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초고령화 시대 (구구팔팔 이삼사 인생- 구십구까지 팔팔하게 살고 이틀 아프고 사흘 째 입원하고 나흘째 죽는다)
강진고을신문에서는 초고령화 시대를 맞이하여 강진 고을에 거주하시는 연세 많으신 분들을 찾아갑니다. 그 분들의 삶을 잠깐씩 조명해 보는 가운데 분명 콧등을 아리게 하는 그 뭔가가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새 봄도 아름답고 겨울도 아름다운데/ 젊음도 늙음도 모두가 멋이더라/ 인생길 먼저 가면 누가 나를 대신 해/ 세월이 좋다보니 아흔도 팔팔 해/ 이팔청춘 부럽지 않는 구구팔팔 인생/ 살아가는 그 날까지 구구팔팔 인생
군동면 화방리 422번지 윤 주봉(尹住奉) 할아버지
군동면 소재지에서 북쪽으로 2km 남짓 떨어진 곳에 위치한 화방마을은 전국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을 만큼 마을 풍광이 아름다운 곳이다. 무엇보다도 화방 마을을 감싸고 있는 화방산이 명산(名山)이기 때문이다. 전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이자 풍수지리가인 최 창조 교수가 화방산을 일컬어 기지개를 켜는 산, 혹은 기상이 솟구치는 산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화방산은 찌를 듯한 기세가 자못 웅장하면서도 등등하다. 하지만 그 산자락은 이상하게도 넓고 펑퍼짐하다. 갑자기 평지에서 솟구친 듯한 산세 때문이다.
그 곳에 윤 주봉 할아버지가 살고 계셨다. 올해로 연세가 아흔 살. 장수한 노인들을 보면 누구나 살이 없듯이 역시 윤 할아버지도 뼈만 남은 모습이다.
---치아가 곱습니다.
“틀니여, 틀니! 시방까장 이빨이 좋으면 얼매나 좋게?”
---그런데 대문에 세워진 오토바이는 누구 것입니까?
“내가 타고 댕기는 발이제.”
그 연세에 오토바이를 타고 다닐 정도라니. 그 오토바이를 타고 6km나 떨어진 읍내까지 다녀오신다니 그저 놀랍기만 하다. 지지난해까지도 군동면 복지회관에서 실시한 북 장구까지 배우로 다니시기도 했고.
--혼자 지내시는 것 같는데 할머니께서는 돌아가셨습니까?
“9년 동안 치매를 앓다가 재작년에 갔어. 그란디 무지하게 고생을 했구마. 뒷바라지하기가 너무 힘들었어. 할멈이 돌을 주어다가 밥통에 넣지를 않나, 똥 오줌을 싸서 몰래 숨겨놓기를 않나, 하두 화가 나서 손찌검까지 했는디 지금은 후회가 돼. 아무 것도 모르고 한 사람한테 손찌검을 했으니. 그러나 조금도 생각나지는 안해. 너무 힘들었거든.
--평소 좋아하시는 음식은 무엇이었습니까?
“조상 대대로 술은 못 마셨어, 술을 먹으면 머리가 아파, 단 음식을 좋아해. 육 고기를 좋아헌디 돼지고기를 좋아 하고 많이는 먹지 않아. 담배는 하루에 한 갑 정도 피웠는디 못끊겄어”
--살아오시면서 가장 즐거운 때라면 언제였습니까?
“자식덜 결혼시킬 때 하고 나 회갑 잔치 때여. 자식들하고 손자들이 죄 모여등께 그게 좋더라고, 할멈 죽은 날도 좋더라고 자식 손주까지 다 모여등께 좋긴 허더만.
할아버지는 최근에 폐렴이 심해 목포 결핵병원에서 5개월간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기침이 자주 나고 자꾸 시원한 음식만 댕겨 찬물만 마시며 사흘간을 지내고 있다고 하셨다. 칠원 윤가의 12대 독자였다는 할아버지는 7남 3녀로 10남매를 두셨으니 다복한 분이다. 12대 독자였으니 자신의 대에 자손을 번창시킨 것에 대해 자부심 또한 강하다. 논 스물 댓마지기로 그 많은 자녀들을 먹이고 가르쳤으니 한 평생 한 눈 한 번 파는 일이 없이 노역을 해온 셈이다. 광주에서 중학교 교장을 역임했다는 칠십이 넘은 큰아들이 종종 들려 반찬과 용돈을 주고 간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은 손수 밥을 지어먹고 청소도 하고 바깥출입도 불편 없이 하신다.
“왜 요로코롬 안 죽은가 몰것어. 어서 죽어서 쓸것인디······.”
손목시계를 보실정도로 시력이 좋으신 윤 주봉 할아버지. 사진을 찍자고 했더니 신문 나오면 한 부 보내달라고 꼭 당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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