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향월촌 33> 진목리 갯나들 / 시와 산문 / 박부민 시인
진목리 갯나들
- 미백 이청준 선생님을 기리며
돌아보면 조근조근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오래 전, 이청준을 이청춘으로 잘못 안 적도 있던 주제에
책의 오자를 지적하는 객기 서린 편지를 했더니
마음 다치게 해 죄송하다며 정성어린 답글과 함께 보내준
신간 ‘잔인한 도시’에 새겨진 그의 단아한 서명이
여름 햇볕에 또렷이 일어서고 있다
그가 세상의 낮은 병실에서 퇴원하며
이별의 촛불을 켜던 이천 팔년 칠월의 마지막 날
긴 이야기의 실타래는 마침내 끝나고
사람들은 좋은 옷감 한 벌씩 얻어 오래된 무릎을 폈다
좌중에 박수가, 아니 울음이 터져 나왔으나
그는 별 재미없는 이야기를 지금까지
다들 그렇게 감동 깊이 들어주시느라 고생했다며
불변의 순한 미소를 쳐진 눈가에 빙긋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그가 영 떠나던 날 나는 남도 땅 진목리 갯나들에 없었지만
그보다 전날 밤새 소설 속의 진목리로 갔다
아득한 눈길을 건너온 노모가 그의 곁에서
내 자석아 내 자석아 다독여줄 때
그는 당신의 천국에서 축제의 서편 소리를 끝없이 흘렸다
구름이 전기수(傳奇叟)처럼 그의 이어지는 신화를
부지런히 퍼 담아 나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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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장흥 출신인 미백 이청준 선생 3주기가 되었다. 선생이 떠난 3년 전의 아픔이 되살아난다. 남도의 문학인이며 개인적으로도 존경하는 소설가였기에 더더욱 안타까움이 깊었다. 남도 땅은 많은 역사적 시련을 겪어 지울 수 없는 한도 많이 쌓였지만 그런 것들이 한 자양분이 되어 풍성한 문화적 토양의 복을 받은 곳이기도 하다. 자랑스럽게도 강진의 영랑 시인을 비롯하여 많은 시서화가무의 예술인들이 남도의 정서를 토대로 시대의 빛을 드러내 왔다.
중요한 것은 이런 자산을 보존하고 발전시키는 일에 다각도로 모두가 힘을 쏟아야 한다는 점이다. 당장의 경제성을 따져 문화적 가치들을 소홀히 하면 결국 그 땅은 피폐해지고 만다. 나라 전체에 해당되는 충고이기도 하지만 남도 땅의 문화적 자산은 결코 가벼이 여길 수없는 국가적 보물이라는 점을 재인식해야 한다. 그것을 관리하고 기리고 보존하는 일에 인색하지 말 것을 민과 관 모두에게 새삼 부탁한다.
장흥군 진목리 일대의 이청준 생가나 천관산 문학공원 조성 등으로 문화를 소중히 여기는 앞선 모범을 보여준 장흥의 행정력과 군민들의 단합이 많이 부러웠다. 그에 못지않게 강진도 근래에 아트홀을 만들었고 영랑 기념사업 등 문화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점을 높이 사고 싶다. 더더욱 매진해줄 것을 요청한다. 그러한 노력들이 머잖은 미래에는 가장 생산성 있는 실효적 투자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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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부민 시인 / 1996년 계간 <시와산문> 신인상 당선 (조병화 시인 選) 2005년 한국크리스챤문학상 수상. 시집『등불이 있는 마을』(시와문화 2010) 현 남도햇빛교회 담임목사 nasaret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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