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흔요 이용희 무형문화재 제36호 청자장을 만나다
한 점의 예술품이 탄생하기까지에 얽힌 이야기를 알게 되는 것, 그것은 예술이 주는 즐거움의 하나이다. 단 한 작품이라도 그 탄생 속에 담긴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그저 그것이 가진 역사의 한 조각이라도 감명이다. 예술가의 모험과 열정, 그리고 낭만적인 꿈이 어우러진 그 예술품의 내력을 깊이 파고드는 일은 그래서 뜻 깊다. 하나의 예술작품엔 그 작가의 혼이, 결국 그 자신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방금 거래되는 현장을 목격했다던가. 청자축제장에서는 흔한 일이리라. 감히 값을 매길 수 없다는 천년 비색 청자, 그를 재현한 누군가의 최근 작품이 몇 백을 호가하는 가격에 거래되었다는 이야기가 모두의 화제로 등장했다. 소문의 출처가 이용희 匠人(장인)의 동흔요, 그를 만나려 명품관으로 향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희망찬 사람은 그 자신이 희망이 되며 그 자신이 새 길이 된다던, 그 참 좋은 사람의 인상을 풍기는 이가 이용희 장인이다. 무형문화재 제 36호 청자장이다. 한국 무형문화재 총연합회 이사, 1977년도부터 강진군 고려청자재현사업 추진위원회 위원을 일해 왔다. 그의 경력에 걸맞게 상감과 전통문양 위주의 대작들이 단연 돋보인다.
척박한 농촌에서 태어나 서당을 다니며 천자문을 떼고 겨우 초등학교 과정을 마친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농촌계몽운동에 앞장서서 정열을 불태웠던 청년이 이용희다. 하지만 평범한 농군에서 강진청자를 만난 후 뒤바뀐 인생행로다. 무엇에 홀린 듯 지도와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산천과 들녘을 쏘다녔다. 때로는 간첩으로 오인을 받기도 했다. 그가 매달린 것은 강진 고려청자의 재현이었다. 훗날 그 공이 인정되어 광주, 전남 지방의 신지식인 1호로 선정되었고.... . 이것이 강진청자 사업소 개발 연구실장을 거쳐 동흔요의 주인인 이용희씨의 간단한 이력이다.
그는 천년의 신비를 간직한 고려청자처럼 신비한 인물로 여겨지기도 한다고. 한 편의 드라마의 주인공 같은 그의 삶, 그것은 신비가 아니라 일평생 청자 재현에 혼신을 바친 한 인간이 몸으로 써내려간 인간 승리의 절절한 서사문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부친을 여윈, 하여 당장 끼니도 해결 못할 정도로 궁핍해진 가정형편으로는 감히 진학을 꿈꿀 수도 없었다. 하긴 이런 이야기에 너, 나가 있던가. 우리의 농촌마을 출신들의 유년 시절 흔한 자화상이다. 푸르게 넘실거리는 보리밭 이랑을 서성거리며 꽁보리밥이라도 좋으니 허기 진 배를 터지도록 채울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고 여겨지던 시절, 배고픔을 숙명으로 여기던 그때 그 시절. 소년 이용희도 우리의 농촌에서 만나지는 평범한 아이였다.
그러나 그는 운명적으로 다른 아이로 태어났다는 걸 그 자신도 미처 깨닫지 못했다. 그는 청자의 성지라고 할 수 있는 전라남도 강진군 대구면의 토박이다. 이 마을 태생의 누구나와 마찬가지로 산천들녘 여기저기 지천으로 널려있는 청자파편을 놀이갯감 삼아 자란 아이였다. 그런데 다른 아이들과 다른 점이 있었다. 파편을 만지면서 감지되는 그 무엇! 그것은 바로 도공의 마음이었다. 은연 중 가슴에 스며든 도공의 혼이 어린 이용희를 사로잡았다. 이 마을 사람들은 청자 파편을 두려워했다. 귀신이 붙은 흉물이라며 기피대상으로 여겼다. 그런 청자 파편들을 이용희는 집으로 주워 모았다. 헌 장롱에 진열하고는 붓으로 ‘당전청자박물관’이라는 글씨까지 써 붙였다. 작은 꽃씨 하나가 땅에 떨어져 마침내 큰 열매의 결실을 맺듯 한 사람의 작은 행위가 엄청 난 결과를 불러 일으켰다. 그가 모은 청자 파편에 섞여 있던 靑기와와편이 학계에 보고됨으로써 고려사에서 기록으로만 전해 오던 청자 기와가 사실로 증명된 것이다. 또한 청자가마에서 제작되었다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 이를 계기로 이용희는 이미 고려 도공의 마음이 청자 파편을 통해 자신에게 불어넣어졌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청년 이용희는 여전히 흙과 씨름하는 변함없는 농군이었다. 정직한 흙에 매달려 농사를 짓는 평범한 농사꾼인 이용희의 농사에 대한 노력과 집념은 치열했다. 박토를 일구어 먹고 살려면 흙을 뜨겁게 사랑해야 된다. 농작물 하나, 하나를 내 몸처럼 여겨야한다. 대충 뿌리고 그럭저럭 거두려는 태도는 절대로 용납되지 않았다. 밭에 구멍을 파고 일일이 보리를 파종해 보기도 하고 좋은 마늘 종자를 구하기 위해 멀리 고흥금산까지 찾아가기도 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고향의 척박한 현실을 바꿔보기 위해 ‘開興會’라는 모임을 만들기도 했다. 농사연구와 독서운동, 야학회, 마을문고와 더불어 마을 금고운동까지도 시도해 보았다.
