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세(人間世)
공자의 수제자인 안회가 스승을 찾아뵙고 다른 나라로 떠나겠다고 말씀 드렸다.
“어디로 가려 하느냐?”
“위나라로 가려고 하옵니다.”
“무엇하러 가려 하느냐?”
“위나라 임금이 젊은 혈기에 자기 멋대로 권력을 남용하여 백성들의 죽음을 가볍게 생각하기 때문에 시체가 늪지의 풀처럼 쌓여가서 백성들이 불안해 어찌 할 바를 모른다고 하옵니다. 선생님께서 말씀 하셨습니다. ‘잘 다스려지는 나라에는 할일이 없다.’ 그러므로 어지러운 나라를 만드는 일이야 말로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닐까요?”
“의원 집 문 앞에는 병사가 많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선생님의 가르침에 따라 위나라로 가서 병을 고처보고 싶습니다.”
“아서라, 가봤자 결국 형을 받을 것이다 무릇 도는 섞이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시끄럽게 섞여지면 일이 복잡해지고, 복잡해지면 혼란스러워 진다. 혼란스러워지면 근심이 생긴다. 근심 걱정이 생기면 남을 도와줄 수가 없다. 옛날 지인들은 스스로 도를 닦은 다음에 남에게도 도를 닦을 수 있도록 도와 줬다. 자기도 제대로 닦지 못 하면서 어떻게 포악한 사람들의 행동을 교화 시킬 수 있겠느냐. 너는 덕이 어째서 잃게 되고 자식이 어떻게 생겨나는지 아느냐. 덕을 잃게 되는 것은 명예에 대한 욕심 때문에 잃게 되고, 지식에 의존 하게 되는 것은 싸움에 그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명예에 사로잡히고 지식에 의존하는 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립은 계속될 뿐이다. 명예란 서로 헐뜯는 것이고 지식이란 서로 다투기 위한 연장일 뿐이다. 명예욕이나 지식은 상대방을 해치고 자신을 망치는 흉기이기 때문에 흉기에 의존 하게 되면 도대체 뭐가 될 수 있다는 말이냐. 가령 네가 충분한 덕을 갖추고 있으면서 아무런 명예욕도 가지고 있지 않다 할지라도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상대가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를 상대방의 마음속에 들어가서 판단하지 않으면 안 된다. 폭군에 대하여 자기만의 자를 들고 인의나 도덕을 주장한다면 그 결과가 어찌 되겠느냐. 말하자면 포악한 사람 앞에서 인의와 도덕을 이야기 하면 남의 잘못을 이용하여 자기의 잘남을 드러내는 것과 같다. 상대방 눈에는 네가 남의 결점을 미끼삼아, 자기 혼자 잘난 체 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겠느냐. 위왕이 진짜 훌륭한 사람을 좋아하고 못난 사람을 싫어한다면 굳이 너를 써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 하겠느냐. 결과적으로 자신이 해침을 당하고 말걸세. 기실 그가 손을 댈 수 없을 정도로 못된 왕이라 할지라도 너 만한 인물은 얼마든지 있다. 네 의견 따위에 귀 기울기나 하겠느냐. 네가 입을 열기도 전에 상대방은 권세를 등에 업고 단숨에 너를 내리 칠 여고 할 것이다. 그러면 너는 상대방 기분을 해치지 않으려고 줄곧 변명만 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처음 가졌던 마음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상대방의 의향에 말려들고 말 걸세. 이렇게 되면 마치 불에다 기름을 들이 붙는 꼴이 되지. 상대방 신임도 얻지 못한 처지에 눈치 없이 간언하게 되면 죽게 되는 것은 불을 보듯이 뻔하지 않겠는가? 옛날 관용봉은 하 왕조의 마지막 임금인 걸의 신하인데 걸의 잘못을 간 하다가 목을 베이게 됐고, 비간은 주(紂)왕의 작은 아버지로서 주왕의 잘못을 간 하다가 주의 심기를 건드려 성인의 염통에 구멍이 일곱 개나 된다고 하는데, 어디 봅시다 하는 말을 듣고 죽임을 당했다. 관용봉과 비간은 다 같이 세상에 알려진 어진 사람이다. 그들은 신하이면서 임금의 잘 못을 꾸짖고 백성들을 불상이 여겨서 백성들 사이에서 임금을 능가한 명성을 얻고 있었다. 임금이 그들을 죽이는 것은 그들의 뛰어난 인격을 미워하였기 때문이다. 그들 두 사람은 명예욕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위험에 부닥치게 된 것이다. 옛날 요 임금은 총(叢)과 지(枝)와 서오(胥敖)를 토벌하고 우(禹) 임금은 유호(有扈)를 토벌했다. 그 결과 그들 네 나라의 임금들은 죽게 되고, 백성들은 흩어지고, 나라는 망하게 되었다. 이들 네 나라들은 이익만을 끝없이 추구한 나머지 끝없이 전쟁을 되풀이 하였다. 명예와 이익에 마음을 빼앗긴 것이 그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원인이다.”
“이 이야기는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있을 것이다. 명예와 이익에 마음을 빼앗기면, 어떤 성인의 힘을 가지고도 그를 쉽게 교화시킬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러나 자진해서 위나라로 가려 하는 이상, 네 나름의 생각이 있지 않겠느냐. 그것을 한번 들어보자.”
