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문 인생교양칼럼21
중추가절(仲秋佳節) 그리운 이에게 편지를 띄우세요
이형문(수필가·영랑기념사업회자문위원)
지난여름은 지구 온난화로 유난히도 무더웠다. 찜통더위가 처서를 고비로 지나가고, 소슬한 가을바람에 흩날리는 논두렁 억새풀들이 나풀되는 사색의 계절, 짙어가는 가을 밤, 세찬 바람에 솔방울 떨어지는 소리(空山松子落)를 들으며 묻혀버린 기나긴 세월인데도 고질병이 도지듯 붉게 옷을 갈아입는 단풍철만 되면, 보고 싶은 이에게 편지를 띄우고픈 생각이 내 가슴에 살포시 다가와 지워지지 않고, 둥지를 틀며 되살아나는 이유를 알 수가 없습니다. 이런 중추가절에 그리운 이에게 한통의 편지를 띄워보십시오. 살아가다보면 누구에게나 잊혀 질수 없는 그런 사이의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어느 때인가 헤어진 첫사랑이라든지? 또 그 연인이 그리워 못 견딜 때, 그 리고 먼 이국으로 떠나가 살고 있는 형제나 친지 분에게도 좋지요. 사랑의 우정을 위해서 말입니다. 저의 경우도 그런 일이 있답니다. 과거 무역업을 하며 일본을 자주 드나들던 어느 날 동경(東京) 긴자 거리에서 우연히 길 안내로 알게 된 (당시 와세다 대학생) 미모의 여학생과 수년간 따뜻한 정을 편지로 나눴지요. 이 여대생이 훗날 결혼 후에 아이와 남편과 함께 저를 못 잊어 한국에 찾아와서 내가 경주 관광안내까지 해줬던 기억을 잊을 수 없습니다. 물론 제가 일본에 갔을적엔 온천 관광지로 유명한 하꼬내 온천과 닛꼬온천, 그리고 아타미온센의 늦가을 일본 풍경안내의 추억은 잊을 수 없습니다. 특히, 아타미온천의 경우 벼랑 끝에 노천온천으로 시설돼 앞에는 망망대해 태평양이 바라다 보이고, 뒤로는 유명한 눈 덮인 후지산이 바라보였습니다. 국경을 초월한 순수한 정의 만남과 주고받은 편지로 맺은 인연이었기에 가을만 되면 다시 생각나고 합니다.
누구나 편지를 주고받다 보면, 세속에 시달리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으며 한결 가뿐 해 지기 마련입니다. 컴퓨터로 두들겨 써서 보내기보다 펜으로 직접 써서 보낼 때 순수하고 따뜻한 정(情)의 냄새가 더 풍길 것입니다. 우리가 고독할 때 진정한 사람에게 위로의 인사를 나누고 싶은 그런 오랜 세월의 뒤안길에서 시련을 견뎌낸 보고픈 정을 서로가 먼 위치에서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이 가을에 편지를 띄울 때 답답했던 심정도 홀가분해질 것입니다. 또한 그것은 오랜 침묵의 정이 이 가을에 쓸쓸한 고독을 달랠 수 있는 위로가 될 것입니다. 짙어가는 가을, 당신에게 무엇 하나 줄 수야 없지만, 띄우는 편지 속에 넘쳐흐르는 사랑과 믿음이 아름다운 행복으로 승화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린 가난하지만 마음만은 진정 따뜻하고 행복할 것입니다. 이런 글이 생각납니다.
불자현고명(不自顯故明) 스스로 드러내지 아니하고, 불자시고창(不自是故彰) 스스로 옳다하지 아니하니 빛이 나고, 불자벌고유공(不自伐故有功) 스스로 뽐내지 아니하니 공이 있으며 ,불자긍고장(不自矜故長) 스스로 가난하지 아니하니 으뜸이 되도다. 인생의 가장 큰 영광은 결코 넘어지지 않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넘어질 때마다 일어서는데 있고, 곁에 일어날 수 있도록 손잡아주는 사랑의 우정이 많을 때 외롭지 않을 것입니다. 삶의 우정은 인생의 귀중한 가치입니다. 가장 지혜로운 삶은 영원한 초심자로 살아가는 따뜻하고 넉넉한 마음입니다. 사랑이 그리운 이에게 이 가을에 편지를 띄우는 당신은 분명 사랑받기에 충분한 사람입니다. 중추가절(仲秋佳節)의 해 가을이 다 가기 전에 아름다운 사랑의 편지 한 통 띄워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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