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성'을 '음탕'이라니...
김현철(전 언론인)
17세기 네델란드 출신의 세계적인 거장 ‘루벤스(Peter Paul Rubens)’의 명작 중에는 암스텔담의 ‘릭스미술관’(Rijksmuseum)에 걸려 있는 ‘시몬과 페로’(Cimon en Pero, 그림 참조)라는 작품이 있다.
몇 해 전인가 ‘시몬’이 푸에토리코 독립영웅으로 이의 독립정신을 기리기 위해 그려진 이 미술품이 푸에토리코 미술관에 전시 중이라는, 사실과는 다른 내용이 인터넷 공간을 달구었던 일이 있다. 그러나 이는 오보임이 밝혀졌다.
이 그림은 감옥 안에서 벌거벗긴 채 두 손이 뒤로 묶인 한 노인이 젊은 여성의 젖을 빨고 있는 그림이다. 형무관들이 밖에서 유리창을 통해 관음증 환자처럼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상황에서도 이 젊은 여인은‘볼 테면 보라’는 식으로 조금도 부끄러운 표정이 없이 노인에게 성(性)의 상징인 풍만한 자신의 가슴을 풀어헤치고 수유하는데 만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그림의 진의를 모르는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는 ‘세상에 감방 죄수에게 까지 매춘을 하다니…’하고 음탕한 생각을 갖기가 십상팔구다. 하지만 이 그림이 함축하고 있는 깊은 의미를 뒤늦게 아는 순간 자신의 경박했던 생각이 부끄러워 얼굴을 붉힐 수밖에 없다.
이 그림은 고대 로마 역사가요 철학가인 ‘발레리우스 막시무스’(Valerius Maximus)가 서기 30년경에 펴낸 로마의 ‘기념할 만한 업적과 기록들’(Facta et dicta memorabilia)에 실린 ‘페로의 헌신적인 사랑’이라는 이야기를 소재(Motive)로 하고 있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 ‘시몬’은 무슨 죄를 지었는지 처형될 때까지 감옥 안에서 굶어야 하는 형을 받고 처형 날도 못 참은 채 비실비실 말라 죽어 가고 있는데 이를 보다 못한 딸 ‘페로’가 이렇게라도 해서 아버지의 생명을 조금이라도 연장시켜야겠다는 숭고하고 희생적인 결단을 실행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아무리 딸이라지만 중죄를 지은 아버지의 감방을 들락거릴 수 있다든지 형무관이 이를 묵인하는 사실에 대한 설명은 없다.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의 판단에 맡길 뿐이다. 필자는 페로가 죽어가는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서 형무관들을 상대로 미인계를 썼거나 아니면 매수했으리라는 추측을 해 볼 뿐이다.
감옥 당국은 뒤늦게 지극하고 숭고한 딸 페로의 희생적인 효성에 감동한 나머지 아버지 시몬을 석방했다니 우리나라의 심청전을 연상시키지 않은가.
‘페로의 헌신적인 사랑’이라는 이야기에서 말하는 ‘효행’은 짐승이 아닌, 인간이 지녀야 할 덕목의 첫째임을 가르치고 있는, 우리나라의 ‘삼강오륜’의 핵심인 ‘부위자강’(父爲子綱) 즉, ‘아들은 아버지를 섬기는 것이 근본’이라는 내용과 같은 것이다.
이와 같이‘효행’(孝行 = Filial Piety)은 먼 옛날부터 동서양이 따로 없었다.
공자, 맹자의 가르침을 비롯해서 한대(漢代)의 효경(孝經), 고구려의 태학(太學), 신라의 국학(國學) 및 삼국사기(三國史記), 통일신라의 논어(論語)와 효경(孝經)에 이르기까지, 유교적(儒敎的) ‘효’사상은 우리 지식인들에게도 기본교양으로 자리 잡는 데에 크게 이바지해 왔다.
지금도 가정교육이 올바른 집 자식들치고 '효행’을 경시하는 '후레자식'은 드물다. '음탕'이 아닌 '효성'의 극치인 이 그림을 보고 우리 모두 한 번쯤 자신이 부모님께 어떻게 처신해 왔는지를 뒤돌아보는 기회로 삼는 것도 무의미한 일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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