‘언니 너무 좋아보인다!’ 감탄이 절로 난다.
제주 올레에서 찍은 사진이란다. 선배는 그로부터 그 길의 팬이 되어 짬짬 시간이 날 때마다 다녀오는 눈치이다. 어찌나 찬사를 하던지 이 길이 어찌 만들어졌는지 사뭇 궁금해졌다. ‘올레’는 제주어로 ‘거릿길에서 대문까지의 집으로 통하는 아주 좁은 골목길’을 이른다 한다.
제주 출신 언론인이 스페인 산티에고(순례자의 길)를 다녀와 자신의 고향 제주에 내려와 지인들과 한걸음 한걸음 걸으면서 이 길을 이었다고 한다. 2007년부터 한 코스 한 코스 세인들에게 알려졌다 하니, 손꼽아 보니 4년이 채 되지 않았는데도 작년 반년동안 8만명이 이 길을 다녀갔다 한다. 실로 놀랍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 길을 사랑하는지 알만 하다.
일이 이렇게 되니, 전국 곳곳의 길들이 고개를 내민다. 지리산 둘레길이며, 언저리길이며, 진안 마실길이며, 군산의 구불길이며 고향 길을 마음에 품은 이들이 제 2, 제 3의 올레를 잇고 있다.
이 소식을 들으니 몇 몇 기억이 되살아난다.
몇 해 전, 한동안 집에 내려와 살았다. 평소 고향 풍광 자랑을 너무 많이 한 터인지라 지인들이 이 때를 놓치지 않고 줄이어 다녀갔었다. 멀리서 손님이 온다하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어디로 데려가야 할까? 이리저리 궁리를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어렵더니 그도 한 두번 하다 보니, 요령이 생겼나보다. 유할 시간에 맞추어, 오는 사람 취향에 맞추어, 때론 1박/2박/3박용 코스로, 때론 관광명소/바닷길/산길 코스로 일명 ‘맞춤’까지 하게 되었다. 그들도 고향 강진을 잊지 못하겠노라 하였지만, 나 또한 그들이 내게 준 반응을 잊지 못한다. 그저, 편하고 편한 얼굴로 미소가 절로 피어난 것은 기본이요. 어머니께서 ‘어서 오시오’ ‘오느라 수고 많이 했네, 어서 가서 밥 먹세.’ 이 한마디에 눈물을 낸 이도 있었다. 먹거리 하나에도 어쩜 이리 맛나냐며, 감탄에 감탄이요. 바다로 산으로 둘러보는 곳곳마다 탄성이 이어지니, 여행을 마치고 다들 한바가지 곤곤한 무게를 다소간 내려놓고 가뿐한 표정으로 올라갔다. 이것이 무엇일까? 고향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쯤되니, 선배 말이 새롭게 다가온다. 처음 제주 올레에 다녀올 때는 그저 이렇게 걸을 수 있어서 좋았다 했다. 한 두 번 이렇게 걷고 있는데, 아마 그 때가 한창 귤 수확 때였나 보다. 누군가가 여보시오 부르더니 이리와 일손 좀 도와 달라 했다 한다. 재미있겠다 싶어 한창 손을 빌려주고 나오니, 먹을 만큼 가득하게 귤을 내어주니, 참 이것이 정이지 싶더라 한다. 민박을 하게 되었는데, 민박하시는 분이 고향 자랑이 어찌나 높던지 한 군데라도 더 알려주려고 말에 힘을 주고, 나그네 짐이 무거울까 마다하지 않고, 이리저리 짐을 날려다 주는 마음까지 내어주니 아~ 이것이 또한 정이다 싶더라 한다.
그 곳에 살고 있는 동네 분들이 이 길에 오는 이들을 마음으로 환대하고, 하나라도 더 주고 싶은 그 정과 정성 때문에 다시 이 길을 찾고자 하는 마음이 생긴다고 했다.