안회가 말했다. “단정한 몸가짐과 겸손한 자세로 변함없이 애를 따르겠습니다.” “아서라. 그런다고 어찌 될 것 같으냐? 위나라 임금은 원래 기운이 넘쳐 나고 잘난 체 하며 변덕이 아주 심한 사람이다. 누가 그의 비위를 맞추겠느냐. 남의 감정 같은 것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자기 맘대로 행동한다. 말하자면 매일 덕을 닦은 일도 못하는데, 하물며 임금 앞에서 큰 덕을 얘기한들 별 수 있겠느냐? 위나라 임금은 고집이 세서 꺾을 수 없다. 겉으로는 말을 들은 척 하지만, 속으로는 무시할텐데 무슨 일이 되겠느냐?”
“그러면 속으로는 곧은 마음을 가지고, 겉으로는 굽실 거리겠습니다. 임금에게 간언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반드시 옛 사람들의 말에 빗대어 탈이 없게 하겠습니다. 강직한 사람은 하늘을 따른다고 했습니다. 하늘을 따르는 사람은 임금도 또한 자기처럼 하늘이 낳는 아들이라는 것을 알겠지요, 그렇다면 자기 말을 좋게 평가하든 말든 무슨 상관을 하겠습니까?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을 보고 마치 천진스런 아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제가 말씀드리는 하늘을 따른다는 뜻입니다. 겉으로 위나라 임금을 거역하지 않는 건 세상을 따르는 일입니다. 홀을 잡고 무릎을 꿇고 임금 앞에서 머리를 깊숙이 숙이는 것은 신하가 해야 할 예의입니다. 저도 이렇게 할 작정입니다. 누구나 하는 일을 하니 비난 받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을 따른다는 뜻입니다. 옛 사람들의 의견을 빌려 자기 말을 하는 것은 옛 사람을 따른다고 하는 뜻입니다. 제가 임금님을 비난하며 반성하라는 말을 해도 옛 사람의 말을 빌린다면 저의 말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바른 말을 해도 큰일 날이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말씀 드리는 옛 사람들을 따른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제대로 될 것 같으냐. 지나치게 꾸미고 있어 좋지 않아. 고리타분한 방법이긴 해도 벌을 받지는 않겠구나. 그러나 그저 그뿐이지. 그렇게 해서 그 사람을 바꿀 수 있겠느냐? 너는 여전히 네 마음을 스승으로 삼고 있구나.”
안회가 말했다. “그렇다면 제겐 더 이상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공자가 말했다. “우선 재계(齋戒)하라. 그런 다음 말해 주겠다. 사사로운 마음으로 재계한다면 쉽겠느냐. 재계하는 것을 쉽게 생각하는 사람은 저 맑은 하늘이 마땅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저는 가난하여 여러 달 동안 술을 전혀 마시지 못하고, 변변한 술안주도 먹지 못했습니다. 이정도면 재계(齋戒)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내가 말하는 것은 마음의 재계이지 제사 지낼 때의 그런 재계가 아니다.” 안회가 말했다. “마음의 재계는 어떻게 하는 건가요?”
공자가 대답했다. “일체의 유혹에서 벗어나 마음을 순일하게 갖는 것이다. 먼저 마음을 하나로 모으거라. 귀로 듣는 것보다 마음으로 듣는 것이 좋다. 다음은 마음으로 듣지 말고, 기(氣)로 들어라, 왜냐하면 귀는 소리를 감각적으로만 받아들일 뿐, 마음은 고작 사물만 인식하는데 불과하다. 그러나 기(氣)는 이와는 다르다. 기는 텅 비어있어 모든 사상을 있는 그대로 무심히 받아들인다. 도는 이 무심의 경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완전히 나타나는 법이다. 마음으로 재계한다는 건 바로 이 무심의 경지를 내 것으로 하는 것이다.”
안회가 말했다. “선생님 말씀을 듣기 전에는 제가 안회라는 것을 의식 했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듣고 보니 제가 안회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습니다. 이런 것을 허(虛)라고 하는 것입니까?”
“그래 바로 그거야. 네게 말해 주마. 위나라로 가거든 명예를 지 말거라. 네 말을 받아주면 말을 하고, 받아주지 않으면 말을 하지 말거라. 속마음을 보여 남한테 트집 잡히지 말고, 자기 마음을 한결같이 잘 다스려 어쩔 수 없는 경우 이외는 움직이지 말거라. 그러면 그런대로 성공 할 것이다. 세속을 살면서 자기의 발자취를 끊고 숨어 살기는 쉽지만 세속에 살면서 세속적인 행위를 하지 않기란 어려운 것이야, 평범한 사람으로 남아 있는 한 발자취를 없애기란 어려운 것이야, 반대로 하늘을 따르고 자연에 몸을 맡기면 작위의 흔적은 남지 않는다. 날개가 있기 때문에 새는 하늘을 난다. 그러나 날개를 버려야 참다운 앎을 얻을 수 있다. 방이 텅 비어야 햇빛이 많이 들어온다. 마음이 비어 있지 않으면 잠시도 편해질 수 없다. 그저 들리고 보이는 데로 받아들인 것이 좋다. 내가 안다고 해서 따져서는 안된다. 쾌거, 복희, 요, 우, 같은 성인들도 마음을 비우려고 평생 동안 노력했는데, 하물며 성인이 아닌 보통 사람이 이것을 복표로 하는 것은 당연 하지 않는가?”
다음기사 : 
