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초고령화시대
강진읍 남성리
이형희(90). 김영례(91)씨 부부
“5남매들이 다 신앙생활 잘하며 구십 평생 같이 산다는 것, 예수님 사랑으로 산다는 것이 우리의 가장 큰 기쁨이지요.”
두 분의 대답은 똑 같았다. 이루어지기 어려웠던 두 사람이 만나 평생 살아온 것 자체가 하나님의 기적이며 은혜라고 믿기에 서로를 존중하며 살아왔다. 김할머니는 전주기전여고를 졸업하고 전주보육전문의를 다니던 2학년 2학기에 우수한 학생으로 뽑혀 강진유치원에 오게 되었다. 전주보육전문의는 전국에서 서울과 전주 두 곳에만 있던 보육 전문의였다. 유치원이 없던 시절 강진의 부자 김충식(당시 한국의 부자 3인 중의 한 사람)씨가 강진읍교회에 유치원을 설립할 당시였다.
“교장선생님께서 니가 가야 강진유치원을 살린다 하시면서, 한 학기만 갔다 올라와라. 부자가 유치원을 지었기 때문에 괜찮을 것이다 라고 하더라고······”
김할머니가 지도로 강진을 찾아보니 아득한 섬처럼 보였다. 또한 친척이나 친구들은 너처럼 멋있고 음악도 체육도 무엇 하나 못하는 게 없는 아이가 그런 곳에 간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못 가게 말렸다.
“기차타고 영산포서 내리니 버스라고 하는 것이 하루에 2번 있는 목단차(숯으로 불을때어 수증기로 가는 버스)였어. 풀치재에서는 차가 올라가들 못하고 또 반대편에서 차가 오면 비켜야만 한대가 지나가야해서 강진에 들어오는 길이 참 험난했어.”
강진유치원에 와보니 아이들이 몇 되지 않았다. 그 당시만 해도 부잣집 아이들 몇 명이 유치원에 다니고 있었다. 김할머니는 그런 강진유치원에 아이들을 늘리기 위해 가가호호 방문하면서 아이들을 늘려나갔다.
“프로벨 음악교육 정신을 이어받아 자연 속에서 애들을 가르치는 것과 교회 봉사하는 것이 내 소망이었어, 여그저그서 며느리 삼을라고 했지만 결혼할 생각이 전혀 없었어. 마음이 어렸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러던 중 할아버지를 알게 되었다. 이할아버지는 고향 강진을 떠나 광주에서 살고 있었다. 일찍부터 서울YMCA에서 사진기술을 익힌 할아버지가 마침 강진유치원에 사진을 찍기 위해 왔던 거였다. 그렇게 알게 된 뒤로 서로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러나 김할머니는 강진을 떠나 전주,논산등과 함경북도 효령(만주경계선)에 있는 유치원에까지 다니며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김선생, 이선생 하면서 편지를 주고받았지. 그렇지만 주로 신앙애기나 주변이야기였지 둘만의 이야기는 하지 않았어, 친구들은 손도 안 잡아보고 어떻게 연애하냐고 놀리기도 했지만, 정말 손도 안 잡아봤어.”
김할머니는 많은 곳에서 선이 들어왔지만 결혼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결혼할 생각을 갖지 않은 것은 마음 한쪽에 할아버지가 이미 들어앉아 있었기 때문 아니냐고 기자가 물었다.
“확정을 못하겄어, 여그를 두고 다른대로 시집가면, 내 마음에서 하나님께 죄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자꾸 들었어.”
두 분은 결혼 후 강진에 살면서 강진 발전을 위해 많은 일들을 하였다. 이할아버지는 강진YMCA를 창설하여 강진 청년운동을 시작했으나 10년 만에 그만두어야 했다. 그때만 해도 강진사람들이 YMCA의 3가지 목표(영혼, 지식, 체육)를 이해하지 못했고 받아들이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한 청년운동을 자비로 계속 하다보니 비용 감당이 너무 힘겨웠다며 지금도 어떻게 이끌었는지 믿기지 않는다고 한다. 그 이후에도 국회의원 사무국장23년, 도서관장9년 문화원장 20년 등 중요한 일들을 도맡아 했다. 지금은 문화원장 같은 자리도 서로 하려고 나서고 있지만, 그때만 해도 예산도 없는 자리여서 나서서 할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계속 맡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김할머니 또한 한국부인회를 일을 맡아 강진의 면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여성 계몽운동을 하였다.
“선거법도 모르지, 투표법도 모르지. 농촌 여성들이 너무 무지했었어. 지금도 시장 같은데서 나를 알아보고, 회장님 하면서 반갑게 맞는 사람들 볼 때 참 반가워.”
신여성이었던 김할머니는 시집올 때 서너 컬레의 구두를 가지고 왔지만 남들이 흉볼까봐 신지 못했다. 무명옷만 입고 다니던 강진사람들 사이에서 양장을 입고 있으면 학생들이 일본사람이나 미국사람이라고 하며 지나가곤 했었다고 회상했다. 이 할아버지는 6.25때 죽을 뻔한 고비도 여러 번 넘긴 일을 생각하면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주신 기적이라고 말했다. 고령의 나이에도 강진읍교회 행사날이면 할아버지는 클라리넷을 불고 할머니는 피아노를 치신다. 서울에 사는 큰아들(이열)이 사준 오르간을 소중하게 바라보는 김할머니의 눈빛, 그런 할머니를 지긋이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모습에서 이런 성서 구절을 떠올린다.
믿음 소망 사랑 그 가운데 제일은 사랑이라. (이현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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