벌써 몇 차례 그렇게 제주를 다녀오니, 항상 그 곳 소식이 궁금하고, 그 곳에서 중간중 간 머물며 담소 나눴던 수퍼마켓 주인 아저씨 소식이며, 오가며 만나 격없이 이야기 보따리 풀어놓았던 그 길에서 만난 이들 안부가 궁금하다 한다.
듣고 보니 참 그렇겠다 싶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수업 시간 때 일이 생각난다.
‘지역사회복지론’ 수업인데, 지역의 어려움과 문제를 해결하고, 지역 주민이 잘 살 수 있는 방편을 배우는 과목이다. 지역복지를 배우기 전에, 먼저, ‘지역’, ‘지역사회’가 무엇인지 마음으로 가늠해보고저, 학생들에게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를 그려보라고 했다.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을 중심으로 자주 이용하는 음식점이며, 벗하고 지내는 이웃이며, 은행이며, 수퍼마켓이며, 시장이며, 공원이며, 공공기관이며, 아이들이 다니는 어린이집이며 학교, 복지문화센터, 목욕탕, 도서관, 자주 타고 다니는 버스며, 함께하는 모임이며,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에 있는 이것 저것의 건물들과 사람들...자기와 어떻게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지를 그려보라고 하였다. 그 장 한 페이지가 완성되니, 그야말로 그 사람의 생활을 알 수 있게 된다. 어떤 이는 자신의 동네에서 많은 이들과 벗하며 깊이 교제하며 살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또 어떤 이들은 그저 그곳에서 잠만 자고 나서는 이들도 있었다.
수업 준비 차, 나 또한 미리 그려봤다.
먼저 서울 동네를 그려봤다. 택배로 자주 뵙던 경비해주신 분 말고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달리 아는 이는 없었다. 아주 자주 들르던 슈퍼며, 커피숍이며, 과일가게며 꽤 많은 곳이 있지만 그저 필요한 물건 사러 드나드는 곳일 뿐이었다. 한마디로 이 곳에서 나의 삶은 그저 왔다 갔다 잠만 자는 뜨내기 삶인 듯 하다. 또 다르게 그려봤다. 내가 살고 있는 고향 동네를 마음에 두고 그려봤다. 어찌 이리 극명하게 대비되는지. 일단 참 많은 분들이 떠오른다. 가족, 친척 분들, 친구 어머니, 아짐, 아제, 고모, 고모 친구분들, 동생 어머니, 사촌 오빠, 어르신... . 그저 수퍼가 아니라, 수퍼에 가면 아는 그 분, 주유소가도 아는 그 분, 먹는 데를 가도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그 분... 서울과는 달리, 고향 동네를 생각하면 먼저 읽히고 떠오르는 상은 그저 건물이 아니라 그 안에서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정을 나누는 그 분들. 동네 분들이 있었다.
그렇다. 선배 얼굴이 제주 올레에서 그리 피어오르던 것도. 제주의 멋드러진 자연일런지 모르겠다. 그러나 더욱 귀한 일등 공신은 아주 멀리 있어도 마중나오는 사람들이며, 목마르니 잠깐 쉬었다 가라고 이야기 해준 넉넉한 마음과 사람 생각해주는 푸근한 정이 아닐런지 싶다. 아마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사시사철 때때로 제주 올레로 길을 나서는 것은 그 사람냄새를, 잊혀져 가는 우리네 정을 맡고 싶어서가 아닌가 한다. 그런 사람들이 또 함께 길을 걸으며, 또 다른 길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아마도 언젠가 우리 고향에도 자랑할만한 동네 길을 이을, 그 날이 올런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 길의 풍광도 풍광이겠지만, 그 곳에는 우리 고향 인심이 있었으면 좋겠다. 언제, 어디서 오더라도 와락 안기고 싶은 어머니 품 냄새 나는 그런 것이 우리 동네 길에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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