그러던 중 실시된 1964년 실시된 국립중앙박물관 발굴조사팀의 강진 가마터 1차 발굴 조사, 그것은 농투성이였던 그를 변화의 회오리 속으로 몰아넣은 대 사건의 시작이었다. 조사팀은 그의 집에 진열된 청자 파편들을 구경하고 인근에 대규모의 고려청자 가마터가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발굴 조사팀은 미지정 청자 가마터였던 사당리 117번지 일대를 조사키 위해서는 땅의 소유자인 이용희씨의 협조를 구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소유를 파헤치도록 승낙했을 뿐 아니라 사람들을 동원하여 작업을 돕고 연장을 구해주는 등 자질구레한 잔심부름을 도맡았다.마침내 현장에서 청기와 암막새기와와 모란 문양이 선명한 수막새기와도 출토되었다. 당시 신문 기사를 옮기면
‘1964년 9월 이 마을에 사는 이 용희씨 담을 헐어 발굴한 결과 12세기전반에 만든 것으로 알려진 고려 청기와인 암막새기와(청자양각당초문와당)와 숫막새(청자양각모란문와당)가 나왔다. 미추보다도 광채가 더 난다는 이 기와는 王家(왕가)의 지붕을 이었다는데, 햇볕이 날때는 그 광채 때문에 눈이 부셔 쳐다볼 수 없었다고... .’
그 작업이 완료된 후 이용희씨는 국립박물관 발굴 조사팀의 긴밀하고 중요한 연락원으로 신분이 바뀐다. 그에게 펼쳐질 새로운 인생의 전초전이었다. 이후 틈만 나면 대구면 일대를 샅샅이 조사했다. 사람들은 멀쩡한 청년이 미쳐간다고 혀를 끌끌 차기도 하고 혹시 이북의 지령을 받은 고정 간첩이 아니냐고 수근 대며 입방아를 찧었다. 그는 마침내 고려시대 청자터를 새롭게 발굴해내는 쾌거를 이룬다, 당시 지정된 청자 가마터는 100개, 현지 사정에 밝은 그가 추가로 발견한 가마터는 무려 88개에 이르렀던 것이다.
1977년 청자재현사업추진회가 결성되면서 그의 활약상은 빠르게 전개된다. 강진고려청자 재현을 위해 군비 500만원을 들여 강진요 1호를 만들었던 감격을 그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러나 청자가마터 원형을 충실히 복원한 청자 재현사업의 첫걸음인 강진요는 그 해 여름 몰아닥친 폭우로 위기를 맞는다. 채 완성도 되기 전 거센 폭우에 가마를 쌓은 벽돌들이 하나 둘 허물어질 때마다 그의 가슴도 함께 무너져 내렸다. 숱한 시행착오와 피나는 노력 끝에 1977년 12월 27일, 600여 년 동안 꺼져 있던 가마에 다시 불을 지피는 그 역사적이고 감동적인 순간을 어찌 잊을 수 있으랴.
이마에, 온 몸에 구슬 같은 땀방울을 흘리며 흙을 빚고 문양을 새겼다. 드디어 가마에 불을 지필 때 아, 어김없이 그 사내들이 보였다. 이름 없이 사라져갔던 고려도공들의 혼백이었다. 이용희씨, 그의 눈동자에도 집념의 불꽃이 활활 타올랐다. 속절없이 사라져 간 고려도공들의 장인정신이 불길보다 더 뜨겁게 그의 온 몸에 흘러 들어왔다. 화염과 연기를 상대로 악전고투하며 불마감을 했을 때 그는 탈진했다.
천년 비색!
무려 600여 년의 긴 세월 동안 깊은 수면에 빠져 있던 청자가 마침내 긴 기지개를 켰다. 햇살 아래 영롱한 비색! 그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음각국당초문화병(陰刻菊唐草文花甁)을 부등켜 안았다. 청자재현!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그토록 갈망했던 꿈이 현실이 되어 나타나다니 그는 믿어지지 않았다.
그동안 어떤 유혹에도 의연할 수 있었던 것은 오늘날의 자신이 있도록 도와준 이들의 큰 은혜를 져버릴 수 없다는 일념이었다. 이제 전통적인 형태와 품위만을 고집하기 보다는 우리의 실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신상품의 개발을, 그리고 전통 고려청자와 현대자기와의 접목 하는 것 또한 중요한 과제라고 말하는 동흔요의 이용희 장인, 이렇듯 예술품에 얽힌 뒷이야기는 그 예술품의 미적 자질을 초월해 우리에게 구원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기쁨, 분노, 연민, 경멸, 무모함, 확신, 용기,... . 예술은 이 모든 것을 함유하며 때론 그 이상이기 때문이다. 결국 예술은 우리네 삶이 빚은 보석, 아니 한 사나이의 끈질긴 집념이 재현해 낸 푸른 청자의 비취빛이 오늘따라 더더욱 황홀하다. (김현임 객원기자)
참조 : 동흔요 이용희 장인은 1977년부터 2005년까지 청자박물관에서 일해왔다. 퇴직한 이후 개인적으로 수집한 총 800여 점의 청자파편을 청자박물관에 기증, 귀중한 자료로 전시되고 있다. 2010년 11월 20일부터 2011년 2월 말까지 50여 점을 중국 항주 남송박물관에서 초대전을 한 바 있고 다시 중국 무형문화재와 비교 전시회를 중국에서 가질 계획이다. 현재 동흔요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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