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초고령화 시대
강진군 병영면 용두마을
박종수(92세)
“나는 순진해가지고 누구 거시기 헐지도 모르고 이라고 살아왔소. 지앙스럽게 다른 여자 쳐다보고 그렇게 안 놀았어.”
박 할아버지는 용두마을에서 태어나서 평생 용두마을에서 사셨다. 24살에 18살 강진 칠량처녀와 중매 결혼한 박 할아버지는 첫 눈에 신부가 맘에 들었다. 신부는 강진의 부자 김충식씨 장손 집안의 딸이었다.
“우리 각시 참으로 이뻤지, 생전 쌈 한 번 안하고 좋게 살았소. 시방 살었으먼 여든여덟이요.”
세상 살아온 것이 모두 허무하기만 하다는 박 할아버지다. 아직 눈도 귀도 그리 어둡지 는 않지만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자꾸만 멍청이가 되어가는 느낌이란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 있으면 더 조심하게 되며 아들 며느리에게도 말 한자리 함부로 안하려고 노력한다. 한 쪽 다리의 무릎관절이 아파서 약간 절룩거리게 되는 걸음이지만 병영면에 있는 목욕탕까지 자전거로 출입한다. 군에서 나온 복지카드가 있어 목욕탕에 가서 늘 몸을 담글 수 있어 좋다며 복지카드를 자랑스럽게 보여주셨다.
“밑에가 뭐 있돨? 그럼, 탕에는 깨끗이 닦으고 들어가야재.”
기자가 목욕탕에 들어갈 때는 밑을 깨끗이 씻고 들어가야 한다고 했더니 웃음소리를 크게 내며 활짝 웃으셨다.
“어찌 내가 이리 오래산가 하는 생각 밖에 안드요. 죽어불면 우리 마누라 만나고 그럴텐디.”
박 할아버지가 살고 있는 집은 옛 큰 부자집의 가옥이다. 박 할아버지는 40살에 이 집을 사게 되었다, 당시 동네 300석 부자였던 구씨 집안이 여수로 떠날 때였다. 그 때만 해도 집을 구경 온 사람도 있었을 정도로 큰 집이었다. 살아오면서 큰 고생은 없었다고 말하는 박 할아버지의 얼굴을 보면서 40이 넘으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지어야한다고 했던 미국의 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의 말이 떠오른다. 얼굴은 바로 그 사람의 이력서 아닐까.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는 바로 얼굴이 웅변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 할아버지는 마냥 좋은 사람 같아 보이는 호안(好顔), 왠지 모를 즐거움과 기쁨이 어려 있는 낙안(樂顔)이다. 그래서 이처럼 장수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박 할아버지의 얼굴에는 평생 호인으로 살아왔던 그 삶이 그대로 묻어 나온다.
“나는 오늘 죽어도 서운은 안허겄소, 그란디 마누라 죽을 때는 참 서운헙디다. 어서 가서 마누라 만날 생각밖에는 없소만은, 억지로는 못하는 목숨 아닌가.”
갑계모임에 30명이 있었다고 한다. 예전에 갑계 유사를 치르는 날이면 사람이 많아 마당에 차일을 치고 치르기 까지 했었는데, 그 친구들이 이제 하나도 남지 않았다. 한 세상 살아온 것을 생각해보면 그저 허무하기 그지없다는 박 할아버지. 갑계 친구들 모두가 80이 넘게 살았으나 하나 둘 세상을 떠나더니 덩그러니 혼자만 남게 되었다며, 먼저 떠난 친구들과의 우정어린 그리움을 회상했다. 마을의 이장을 몇 해째 맞아 해오고 있는 큰 아들(박일성70세)내외와 함께 살고 있는 박 할아버지는 자식이라도 똑 같이 늙어가고 있으니 서로 조심하고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저 내려와 같이 살고 있는 큰 아들 내외에게 감사하는 마음뿐이라며 너무 오래 살아서 자식에게 미안한 마음뿐이란다.
“촌에서 농사만 짓고 산 사람이 뭐 아는 것이 있어야 말허지. 우리도 어려서는 영리하단 소리 들었어도 나이가 든 께 통 알 것도 모르것고, 그라고 지내요.”
담배와 술은 젊어서 조금 했으나 일찍 끊어 버렸으며 밥과 국만 있으면 끼니를 해결하는 소탈한 식습관을 갖고 있는 박 할아버지는 젊어서도 반찬가지고 투정해본 적이 없단다.
“늙은께 잠이 없어집디다. 그란디 잠도 그렇게 안오지만 아무생각도 없소.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멍충이가 된 것 모냥이요. 각시생각도 안나고, 그란디 보고 지만은 못 본디 어쩌? 참 좋은 사람이었어.”
할머니가 시집올때 가져온 장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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