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승환 칼럼
좋은 컨셉의 조건
■ 2002년 전남도지사 후보 경선-컨셉의 승리
역대 지방선거를 결과적으로 보면, 광주·전남지역에서는 ‘경제’를 앞세운 후보가 당선됐다. 2002년 민주당 전남도지사 후보 경선은 말 그대로 컨셉(Concept)이 선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선거라고 할 수 있다. 박태영 후보의 승리는 곧 컨셉의 승리였다.
민주당 전남도지사 후보 경선에 참여한 후보는 당시 전남도지사인 허경만 지사, 전 산업자원부 장관 박태영 후보, 농업전문 국회의원인 김영진 후보, 이렇게 세 명이었다.
선거에 돌입하면서 허경만 후보는 ‘SOC(사회간접자본 : social over
head capital)’, 박태영 후보는 ‘경제도지사’, 김영진 후보는 ‘농촌문제
전문가’를 내걸었다.
2002년 5월 4일 투표에서 박태영 후보가 당선됐다. 1차 투표에서 허경만 후보가 상당한 표차로 1등을 했지만, 김영진 후보와 박태영 후보가 연대하기로 함에 따라 김영진 후보의 표가 박태영 후보에게 몰리면서 박 후보가 당선된 것이다.
그런데 1차 투표에서 박태영 후보가 김영진 후보보다 앞서 최종 당선이 될 수 있는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선거가 끝난 뒤 박 후보의 선거대책본부 관계자는 ‘경제도지사’라는 컨셉이 결정적이었다고 평가했다. 그 한마디가 선거를 승리로 이끌었다는 것이다. 선거운동 기간 동안 박태영 후보는 ‘경제도지사’를, 김영진 후보는 농도(農道) 전남의 발전을 이끌 ‘농업 전문가’임을 내걸고 열심히 뛰었다.
기업인 출신으로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낸 박태영 후보의 이력은 경제도지사라는 컨셉을 뒷받침하기에 충분했고, 국회 농수산위원회에서 10년 동안 농촌 문제를 다뤄온 김영진 후보가 농업 전문가임을 내세우는 것도 충분히 타당성이 있었다.
문제는 전남이 농도라고는 하지만, 실제 농업 인구는 전체 인구의
30%에 불과하고 그나마 민주당 경선 참여와 거리가 먼 노인층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농업 전문가’라는 이미지로 파고들어갈 수 있는 대상 자체가 한정되어 있었다. 그것이 김영진 후보의 가장 큰 패인이었다.
김 후보 진영은 선거에서 컨셉의 중요성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 대중의 정서를 충분히 이해하라
필자는 이 시대에 가장 뛰어난 선거 컨셉으로 1997년 김대중 대통령의 컨셉을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잠깐 생각해보자. 1992년 김영삼 대통령이 당선되던 선거에서 김영삼 대통령 후보의 가장 대표적인 선거구호가 무엇이었는지 기억할 수 있을까? 또 지난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 후보가 사용했던 대표적 표어는 무엇이었나?
김영삼 대통령의 대표적인 표어는 ‘신한국 창조’였고, 노무현 대통령의 표어는 ‘새로운 대한민국’이었다. 들으면 아! 그랬던가 싶겠지만 처음 이 질문을 받고 그 답을 말할 수 있었던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단순히 컨셉으로만 보면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의 ‘일하는 사람들의 대통령’이 훨씬 큰 호소력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권 후보가 살아온 이력이 자신의 컨셉을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1997년 김대중 대통령 후보의 컨셉은 무엇이었는가? 그렇다. ‘준비된 대통령’이었다. 이 컨셉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좀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우리 나라는 IMF 사태를 맞아 능력 있는 리더(leader)가 절실하던 상황이었다. 그 어렵던 상황에서 대중은 ‘준비된 대통령’을 필요로 했다. ‘준비된 대통령’은 김대중 후보의 개인 이미지와도 아주 잘 맞았다. 책을 많이 읽는 것으로 알려진 김대중 대통령, 그 폭넓은 지식은 이미 정평이 나 있는 터였다. 거기다 ‘든든해요!’라는 구호까지.
‘준비된 대통령이 든든하다!’ 두 개의 구호가 하나의 컨셉이다. 필자가 ‘준비된 대통령’을 최고의 컨셉으로 꼽는 또 하나의 이유는 김대중 후보에게는 이 준비된 대통령 외에도 다른 컨셉을 쓸 수 있는 여지가
많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민주화 투쟁을 부각시키는 방법도 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 그런 컨셉이 호소력을 가질 상황이 아니었다.
또 ‘든든해요’라는 구호를 사용하는 데 당내외 열성 지지자들은 너무 밋밋한 게 아니냐는 지적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대중의 정서를 충분히 이해한 홍보팀이 밀어붙인 구호가 ‘든든해요!’였다.
김대중 후보의 구호만큼이나 잘 알려졌던 것으로 1987년 대선 때 노태우 후보가 사용했던 ‘위대한 보통사람의 시대’라는 구호가 있다.
이 구호 역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1980년대 군사독재 정권의 서슬이 퍼렇던 권위주의 시대, 대통령이 될 사람이 ‘보통사람’을 자처하는 것은 매우 신선한 일이었다. 게다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비교적 부드러워 보인 노태우 후보가 소화해낼 수 있는 컨셉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의 기억에 오래도록 남는 것이다.
오는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우리 지역에 출마한 후보들의 컨셉을 보면 높이 평가할 만한 컨셉을 찾아보기 힘들다.
여러 가지 컨셉을 동시에 사용함으로써 유권자들에게 혼선을 줘서는
안된다. 유권자 대중은 여러 가지 컨셉을 섞어놓으면 그 중 단 한 가지도 기억하기 못하기 때문이다.
▲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 국방일보 기자
▲ 파이낸셜뉴스 기자
▲ 문화체육관광부 정책포털 기자
▲ 중앙공무원교육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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