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유적지 순례 10
농산별업과 다산의 朝夕樓記
안경순(전 초등학교 교장)
농산별업(農山別業)과 옹산별업은 항촌에서 건너다 보이는 덕룡산 동쪽 기슭에 위치한 작은 산들에 있다. 농산별업은 월하마을 입구로 들어가야 하고, 옹산별업은 학동마을로 들어가야 한다.
농산별업은 해남윤씨 22세 해룡공 윤광택이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의 아들 옹산 윤서유가 선영의 묘역이기도 한 농장정원에 서재와 별장을 조성하였다. 이곳에는 해룡공의 묘와 그 윗대 두 분의 묘가 여기에 있어 영모제 제각이 있고 그 남쪽에 조그마한 누각을 세워 서루(書樓)로 사용하였는데 이것이 조석루(朝夕樓)이다.
남쪽에 한옥관(寒玉錧)집이 있고 주변엔 녹운오(綠雲塢)라는 숲과 관상수로 조경되었고 금고지(琴高池)라는 연못에는 연꽃과 빨간 잉어를 길렀다. 연못가에 척연정(滌硯亭)이라는 정자가 있고 동쪽에 늙은 잣나무 한 그루가 있어 ‘국단(掬壇)’이라 불렀다. 서쪽에 얼음처럼 차가운 샘물이 있는데 녹음정(鹿飮井)이라 하였고 녹음정 위에 시냇물이 흐르는데 의장혜(偯杖蹊)라 하였다. 서천(西阡)의 서쪽에 재목들이 빽빽하게 늘어서 있는데 이를 앵자강(鸎子岡)이라 하였고, 또한 동천(東阡)의 동쪽에 빽빽한 소나무 숲을 표은곡(豹隱谷)이라 하였다. 서쪽에 흐르는 시냇물과 붉은 돌이 있어 몸을 씻을 수 있는 곳을 수경간(漱瓊澗)이라 하였고 앵자강 남쪽에 초가 한 채가 있어 독서도 할 수 있고 별업을 관찰할 수 있는 집을 상암(襐菴)이라 하였다. 옻나무 숲과 감나무 밭이 지형을 따라 알맞게 누대의 경치를 아름답게 하였다. 농산별업의 중심 건물이 조석루인데 조석루에서 바라보는 덕룡산의 아침 경치와 저녁 경치가 모두 장관을 이루어 다산께서는 이곳에 묵으면서 朝夕樓記를 썼다(1811년).
옹산별업은 농산별업의 동쪽에 잇는 옹중산(翁㑖山-법수동)에 있으며 남양주로 이거 후 대과에 급제한 옹산 윤서유는 이곳에 백학루(白鶴樓)라는 건물을 짓고 묘역을 만들었는데 이곳에는 옹산과 그의 아들 윤창모 내외(다산의 딸) 그리고 그의 아들 방산 윤정기의 묘가 여기에 있다. (방산은 말년에 이곳 백학루에서 詩社를 맺고 의성사기(依聲社記)를 썼다.)
다산께서는 1811년 봄에 쓴 <조석루기>에 위의 농산별업의 명소를 모두 소개하고 또 쓰기를 『내가 다산에 우거한지 이제 4년이 되는데 매번 꽃이 피는 때면 이곳을 산보하였다. 오른쪽 산 고개 하나를 넘고(마치재) 시내를 건너 석문에서 바람을 쐬며 용혈에서 쉬고 청라곡에서 물마시며 농산에 있는 농막에서 묵은 뒤에 말을 타고 다산으로 돌아왔다. 개보(皆甫-윤서유)와 그의 사촌동생 군보(羣甫-윤시유)가 술과 고기를 가지고 와 석문에서 기다리고 어떤 때는 용혈에서 기다리고 어떤 때는 청라곡에서 기다린다. 취하도록 마시고 배불리 먹은 뒤에는 그와 함께 농산 농막에서 잠을 자는 것 또한 예이다. 조석루 누각에 오르면 덕룡산의 여러 산봉우리들의 험하고 깊숙한 모습이 궤안 앞에 벌려 있으며 울창하게 우거진 숲이 진세 밖으로 솟아올라서 마음을 놀랍게 하고 기쁘게도 한다. 장마가 계속되다가 맑게 갠 달이 산마루에 뜨면 여러 신선들이 유희 하는데 상서로운 구름이 공중에 서려 있는 듯 하니 좀처럼 보기 드문 절경이다. 나의 발자취가 덕룡산 일대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옛날에 왕휘지가 이것에 맛들였지만 아침 기운만을 취하였고, 도잠(도연명)도 이것에 맛들였지만 저녁 기운만을 취하였는데 개보(윤서유)는 두가지를 모두 취하여 그 누대에 이름 짓기를 朝夕이라 하였다. 내가 이 누대에서 묵을 때 저녁이면 그 곳의 저녁 경치를 보고 아침이면 아침 경치를 보니 두 사람은(도잠,왕휘지) 치우쳤고 개보는 전체를 얻었다는 것이 더욱 확실해진다.』-가경신미(1811년)춘- (강진 다산실학연구원 황병기 박사 해석문에서)
다산께서는 밤낮으로 집필에 몰두하여 심신이 지쳐 있을 때 옹산의 초대로 매년 조석루에서의 1박은 모든 피로를 풀고 쇠잔해진 에너지를 재충전하여 다시 또 저작 활동을 계속할 수 있었을 것이다.
농산별업과 조석루 그곳엔 현재 옛날의 유적은 흔적도 없고 후에야 건립된 <영모제>와 <국단>으로 추정되는 앙상한 나목 한 그루가 외롭게 남아 있을 뿐이다. 옛날의 농산별업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농장정원과 서루풍 별장이 전원적이고 목가적인 훌륭한 정원문화의 정수를 나타내는 우리 고장의 문화적 품위를 보여주는 곳이다. 다시 복원이 된다면 보길도의 부용정을 능가하는 명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고려시대 4국사가 입적했다는 용혈암의 (다산은 해마다 용혈을 찾아 천책국사를 생각하고 그의 행적을 연구했다.)복원과 만덕산 백련사에서 다산초당과 석문계곡을 거쳐 봉황리 호반의 계곡길 그리고 덕룡산과 조석루 그리고 옹산별업(법수동)의 다산의 딸과 방산의 묘지를 참배하고 주작산에 오르는 탐방길이 개발된다면 도립국립공원에 못지 않는 환상적 스토리텔링이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덕룡산의 폐광터는 하루 빨리 자연 조경 복원이 되어야 하고 그곳 일원엔 녹차원을 조성한다면 금상첨화가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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