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 윤민화 기자가 보는 세상읽기8
그리운 ‘손’ 님들
‘손’, 오늘은 손에 대해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친구가 한참 전에 떠돌았던 문제를 냅니다. “세상에서 가장 먼 여행이 어디인지 알어?” “당연히 알지. 머리에서 가슴까지.” 처음 이 답을 들었을 때는 뭉클한 감동이 있었는데, 몇 차례 듣고 보니 이제는 시시해져 버렸습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친구는 하나 더 물어봅니다. “그럼 세상에서 가장 힘든 여행은 어디인지 아니?”
“응? 어디지? 어디인데?”
“가슴에서 손까지.” 그 답을 듣고 보니, 마음에 작은 파문이 일어납니다.
마음으로는 생각하고 있다하나 손 내밀어 도와주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니, 가슴에서 손까지의 거리는 가깝다 하나 참으로 멀고도 어려운 길이겠다 싶습니다.
이 이야기를 곱씹다 보니, 제가 보았던 많은 분들의 손이 생각납니다.
그 중에서도 몇 해 전 고향 찜질방에서 보았던 한 아주머니의 손이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그 아주머니는 얼굴이 참 곱고, 몸은 아주 여리고 아담하신 분이셨는데, 그 분 손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동생은 저를 놀리느라 ‘누나 손은 두꺼비손, 두꺼비손’ 합니다. 그렇게 제 손은 우악스럽고 큰데, 여리고 고운 그 아주머니 손이 제 손의 갑절은 되어 보입니다. 그 날 처음 뵌 분인데도, 이상스레 그 분 손이 참 고맙게 느껴집니다. “아짐, 손이 참 이뿌시네요.”, 주제 넘은 말을 하고 맙니다. “뭐가 이뻐, 밉제.” 아주머니는 웃어주십니다.
평생에 일을 마다하지 않은 손이었습니다. 그 손으로 자식들 다 가르치시고, 결혼시키고 일가를 이루신 그런 손 말입니다. 주위를 다시 보니, 옆에 계신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다 그런 손을 가지고 계시네요.
우스개 소리인지, 정말 과학적으로 근거가 있는 소리인지 모르겠으나 미래 인류의 모양새는 머리는 커지고 손과 발은 없어지거나, 아주 작어진 가분수 모양이 될 거라고 하네요.
아주 오래전 인간에게 꼬리가 있었으나 필요없어 퇴화되었다 하니, 손과 발의 필요가 적어져 쓸모없게 되면 그 또한 없어질 수 있다는 추측은, 일리가 있는 이야기 인 듯합니다.
어찌되었건, 수많은 손놀림이 필요했던 것들이 버튼 한 번 누르면 다 되어버린 편리한 세상이니 그만큼 손의 필요가 적어진 시대인 건 분명하니까요.
그러고 보니, 그 버튼들도 참 고마운 ‘손’입니다.
어릴 적, 어머니는 밝을 때 짬을 못내셨는지 늘 저녁이 훌쩍 지나간 시간에 빨래를 하시곤 하셨답니다. 옆에서 조물조물 거들기도 했으나, 대가족이라서 하루 이틀 거둬들인 빨래감이 큰 들통으로 한가득이니, 어머니가 언제 저걸 다하고 주무실까 걱정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버튼 하나면 다 해결되는 세탁기가 나오고부터는 그 걱정이 사라졌으니 참 고마운 기계입니다. 어디 세탁기 뿐이겠습니까? 선배 집에 가보니 식기세척기라는 것도 있어서, 남은 음식물 슬쩍 걷어내고 켠켠히 쌓아올려 놓고 버튼을 누르니 순식간에 건조까지 다 되던 걸요.
어머니 손, 수많은 사람들의 손을 편하게 하였으니 얼마나 고마운 기계 ‘손’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도, 전 참 구식인가 봅니다.
편리라는 이름을 가진, 기계 ‘손’이 인간의 손을 대신하여 그 영역을 무한대로 넓혀 사람의 수고를 덜어주니 고맙긴 하나, 그래도 대신하지 못하는 진짜 ‘손’에 대한 기억이 날이 갈수록 새록새록 생각나고 그리우니 말입니다.
이제는 만질 수 없게 된 외할머니 손이 제겐, 그리운 그 ‘손’이네요.
어릴 때 아주 잠깐 외할머니 손에서 큰 적이 있었답니다. 글쎄 크느라 그랬는지 배탈이 잦았는데, 그때마다 외할머니는 제 배 위에 손을 얹어 둥글둥글 이리저리 맴돌려 주셨답니다. 그 감촉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까슬까슬하고 두툼해서 배가 더 아프기도 했지만 이상하게 할머니 손이 올라가면 스르르 잠이 들곤 했답니다. ‘얼마나 아플꼬, 어서 나서라 와~, 나서라 와~’ 하시면서 언제까지나 제 배를 찬찬히 돌려주셨던 할머니의 그 ‘손’ 말입니다.
몇 해 동안 책상에서 머리만 굴리고 있는 저에게 선배가 한마디 찌릅니다. “머리로 쌓은 지식이 사람에게 얼마나 이로울까?” 논문 쓰느라 절절 매고 있는 저에게 머리 끝에서 나온 지식이 손발 움직여 나온 실천보다 못하니, 너무 용쓰지 말고 얼른 마치라는 충고입니다. 그 말에 그동안 잊고 지냈던 그립고 고마웠던 진짜 ‘손’ 들이 생각났답니다.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손’,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는 그 ‘손’, 까슬까슬 하지만 징그럽게 따뜻했던 그 ‘손’ 말입니다.
이제, 우리도 길을 나서야 할 때가 아닌가 하네요. 멀다고 하나 머리에서 가슴까지, 힘겹다고 하나 가슴에서 손까지 이어지는 그 길. 그 길의 훌륭한 길라잡이인 진짜배기 그 ‘손’ 님들을 기억하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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