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숙기자의 횡설수설
그녀
그녀가 남편과 함께 찾아왔다. 그녀 남편의 손에는 검정 비닐봉투가 들려있었는데 몇 개의 꽃이 삐죽 밖으로 삐져나온 것으로 보아 아마도 어느 행사장을 거쳐 온 것이구나 싶었다.
그녀는 읽는 것을 좋아한다. 신문에도 관심이 많아 기사를 꼼꼼히 읽는 듯하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어쩌다 저렇게 되었을까 하는 마음에 한 사람의 과거 삶이 무척 궁금해진다. 칠푼이, 모질이 등 한심한 별명을 다 붙여 부른다 해도 자신이 그에 대해서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다면 마음의 분노도 화도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그것도 아니다. 자신에게 서운하게 한 사람들에게 대해서는 마음에 큰 상처를 분명 안고 있었다. 또 고마운 사람들에게는 기회가 되면 보답할 생각도 갖고 있는 지극히 순수한 사람이다. 내 이름이 한동안 신문에 보이지 않자 내게 전화까지 한 그녀였다.
그날 그녀는 신문기사에서 자신이 한 일이 다른 단체에서 한 일로 기재 됐다고 했다. 자신이 먼저 알고 전화 신고를 했었다는 거였다. 그래서 누군지 밝혔느냐고 물었더니 그건 아니라고 했다. 어떤 사람의 제보를 통해서 일이 잘 처리 되었고, 잘 해결된 부분이 더 중요한 것 아니었겠냐고 말해주었더니 그녀는 수긍을 했다. 그러자 그녀는 또 이야기보따리를 줄줄이 풀어놓았다. 그녀는 자신이 죽은 사람들을 잘 발견하게 된다며, 왜 그런지 알 수 없다면서 때로는 무섭다고 했다. 위험에 처한 사람 또는 죽은 사람을 발견했던 사연들을 내게 리얼하게 이야기 해주었다. 그때마다 신고를 하여 오히려 오해를 받기도 했다는 거였다. 그런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만 있던 그녀의 남편은 그런 아내가 걱정된다며 한마디 거들었는데, 아내에 대한 사랑이 묻어났다.
오래 듣고 있으면 어렸을 때 있었던 일화까지 재미있고 구수하게 말을 잘 하는 그녀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쩌면 저렇게 머릿속에 있는 기억들을 풀어서 이야기를 잘할까 하고 감탄했다. 어렸을 적에 산에서 소에게 풀을 뜯기고 놀았던 이야기며, 그러다가 같은 동네에 살던 친척오빠가 농약중독으로 쓰러진 모습을 발견하여 힘들게 뛰어가 알렸던 사연 등등 그녀는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잘한다. 그녀의 이야기들이 사실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혹여 사실이 아니더라도 그녀의 이야기 솜씨는 보통이 아닌 건 분명하다. 또한 기억력도 대단하다. 우리 아이 이름을 가르쳐준 것이 아주 오래전인데도 아직도 ‘누구엄마’라고 우리 아이이름을 정확히 붙여 부른다.
그녀의 남편은 참 차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내아이를 어느 아동센터인가에 보내라 해서 보냈는데, 아이를 보기 힘들다는 얘기를 조용조용하게 눈물이 그렁그렁해지면서 말했다. 그녀 또한 매우 슬픈 표정으로 아이를 그리워하는 표정이다.
강진 사람이면 그녀를 많이 안다. 그녀의 얼굴 생김새나 차림새 행동을 보면 정상적인 사람으로 보긴 힘들다. 하지만 나는 오래전부터 그녀가 찾아오면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친구가 되었다. 들어보면 참 재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몇 년 전 그녀가 자신의 어린 아기를 업고 찾아왔을 때 나는 깜짝 놀랐었다. 등에 업힌 아이가 금방이라도 바닥으로 떨어질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업혀 있어서인지 자꾸만 칭얼댔는데, 나는 불안하여 아이를 빨리 내려놓으라고 했었다. 그런데 아이를 내려놓았을 때 아이에게 입혀진 옷을 보고 그만 입이 딱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윗옷을 아이의 다리에 끼어 입혀 놓았는데, 당연히 허리가 안 맞으니 허리는 끈으로 묶어 놓은 거였다. 그러니까 아이가 기저귀를 차고 있었는데, 윗옷의 목 부분이 아이의 기저귀부분과 딱 맞은 거였다. 그렇게 입히면 아이에게 기저귀를 채우지 않아도 되고 기저귀를 채우고 빼는데도 아주 편리한 아이의 아래옷이 되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정상인 사람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보이는 모습이나 행동자체가 그러니, 지극히 불쌍하고 불행한 사람이다. 그런데도 내 눈에는 그녀가 불행해 보이기보다는 누구보다 행복해 보였다.
우리의 삶을 나타내는 지수들이 가끔 보도된다. 국민총생산지수, 엥겔지수, 빈곤지수, 진정진보지수, 세계행복지수 등등 그런데 최근 세계행복지수 1위 국가가 부탄이라고 보도됐다. 해발 2000미터 이상의 히말라야 고도에 위치한 부탄은 한반도의 1/5 정도에 불과한 가난한 나라라고 알려져 있다. 현대 사회에서 가난하다는 것은 어쩌면 문명의 혜택을 그만큼 많이 받지 못한데서 오는 평가인지도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부분은 결코 행복은 물질에서 오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고, 그것에서 한편으로는 삶의 위안을 느끼는 것인지도 모른다.
버선을 짝짝이로 신고 있었던 그녀가 남들이 왜 짝짝이로 신었다고 말하는지 이상하다며 웃었을 때, 나는 멋있다며 유행을 만들어 보라고 맞장구를 쳐주었고 마침 선물로 받아 놓았던 수면양말을 선물로 주었다. 그리고,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을 생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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