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분간 가습기 살균제 사용은 중단하자
강진군보건소 공중보건의 김기현
올 초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는 급성호흡부전 환자들이 연이어 사망하는 사례가 발생했다. 이들은 모두 임산부였으며 폐질환의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고 다만 가습기를 사용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정부나 의료계 모두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했지만, 4~5월 동안 8명의 환자 가운데 4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원인불명의 폐질환에 대한 공포는 급속도로 번지기 시작했다. 일각에서는 바이러스 감염에 의해 폐에 염증이 생기고 이로 인해 사망에 이른 것이 아니냐며 조류독감이나 신종플루 때의 악몽을 떠올리게 했다. 급기야 질병관리본부가 역학 조사에 나섰고 그 결과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질병관리본부가 수거를 명령한 6종의 가습기 살균제)
유력한 원인은 바로 가습기의 세균번식을 막기 위해 넣는 살균제였다. 조사결과 환자들은 매년 4개월정도 평균 3-4년간 가습기를 사용했으며, 한 달 평균 1병 정도의 살균제를 사용했다고 한다. 특히 놀라웠던 것은 보통 흡연 시 폐암에 걸릴 확률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10배 정도 높다고 하는데,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군은 비환자군에 비해 원인미상 폐손상이 발생할 확률이 47배나 높다는 결과였다. 가습기는 실상 하루라도 물을 안 갈아주면 물때가 끼고 냄새도 나고 해서 관리가 까다롭다. 매일 기계를 분해해서 구석구석 씻어주고 하면 되겠지만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다. 그러다가 가습기 살균제가 보급되면서 그런 불편함을 덜어주었는데 결과적으론 담배보다 해로운 상황이 되고 말았다. 이에 질병관리본부는 실제 쥐를 대상으로 가습기 살균제의 흡입실험을 시행하였고, 지난 11일에 그 결과는 역학조사와 일치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위해성이 확인된 6종의 가습기살균제는 시장에서 수거명령이 내려졌다.
문제가 되는 독성물질은 살균제 성분인 폴리헥사메틸렌 구아니딘 인산염(PHMG phosphate)과 올리고 에톡시에틸 구아니디움 염화물(PGH) 2가지다. 현재 이들 물질은 방향제, 물티슈 등에도 쓰이고 있다. 인간의 피부는 그 어떤 조직보다도 단단한 방어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동안은 이러한 물질들의 위험성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하지만 폐조직은 피부와 같은 보호막이 없기 때문에 낮은 농도로도 사망에 이르는 위험성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특히 가습기는 장시간 사용하는 경우가 많고, 살균제를 물에 직접 풀어서 쓰는 방식이라 문제가 되었다고 보고 있다. 놀라운 사실은 가습기에 살균제를 풀어서 쓰는 나라는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유일하며 그래서 이러한 피해보고는 아직 없다고 한다. 지금까지 확인된 피해자는 총 34명으로 여성이 29명이고 소아가 4명이다. 29명의 여성 중 19명은 임산부였다. 임산부나 소아의 경우 일반인에 비해 면역력이 떨어지고 야외활동보다는 가정에서 지내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에 장시간 가습기에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앞으로 겨울철 건조한 날씨가 계속될 터인데, 당장 가습기를 써도 되는지 고민이 많다. 방안 세숫대야에 물을 떠놓거나 젖은 빨래를 널어놓는 방법도 있다. 가습기를 써야 한다면 다음의 사항들을 꼭 명심하자.
1. 가습기 통의 물은 매일 교체한다.
2. 씻을 때는 물통뿐만 아니라 물통아래 진동자 부위도 씻어야 한다.
3. 락스나 비누 등은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고 중성세제를 이용하도록 한다.
4. 1주일에 2번 정도는 살균 소독을 한다.
5. 가습기를 사용하지 않을 때는 씻은 뒤 완전히 건조시킨다.
정부는 가습기 외에도 물티슈나 방향제 등에 들어가는 물질에 대해서도 포괄적인 위해성유무조사에 들어간다고 하니, 이러한 편의용품들이 생활곳곳에 자리잡은 이상 당분간은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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